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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문학기행(국내)

원주 박경리문학공원, 대서사시 <토지>의 산실

by 혜강(惠江) 2012. 3. 5.

 

 원주 박경리문학공원 


한국 근대사의 역정을 그린 대서사시 <토지>의 산실

 

 

·사진 남상학

 

 

 

 

 

  강원도 원주에는 박경리문학공원이 자리 잡고 있다. 박경리문학공원은 3천여평의 아담한 공원이지만 경남 하동 평사라에서 간도 용정까지의 삼천리를 무대로 하여 펼쳐진 대하소설 <토지(土地)>의 깊은 뜻이 옮기는 걸음마다 느껴지는 공간이다. 

 

   한국문단의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칭송받고 있는 박경리 선생의 대하소설 <토지>를 주제로 선생의 문학세계를 탐방할 수 있는 원주 박경리문학공원은 소설 <토지>의 산실인 박경리 선생의 옛집이 1989년 택지개발지구로 편입되어 자칫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것을 염려한 문화계의 건의에 따라 한국토지공사의 시공으로 1997년 9월에 착공하여 1999년 5월 완공되었다.

 

   11,438.4㎡ 부지에 꾸며져 있는 박경리문학공원은 박경리 선생의 옛집과 정원, 집필실 등을 원형대로 보존하였고, 주변 공원은 ‘박경리문학의 집’을 비롯하여 '북카페'와 소설 <토지>의 배경을 옮겨놓은 3개의 테마공원 평사리마당, 홍이동산, 용두레벌로 꾸몄다.   주차장 전면 마당이 평사리마당이고, 옆의 높은 건물은 박경리문학의 집, 그 옆으로 둥근 모양이 북카페, 북카페 옆으로 들어가 울타리를 친 부분이 박경리 선생의 옛집, 평사리마을에서 계단을 라가면 홍이동산, 홍이동산에서 좌측 계단으로 내려와 전신주를 지나면서 용두레벌이다.   

 

 



* 박경리 선생의 옛집 

   박경리 선생의 옛집은 박경리 선생이 1980년 서울을 떠나 원주의 이곳 단구동으로 이사와 살면서 소설 <토지> 4부와 5부를 집필하여 1994년 8월 15일 대단원의 막을 내린 곳으로, 건물은 내부 및 외벽을 일부 보수했을 뿐 원형그대로 보존하였다. 건평은 2층 연면적 211㎡ 규모이며 대지면적은 약 2,512㎡에 해당한다.  

   대문에서 뜰로 들어서는 길목에는 선생의 시를 적은 팻말들이 발길을 잡는다. 선생은 소솔을 쓰는 틈틈이 자신의 감성을 시로 스기를 좋아했다. 그래서 생전에 〈우리들의 시간〉(2000)을 간행했고, 2008년 그녀가 생을 마감하기 전 마지막까지 썼던,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담은 유작 시 39편을 묶은 유고시집으로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로 발표되었다. 나는 잠시 발길을 멈추고 <옛날의 그 집>을 읽어본다.


  빗자루병에 걸린 대추나무 수십 그루가

  어느 날 일시에 죽어 자빠진 그 집 
  십오 년을 살았다 

  빈 창고같이 휑뎅그렁한 큰 집에
밤이 오면

  소쩍새와 쑥쑥새와 울었고 
  연못의 맹꽁이는 목이 터져라 소리 지르던 

  이른 봄 그 집에서 나는 혼자 살았다 

  다행히 뜰은 넓어서 배추 심고

  고추 심고 상추 심고 파 심고 
  고양이들과 함께 살았다
정붙이고 살았다 

  달빛이 스며드는 차가운 밤에는

  이 세상의 끝의 끝으로 온 것 같아 
  무섭기도 했지만
책상 하나 원고지, 펜 하나가 
  나를 지탱해주었고
사마천을 생각하며 살았다 

  그 세월, 옛날의 그 집
그랬지 그랬었지 
  대문 밖에서는 늘
짐승들이 으르렁거렸다 

  늑대도 있었고 여우도 있었고

  독사 하이에나도 있었지 
  모진 세월 가고
아아 편안하다

  서 이리 편안한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옛집 입구에는 손주들을 위해 손수 만들었다는 연못이 있고, 마당 한쪽에는 선생이 가꾸던 텃밭이 그대로 남아 있다. 그리고 마당의 한 가운데는 화강암 바위 위에 앉아있는 박경리선생의 동상이 자리 잡고 있다. 이는 당신이 아끼고 매만지던 단구동 집 텃밭에서 일하고 난 후 호미와 책을 옆에 놓고 고양이와 더불어 잠간 쉬고 있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다. 집필실 1층에서는 선생이 집필하며 생활하던 자취를 볼 수 있으며, 2층은 문학 및 예술동호인들의 사랑방으로 활용하고 있다.    

