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학관련/- 문학기행(국내)

춘천 실레마을, 김유정문학촌을 찾아서

by 혜강(惠江) 2012. 1. 26.

춘천 실레마을

 

유정문학촌을 찾아서

- 김유정, 그 쓸쓸하고 짧았던생애의 배경이 되었던 곳 -

  

 

·사진 남상학

 

 

 

 


  
춘천은 아름답다. 북한강과 소양강 두 물줄기가 널찍이 합류하면서 생긴 수변도시로 넉넉한 수량만큼이나 넉넉하고 인정이 많다. 또한 범상치 않은 산세와 그 물줄기를 타고 조성된 도시여서 아름다운 도시로서의 조건을 다 갖추고 있다.  
 특히 경춘선이 복선전철화 되고 고속도로가 개통하면서 교통체증에 대한 부담이 덜하고 소요시간도 매우 짧아져 수도권 여행지로 최근 크게 각광을 받고 있는 곳이다. 

 

  그 중에서 춘천에서 남쪽으로 8km쯤 떨어져 있는 김유정 문학의 산실이 된 실레마을은 소설가 김유정(1908∼1937)의 고향인 동시에 많은 작품들의 실제인물이 살았던 곳이어서 찾는 이의 발걸음을 설레게 한다. 특히 금병산이 깊숙이 실레마을을 병풍모양으로 아름답게 둘러싸고 있는 모양이 마치 떡시루를 닮은 마을 같다 하여  '실레' 라는 이름을 얻었다.  실레는 ‘시루’의 강원도 사투리로서, ‘시루 증(甑) 자’를 써서 행정명칭을 증리(甑里))라 한 것도 그와 무관치 않다. 행정 명칭은 강원도 춘천시 신동면 증리로 되어 있다.

 

문학의 향기 오롯한 실레마을


   

  실레마을은 정말 산에 포옥 안긴 것처럼 포근하다. 이 포근한 마을에 드는 여행자는 자연스레 문학 작품 속으로 끌려들어 가는 느낌이다. 그런데  실레마을에 오면 마을 전체가 김유정의 문학마당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춘선 전철을 타고 김유정역에 내리면서 실감할 수 있다.

 

   이 역은 경춘선 개통 당시(1913년)부터 ‘신남역’으로 사용하던 것을 2004년 12월 소설가 김유정을 기념하기 위해 ‘신남역’이란 원래 이름을 버리고 ‘김유정역’으로 개명했다. 김유정역은 국내 최초로 사람 이름을 따 역명을 지은 곳이다.  그 만큼 실레마을과 김유정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김유정역의 대합실에 김유정에 대한 사진과 연보를 적은 액자를 걸어놓은 것도 그 한 예라 할 수 있다.

   김유정은 이 마을에서 태어나 문단 데뷔 이후 29세에 요절할 때까지 불과 2년 동안 무려 30여 편의 단편소설을 남겼는데, 그 가운데 대표작 ‘동백꽃’과 ‘소낙비’ ‘노다지’ ‘금 따는 콩밭’ 등 12편의 소설이 실레마을을 배경으로 삼고 있다.  김유정의 고향이자 작품의 배경이 된 실레마을은 마을 전체가 김유정문학촌이라 할 수 있다. 금병산자락 아래 잣나무숲 뒤쪽은 소설 <동백꽃>의 배경이다. 김유정기념전시관 맞은편 언덕에는 김유정이 움막을 짓고 아이들에게 우리말을 가르친 야학(안해)터가 있다. 
 마을 가운데 잣나무 숲으로 들어서면 실존인물이었던 <봄.봄>의 봉필 영감이 살았던 마름집이 있다. 점순이와 성례는 안 시켜주고 일만 부려먹는데 불만을 느낀 '나'가 장인영감과 드잡이를 하며 싸우는 모습이 막 눈앞에 그려지는 곳이다. 그 옆에는 김유정이 세운 간이학교 금병의숙(錦屛義熟)이 있다.

  건물 옆에는 당시 김유정이 기념으로 심은 느티나무가 아름드리로 자라 있다. 지금은 그곳에 김유정기적비(金裕貞紀積碑)가 세워져 있었다. 김유정이 술을 마시던 주막터도 남아 있다. 멀리 한들의 팔미천에는 산골 나그네가 남편을 숨겨두었던 물레방앗간 터가 있다. 
 



 

 


양지 바른 김유정 생가와 김유정문학촌

 


   김유정 생가와 김유정 문학촌은 김유정역에서 5분 거리에 있다. ‘김유정문학촌’이라고 쓰인 현판이 붙은 대문을 들어서면 앞마당의 큼직한 화강암 돌에 앉아 있는 사람 앞에 닭싸움을 시키고 있는 소년의 모습을 재현해 놓은 모습이 보인다. 점순이와 소년의 풋풋한 사랑이야기를 그린 그의 대표작 <동백꽃>의 한 장면이다.

