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창 미당시문학관
서정주의 시향(詩香)에 취하다
전라북도 고창군 부안면 선운리 231
글·사진 남상학
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 수록되었던 미당 서정주 시인의 ‘국화 옆에서’ 는 많은 독자들에게 감명을 준다. 이 시가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는 이유는 한국적인 정서가 담긴 '소쩍새, 천둥, 먹구름, 무서리' 등의 시어 때문이다. 이들 단어는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동원된 것들로서, 역경을 참고 이겨냈을 때 비로소 '누님 같은 꽃'이 필 수 있음을 역설한다. 시인의 정서와 표현하고자 하는 사상이 운율감을 획득하여 조화를 이룸으로써 훌륭한 작품이 되었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에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보다
미당시문학관을 방문하는 것은 국화꽃이 핀 가을이 제격이다. 그의 대표작의 하나인 ‘국화 옆에서’ 때문만이 아니다. 가을이면 미당문학관이 있는 고창군 부안면 선운리 일대는 노란 국화꽃으로 방문자들을 매혹하기 때문이다. 5월 중순 문학관을 방문하는 길은 다소 쓸쓸했다. 문학관에 도착하여 실내화를 갈아 신고 입실할 때까지 누구 하나 내다보는 이도 없고, 실내에도 방문자가 한 사람도 없다. 그러나 이런 한산함이 먼 길을 달려가 문학적 향기에 젖어보려는 이에게는 오히려 다행스럽기도 했다.
미당시문학관은 미당 서정주 시인의 고향이자 영면지인 고창군 부안읍 선운리 마을에 세워졌다. 폐교된 선운분교의 부지 2.862평 위에 세워진 문학관은 전시실 2동, 세미나동, 전망대로 구성되어 있다. 제1전시동은 시와 사진, 유품을 전시하고 서재를 재현했다. 유품에는 미당이 평소에 입었던 옷가지와 펜과 종이, 신발, 지팡이 등을 볼 수 있다. 그리고 6층에는 전망대를 설치했다. 6층 전망대에 올라가면 선운리 일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왼쪽으로는 미당의 생가가, 오른쪽으로는 멀리 언덕 위에 자리 잡은 미당의 묘소가 보인다. 가을이라면 묘소가 있는 언덕은 미당이 생전에 노래했던 국화꽃밭을 볼 수 있다.
제2전시동에는 미당의 친필시 액자, 육필원고, 서정주 연구논문과 대표시와 유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이곳에는 그간 논란이 되어 온 친일작품과 전두환 대통령 각하 56회 탄신일에 드리는 송시도 걸려 있다. 객관적으로 미당을 평가하고 알리려는 문학관측의 노력이 엿보인다.
미당은 1915년 전북 고창군 부안면 선운리에서 출생, 동국대학교 전신인 중앙불교전문학교에서 수 학한 후 193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벽’이 당선되면서 문단에 첫발을 내디뎠다. 이어 시집으로 화사집(41), 귀촉도(48), 서정주시선(56), 신라초(61), 동천(68), 서정주문학전집(72), 질마재신화(75), 떠돌이의 시(76), 서으로 가는 달처럼(76), 학이 울고 간 날들의 시(82), 안 잊히는 일들(83), 노래(84), 팔할이 바람(88), 산시(91), 늙은 떠돌이의 시(93), 80소년 떠돌이의 시(97)를 출간했다. 그리고 그는 2000년 12월 24일 영면했다. 정부는 그의 업적을 기려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했다.
그의 시세계를 시대별로 좀더 자세하게 고찰해 보면, 초기에는 생명파 시인으로서 낭만주의, 심미주의적 입장을 취하면서 전통적 서정세계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토착적인 언어의 시적 세련을 이루었다. 자신의 시세계를 스스로 생명파, 인생파로 규정하고 인간 본연성의 회복을 지향하는 휴머니즘을 근간으로 삼고 작품 활동을 했다.