 

 

 * 박경리 옛집 마당으로 들어가는 길가에 세운 팻말(시비),  박경리 선생의 옛집, 박경리선생의 좌상 *

 

* 옛집의 실내의 집필실, 그의 작품들 *

 

* 박경리문학의 집 

   아울러 주차장 입구에는 그 동안의 숙원사업이었던 ‘박경리문학의 집’을  2010년 8월 15일 개관함에 따라 대문호의 일상과 삶의 자취는 물론, 평생 집대성한 거대한 문학의 산맥을 한 자리에서 느낄 수 있도록 꾸몄다. 1층은 사무실이며, 2, 3층은 전시실, 4층은 자료실, 5층은 세미나실로 구분되어 있다. 

  2층 전시실은 <박경리와 만나다>라는 테마로, 박경리 선생의 삶의 흐름에 따라 연표와 사진, 시로 구성하여 작가에 대한 이해를 돕도록 했고, 타임캡슐로서의 유품들, 이를테면「토지」의 육필원고와 만년필, 곁에 두고 참고했던 국어사전, 소설 토지의 여러 판본들, 평소 사용했던 재봉틀과 손수 지어 입던 옷, 아끼던 달항아리, 농사 지을 때 쓰던 호미와 장갑, 직접 조각한 여인상들이 전시되어 있다.

  박경리는 1926년 10월 28일, 경남 충무(지금의 통영)에서 태어났다. 1945년 진주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50년 황해도 연안여자중학교 교사로 재직하였다. 그 후  곧 결혼했으나 6·25전쟁 때 남편은 납북되었으며 주로 딸과 함께 살았는데 시인 김지하씨가 사위다. 선생은 한평생 소설가로서 많은 작품을 남기고 82세를 일기로 2008년 5월 5일 폐암으로 사망하였다. 여기서 그의 문학 활동을 잠시 살펴보면,

  1955년 김동리의 추천을 받아 단편〈계산(計算)〉과 1956년 단편〈흑흑백백(黑黑白白)〉이〈현대문학〉에 발표되면서 문단에 올랐다. 1957년부터 본격적으로 문학활동을 시작한 그는 단편 <전도(剪刀)>, <불신시대(不信時代)>,  <벽지(僻地)> 등을 발표하고, 이어 1962년 장편 <김약국의 딸들>을 비롯하여 6·25전쟁을 소재로 한 장편〈시장(市場)과 전장(戰場)〉, <파시(波市)> 등 사회와 현실에 대한 비판성이 강한 문제작들을 잇달아 발표함으로써 문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하였다.

  특히 그의 대표작 <토지>는 1969년 6월부터 집필을 시작하여 1994년까지 25년간에 걸쳐 5부로 완성된 대하소설로, 한국 근·현대사의 전 과정에 걸쳐 여러 계층의 인간의 상이한 운명과 역사의 상관성을 깊이 있게 다뤘다. 유방암 선고와 사위 김지하의 투옥 등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토지〉의 집필을 계속한 선생은 윤씨부인-별당아씨-서희, 그리고 그 자식들의 세대에 이르기까지 4대에 걸친 인물들을 통해 민중의 삶과 한(恨)을 새로이 부각시켰고, 이로써 한국문학사에 큰 획을 그었다. 이 작품은 영어·일본어·프랑스어로 번역되어 호평을 받았다.

   그의 소설에서 중요한 주제 가운데 하나는 여성의 비극적인 운명이다. 대표작〈토지〉에서 최씨 집안의 중심인물이 두 여성인 것과 마찬가지로 장편〈김약국의 딸들〉,〈시장과 전장〉, <파시 波市〉의 주요인물도 여성이다. 〈김약국의 딸들〉에는 한 가정에서 운명과 성격이 다른 딸들이 나오는 반면에〈파시〉에는 6·25전쟁 직후에 부산과 통영을 무대로 살아가는 여성들의 다양한 모습이 드러나 있다. 그래서 한편에서는 주로 전쟁미망인을 등장시켜 악몽과 같은 전쟁으로 강박관념에 시달리는 모습을 그린 초기의 작품들을 두고 작가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자전적 소설 또는 사소설(私小說)이 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그는 문학적 공로로 1957년 현대문학 신인상, 1965년 한국여류문학상, 1972년 월탄문학상, 1991년 인촌상 등을 수상하였고, 1999년에는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에서 주최한 20세기를 빛낸 예술인(문학)에 선정되었다. 사후 2008년에 금관문화훈장이 추서되었다.

