괴산 한지박물관
괴산 한지박물관에서 한지에 대하여 배우다.
- 자연에서 얻은 천연의 색, 한지의 우수성 -
글·사진 남상학
* 괴산군 연풍면 원풍리, 옛 신풍분교 자리한 한지박물관
괴산여행에서 첫 번째로 한지박물관을 찾았다. 위치는 괴산군 연풍면 원풍리, 옛 신풍분교 자리라고 한다. 단아하게 꾸며진 한지박물관은 지상 1층 총넓이 1,326㎡ 규모의 충북 최고의 한지박물관이란다. 구조는 전시실, 기획전시실, 공예실, 체험실, 강당 등으로 꾸며져 한지의 진정한 가치를 확인할 수 있는 문화공간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전시실은 한지의 기원에서부터 현재까지의 한지의 역사와 괴산 한지에 관한 변천사와 한지의 제조방법을 전시하고, 다양한 한지적용사례 및 그 적용된 한지의 과학적 장점을 전시하고 있다. 기획전시실은 년 12회로 전통한지 및 한지공예품을 전시하고, 전통문화 관련 전시를 유치하여 한지와 전통문화에 대한 풍부하고 다양한 전시를 하고 있다.
한지의 체험공간은 몸소 체험을 통하여 한지를 알 수 있는 체험의 공간으로 꾸며서 남녀노소 누구나 특히 힉생들의 교육의 장이 되도록 하였다. 공예실은 한지를 이용한 각종 공예품 만들기 즉 한지등, 한지 인형, 한지 거울, 한지 컵받침, 한지필통, 한지부채, 한지 리모콘바구니 등을 만들 수 있고, 한지체험실에서는 전통한지뜨기, 야생화지 뜨기, 입체문양지뜨기, 카드, 엽서뜨기, 책표지만들기, 헌지 옛책만들기 등을 체험할 수 있고, 문양찍기체험, 12간지인출체험, 훈민정음인출체험, 고서인출체험 등 인출체험을 할 수 있다.
* 야생화지뜨기 체험을 마치고 결과물을 들어보이는 손자 남기찬 어린이
한지에 대하여 거의 무지한 상태였던 나는 박물관을 둘러보며 한지에 대하여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먼저 ‘한지’ 명칭의 유래는 양지나 중국과 일본의 화지에 대응하여 붙인 반대개념으로, 겨울철 찬물에 담가 좋은 질의 원료를 만들었다 하여 ‘찰 한(寒)’ 자에서 유래를 찾기도 하지만, 대체로 우리나라의 종이라는 뜻으로 ‘대한민국’의 ‘한(韓)’ 자를 따서 그 이름을 붙인 것이라는 것이 유력하다. 그래서 한지를 가리켜 보통 조선종이라고도 한다. 그리고 한지가 닥나무 껍질의 섬유질을 이용하여 만든 전통 종이이기에 순우리말로 ‘닥종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한지의 역사
* 괴산한지박물관 로비
그렇다면 한지의 역사는 언제부터인가? 한지는 이미 삼국시대부터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6∼7세기에는 제지기술이 한반도에서 보편적으로 발전하였다. 그 증거로 610년경 고구려의 승려 담징은 법정과 함께 일본으로 건너가 채색, 종이, 먹, 맷돌 등을 만드는 법을 가르쳤다고 전해진다. 일본서기, 불국사의 석가탑에서 나온 최고의 목판 인쇄물인 무구정광다라니경은 7m가량의 닥나무를 원료로 한 두루마리로서 천 년을 넘어 현존하고 있다. 통일신라시대는 닥섬유로 만든 종이가 우리 종이로 정착되었으며 당시의 종이를 계림지라고 불렀다.
그리고 고려시대에 오면 우리 종이의 새로운 도약기였다. 고려인들은 중국에서 새로운 기술을 도입한 뒤 더욱더 발전시켜, 중국인이 제일 좋은 종이라 칭하는 고려지(경지)를 만들어 냈다. 고려 정부에서는 전국적으로 종이의 원료인 닥나무 재배를 장려하였다. 그리고 조선시대 한지의 발달사는 임진왜란(1592~1598)을 기점으로 전기와 후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전기는 종이 만드는 기술의 완성기로 종이 생산을 관리하는 기관인 조지소가 설치되고, 기술과 원료가 다양해졌으며, 종이의 용도도 대중화된 중요한 시기이다.
그 후 1901년 용산에 최초의 양지 생산 공장이 설립된 이후에는 일반 대중 사이에 양지가 급속도로 퍼져 한지의 사용이 많이 줄어들게 되었고, 따라서 손으로 만드는 전통 한지는 급속히 쇠락하였다.
