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양 하조대(河趙臺)
바위절벽 위에 자란 400여년 수령의 노송 한 그루
글·사진 남상학
* 하조대의 절경을 이루는 암반 위의 400년 된 소나무
죽도에서 북쪽으로 가면 강원도 양양군의 또 하나의 경승지 하조대를 만난다. 이 일대는 암석해안으로 온갖 기암괴석과 바위섬들로 이루어져 주위의 울창한 송림과 어울려 절경을 이루는 곳이다.
하조대는 해수욕장 입구에서 우측 좁은 길 안에 있다. 주차장은 승용차 몇 대밖에 댈 수 없는 작은 공간이다. 버스는 주차장 입구에서 겨우 돌아나올 수 있을 정도다. 주차장 아래는 전통차, 커피 등을 파는 카페 '등대'가 오래전부터 절벽 아래 바닷가를 지키고 있다. 돌로 지붕을 덮은 카페는 고풍스럽고 운치가 있다. 카페 바로 앞에 깎아지른 절벽과 기암괴석이 아름다운 바다가 펼쳐지고 그 사이로 파도가 하얀 포말을 쉬지 않고 만들어낸다.
오른쪽으로 연결된 나무계단을 따라 오르면 절벽 위에 하조대라는 현판이 걸린 작은 육각정이 있다. 이곳에 서면 동해안의 넓고 넓은 바다가 한눈에 다 들어온다. 애국가 영상에 나오는 곳이기도 하다.
* 하조대의 정자 *
고려말 하륜(河崙)과 조준(趙浚)은 이곳에 은둔하며 새로운 왕조를 세우려는 혁명을 꾀했고 그것이 이루어져 뒷날 그들의 성을 따서 '하조대'라 명명했다는 설이 있다. 하륜은 고려 공민왕 때 공직에 들어와 최영 장군의 요동 정벌에 반대하다가 양주로 유배당했다. 이성계가 조선을 개국하자 경기도 관찰사를 시작으로 태종의 측근이 돼 영의정까지 올랐다. 그리고 조준은 고려 말 이곳 하조대에서 멀지 않은 강릉 군수를 지내다 조선 개국에 동참했다.
그런가 하면, 이곳 하씨 집안 총각과 조씨 집안 처녀가 이곳 명승지에서 사랑을 나누었으나 이루어질 수 없는 애절한 사연으로 인해 헤어지게 되자 후일 이 사연을 애달프게 여겨 이곳의 이름을 '하조대'로 명명하였다는 설이 있다. 두 가지 설 중에서 어느 것이 맞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이곳을 찾는 이들은 의기투합했던 사나이의 뜨거운 우정 아니면 이루어질 수 없는 남녀의 애닯은 사랑을 떠올리게 된다.
조선 정종 때 정자를 세웠으나 현재는 바위에 새긴 하조대라는 글자만 남아 있으며, 근래에 와서 육각정이 건립되었다. 정자 오른쪽의 바위에 조선 숙종 때 참판 벼슬을 지낸 이세근이 썼다는 '하조대'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정자에는 시문액자가 걸려 있어 이곳이 예전부터 많은 시인묵객들과 관리들이 찾아오는 경승지임을 알려준다. 택당 이식(澤堂 李植, 1584~1647)과 백헌 이경석(白軒 李景奭, 1595~1671)이 지은 <河趙臺> 시는 다음과 같다.
