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대국밥
순대 없는 순대국밥 골목
김인규(아포리아)
서양에 소시지가 있다면 한국에는 순대가 있다. 순대를 만드는 방법 또한 그 내용물과 색상에서 차이가 있을 뿐이지 소시지를 만드는 방법과 흡사하다.
순대국밥의 기원은 곧 순대의 기원과 맥을 같이한다고 볼 수 있는데 문헌에 나타난 기록으로는 『제민요술(齊民要術)』에 양의 피와 양고기 등을 다른 재료와 함께 양의 창자에 채워 넣어 삶아 먹었다고 한다. 이와 같이 봤을 때 미루어 짐작하건대 우리나라에서는 일찍이 순대가 있었을 것으로 짐작되며, 그렇기에 순대는 몽골의 칭기즈칸이 정복 전쟁을 하면서 전투 식량으로 돼지 창자에다 쌀과 채소를 넣어 말리거나 냉동시켜 지니기 편리하게 만든 데서 유래했다는 학설이 많이 인용되고 있다. 또한 순대는 만주어로 순대를 가리키는 ‘셍지 두하(senggi-duha)’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순’은 피를 뜻하는 ‘셍지’, ‘대’는 창자를 뜻하는 ‘두하’가 변형된 것이라 한다.
기원이야 어찌되었든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전통 식품인 순대는 철분의 훌륭한 공급원인 동시에 육류와 곡류 그리고 채소류가 골고루 들어 있고, 제조 방법의 차이는 있겠지만 완전식품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새우젓은 돼지고기와 음식 궁합이 잘 맞기 때문에 함께 먹으면 탈나지 않으면서 소화에 도움을 줌과 동시에, 순대국밥의 누린내와 느끼한 맛을 없앤다. 게다가 가격 또한 비교적 저렴한 편에 속하기 때문에 더할 나위 없는 훌륭한 대중적 음식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대중적인 음식인 순대국밥과 관련, 수원의 어느 허름한 순대국밥 골목으로 가보도록 하겠다.
수원에는 나름 순대로 유명한 곳들이 있는데 먼저 전국적으로도 많이 알려진 ‘지동순대’ 이다. 영동 시장과 마주보고 있는 지동 시장 안에 들어선 순대 타운인데 순대국밥과 순대철판볶음을 찾는 손님들로 항상 북적인다. 그 외에도 탑동 사거리와 우방 아파트 사거리를 중심으로 늘어선 순대 거리도 유명하다. 많은 집들이 모여서 저마다의 솜씨를 자랑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푸짐한 양과 저렴한 가격으로 승부하는 <명가네>가 유명하다. 하지만 그 누가 뭐라 해도 제일로 쳐주고 싶은 곳은 수원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수원역, 그 수원역 바로 건너편 로데오 거리 초입에 위치한 어수룩한 순대 골목이다.
-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는 듯한 허름하고 어수룩한 순대 골목
수원역 앞에는 도저히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70~80년대의 허름한 골목이 있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는 듯한 그야말로 침침하고 골목이다. 이 허름한 골목에 전국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순댓국밥 삼총사가 수십 년 동안 공존하며 긴 세월을 지켜나가고 있다. 바로 <일미식당>, <아다미식당>, <명산식당>인데 어느 곳을 들어가도 실패할 확률이 적다. 세 집 다 으뜸이냐 버금이냐의 차이를 구분하기가 쉽지 않기에 그냥 끌리는 대로 들어가라고 말하고 싶다.
- 담백하고 개운한 맛이 있는 일미식당의 순대국밥
먼저 <일미식당>을 찾아가보자. 다른 두 곳에 비해 아담한 크기로 비교적 규모는 작지만 깔끔하다. 오래 앉아 있어야 하는 술손님 보다는 국밥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나 여성 고객들이 더 선호하는 듯하다. 그래서 그런 걸까? 적어도 국밥은 이집이 제일 낫다는 평가도 있다. 뿐만 아니라 머리고기와 내장 모둠도 탁월한 맛을 보여준다. 이 골목의 국밥집들은 살코기와 비계 부위를 손님의 요구에 따라 적절한 비율로 섞어 내주며 손님 응대에 있어서 친절한 편이며, 그 중에서도 청결과 친절도 면에서는 고객들의 만족도가 매우 높은 편이다. 이 골목에서 백암식 순대나 병천식 순대를 기대하면 안 된다.
순대나 모둠 순대라는 메뉴자체가 아예 없다. 순대국밥에서 어쩌다 보이는 순대 역시 분식집에서나 흔히 보게 되는 당면 순대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기가 있는 이유는 담백하고 개운한 국물과 야들 거리는 머리 고기와 고소한 맛의 내장에 그 답이 있다. 게다가 혼자서는 한 그릇 다 비우기가 버거울 만큼의 양이다.