한지의 원료, 닥나무
* 한지 원료인 닥나무에서 백닥을 얻기가지의 과정을 설명하는 전시물
한지의 주원료는 우리나라 전 지역에서 자라는 닥나무(저=楮)의 인피 섬유이다. 닥나무는 뽕나무과에 속하며 꾸지나무라고도 부르는데 3m 높이의 닥나무, 꾸지나무는 모두 우리나라 고유 품종이나 오래전부터 구분 없이 심어서 잡다한 유전자를 가진 잡종으로 변해 그 식별이 어려워졌다고 한다.
특히 경상도와 전라도에 가장 많으며, 닥나무 인피의 품질이 제일 좋은 곳은 강원도와 충청북도로 알려져 있다. 주로 편마암이나 화강편마암이 풍화된 토양에서 자라는데 거름이 조금만 있어도 무성하게 자란다. 닥나무의 채취는 낙엽이 진 뒤 늦가을이나 초겨울부터 시작하여 새순이 나기 전까지 이루어져야 하며 1년마다 하는 것이 좋다.
한지 제조 방법
* 한지를 얻기까지는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닥나무를 원료를 원료로 하여 한지를 얻기가지에는 여러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 과정은 다음과 같다.
① 닥채취 : 닥나무는 매년 10월에서 이듬해 3월 사이에 채취한다.
② 닥무지 : 닥나무를 다발로 묶어 물을 부은 가마솥에 세우고 가마니나 비닐커버로 둘러싼 뒤 불을 때 껍질이 흐물흐물 벗겨질 정도로 6∼7시간 삶는다.
③ 백닥만들기 : 삶은 닥나무의 껍질을 건조시킨 흑피를 물에 하루 정도 담가서 표피를 벗기기 좋게 하여 칼판 위에 흑피를 놓고 닥칼로 껍질을 벗겨내어 하얀 백닥을 만든다.
④ 백닥삶기 : 물에 불린 백닥을 약 30∼40cm 길이로 잘라 천연 잿물을 넣은 닥솥에 약 2시간 정도 삶는다.
⑤ 곤죽만들기 : 깨끗이 티를 골라낸 닥을 널따란 닥돌위에 올려놓고 닥 방망이로 2∼4시간 동안 곤죽이 될 때까지 두들겨 해섬하여 죽같이 만든다.
⑥ 종이뜨기 : 닥죽을 지통에 물과 함께 넣고 대 막대로 200번 정도 세게 저어준 다음 닥풀을 섞어서 휘젓고 대로 만든 발로 '물질'을 하여 지액에서 종이를 떼낸다.
⑦ 물빼기 : 물빼기는 넓고 판판한 판에 떠낸 종이 400∼500장 정도를 쌓고 무거운 돌을 올려놓고 서서히 물을 빼낸다.
⑧ 건조기에 말리기 : 수분을 뺀 종이를 또다시 한장 한장 벗겨서 흙벽 같은데 붙여서 말리면 종이가 된다.
⑨ 도침질하기 : 종이 표면이 치밀해지고 평활도를 향상시키며 광택을 내기 위해 풀칠한 종이를 여러 장씩 겹쳐놓고 다듬이질을 한다.
이렇게 만들어지는 한지는 용도에 따라 그 질과 호칭이 다르다. 예를 들면, 문에 바르면 창호지, 족보·불경·고서의 영인(影印)에 쓰이면 복사지, 사군자나 화조(花鳥)를 치면 화선지(畵宣紙), 연하장·청첩장 등으로 쓰이는 솜털이 일고 이끼가 박힌 것은 태지(苔紙)라고 한다.
한지의 용도
* 한지를 이용하여 만든 갖가지 공예품이 아름답다.
한지는 현대와 같이 여러 가지 지식전달매체가 없던 시대에 상당히 중요한 서사 재료였다. 처음 우리나라에 들어올 때는 서적의 형태였을 것으로 추정되며, 가장 중요한 용도 역시 전적(典籍)이었다. 따라서 오랜 기간 보관이 가능하고 해지지 않는 두꺼운 종이가 좋다는 평가를 받은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문헌에서 가장 먼저 나오는 종이의 용도는 종이연(紙鳶)으로 〈삼국유사〉에 그 기록이 보인다.
고려 시대 문헌을 보면 불경을 인출하기 위해 많은 종이가 필요했던 것을 알 수 있으며, 현재와 같이 각종 용도에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조선 시대에 들어와서부터이다. 태종대에 중국에 보내는 자문지(咨文紙)의 확보와 저화(楮貨)의 규격을 일정하게 하고, 원료의 확보와 제지술을 발전시키기 위해 국영 제지공장이자 관서인 조관지를 설치했다.