  박경리는 1996년 토지문화재단을 설립했으며 1999년 강원도 원주에 토지문화관을 세웠다. 박경리는 문학뿐만 아니라 환경 문제에도 많은 관심을 가져, 2003년 문학과 환경문제를 다루는 계간지〈숨소리〉를 창간했고, 2004년 자신이 신문과 잡지 등에 기고했던 글을 모아 환경 에세이집〈생명의 아픔〉을 출간했다. 2008년 그녀가 생을 마감하기 전 마지막까지 썼던,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담은 유작시 39편이 유고시집〈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로 발표되었다. 

 

 * 2층에 전시된 박경리 선생의 유품들*

 

*대표작 <토지>의 여러 판본들 *



  그의 문학을 개괄적으로 이해하고 3층 전시실로 들어서면 그이 대표작 토지에 대한 전시물이 기다린다. <토지에 들어서다>라는 테마로 1~5부로 나눠진 공간에는 <토지>의 역사적․ 공간적 이미지와 등장인물 관계도, 하이라이트, 영상자료 등을 통해 소설에 대한 객관적인 이해를 돕고 있다. <토지>는 최참판 일가와 이용 일가의 가족사를 중심으로 구한말부터 일제강점기를 지나 광복까지의 내용을 다루고 있으며 모두 5부 16권의 분량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서 토지의 대강 줄거리를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1부는 1894년 평사리에서 벌어지는 일을 중심으로 최참판 일가의 몰락을 그리고 있으며,   2부에서는 배경을 만주 용정으로 옮겨 최서희의 치부와 조준구에 대한 복수, 그리고 최서희와 두 아들을 비롯한 평사리 사람들의 귀향을 그리고 있다.   3부에서는 배경이 넓어져 만주와 일본 동경, 서울과 진주를 중심으로 전개되며 김환(구천이)이 옥사한다.   4부에서는 김길상의 출옥과 탱화의 완성, 기화(봉순이)의 죽음. 그리고 오가다 지로와 유인실의 사랑과 갈등을 그리고 있으며 2세대인, 이 용의 아들 이 홍과, 최서희와 김길상의 아들인 최환국과 최윤국이 이야기의 전면에 서서히 등장한다.  5부에서는 2차세계대전 가운데 한국인들의 고난과 기다림을 형상화하고 있으며 주요사건은 이상현과 기화의 딸인 이양현과 최윤국, 그리고 송관수의 아들인 송영광의 삼각관계가 있다. 이 소설은 일본의 무조건항복을 알리는 라디오 방송을 들은 이양현이 최서희에게 달려와 그 소식을 전하는 것으로 끝난다.」


  그야말로 <토지>는 봉건적 가족 제도와 신분질서의 해체, 서구문물의 수용과 식민지 지배의 과정, 간도 생활과 민족의 이동, 독립운동의 전개와 식민지 사회의 구조적 변화 등을 초점으로 개인의 운명과 역사의 조류가 서로 침투하는 웅대한 조망의 세계를 방대하게 펼쳐나간 작품이다. 그가 이 작품에서 보여준 개항기 이래 한국 사회의 풍속에 대한 풍성한 탐구, 각양각색의 인간상의 창출, 삶의 의미와 역사의 원동력에 대한 심오한 직관은 그 격변과 진통의 시대를 살아갈 한국인의 삶을 장엄한 파노라마로 육화시키는 데 공헌하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토지>의 문학적 숲속을 거닐다 <살펴보다>의 테마로 꾸며진 4층으로 올라서면 주로 박경리 선생의 삶과 작품을 연구하는 공간이다.  <회상하다>의 테마로 꾸민 5층은 영상을 통하여 박경리 선생이 살던 현실세계와 만나게 하는 영상실, 세미나실 등으로 꾸몄다. 