- 야들거리는 살코기가 일품인 아다미식당의 머리 고기
다음은 <아다미식당>으로 가보자. <아다미식당>은 이 골목의 국밥집 중에서 음식 동호회원들과 첫 만남을 가지면서 알게 된 나름 의미 있는 집이면서 그 전통 면에서도 가장 오래된 노포다. 이곳은 10여 년 전에 두 가게를 합쳐 면적이 넓은 편이다. 자리가 널찍해서인지 술손님이 항상 많다. 이집에 가게 되면 어김없이 주문하는 메뉴가 있다. 바로 머리 고기인데 두툼하고 길쭉하게 썰어 나오는 고기는 한 입에 먹기가 버거울 정도로 크다. 잡냄새가 거의 없고 적당한 탄력에 부드러운 식감이 정말 최고다. 찝찔한 새우젓을 조금만 올려주면 아주 환상적인 맛을 낸다. 다른 집들과 달리 24시간 영업을 한다는 점에서 아주 매력적인 집이다.
- 머리 고기와 내장 모둠 반반도 가능한 명산식당
이제 <명산식당>을 가보자. 이 골목 순대국밥의 공통점은 정말 양이 푸짐하다는 것이다. 순대국밥 만으로도 반주하기에는 전혀 무리가 없다. 이집 역시 순대국밥이나 머리고기, 내장 모둠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는다. 어떤 집들은 후반부로 갈수록 재료물이 처지는 집들이 있는데 언제나 최상의 고기만을 내놓는다. <아다미식당>이 길쭉하게 썰어 내온다면 이집은 조금 널찍하게 썰어 내오는 스타일이다. 머리고기와 내장 모둠을 반반씩 즐기고 싶다면 메뉴판에 없더라도 요청하면 흔쾌히 준비해 준다. 그래서 주당들은 호불호에 따라 <아다미식당>과 <명산식당>중에서 어디로 갈 것인지를 놓고 의견이 맞서는 경우가 더러 있다. 그러나 한 가지 팁을 주자면 자리 나는 데로 그냥 들어가는 게 가장 현명하다.
망설이다가는 자리만 놓치게 된다. 그리고 이 골목에서 토실거리는 순대가 잔뜩 들어간 순대국밥을 기대하는 건 무리다. 기껏해야 당면 순대 한두 개 들어 있는 게 전부다. 순대라는 메뉴 자체가 이 골목엔 아예 없다. 고기 순대나 야채 순대를 기대하고 들렀다간 다소 실망할 법도 한데 다 알고 있었다는 듯 그 누구도 불평하지 않는다. 오히려 부드러운 머리 고기와 각종 내장의 구수하고 진한 풍미에 모두가 감동한다.
- 언젠지 모를 재개발에도 꿋꿋하게 남아주었으면 하는 추억의 순대 골목
언제 들어도 친근한 이름이 바로 순대국밥이다. 서민적이고 대중적인 느낌이 물씬 난다. 이름만 들어도 시골 장터가 떠오르고 서민들의 삶의 애환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굳이 순대국밥이 환경 공해에 따른 독성의 체내 축적을 막거나 또는 숙취를 풀어주는 능력이 탁월하다거나 간 기능 향상, 시력 감퇴 방지에 도움이 되고 우리 몸의 갖가지 독을 풀어주는 건강 음식이라는 설명을 늘어놓지 않아도 되는 그래서 좋은 음식이 바로 순대국밥이다.
그렇기에 자그마한 바람이 있다. 언젠지 모를 도시화나 재개발에 이 골목도 결코 자유로울 수 없겠지만 적어도 이 동네 아니 이 골목만큼은 그대로 남아주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세대를 넘나드는 그 추억을 공유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도심 한복판에 이런 집이 있을 거라고는 상상치 못할 축 늘어진 전깃줄이며 퀴퀴하고 침침한 골목, 하지만 그래서 더욱 사람 냄새가 나는 듯한 이 골목을 지키고 싶다면 너무 낭만에 도취된 걸까?
- 일미식당(031-251-9640), 아다미식당(031-241-4190), 명산식당(031-242-3999)
- 메뉴 : 순댓국밥(6~7천원), 내장모둠, 머리고기(1만 5천원~2만원)
- 위치 : 수원시 팔달구 매산로 1가 60-5 (수원역 건너편 탐앤탐스 골목에 위치)
●글·사진 김인규(아포리아) 맛집블로거 www.cozy95.blog.me
‘아포리아’ 김인규씨는 네이버 맛집 파워블로거(아포의 맛집 탐방)로 맛집과 식재료에 대한 스토리텔링을 추억에 근거해 풀어내는 것을 즐긴다. 허름하고 낡아도 오랜 역사력과 진정성이 묻어 있는 맛집을 사랑한다.
<출처> 2013. 5. 6 / 조선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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