臺名河趙自何年 (대명하조자하년) 하조대란 이름 시작된 게 언제인가
形勝兼將姓氏傳 (형승겸장성씨전) 멋진 경치와 더불어서 성씨까지 전해오네
負展千尋爭巨浪 (부전천심쟁거랑) 구비구비 물결과 맞싸우며 쉼 없이
灣洄一曲貯深淵 (만회일곡저심연) 심연에 노래되어 잦아드는데
初疑砥柱當橫潰 (초의지주당횡궤) 격류 속의 지주런가 처음에 눈 의심타가
更覺桑田閱變遷 (경각상전열변천) 문득 상전벽해 세월의 변천을 깨달았네
從古爽鳩遺此樂 (종고상구유차락) 예로부터 이 경승 좇는 즐거움
幾人陳迹逐風煙 (기인진적축풍연) 찾는 이 또한 몇몇이던가
- 택당(澤堂) 이식(李植) -
策馬登臨萬仞岡(책마등림만인강) 말 달려 이곳 기경에 올라
笛聲吹捲海雲長(적성취권해운장) 피리소리 바다 위 구름되어 흐르네
醉來欲喚群鯨起(취래욕환군경기) 모여든 고래들 몸짓 취한듯
噴雪層空舞夕陽(분설층공무석양) 석양 빛 허공에 흰눈되어 흐르네
- 백헌(白軒) 이경석(李景奭) -
택당 이식은 '조선 중기 인조 때의 문신. 대제학·예조판서 등을 역임. 장유와 더불어 당대의 이름난 학자로서 한문4대가의 한 사람으로 꼽힌다.《선조실록》의 수정을 맡았다. 저서에 《택당집》등이 있다. 백헌 선생은 삼전도 비문(三田渡 碑文)을 쓴 사람으로 1627년 정묘호란(丁卯胡亂) 때 제찰사 장만(張晩)의 종사관(從事官)으로 강원도 지방의 군사 모집과 군량을 조달하는 일을 하였으며 이 때 하조대의 경관을 보면서 현판의 시를 썼을 것으로 보인다.
정자에서 바다 쪽으로 수령이 400여 년 되는 노송 한그루가 기암절벽 위에서 빼어난 자태를 뽐내고 있다. 바위틈에서 온갖 풍파를 견뎌내고 있는 노송은 양양군 보호수종으로 일부 가지가 염해를 입어 고사하자 최근 특별 관리에 들어갔다. 당연한 일이다. 만일 이 노송이 없다면 하조대를 굳이 찾을 이유가 없으니 말이다. 이 소나무가 배경이 된 일출 장면은 추암해변과 함께 방송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애국가 화면에 단골로 등장했다. 그 주위로 해안 절경이 펼쳐진다.
정자에서 보면 맞은편 절벽 위로 하얀 등대가 보인다. 등대를 만나려면 오른 길을 다시 내려와 탐방안내소 앞을 지나 나무로 만든 100여 개의 계단을 올라가야 한다. 하조대 등대는 주위가 모두 바위로 덮여있는 무인등대로 밤이면 저절로 불이 켜져 동이 틀 때까지 바닷길을 밝혀준다.
등대에서 보면 남쪽으로 하조대가 절벽 끝에 위태롭게 서 있고, 북쪽으로 성을 연상시키는 기암절벽이 거친 파도를 막고 있다. 하조대 뒤편의 바다 위에 떠 있어 한눈에 들어오는 섬이 갈매기가 많이 날아드는 조도(鳥島)다. 이곳을 다녀간 사람들이 남긴 낙서로 지저분한 등대 앞에 '바다는 뭇 생명의 근원이자 생명의 토대이며 현재와 미래를 위해 소중하게 가꾸어야 할 인류의 마지막 희망이다'로 시작되는 바다헌장 조형물이 서 있다.
* 바다헌장 조형물 *
북쪽에는 하조대를 한눈에 바라보며 해수욕을 즐길 수 있는 하조대해수욕장이 있다. 1976년 개장해 1984년 시범해수욕장이 된 하조대헤수욕장은 울창한 소나무 숲을 배경으로 너비 150m의 백사장이 약 4㎞에 걸쳐 펼쳐져 있는데, 경사가 완만하고 물이 깊지 않은데다 모래가 고와 가족단위 피서지로 각광을 받고 있다. 속초와 강릉에서 하조대까지 각각 직행버스가, 양양에서 하조대까지 시내버스가 수시로 운행되며 속초-강릉을 잇는 국도를 이용할 수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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