조선 시대에는 서책뿐만 아니라 각종 관공문서, 창호(窓戶), 꽃, 종이돈(楮貨)과 그림을 그리는 데 사용되었다. 또한 한지의 질긴 특성 때문에 부채, 우산 등에도 많이 사용되어 중국의 호평을 받았으며, 부의지(賻儀紙)로도 중국에 많이 보내졌다. 조선 시대 이후 벽지로도 사용했으며, 종이를 꼬아 생활 용기나 장식품을 만들었는데 이를 지승공예(紙繩工藝)라고 했다. 지승공예는 사대부들이 취미 삼아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들 공예품은 미적 감각이 뛰어났으며 그 형태도 등(燈), 바구니, 가방, 상, 물병, 지갑, 베개, 동고리, 모자, 반닫이 등 다양하다. 한지는 예로부터 우리 민족 생활사에 없어서는 안 될 최고의 장식품이자 생활용품이었다.
우리네 선비들이 ‘문방사우’라 하여 정신적 영물 대접을 해주던 문필, 즉 서화용으로 가장 많이 사용되며 특별한 풍취를 낸 서간지도 유통되고 있다. 질기고 부드러우며 탄력성과 번짐성이 있어서 판화지로도 적당하다. 더욱이 보존성이 뛰어나 작품을 오랫동안 보관할 수 있다는 점에서 무엇보다 뛰어난 재료이다. 한지는 기계지보다 우수하여 50배나 긴 생명력을 갖고 있으며, 최근에는 한지를 재료로 하여 작품을 만드는 작가들이 늘어나고 있어 매우 고무적이다.(출처: 다음백과사전-鄭善英 글)
한지의 우수성
닥나무와 뽕나무의 섬유질 등 천연 재료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한지에는 자연이 가지는 질감이 살아 있고, 한지는 전통적인 한지 제작 방법으로 인해 곱고 질기며, 마치 살아서 숨 쉬는 듯한 생명감을 느낄 수 있다.
흔히 가죽처럼 질기다 해서 등피지(等皮紙)라고도 했던 우리나라 전통 한지는 종이의 종주국인 중국인들조차도 감히 그 품질을 따라오지 못할 정도이다. 더욱이 요즘도 북경의 상류사회에서는 우리나라 전통 한지로 방벽을 바르는 대관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그래서 과거 고려나 조선 시대 사신들이 중국에 갈 때 가장 대접받는 선물로 청심환과 함께 한지를 가져갔다는 이야기가 기록으로 전해지고 있을 정도이다.
그리고 한지는 추운 겨울에 차가운 맑은 물로 제작되는데 차가운 물은 섬유질을 탄탄하게 죄어주어 종이가 빳빳한 감촉을 가지면서 힘이 있고 질이 좋아 박테리아 등의 미생물이 번식하는 것을 막아주고 닥풀의 작용을 도와 매끄럽고 광택을 더하기 때문에 차가운 물로 만들어진 한지는 일반 양지와는 다른 고유한 특성을 갖고 있다.. 한지의 우수성은 비단 위의 내용에 국한되는 것만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한지의 우수성은 다음과 같다.
· 중성인 한지는 1,000년 이상 보존이 가능하다
· 닥나무 자체로 제작되므로 부드럽고 포근한 느낌을 준다.
· 여러 겹으로 배접하므로 견고하고 단단하다.
· 다양한 색지가 있어 개성 있는 작품을 완성할 수가 있다.
· 재료 구입이 용이하고 경제적 부담이 적다.
· 장식성과 실용성이 뛰어나다.
· 가볍고 운반이 용이하다.
· 외국인들에게 한지로 만든 전통공예품의 아름다움을 알릴 수 있다.
· 각종 상품 제작이 가능하다.
이처럼 우리 생활 전반에 걸쳐 이용될 수 있는 한지의 유수성은 세계 어느 나라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정평이 나 있다. 그러나 외래문물과 함께 대량생산된 값싼 서양종이가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전통 한지는 점차 뒷전으로 밀려나게 되고 그 자리를 서양종이가 차지하게 되었다. 결국 우리는 서양종이라는 ‘물건’을 취하게 됨으로써 우리 한지의 이름다움과 우아함은 뒷전으로 밀리게 되었다.
이제 우리의 과제는 옛 문헌과 옛 유물의 철저한 분석과 연구를 통해 대량생산을 위한 기술개발에 노력하여 전통 한지의 많은 장점을 최대한 활용하여 신상품 개발, 즉 장판지, 도배지, 한지 장식품, 장기간의 보존을 필요로 하는 서적용은 물론 스피커의 음향판이나 밀폐용 개스킷 등 첨단 소재개발에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한지의 우수성을 정량화하여 수출전략에 힘써야 할 것이다. 진정한 세계화는 우리 선조들의 지혜를 바탕으로 하는, 고유의 우수성을 더욱 개발함으로써 세계에 널리 알릴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 진정한 과학기술의 세계화가 아닐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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