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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기 및 정보/- 서울

서울성곽길, 남산 코스를 걸어보셨나요?

by 혜강(惠江) 2012. 4. 23.

 

서울 성곽길, 남산코스를 걸어보셨나요?

- 총 길이 약 5.4㎞, 소요시간 3시간 -

 

 

·사진 남상학

 

 

 

 

◈코스 : 광희문-장충체육관-성벽길-정자(성곽마루)-우수조망소-국립중앙극장-소나무탐방로-남측 포토아일랜드-N서울타워(봉수대)-잠두봉 포토아일랜드-안중근의사기념관-백범광장-숭례문

 

 

  조선 태조 이성계는 고려의 오랜 수도였던 개경을 떠나 새 나라 조선의 수도로 한양을 선택했다. 현대의 신도시처럼 야심 차게 종묘, 사직, 궁궐, 도로 터를 정했고, 새 도읍 건설의 마무리로 남산~낙산~백악산(북악산)~인왕산으로 이어지는 한양을 둘러싸는 성곽을 쌓았다. 1396년(태조 5)의 일이다. 이들 네 산을 내사산이라고 했고, 반면 이를 한 번 더 둘러싸 보호하는 외곽의 관악산~용마산~북한산~덕양산을 외사산이라 했다.

  한성(서울)을 둘러쌌던 성곽의 길이는 약 18.6km다. 네 개의 대문을 내고 그 사이사이에는 소문을 두었다. 4대문이란 동쪽의 흥인문(興仁門), 서쪽의 돈의문(敦義門), 남쪽의 숭례문(崇禮門), 북쪽의 숙청문(肅淸門)을 말하고, 4소문이란 동북의 홍화문(弘化門, 혜화문), 동남의 광희문(光熙門), 서북의 창의문(彰義門, 북소문), 서남의 소덕문(昭德門, 서소문)을 가르킨다. 이 가운데 흥인문에만 옹성(甕城)을 쌓았다.

  우선 오늘 트레킹은 남산코스라고 불려지는 <광희문~숭례문 성곽코스>를 보면 서울 한양 도성을 감싸는 내사산 가운데 남쪽에 해당하는 남산(262m)을 넘는 구간이다. 총 길이는 5.3㎞, 소요시간은 3시간이며, 난이도는 광희문~남소문터까지는 ‘하’이며 남소문터에서 숭례문까지는‘중’에 해당한다. 남소문은 4소문에 들어가는 않지만 광희문 이외에 1457년(세조 3) 지금의 장충동에서 한남동으로 넘어가는 고개에 따로 남소문을 축조하였으나 1469년(예종 1)에 풍수지리설에 따라 폐쇄되었다. 

 



  광희문(光熙門)은 서울 한양도성의 남동쪽에 자리 잡은 사소문으로 조선 태조 5년(1396) 다른 문들과 함께 세웠다. 광희문은 다른 이름으로 수구문(水口門)이라고도 했는데 이는 근처에 물이 빠져나가는 수구(水口)가 있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또 조선시대 도성에서 시신을 내가려면 광희문이나 소의문(서소문)을 통해야 했는데 서쪽은 소의문으로, 동쪽은 광희문으로 나갔다. 광희문을 시구문(屍柩門)으로도 불리는 이유는 여기에서 연유한 것이다. 

  광희문과 이어진 일부 성곽을 제외하면 광희문부터 장충체육관 부근까지는 숭례문-돈의문 구간과 더불어 성곽 훼손이 아주 심하다. 성곽이 지나간 자리에는 주택들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어서 성곽의 흔적을 찾는 것조차 힘들다. 1915년 일제는 근대 도시로의 발전을 방해한다고 하여 성문과 성벽을 무너뜨리기 일쑤였고, 이것은 모두 평지인 까닭에 인구가 늘고 도심이 확장되면서 성곽이 사라지게 된 것이다. 심한 예로는 성벽이 개인집 담장으로 쓰이고 있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러나 장충체육관 부근부터는 골목길을 따라 성곽이 온전하게 남아 있다. 서울 한양도성의 수난 속에서도 도심 평지 구간에 기적적으로 살아남아 우리에게 기쁨을 주는 곳이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배어 있는 성벽과 주변의 나무들이 그림처럼 어울렸다. 서울성곽은 태조 때 처음 축조되어 세종 때 개축되고 숙종 때의 수축이 있었는데, 세 차례의 축조는 축조 방법과 돌의 모양이 각기 달라, 세 시기의 성벽이 쉽게 구분된다.

