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꾸미, 물회
제철 맞은 '주꾸미'와 '물회' 이야기
글·사진 김인규(아포리아) 맛집블로거
현재 제철 맞은 주꾸미잡이가 한창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봄엔 주꾸미, 가을엔 낙지라고도 한다. 아무튼 봄철 주꾸미는 산란을 위해 숨는 습성이 있어 소라 껍데기를 이용해 잡는데 요즈음이 육질도 아주 연하고 맛도 좋으면서 영양도 풍부하다고 한다.
유통업계에 따르면 경매가 기준으로 1kg에 2만 8천원에서 3만 4천원까지 팔리고 있다고 한다. 작년 이맘때보다 많이 오른 가격이다. 이유는 수온 상승과 남획으로 말미암아 어획량이 급감하였고, 그러다 보니 국산 주꾸미는 가격이 떨어질 기미조차 보이질 않고 상대적으로 저렴한 중국산이나 심지어 베트남산, 태국산 등이 팔리기도 한다. 그래서 충남 무창포, 서천 등 서해안 곳곳에서 열리는 주꾸미 축제장마다 오른 값도 값이지만 물량 확보가 걱정이라 한다.
- ▲ 새로 개장한 소래포구종합어시장
그런데 지난 주말 구경삼아 다녀온 소래 포구에서도 주꾸미를 먹을 수 있었다. 알고 보니 소래포구에서는 매번 배가 포구에 들어올 때마다 즉석 경매에 붙여져 인근 수산물 시장에 바로 공급이 되었다. 가격대를 확인해보니 매일 시세 변동이 있긴 하지만 1kg 기준 3만 5천원 정도에서 주꾸미 요리를 즐길 수 있었다. 특히 양심 저울이라는 게 곳곳에 설치되어 있어서 소비자가 직접 무게를 확인할 수 있게 해놓은 점이 맘에 들었다.
거기에다 수입산과 국내산을 직접 비교까지 할 수 있어서 무엇보다 바가지 공포로부터 해방될 수 있었다. 소래 포구에는 기존의 구시장과 새로 형성된 <소래포구종합어시장>이 있다. 기존의 구시장은 전통 재래 시장의 느낌이 강하다면, <소래포구종합어시장>은 각 지역별로 유행하는 대형 회 타운의 느낌이 강했다. 아직 초반이라 그 흔한 바가지 상혼이 보이지 않는 게 다행이었다. 주말이라 그런지 많은 관광객들로 북적였다.
여러 가게를 두리번거리다가 220호 <민영씨푸드>라는 가게에 멈춰 섰다. 수 년 전 어시장표 ‘전복라면’으로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 그 주인공이라 익히 알고 있다. 반가운 마음에 주꾸미는 이 집에서 구입을 하기로 했다. 수입산도 있었지만 색깔도 다르고 그 맛에서 확연한 차이를 보이기에 당연 국내산으로 구입했다. 그런 다음 구입한 주꾸미를 들고 2층으로 올라갔다. 어디로 갈까 망설이다가 눈에 들어온 <세자매집>으로 직행. 정육 식당의 콘셉트와 횟집 방식 두 가지 시스템을 동시에 운영한다. 간단하게 상차림이 완성되고 본격적인 주꾸미 요리에 돌입했다.
주꾸미를 부르는 명칭은 지역별로 다양하다. ‘쭈깨미’라고도 하고 ‘쭈게미’, ‘쭈꾸미’라고도 하지만 정확한 명칭은 주꾸미가 맞다. 주꾸미의 몸통은 낙지와 비슷하나 그 크기를 자세히 보면 길이 면에서 낙지보다 훨씬 짧은 20cm 내외의 몸통을 가지고 있다. 몸통을 둘러싸고 있는 외투막은 달걀처럼 한쪽이 갸름하다. 눈과 눈 사이에 긴 사각형의 무늬가 있고 눈의 아래 양쪽에 바퀴 모양의 동그란 무늬가 있으며 모두 금색이다. 몸 빛깔은 변화가 많으나 대체로 자회색이고 수입산에 비해서 그 색깔이 진하다. 자 주꾸미에 대한 공부는 이 정도로 하고 본격적으로 즐겨보자. 맛있게 먹는 방법이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주꾸미 샤브를 추천하고 싶다.
