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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베를렌의 '가을의 노래'

by 혜강(惠江) 2015. 2. 20.

 


 

* 서초동 몽마르뜨공원에 세워진 베를렌의 시비 *

 

가을의 노래 / 베를렌


가을날
바이올린의
긴 흐느낌.
단조로운 우울로
내 마음 쓰라려.

종소리 울리면
숨 막히고,
창백히
옛날을 추억하며
눈물짓노라.

그리하여 나는 간다.
모진 바람이
날 휘몰아치는 대로
이리저리
마치 낙엽처럼.



Chanson D'Automne / Paul verlaine


Les sanglots longs
Des violons
De l'automne
Blessent mon coeur
D'une langueur
Monotone.

Tout suffocant
Et bleme, quand
Sonne I'heure,
Je me souviens
Des jours anciens
Et je pleure;

Et je m'en vais
Au vent mauvais
Qui m'emporte
Deca, dela
Pareil a la
Feuille morte.


<작품감상>

  베를렌의 시 중에서 우리에게도 꽤 많이 알려진 이 작품은 원래 <슬픈 풍경>이라는 제목이었으나 후에 <가을의 노래>로 바뀌어 《토성시집》(1866)에 수록되었다. <가을의 노래>가 국내에 최초로 소개된 것은 김억의 번역을 통해서였다. 김억은 1920년 7월에 간행된 문학동인지 《폐허》에 베를렌의 시를 소개하면서 음악적 암시와 의미적 환기에 기반을 둔 프랑스 상징주의의 작품과 감성을 우리나라 문단에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이 시는 베를렌의 작품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베를렌의 ‘가을 노래’는 풍랑을 만난 배가 물 위에 정처 없이 떠돌 듯이 정처없는 인생의 슬픔을 노래한다. 바람에 몸을 맡긴 채 이리로, 저리로, 떨어져 나뒹구는 낙엽에 투영된 시적 화자의 목소리에는 외로움과 불길함, 깊은 슬픔이 묻어 있다. 이 시는 일찍이 김억과 박목월 등에 의해 번역되어 우리나라 시단에 소개되기도 했다. 베를렌의 시 세계는 한마디로 우수의 화관을 쓰고 있다.

  베를렌은 처녀 시집 '사튀르니앵 시집'에서부터 상징주의의 경향을 찾아볼 수 있다. 상징주의자들은 시에서 음악성을 상당히 중요시했는데 이는 사물에 뚜렷한 이름을 붙이는 것이 시흥의 4분의 3을 말살하는 것이라고 말한 데서 알 수 있다. 이러한 음악성은 '암시'를 통해서 발현되고 이 암시는 곧 상징을 말하는 것이다.

  ‘가을날에 느끼는 쓸쓸한 마음’을 표현한 이 시도 가을날의 쓸쓸한 심정을 표현하는데 상당한 음악적 요소가 보이고 있다. 인간 심연의 바닥에 깔린 감성을 음악적인 상징으로써 이끌어 내고 있는데, "바이올린의 긴 흐느낌"은 화자 내면의 우울한 마음을 달래 주는 역할을 해내고, 2연의 청명하게 울리는 '종소리'는 옛날의 기억 속에서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이와 같은 청각적 심상과 가을 이미지의 일치는 음악성을 통한 시적 효과를 충분히 느끼게 한다.


<작자소개>


폴 마리 베를렌 (Paul-Marie Verlaine, 1844년~1896년)

 

 



 

  프랑스의 서정시인. 메스 출생이며, 파리 대학 법학부를 중퇴하였다. 그 후 파리 시청의 서기로 근무하면서 시를 쓰기 시작하여, 시는 음악적이고 율동적이어야 하며 독자에게는 상징적인 말로써 나타내어야 한다는, 이른바 상징파의 새로운 길을 열었다.

  고답파에서 출발한 그는 시집 《울답한 노래》ㆍ《멋진 잔치》를 발표한 뒤는 고답파에서 이탈하여 독자적인 우아(優雅)한 시경에 도달하였다. 젊은 천재 시인 랭보와의 동성연애 사건으로 투옥되고, 석방 후엔 파리에 돌아와 종교시 《슬기》를 출판, 이어서 평론집 《저주받은 시인》 및 시집 《옛날과 요즘》을 발표하여 말라르메와 함께 상징파의 대표 시인이 되었으나, 빈곤과 병고로 완전한 방랑 시인으로서 파리에서 사망했다.

  그의 훌륭한 시들은 대부분의 선배 시인들한테서 볼 수 있는 과장된 수사법을 버리고, 지성을 무장해제 함으로써 독자를 사로잡는 암시와 떨리는 듯한 막연함을 통하여 일상적인 상투어를 포함한 프랑스어가 인간 감정의 새로운 이면을 표현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그는 낱말들이 단순히 그 소리만으로 사용되어 좀 더 미묘한 음악, 즉 낱말의 일상적인 의미보다 훨씬 더 강력한 마법의 주문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는 음주ㆍ동성애ㆍ이혼ㆍ빈곤ㆍ병고 등으로 의지가 약해져 덕과 부도덕이 교차하는 생애를 보냈으나, 그 영육(靈肉)의 부조화와 갈등에 고민하면서 이를 기조로 한 극히 우아한 형식과 미묘한 시풍의 명작을 발표한 독특한 시인이었다. 평론집 《저주받은 시인들》, 회상기 《나의 감옥》, 《참회록》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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