  즉 태조 때의 것은 1척 정도의 다듬지 않은 네모꼴의 작은 돌을 불규칙하게 쌓았으나 벽면은 수직이다. 세종 때는 2×3척의 긴 네모꼴의 다듬은 돌을 아래 부분은 비교적 큰 돌로, 위 부분은 작은 돌로 쌓았으며, 성벽의 중앙부가 밖으로 약간 튀어나왔으나, 철과 석회를 사용하여 축성 기술이 향상되었음을 보여준다.

  숙종 때의 것은 가로와 세로가 2척 규모의 정방형 돌을 정연하게 쌓아 간격도 일정하고 벽면도 수직이다. 이러한 축조술의 변화는 조선시대 축성술의 전반적인 변화와 관계된 것으로, 지방의 읍성(邑城)과 산성(山城)에도 적용되어진 모범이었다.

  그리고 당시 성곽공사는 구역마다 책임자를 두어 책임진 부분에 해당하는 성벽에 관직과 축성한 고을의 이름을 새겨 넣어 책임을 분명하게 하도록 하였는데, 지금도 그 흔적이 남아 있다. 성곽 축성시 돌에 그 당시 담당자 이름을 새긴 것은 조선시대판 공사실명제의 증명인 셈이다. 

 



  성곽이 신라호텔 담장의 끝자락에 이르면 암문(暗門)이 나타난다. 암문 안쪽에는 사유지이므로 시간제로 개방하고 있다. 암문을 통하여 들어가 보니 성곽 안쪽으로 탐방로가 개설되어 있다. 

  암문을 다시 나와 성곽을 우측으로 두고 걷는다. 성곽길은 한국자유총연맹 뒤를 돌아간다.  잘 정비된 길 옆으로 야생화들이 파른한 새싹 사이로 꽃을 피워내고 벚꽃과 목련이 화사하게 피어 봄의 정취를 맘껏 느끼게 한다.

 

 



  무르익은 봄 정취에 취한 채 잠시 걷다보면 성곽이 끝나는 지점의 낮은 언덕 위에 아담하게 정자가 보인다. 성곽마루라 이름 붙인 정자에 오르면 약수동 언덕 위에 남산타운이 병풍처럼 둘러쳐진 모습과 한남동 일대, 높이 솟은 하얏트호텔을 포함하여 남산 정상이 한눈에 들어온다. 주변 조망을 위하여 이런 장소에 멋진 정자를 세운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이 정자는 탐방객을 위한 것이라기보다 바로 지척에 살고 있는 마을 사람들의 휴식처가 되기에 충분하다. 

 

 

* 반얀트리클럽 뒤편 언덕에 자라잡은 정자 '성곽마루', 잠시 휴식을 취하는 일행의 얼굴에 행복이 넘친다.*

 

*성곽마루에서 방향을 바꿔가며 바라본 주변 풍경 * 



  성곽마루에서 내려와서 성곽이 끝나는 지점부터 길은  반얀트리클럽을 오른쪽으로 끼고 데크로 만든 길을 따라간다. 이 길 역시 사유지를 통과하는 구간이어서 18시부터 익일 09시까지는 통제된다.  반얀트리클럽은 구 타워호텔부지에 세워진 도심 휴양용 리조트인 셈이다. 6성급호텔과 스파, 골프 등 각종 운동 시설을 갖춘 고급 휴양시설이다. 

 


  반얀트리클럽을 지나서 길을 건너 국립극장 앞으로 간다. 그 이름처럼 ‘남산 성곽길’ 코스의 하이라이트인 남산으로 올라가간다. 국립극장 입구에서 안내소를 지나 150m 정도 올라가면 남산 순환도로 갈림길이다. 