- ▲개운한 육수에 신선한 주꾸미만 준비된다면 반은 완성
주꾸미 샤브를 즐기기 위해서는 먼저 다시마, 모시조개, 무, 청양고추 등을 이용한 감칠맛 나는 야채 국물을 준비해야 한다. 불판 위에 전골냄비를 올려 국물이 끓기 시작하면 준비해둔 알이 꽉 찬 싱싱한 주꾸미를 집어 넣어주면 된다. 주꾸미의 몸부림이 안쓰럽다면 잠시 일행의 도움을 받아도 좋겠다. 잠시 요동치다 이내 잠잠해진다. 그러면 바로 건져내서 먹기 좋게 잘라야 하는데 이때 먹물이 튀지 않도록 하는 약간의 주의가 필요하다. 이때 먹통 즉 머리 부분은 다시 끓는 국물 속에서 더 단련되도록 도로 넣어 두어야 한다.
다 자른 후에는 개인접시에 담아둔다. 그리고 매콤한 초장에 찍어서 한입 가져가면 되는데 그 야들야들 거리는 맛이 문어나 낙지 전혀 부럽지 않다. 주꾸미에는 타우린 성분이 들어있는데 낙지의 두 배 오징어의 다섯 배 정도가 들어 있다고 한다. 이렇게 타우린 함량이 많은 주꾸미는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춰 주고 혈액순환을 원활하게 하며 심장 기능강화와 시력 감퇴 방지 및 해독에 효능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무튼 가격만 저렴해진다면 많이 먹어둘 일이다.
- ▲ 야들야들 거리는 맛을 흠뻑 느끼려면 살짝 데치는 것이 중요하다
다음은 돔 이야기를 해보자. 우리는 흔히 ‘도미’라고 발음하지만 정확한 명칭은 ‘돔’이라 한다. 이제 얼마 안 있으면 곳곳에서 만개한 벚꽃을 보게 될 것이다. 만개한 벚꽃은 가히 환상적이다. 일본에선 벚꽃이 피는 봄철의 참돔이 가장 맛있는 ‘돔’이라 하여 ‘사쿠라다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채색이 아름다워 ‘바다의 여왕’, '바다의 왕자'라고 불리며, 낚시 대상어로도 인기 있는 어종이다. 맛이 좋아 고급 요리 재료로 치며 다양한 요리가 가능한 생선이다.
요즘은 참돔이 양식으로 말미암아 아주 대중화된 생선이 되었지만 예전에는 고급으로 취급받던 생선이었다. 참돔을 이용한 요리는 참으로 다양하다. 그 중에서도 음식점에서 조금 대접받는다는 느낌으로 먹어줄 수 있는 게 바로 돔 마츠카와이다. 돔을 껍질째 내놓는 방식인데 껍질 부위만 살짝 데쳐서 내놓는다. 데쳐진 껍질을 보면 아마도 소나무 껍질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말 그대로 소나무 껍질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는 돔 자체를 더욱 쫄깃하게 즐길 수 있는 방식이라 고급 횟집 등에서는 그런 방식으로 돔을 내놓기도 한다.
- ▲ 소나무 껍질을 닮았다고 해서 일본어로 마츠카와[松皮]라고 한다
돔을 이용한 여러 요리 중에서도 개인적으로는 ‘물회’를 추천하고 싶다. 사실 물회는 막회라고 불리는 한국식 전통회와 마찬가지로 어부들이 뱃일을 하면서 잡은 해산물을 막 썰어서 물에 말아 훌훌 들이키며 먹던 데서 유래한 음식이라고 볼 수 있다. 동해안 지역에선 주로 고추장 베이스로 맛을 내지만 남해안이나 제주 지역 등에선 된장으로도 맛을 낸다. 생선회와는 또 다른 느낌을 주는데 요즘은 바닷가 아닌 도심에서도 쉽게 맛볼 수 있을 만큼 대중화되었다. 수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비교적 생소한 음식 취급을 받았던 물회가 대중화된 점은 반갑지만 아쉽게도 너무도 하향 평준화된 점은 유감이다. 정말 제대로 된 물회를 만나기가 어렵다.