 

 



* 북카페 *

  박경리문학의 집을 둘러보고 나오면 문학의 집 옆에 있는 단독건물「북까페」에 들어갈 차례다.  1층은 문학과 예술을 사랑하는 시민들이 자유롭게 책을 대하여 볼 수 있는 작은 휴식공간으로 꾸몄고, 2층은 최희응 선생님이 평생 동안 수집한 일제강점기 교과서와 자료들을 기증 받아 「土地」의 주요 시대적 배경을 볼 수 있는 특별전시장을 마련하였고, 아울러 열린공간으로 문화 예술인들의 기획 전시를 할 수 있도록 했다. 4층에는 박경리 선생의 관련 책자는 물론 다양한 서적을 볼 수 있도록 꾸몄다.   


 

 

* 평사리마당과 홍이동산 그리고 용두레벌

 

  박경리문학의 집 앞으로 평쳐진 평사리마당은 소설이 시작되는 하동 땅 평사리마을의 이미지를 보여주는 곳으로 섬진강을 나타내는 맑은 개울, 선착장, 둑길 등이 소박하게 그려져 있다.  나는 평사리 마당을 걸으며 선생의 시 <지샌 밤>을 읽어보았다

  토인비의 역사연구를 읽다가  

  재봉틀 앞에서 바느질을 하다가
  묵은 유행가책 꺼내어
노래를 불러 본다

  무한한 것은 저만큼 서 있고

  생활은 내 곁에 어질러져 있었고
  장난기도 좀 부려 보았는데

  갑자기 자신에 대한 연민
  인간에 대한 연민 때문에
웃었다

  창백한 형광등
커피는 식어 있고
  원고지는 난무하고

  시각마다 시체가 되는 사물

  지겹게 울어대던 개구리

  밤새 울음도 멎고
  까치 소리에
창문밖 내다보았더니
  옥색 아침이 열려 있었다.

 

 



   이 작품 외에도 평사리마당에는 선생의 옛집 입구에 세운 팻말처럼 <눈먼말> 등 선생의 여러 시들이 관람객들이 읽기 좋게 세워져 있다.   그리고 계단으로 이어지는 동산은 홍이동산은 박경리 선생의 옛집 뒤쪽의 동산으로 홍이동산이다. 홍이동산은 아이들이 자유롭게 뛰어놀 수 있는 동산이라는 뜻으로 <토지> 속의 대표적인 아이 주인공인 홍이에서 따온 이름이다. 원래 있던 동산을 그대로 이용하여 마당과 함께 평사리 마을의 정경을 꾸며놓았다. 나무로 둘러싸인 동산 꼭대기 돌 쉼터에서 바람을 쐬거나 소설 속의 평사리 마을을 상상해 볼 수 있다. 


  홍이동산에서 나무 전신주가 서있는 비탈길을 내려가면 평사리에서 신작로와 철길을 거쳐 간도 용정으로 떠나가던 여정을 그려낸 용두레벌이다. 토지 2부의 중요배경지인 간도 용정의 이름을 낳은 용두레 우물과 간도의 벌판에서 연유한 이름이며, 일송정, 용두레 우물, 돌무덤, 흙무덤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소설가 박경리는 한국문학사에서 찬탄과 존경을 받아야 마땅한 소설가임에 틀림없다. <토지>만 하더라도 26년에 걸친 집필기간에, 원고지 3만 배가 넘는 분량의 원고(21권), 국내외의 광활한 배경으로 한국인의 역사와 운명의 대서사시를 엮어낸 그의 문학정신이야말로 그 누가 따를 수 있겠는가? <토지>가 한국문단의 가장 뛰어난 수작으로 주목받는 이유를 비로소 알 것 같았다. 

 

  원주 땅은 박경리 선생이 문학의 불꽃을 피운 문학의 산실이다. 1980년 서울을 떠나 원주에 터전을 잡은 박경리 선생은 이곳 옛집에서 채소농사를 지으며, <토지> 4부와 5부를 집필하여 1994년 8월 15일 새벽에 완성하였다고 한다.  원주시는 이곳 단구동에 <토지>를 완성한 것을 기념하여 토지문학공원을 조성하는 한편 원주시 흥업면 매지리에 토지문학관을 두고 박경리 선생이 생전에 만든 토지문화재단으로 하여금 학술 문화행사 및 연구, 창작, 집필 활동을 지원하는 일을 돕고 있다.

 

<참조>
* 박경리문학공원(강원도 원주시 토지길 9-11, 전화 : 033-762-6843)

* 토지문학관(강원도 원주시 흥업면 매지회촌길 79,  전화 : 033-762-1382)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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