  순환도로는 남산 꼭대기를 기준으로 남쪽과 북쪽 순환도로로 나뉘는데 남쪽 길은 시티투어버스와 관광버스, 외국인 차량만이 제한적으로 통행할 수 있지만 북쪽은 걷는 사람들을 위하여 차량 통행을 전면 금지시켰다. 봄철에는 꽃, 여름에는 신록, 가을에는 단풍, 겨울에는 설경이 아름답게 어우러져 시민들의 발길이 넘쳐난다.

 

 



  왼쪽 남측 순환도로로 접어들어 90m 정도 올라가면 중구, 용산구 경계선이 있고, 오른쪽에 성곽을 따라 올라가는 계단이 있다. 이 길은 성곽을 탐방하는 사람들 외에는 통행하는 사람이 별로 없어 한적한 편이다. 계단을 올라가서 성곽을 넘는다.

  남산순환도로 남측 구간 입구에서부터 남산 꼭대기로 올라가는 구간은 태조 시대의 성곽모습을 비교적 잘 보여주고 있다. 좀 가파른 계단으로 성곽을 넘으면 남산 숲길이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올라선 언덕에서 성곽길은 잠시 우회한다. 미군송신소가 있는 언덕마루는 통행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성곽에서 250m 정도 걸으면 갈림길인데 왼쪽 N타워 방향으로 간다. 여기서 다시 150m 정도 가면 만나는 갈림길에서 오른쪽 N타워 방향으로 올라간다. 

 

 


  정상에 오르면 팔각정과 N타워가 우뚝 서있는 광장에 닿는다. 남산 꼭대기에서는 봉수대와 국사당 터 그리고 현 서울의 중심점 구조물이 있다. 팔각정은 남산의 상징이며, 서울 N타워는 서울의 랜드마크 중 하나다. N타워의 ‘사랑의 자물쇠’는 연인이라면 꼭 들러야 할 명소가 되었다. 날씨가 맑은 날 N 타워에 올라가면 서울의 전경은 물론 멀리 인천까지도 볼 수 있다. 카페와 레스토랑 등 각종 편의시설도 마련돼 있어 데이트하는 연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팔각정이 있는 곳이 조선시대 나라의 안정을 빌던 국사당이 있던 자리다. 팔각정 뒤편으로는 남산 봉수수대를 재현해 놓았다. 남산은 전국에서 다섯 갈래로 전해오던 봉수를 최종적으로 받는 곳이어서 모두 다섯 개의 봉수대가 있었다.

 

  평상시에는 봉수대에 연기가 하나 오르고 적이 국경에 나타나면 둘, 적이 국경에 접근하면 셋, 적이 국경을 침범하면 넷, 그리고 아군과 교전하게 되면 다섯 개의 연기를 올렸다고 한다.  

 

 


  남산 봉수대에서 케이블카 종점 건물을 우측으로 끼고 남산케이블카 건물 옆으로 숭례문 방향으로 내려가다 보면 좌측으로 성벽은 계속된다. 성곽을 따라 이어진 계단 길은 경사가 그리 급하지 않고 폭이 넓어 내려가는 길이 수월하다. 예전 남산 길은 지금보다 훨씬 좁은 오솔길 계단이었는데 새롭게 정비한 것이다.    

  내려가는 길에 벤치에 앉아 잠시 쉬면서 오르내리는 케이블카를 사진에 담는다. 그리고 돌아사서 남산 정상을 바라부며 사진을 찍었다.  남산을 내려가는 길 중턱에 잠두봉 전망대가 있다. 툭 튀어나온 지형이 마치 누에머리를 닮았다고 하여 잠두봉(蠶頭峯)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잠두봉전망대에서 바라본 숭의학원 건물, 큰 건물이 숭의음악당이며,  스쿨 버스도 보이고,  녹색 지붕 건물이 보임 *

  

  이곳에 서면 인왕산, 북악산(백악산), 낙산으로 이어지는 서울 한양 도성을 조망할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내 눈엔 내가 36년동안 근무했던 숭의학원 건물의 지붕에 시선이 꽂힌다. 주변에 흐드로지게 핀 개나리를 보는 순간, 그 시절 교육에 쏟은 열정이 새삼스레 떠오른다.