그러나 잘 찾아보면 저 멀리 동해안이나 남도 해안까지 달려가지 않아도 아쉽지 않을 만큼 아주 괜찮은 명품 물회를 도심에서도 만날 수가 있다. 대충 만들어 먹던 것과는 그 방식에서 사뭇 다르지만 물회 생각이 간절할 때면 가끔 <현인환의 원조 도다리네>를 찾게 된다. 20여 년 이상 수산물만을 취급하면서 터득한 절묘한 비법으로 최고의 물회를 만들어내는데, 주인장의 손길을 거쳐 만들어진 물회를 맛보는 순간 물회 예찬론자가 될 수밖에 없다.
이집 대표인 현인환씨는 “무조건 신선하고 질 좋은 식재료를 사용하는 게 맛있는 물회의 비결입니다. 거기에 진정성을 가지고 손님을 대하려고 해요.”라고 말한다. 그래서 그런 걸까 이집 물회에는 돔뿐만 아니라 전복, 해삼 그리고 고가의 해초 등 바다의 온갖 진미를 물회 한 그릇에서 다 만날 수가 있다. 최근에는 우리 김치를 이용한 김치 물회도 선보이고 있다. 그야말로 새로운 시도인데 끊임없는 연구를 통해 고객이 감동하는 맛과 향을 고스란히 전해주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이 집 물회는 신선한 해초와 야채 및 횟감이 어우러진 국물이 아주 넉넉한 회무침이라고 생각하면 좋겠다. 새콤한 김치말이 국수 한 그릇을 훌훌 마셔주는 느낌과 더불어 자연 속의 온갖 산해진미가 입 안에서 소용돌이치는 듯한 그 느낌은 가히 압권이다.
- ▲ 새콤달콤한 물회는 가히 환상적인 맛을 전해준다
마지막엔 메밀 국수로 마무리하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새콤하고 시원한 국물에 메밀 국수를 말아서 한 젓가락 들이키는 순간 그 상쾌하고 통쾌한 기분은 형언하기 힘들다. 그래도 무언가 아쉽다면 터프하게 밥 한 공기 말아보자. 의외로 아주 괜찮은 맛을 선사해준다. 대신 너무 맛있다고 늘어나는 뱃살에 대한 책임을 필자에게 돌리지는 말자. 가끔은 입맛 돋우는 제철 음식이 먹고 싶다.
굳이 미식가가 아니어도 계절 변화에 따른 제철 음식이야말로 최고의 보양식이 아닐까 싶다. 살짝 데치기만 해도 야들야들한 맛을 한껏 느낄 수 있는 ‘주꾸미’ 샤브. 시원한 국물과 함께 떠먹으면 달아난 입맛도 살려줄 것 같은 새콤한 ‘물회’. 살랑거리는 바람따라 정말 어디론가 훌쩍 떠나기에 좋은 계절이다.
제철 생선을 실컷 즐기며 바다 내음을 흠뻑 맡아보는 호사를 누려보고 싶다. 그러나 형편이 여의치 않다면 이때를 대비해 단골집 하나 정도 확보해두는 건 어떨까?
- 민영씨푸드(032-719-1555) 소래포구종합어시장 220호
- 세자매집(032-718-3333) 소래포구종합어시장 2층
- 현인환의 원조 도다리네(031-214-6740) 수원 영통구 매탄동 1264-1
●글·사진 김인규(아포리아) 맛집블로거 www.cozy95.blog.me
‘아포리아’ 김인규씨는 네이버 맛집 파워블로거(아포의 맛집 탐방)로 맛집과 식재료에 대한 스토리텔링을 추억에 근거해 풀어내는 것을 즐긴다. 허름하고 낡아도 오랜 역사력과 진정성이 묻어 있는 맛집을 사랑한다.
<출처> 2013. 4. 8 / 조선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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