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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랭보의 시 <감각>

by 혜강(惠江) 2015. 2. 20.

 

* 서초동 몽마르뜨공원에 세워진 랭보의 시비 *

 

감각 / 랭보

 

여름의 상쾌한 저녁, 보리 이삭에 찔리우며
풀밭을 밟고 오솔길을 가리라.
꿈꾸듯 내딛는 발걸음, 한 발자욱마다 신선함을 느끼고,
모자는 없이, 불어오는 바람에 머리카락을 날리는구나!

말도 하지 않으리, 생각도 하지 않으리, 그러나,
내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사랑만이 솟아오르네.
나는 어디든지 멀리 떠나가리라, 마치 방랑자처럼.
자연과 더불어, - 연인을 데리고 가는 것처럼 가슴 벅차게.


(원문)

Sensation / Arthur Rimbaud
Par les soirs bleus d’ete, j’irai dans les sentiers.
Picote par les bles, fouler l’herbe meunue :
Reveur, j’en sentirai la fraicheur a mes pieds.
Je laisserai le vent baigner ma tete nue.

Je ne parlerai pas, je ne penserai rien :
Mais l’amour inflni me montera dans l’ame,
Et j’irai loin, bien loin, comme un bohemien,
Par la Nature, - heureux comme avec une femme.



<작품감상> 

  랭보의 시 <감각>은 1870년 그의 나이 불과 16세 때에 지은 것으로, 눈앞에 펼쳐진 젊음의 세계를 향해 떠나가는 소년의 설레는 마음을 노래하고 있다.


  ‘가리라’라는 용어는 ‘방랑’의 의지 표현이다. ‘내딛는 발자욱마다 신선함을 느끼고, 모자는 없이, 불어오는 바람에 머리카락을 날리는’ 세계로 무념무상의 경지를 맛보는 것은 얼마나 신선한가? ‘유랑민처럼 멀리 아주 멀리’간다는 것, 끝없는 방랑의 길을 간다는 것, 그것은 혼 속에서 사랑이 솟아오르는 것을 느끼는 몽상가의 작업이다. 이리저리 자연을 돌아다니며, 그 넓이에 있어서가 아니라 깊이에 있어 끝없이 사물의 레알리테가 나타나도록, 탐색하며 그는 멀리 가려 한다. 길가에 보리가 무성하고, 잔풀들이 짓밟혀 있는 것처럼 행복 되게 그는 멀리 가려'한다. 그것은 상상력의 극한이다. 멀리 가 미지를 붙잡으려는 힘이다.

  그는 이렇게 16세부터 19세까지 불과 3년 사이에 두 권의 시집으로 프랑스 상징주의 문학에 불멸의 족적을 남겼으니, 가히 천재시인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놀라운 것은 그가 20세에 시작을 포기한 뒤 37세의 나이로 죽을 때까지 17년에 걸친 그의 삶은 평탄치 않았다. 알코올 중독자에 마약중독자, 시인 베를렌느와의 동성연애, 친구 베를렌의 총격사건으로 인한 괴로움, 투병 생활로 방황하다 1891년 37세에 연고자 없이 행려병자로 사망했다는 사실이다. 시인은 시로 말하다고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씁쓸한 생각을 금활 수 없다.

<작가소개>

아르튀르 랭보(Arthur Rimbaud, 1854-1891) 

 

 

  아르튀르 랭보(1854-1891)는 1854년 벨기에 국경 근처 아르덴 현 샤를빌에서 출생하였다. 아버지가 일찍 집을 버리고 나갔으므로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어머니의 엄격한 교육을 받고 자랐다. 그는 어머니의 횡포와 인습적인 삶에서 도피하기 위해 베를렌과 함께 파리와 벨기에 등으로 여러 번 가출한다.

  1871년 18세의 나이로 P.베를렌의 초청을 받고 파리에 가서 불과 몇 년의 짧은 기간에 섬광 같은 문학을 완성한다. 그의 작품은 초기의 습작까지 포함해서 모두가 15세부터 20세 사이에 썼다. <취한 배>로 상징주의의 하늘에 혜성처럼 나타나 20세가 되기 전 문학과 완전히 절연한 천재 시인 랭보의 시는 보들레르의 인공적 미, 말라르메의 이지적 미에 비해, 생생한 감각적 미에 넘친다. 산문 시집으로 <착색 판화집>, <지옥에서 보낸 한 철>을 남겼다.

  그런데 랭보와 베를렌 두 사람의 관계가 동성애로 발전하여 베를렌은 신혼의 아내마저 버리고 랭보와 동거생활을 하였으나, 경제 상태가 악화되자 자주 다투게 되어 결국 1873년 브뤼셀에서 술에 만취된 베를렌으로부터 권총에 맞았으나 무사하였다. 랭보는 어머니에게로 돌아가 지금까지의 생활을 청산한 것이라 할 수 있는 산문시《지옥의 계절》을 썼다. 그러나 1875년경부터는 차차 문학에 흥미를 잃어 여러 나라를 유랑하면서 한때는 이집트와 에티오피아에서 교역(交易)에 종사하였다. 1891년 오른쪽 무릎의 관절염으로 37세로 프랑스 마르세유에서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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