  그대 위하여
  목 놓아 울던 청춘이 꽃 되어
  아지랑이 언덕에 이처럼 피었나니
  그 날 한 소절로 꺾이던 내 젊은 절규는
  불 붙는 열정(熱情)으로 뽑아낸 진액처럼
  해마다 이 남산 언덕에
  노랗게 노랗게 겹겹이 피기로
  그대 위해선
  다시도 아까울 리 없는    
  아아, 나의 청춘이 피워낸 꽃!


 


   나의 졸작 <개나리>의 전문이다. 나는 숭의(崇義) 재직 시절 해마다 봄꽃이 핀 학교 뒷산 남산길을 <꽃길걷기>라는 이름으로 우리 학생들과 같이 걸었던 기억이 있다. 개나리와 벚꽃이 만개했던 어느날, 나는 흐드러지게 핀 개나리꽃이 예사로 보이질 않았다. 그냥 봄이 되어 피어난 꽃이라기보다 나의 애씀과 열정이  담겨진 분신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이제 세월이 흘러 숭의여자고등학교 건물은 숭의여자대학이 사용하게 되었고, 숭의여자중고등학교는 대방동으로 신축 이전하였지만 교육의 장(場)에서 함께 어울려 꿈을 키우던 남산 시절의 기억은 결코 잊을 수가 없다.      

  잠두봉 포토아일랜드에서 계단을 내려오면서 갈림길에서 분수대가 있는 중앙광장으로 연결되는 길을 버리고 좌측 방향으로 김소월(金素月) 시비 옆으로 발길을 옮겼다. 진달래꽃이 피어있는 양지 바른 곳에 김소월시비 앞에 멈춰 서서 돌에 새긴 시를 읽으면 나도 어느 새 산에 동화된 듯한 느낌을 받는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영변(寧邊)에 약산(藥山)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가시는 걸음 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출근길에 이 소월길을 지나가며 해마다 읊조리던 나의 애송시, 현대 우리시에 한국적 정서을 노래한 시로 이만한 게 또 어디 있는가?  가는 임을 만류하거나 원망하지 않고 보내드리며 안으로 슬픔을 새기는 심정이야 오죽했을까.  이런 생각을 하며 발길을 우측으로 돌려 백범광장으로 내려간다. 광장에는 날씨가 좋아 나들이 나온 시민들이 많았다.

  남산 계단 길을 다 내려가서 백범광장과 아동광장이다. 백범광장에는 백범의 어록을 새긴 돌비들이 즐비하다.  새로 복원된 남산 아동광장의 성곽을 지나면 저 앞으로 숭례문(崇禮門, 국보1호)이 눈에 들어온다. 1396년 (태조 5년)에 창건되었는데, 1447년 (세종 29년)과 1479년(성종 10년) 고쳐 지었다.  남대문이라고도 한다. 말 그대로 남쪽에 있는 대문이다.

 

 

 

  한성으로 통하는 관문이라고나 할까. 현대의 지도로 살펴보면 돈의문(서대문)과 함께 도성 바깥에서 입궐하는 가장 빠른 길이었을 것이다. 빌딩 숲 사이에서 섬처럼 묵묵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던 숭례문은 사대문 중에서도 으뜸으로 꼽혔다.

 

 

 숭례문의 모습

 

 

  광희문에서 출발하여 숭례문까지 천천히 걸어 3시간 40분 정도 걸린셈이다.  서울 성곽의 남산 코스는 서울 한양 도성을 도성의 중심을 가까이 감싸는 구간으로 서울 시민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걸으며 한양에 도읍을 정한 후부터 지금까지의 역사를 공부하는 것을 권하고 싶다. 특히 남산(262m)을 넘는 구간이므로 서울의 아름다운 전경을 감상하기에도 좋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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