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국맛집 정보/- 맛집

칠곡 순대국밥, 진한 국물만큼 넉넉한 주인장의 정성

by 혜강(惠江) 2012. 9. 28.

 

칠곡 순대국밥

 

진한 국물만큼 넉넉한 주인장의 정성

 


글, 사진 : 정철훈(여행작가)

 

 

국은 우리네 식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먹을거리 중 하나다.

고대 중국인들은 국과 밥을 음과 양에 비유하며 그 조화를 중요시했는데,

중국 고대 지배계급의 관혼상제 예법을 적은 《의례》에도 이 같은 내용이 기록돼 있다.

 

유교문화의 영향을 받은 조선시대 상차림도 여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다만 탕반, 즉 국에 밥을 말아 먹는 국밥이 존재했다는 것이 차이라면 차이다.

 

 

 

                                           

칠곡 순대

   * 어른 팔뚝만 한 칠곡 순대 *



 배고팠던 서민들의 푸짐한 한 끼 식사

 

 

  밥과 국. 이 둘은 우리 식문화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실과 바늘 같은 존재이다. 밥상을 함께하는 이들이 공유하는 찬이나 찌개와 달리, 국은 한 사람 앞에 하나씩 놓이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니 국에 밥을 말아 먹는 것은 우리네 식문화에서 그리 특별할 게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같은 동양권이면서 쌀을 주식으로 하는 중국과 일본에서는 국에 밥을 말아 먹는 경우가 흔치 않았다. 중국의 경우 양나라(502~557) 때 저서인 《옥편》에 국밥을 가리키는 '찬(饡)'이라는 단어가 나오지만 그리 보편적인 음식은 아닌 듯 보이며, 일본의 '미소시루(된장국)' 역시 밥을 말아 먹는 국은 아니었다.


 

 

고궁순대 주방 내부

         * 고궁순대 주방 *


 

  그럼 우리나라에서 유독 국밥문화가 발달한 이유는 뭘까. 이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다. 그 중 식량난과 잦은 외침에서 이유를 찾는 게 그래도 설득력 있어 보인다. 먹을 것이 부족했던 서민들이 어렵사리 구한 고기나 생선을 효과적으로 나누어 먹는 방법도, 또 난리 중에 손쉽게 끼니를 해결하는 방법도 국에 밥을 말아 먹는 것이었을 테니 말이다. 여기에 밥을 먹을 때 젓가락보다 숟가락을 많이 사용하는 우리네 식사법도 한몫 거들지 않았을까 싶다.

 

  국밥은 16세기 이후 전국적으로 장시가 활성화하면서 전성기를 맞았다. 장터마다 들어선 객주와 주막에서 장사치와 길손을 상대로 국밥을 팔기 시작한 덕이다. 먹고살기 바빴던 이들에게 주문과 동시에 상에 오르는 국밥은 시간도 아끼고 허기도 채울 수 있는 최고의 메뉴였다. 이후 국밥은 말 그대로 국민음식으로서 사랑을 받았다. 1798년 서유구가 편찬한 《임원경제지》에는 58가지에 이르는 탕반의 종류가 소개되어 있다.



 

경상도식 순대의 원조, 고궁순대국밥 

                                                  

 

           

칠곡 순대 써는 모습

     * 큼직하게 썰어 먹음직스레 담아내는 칠곡 순대 *


 

   자타가 공인하는 왜관 순대국밥의 원조는 고궁순대이다. 김철구 사장의 부모님은 왜관역 앞에서 일본식 선술집을 운영했다. 할머니도 돼지 한 마리 잡아 이것저것 만들어 팔았으니 사실상 김 사장 가족은 3대째 왜관에서 음식을 만드는 셈이다. 1950년대 중반부터 역전 여행객들을 상대로 장사를 시작했으니 어언 6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순대국밥을 처음 만들기 시작한 것은 김 사장의 아버지였다. 주변에 순댓국 장사가 잘 되는 것을 보고 눈을 돌렸다. 처음에는 일반적인 방법으로 순대를 만들었는데, 왜관의 미군부대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이북식 순대에 대한 조언을 듣는다. 당시 왜관에는 이북에서 내려온 피난민이 많았고, 이들은 대부분 미군부대에서 잡일을 하고 있었다. 김 사장 아버지가 받은 조언은 다름 아닌 '피순대'였다. 순대 속에 들어갈 양념에 돼지 피를 붓고 버무린 후 대창에 넣어 삶는다는 것. 확연히 다른 맛에 순댓국이 많이 팔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특유의 맛으로 이름을 날리던 고궁순대는 15년 전 김철구 사장이 대를 이으며 또 한 번 맛의 변화를 겪는다. 그냥 버려지던 돼지껍데기를 보고 중국 교포인 종업원이 "그걸 왜 그냥 버리세요"라며 한 마디 던진 것이다. 그러면서 중국에서는 껍데기를 잘게 썰어 순대에 넣어 먹는다고 알려줬다. 김 사장은 그 말대로 순대 속에 껍데기를 썰어 넣었다. 그러자 순대가 한결 부드럽고 촉촉했다. 결국 고궁순대는 북한식과 중국식이 가미돼 새로운 맛의 경상도식 순대로 거듭나게 되었다.