  
“나흘 전 점순이가 울던 그 다음날에도 점순이가 자기 집에서 그의 씨암탉을 붙들어 놓고 때리고 있었으며 툭하면 점순네 닭과 싸움을 붙였다. 이유 없는 점순이의 닭싸움이 달가울 리가 없다. 그에게는 이유가 없지만 점순이에게 만은 확실히 이유 있는 닭싸움이었다. 빨리 그가 알아차리길 바랐지만 역시 그는 순진하고 어리숙하기만 했다.”
 
  대표작 <동백꽃>은 사춘기 남녀가 애정과 개성에 눈떠가는 과정을 전원 서정 속에 특유의 해학적 수법으로 표현한 것이다. 나는 사춘기에 이른 소작인의 아들과 마름의 딸 사이의 미묘한 사랑의 감정 표현이 생각나서 피식 웃었다. 


  앞마당 뒤로는 볏짚으로 머리를 얹은 김유정의 생가가 남향으로 앉아 있고, 김유정 동상을 사이에 두고 우측으로 김유정기념전시관이 동양의 미를 담은 깔끔한 기와를 올린 채 서 있다. 

  김유정의 생가는 6.25전쟁 때 불타버렸지만, 설계도가 남아있고 아직 생존해 계신 분들이 몇 분 계셔서 거의 완벽하게 복원이 되었다고 한다. 생가는 본채와 별채 하나. 본채의 구조는 특이한 ‘ㅁ’자 형태를 지니고 있는데, 이는 만석꾼이었던 김유정의 조부께서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 튼튼한 목재로 둘러친 ‘ㅁ’자 형태의 집을 짓고 일부러 기와가 아닌 초가를 얹었을 것이라고 한다.  별채는 디딜방앗간이며 그 옆으로 외양간이 있다. 그리고 생가 앞으로 연못을 만들고 정자(휴게정)를 세웠다. 

  높이 앉은 본채 툇마루에 앉아서 하늘을 바라보니 하늘이 한 폭의 수채화 같았다. 당시에는 울타리가 없었을 터이니 하늘과 집 앞의 들판의 자연을 바라보며 토속적인 글을 써내려갔을 것이다.

 

 

 

 

 

  김유정 생가 맞은편에는 김유정의 문학정신을 발현하기 위해 조성한 작은 실레마을이 있다. 도서실, 만화방, 공방, 농촌체험방, 원두막으로 운영되고 있다. , 김유정 선생 탄생을 맞아 개최하는 페스티발과 여름방학을 이용한 문학캠프, 기타 각종 축제, 문학행사와 학생들의 체험 학습의 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그 짧고 쓸쓸했던 생애

 


  김유정기념전시관에는 일대기별로 그의 문학이나 개인사에 관한 자료들과 작품집, 친필원고  들이 잘 전시되어 있다. 전시한 내용은 김유정의 생애와 사랑, 강원도 아리랑, 1930년대 농촌, 농촌문학, 해학문학, 제1전시관, 그리운 고향, 봄봄 디오라마, 작품 배경 지도, 제2전시관, 작가가 관여했던 구인회 소개와 문우들, 김유정 추모활동 등이 차례대로 전시 소개되어 있다. 이들 전시물을 보면서 느끼는 것은 첫째로 인간적인 면에서 그 생애가 너무 짧았다는 안타까움이다. 

   김유정은 1908년 아버지 춘식(春植)과 어머니 청송심씨의 8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갑부의 집안이었으나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고향을 떠나 12세 때 서울 재동공립보통학교에 입학, 1929년에 휘문고등보통학교를 마치고 이듬해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진학했으나 중퇴하였다.   그 후 1932년에는 고향인 실레마을에 돌아와 금병의숙(錦屛義塾)을 세워 문맹퇴치운동을 벌이기도 하고, 또 한때는 금광에 손을 대기도 하였으나 신통치 않았다. 폐결핵과 치질이 악화되는 등 최악의 환경 속에서도 왕성한 창작의욕을 보였던 그는 안타깝게도 30세에 요절(夭折)했다. 

 

 



불과 2년, 그 왕성했던 작품 활동

 


  김유정의 작품 활동 시기는 1930년대, 일제치하에 가난에 찌든 농촌의 남편들은 노름이나 게으름으로 일관하고 노름빚으로 아내나 딸을 팔아먹기도 하고, 아내들은 남편의 노름빚을 위해 몸을 팔기도 하는 수난의 시대였다. 

  이런 시대적 배경 아래 김유정은 1935년부터 작품을 썼다. 그는 단편소설 <소낙비>가 ≪조선일보≫에, <노다지>가 ≪중앙일보≫의 신춘문예에 각각 당선되어 문단에 올랐다. 그 뒤 후기 구인회(九人會)의 일원으로 김문집(金文輯)·이상(李箱) 등과 교분을 가지면서 창작 활동에 주력했다.  그는 등단하던 해에 <금 따는 콩밭>·<떡>·<산골>·<만무방>·<봄봄> 등을 발표하였고, 그 이듬해인 1936년에 <산골 나그네>·<봄과 따라지>·<동백꽃> 등을 발표하였으며, 1937년에는 <땡볕>·<따라지> 등을 발표하였다.