그 후로는 고향의 원초적 서정과 외국의 문학세계의 영향을 받아 30년대를 풍미한 김기림과 이상의 모더니즘이나 초현실주의를 극복대상으로 삼는 한편,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 니체로 이어지는 신성과 초인정신에 관심을 갖고, 유불선의 동양사상과 샤머니즘 및 전통 정신사상을 두루 섭렵했으며 광범위한 문학적 체험을 거쳐 김영랑의 순수시와 우리말의 아름다움에 애착을 보이며 민족 전통과 정신의 세계를 형상화하였다. 여기서 초기의 과정을 거쳐 변모한 시 한 편을 보면,
즈믄 밤의 꿈으로 맑게 씻어서
하늘에다 옮기어 심어 놨더니
동지 섣달 날으는 매서운 새가
알고 시늉하며 비끼어 가네.
이 작품은 ‘동천(冬天)’이라는 시의 전문이다. 짤막한 한 편의 시이지만, 초기에 들끓어 오르던 생명의 뜨거움을 노래하던 그가 오랜 변모의 과정을 거쳐 도달한 신비적 원숙의 경지를 보여 주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완숙한 경지에 이른 화가가 그려 낸, 차갑고도 단순한 구도의 동양화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한겨울의 춥고 어두운 밤하늘에 초승달이 떠 있고, 어두운 밤하늘을 배경으로 한 마리 매서운 느낌을 주는 새가 날고 있는 것이 그 전부이다. 여기에 시인은 그 나름의 의미를 부여한다. 그 초승달은 그의 마음속에서 오래고 오랜 밤 동안 그리움으로 맑게 씻어 낸 님의 고운 눈썹이며, 하늘의 새는 그것을 아는 듯 시늉을 하며 비끼어 간다. 이 그림은 단순한 그림이 아니다. 오랜 밤 동안 `나'가 가졌던 그리움이 `님의 고운 눈썹'에 맺히고, 그것은 다시 초승달이 되어 겨울 하늘에 떠 있으며, 하늘을 나는 한 마리 새가 그 싸늘한 아름다움을 감히 침범하지 못하고 피하여 가는 신비로운 조화, 감흥(感興) 속의 그림이다.[김흥규의 해설 참조]
이렇듯 미당은 현대의 시인들 중에서 만해, 소월, 지용 등과 함께 가장 많은 연구의 대상이 되고 있을 만큼 뛰어난 분이다. 시문학사적으로 볼 때 그는 분명히 한국 최고의 시인으로 인정받을 만하다. 한국문학이 도달한 최고의 미학적 형상력, 또는 후대에게 미치는 가장 강렬한 미학적 감화력의 주인공이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심오한 시세계와 더불어 ‘언어의 연금술사’라 칭함을 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제말기 징병을 종용하는 글과 친일시를 발표하는 등의 친일행적, 이승만 정권과의 관계, 80년 신군부등장 이후 전두환 대통령후보의 찬조 연사, 대통령 당선 축시헌사. 지지발언 등으로 “아부와 굴종”이라는 지탄 및 반민중 반민주 친독재 야합인물로 불리는 오점을 남겼다. 국내 민주화가 진척되면서 따가운 비판의 대상이 되었고, 부정적 인식이 확산, 국정 교과서에 그의 시가 배제되었으며 검인정 교과서도 일부 제한적으로 수록되었다.
문학관을 나와 왼쪽으로 미당교를 지나면 미당 서정주의 생가가 있다. 초가집의 안채와 바깥채가 있고, 그 사이에 우물이 있다.
* 6층 전망대에서 바라본 마을 풍경(상-마을 건너편 묘소가 있는 곳, 중-생가가 있는 곳, 하-뒷마을과 산)
* 미당 생가 *
* 미당시문학관 옆에 고창의 명물 복분자 밭이 넓게 펼쳐져 있다. *
<정보>
* 휴관일 : 1월1일, 월요일
* 관람시간 : 하절기 09:00~18:00, 동절기 09:00~17:00
* 문의 : 미당시문학관(063-560-2760)
* 가는 길 : 서해안고속도로 선운사 나들목에서 선운사 방향으로 나와 22번 국도를 타고 부안면 소재지를 지나 용산저수지를 왼쪽으로 끼고서 삼거리에서 우회전해서 고갯길(질마재)을 넘어서면 멀리 줄포만과 시문학관이 보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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