 

  하지만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순대에 들어가는 돼지고기는 반드시 암컷으로 써야 하고, 응고된 피가 아닌 핏물을 그대로 쓰기 때문에 순대 속이 줄줄 새지 않도록 해야 한다. 김 사장은 여러 차례 시행착오를 겪은 끝에 찹쌀가루와 전분, 10여 가지 채소를 넣어 순대 속을 완성했다.


 

 

썰어 낸 순대에 참기름 바르는 모습

     * 손님 식탁에 오르기 전 참기름을 곱게 바른다 *

 

                             

칠곡 순대

                             

칠곡 순댓국

      * 칠곡 순대와 순댓국 *


 

  다음은 국물이다. 고궁순대의 진한 국물은 정평이 나 있다. 진하고 구수한 맛은 돼지 무릎뼈의 연골에서 나온다. 섭씨 80도의 물탱크에서 1차로 핏물을 제거한 후 솥에 넣고 끓인다. 여기서 사용하는 솥도 중요하다. 곰탕은 가마솥이 좋지만 순대국밥은 열전도율이 높은 일반 백솥이 좋다.

 

  이쯤에서 고궁순대만의 특징인 연탄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처음에는 버너로 국물을 달였는데 유류 파동 이후 원가를 감당하기 힘들게 됐다. 그래서 화로를 구입해 연탄을 때기 시작했다. 은근히 지속되는 화력 덕택에 진한 국물을 우려낼 수 있었다. 물론 처음에는 연탄 가는 때를 놓쳐 애를 먹기도 했다. 이것 역시 1년여의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방법을 터득할 수 있었다. 고궁순대의 국물은 돼지의 무릎뼈와 돼지머리를 넣고 40시간 이상 달여 고유의 진한 맛을 낸다. 국물 색깔이 워낙 뽀얗다 보니 처음에는 쌀뜨물을 넣었다고 오해를 받을 정도였다.

 


 

칠곡순대국밥집 본점 외관

      * 칠곡순대국밥집 본점 *


 

  김철구 사장은 욕심을 내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제는 전국적으로 소문이 난 탓에 손님들이 끊임없이 몰려들지만, 그럴수록 맛을 지키는 데 더 공을 들이겠다고 한다. 규모가 커지면 대량 생산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지금의 맛을 보장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김 사장은 좋은 맛을 내는 것보다 지키는 것이 더 소중함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고궁순대는 오늘도 찾아오는 손님들로 북적거린다.



 여행정보

1.찾아가는길

* 자가운전

경부고속도로 왜관IC → 왜관 방면 우회전 → 로얄사거리에서 왜관역 방향으로 우회전 → 왜관역 광장 녹음다방 안쪽(본점)

* 대중교통

서울→왜관 : 서울역(1544-7788)에서 칠곡 왜관역까지 무궁화호 1일 22회(05:50-22:50) 운행, 3시간 20분 소요

 

2.맛집

고궁(본점) : 칠곡군 왜관읍 / 순댓국 / 054-974-0055
고궁(왜관IC점) : 칠곡군 왜관읍 / 순댓국 / 054-971-7719
개성평통보쌈 : 칠곡군 왜관읍 / 보쌈 / 054-976-5353
옛고을두부 : 칠곡군 석적읍 / 순두부 / 054-975-6228
대경식당 : 칠곡군 동명면 / 오리고기 / 054-975-7979

 

3.숙소

송정자연휴양림 : 칠곡군 석적읍 / 054-979-6600
샹그리라모텔 : 칠곡군 왜관읍 / 054-973-1119
조이텔모텔 : 칠곡군 동명면 / 054-975-2441
트윈스모텔 : 칠곡군 동명면 / 054-975-6217

 

<출처> 2012. 9. 24 / 한국관광공사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