  불과 2년 남짓한 작가생활을 통해서 30편 내외의 단편과 1편의 미완성 장편, 그리고 1편의 번역소설을 남겼다. 그의 작품집으로는 1938년에 나온 ≪동백꽃≫이 있고, 1968년에 ≪김유정전집≫이 출간되었다.

 

 

 

 


전원 서정 속에 감춰진 빛나는 해학(諧謔)

 

 

  김유정이 남긴 30여 편의 단편소설 속에는 탁월한 그의 언어감각과 독특한 체취를 품기는 그의 해학이 담겨 있다. 김유정의 소설은 그의 체험적 소재에 따라 크게 세 갈래로 나눌 수 있다.

 

  그 하나는 고향 실레마을 사람들의 가난하고 무지하며 순박한 생활을 그린 <봄봄>·<동백꽃> 등의 계열로서 그의 작가적 특징이 가장 잘 나타난 일면이다.  다음은 그의 금광 체험에서 얻어진 것으로, 민족항일기의 가난 속에서 일확천금의 꿈에 한 가닥 희망을 걸고 사는 사람들의 생태를 그린 <노다지>·<금 따는 콩밭> 등의 계열, 그리고 도시에서의 가난한 한 작가인 자신의 생활을 투영시킨 <따라지>·<봄과 따라지> 등의 계열이 그것이다.

  그의 문학세계는 본질적으로 희화적(戱畫的)이어서, 냉철하고 이지적인 현실감각이나 비극적인 진지성보다는 따뜻하고 희극적인 인간미가 넘쳐흐르는 게 특징이다. 등장인물들의 우직하고 순진한 모습, 사건의 의외적인 전개와 엉뚱한 반전, 매우 육담적(肉談的)인 속어의 구사 등으로 독특한 개성을 보여주었다. 어리숭한 사람들을 해학적으로 다룬 것은 그의 애상적인 성격에 대한 반동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문학의 숲, 금병산 실레마을 이야기 길

 


  금병산 산자락 곳곳은 향토색 짙은 김유정 작품의 배경이기도 하다. 이를 기리기 위하여 금병산에는 김유정의 소설 제목을 딴 등산로가 있어서 산을 찾는 이들이 발걸음을 저절로 소설 속으로 이끈다. 이곳에 조성된 실레마을이야기 길은 김유정문학촌이나 금병초등학교에서 시작된다.

 

  원형으로 이어져 있어 어느 쪽에서 출발해도 출발 지점으로 되돌아올 수 있다. 또 길 중간중간 금병산 등산로와 연결돼 있어 언제든 정상으로 향할 수 있다. 5.2㎞의 금병산 중턱을 끼고 도는 산길은 '동백꽃길', '만무방길', '금따는 콩밭길', '봄봄길' 등 김유정의 작품 제목으로 등산로 이름을 달고 있다. 천천히 돌아도 두세 시간이면 넉넉하다. 얼핏 마을 뒷산처럼 보여도, 안으로 들어갈수록 제법 숲다운 풍모를 드러낸다. 

 
  산길 곳곳엔 김유정의 소설을 토대로 스토리텔링을 덧씌웠다. 길 전체를 16개 구간으로 나눈 뒤 구간마다 김유정의 작품 속 내용을 본뜬 이름을 붙였다. ‘춘호 처가 맨발로 더덕 캐던 비탈길’(소낙비)과 ‘덕돌이가 장가가던 신바람길’(산골나그네)이 정겹고, ‘복만이가 계약서 쓰고 아내 팔아먹던 고갯길’(가을), ‘근식이가 자기 집 솥 훔치던 한숨길’(솥)이 애틋하다. ‘점순이가 나를 꼬시던 동백길’(봄·봄)이나, ‘도련님이 이쁜이와 만나던 수작골길’(산골) 등도 해학적이다. 

  문학을 전공한 사람이 아니더라도 완만한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는 동안 금병산의 얼굴마담인 잣나무 숲과 하늘을 찌를 듯 솟은 낙엽송 군락지를 걸으며 김유정의 작품 속에 빠져드는 경험을 해본다면 실레마을을 방문한 보람을 찾을 수 있다. 


   실레마을을 둘러본 나는 실레마을의 대표적인 막국수집 <시골장터막국수>(신동면 증리 861-4, 김유정 역 맞은편, 033-262-8713)집에서 김유정도 시장기를 채웠을 막국수 한 그릇을 게눈감추듯 비웠다.

 

 

 

 

 

* 여행에 동행해준 김명자, 김영심, 이선숙 세 선생님께 감사를 드립니다.(편집자)  



  

<끝>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