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조로(Zorro the Musical)'
3시간의 화려한 무대
흥겨운 선율, 현란한 리듬에 매혹되다!
글 남상학
* 뮤지컬 '조로' 홍보 포스터 *
우리 부부가 한남동에 있는 블루스퀘어를 방문한 것은 2012년 1월 4일(수) 오후 3시. 뮤지컬 '조로(Zorro)'를 감상하기 위해서였다. 날씨는 다소 쌀쌀한 편이었지만 공연장의 열기는 뜨거웠다.
좌석권에는 ‘뮤지컬 조로’ 에 “세계를 매혹시킨 전설의 영웅-오늘밤 그가 가면을 벗는다.” 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그 전설의 영웅은 바로 스페인 식민지 캘리포니아에 사는 귀족 돈 디에고 드 라 베가의 가명. 검은색 망토에 가면을 쓰고 독재자와 악당들로부터 사람들을 지키는 영웅 캐릭터다. 나는 아내와 함께 로비 의자에 앉아 감상에 앞서 미리 조사해 간 뮤지컬 ‘조로’에 관한 자료를 검토했다.
* 뮤지컬 '조로'가 공연되는 한남동 스퀘어가든 *
본래 조로는 1919년 미국 작가 존스턴 매컬리가 발표한 소설 '카피스트라노의 저주'의 주인공으로 처음 등장했다. 그후 이 전설적인 선과 악의 이야기는 칠레 출신 극작가인 이사벨 아얀데(Isabel Allende)의 베스트셀러 소설이 되었고, 그 동안 끊임없이 매혹적인 소재가 되어 수많은 메이저 영화로 다뤄졌고 이번 뮤지컬 또한 ‘조로’의 또 다른 버전이다.
뮤지컬 '조로(Zorro)'는 로맨틱한 영웅의 모험 이야기를 뮤지컬로 꾸민 작품이다. 뮤지컬 ‘조로’는 2008년 7월 15일 런던 웨스트엔드게릭시어터(Garrick Theatre)에서 시작되어 개막 1주일 만에 5억 원의 판매고를 올리며 ‘게릭시어터’ 박스오피스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 런던에서만 8개월 만에 31만 명이 관람했으며 영국 최고 권위의 ‘로렌스 올리비에상’에서 최우수작품, 남우주연, 여우주연, 안무, 조연상(수상) 등 5개 부문 후보에 노미네이트 됐다.
연출가 크리스토퍼 렌서(Christopher Renshaw)에 의하여 재탄생된 조로는 아찔한 공중 아크로바틱, 관중을 압도하는 스팩타클한 검술 대결, 마술이 어우러진 대작으로, 전통적 플라멩코 음악의 진수 라틴의 열정이 넘치는 집시킹스(The Gipsy Kings)의 음악, 태양 같은 뜨거운 정열의 플라멩코의 라파엘아마르고(Rafael Amargo)의 안무로 런던에서 이미 흥행성과 작품성을 인정받았으며, 파리, 브라질, 일본, 모스크바에 이어 우리나라 서울에서 막이 올랐다.
한남동 블루스퀘어에서 공연되는 뮤지컬 ‘조로’는 이사벨 아얀데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한 대작 뮤지컬로, 상류 계급 출신의 ‘디에고’가 집시처럼 자유로운 인생을 살아가다 자신의 어릴 적 친구 ‘라몬’의 악행으로 고통 받는 민중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고, 아버지의 복수와 고향 사람들을 지키기 위한 여정을 통해 자기 자신과 사랑을 찾아가는 이야기다. 이 뮤지컬의 내용은 좀더 자세히 서술하면 이렇다.
「19세기 초 캘리포니아를 지배하고 있던 스페인 귀족의 아들인 디에고(Don Diego)는 시장인 아버지 돈 알레한드로(Don Alehandro)의 지위를 이어받기 위해 연인인 루이사(Luisa)와 친구 라몬(Ramon)을 뒤로하고 바르셀로나에 있는 군사학교로 보내진다. 하지만 디에고는 학교를 그만두고 그곳에서 집시를 이끌며 자유로운 방랑생활을 하며 세월을 보낸다. 그 틈을 타 라몬은 돈 알레한드로를 지하 감옥에 감금한 뒤 거짓으로 죽음을 선포하고, 폭력을 일삼는 군주가 된다.
이를 견디다 못한 루이사는 바르셀로나에 있는 디에고를 찾아 나서지만 집시 여인 이네즈(Inez)와 놀아나고 있는 디에고의 모습에 실망하게 된다. 그러나 폭군에 고통 받는 시민들을 해방시켜줄 수 있는 사람은 그뿐임을 확신한 루이사는 디에고를 설득시킨다. 그 결과 디에고와 함께 집시 여인 이네즈와 집시 무리들도 그를 돕기 위해 캘리포니아 행 배에 몸을 싣지만, 고향에 돌아온 디에고는 기대와는 정반대로 라몬에게 굽실거리며 중요한 고비마다 어디론가 사라져버린다.
그러나 그 때마다 마스크를 쓴 영웅이 출현하고 정의의 사자로서 라몬 일당을 궁지에 빠뜨린다. 하여 사람들은 그를 ‘조로’라 칭하게 된다. 조로와 집시들에게서 용기를 얻은 시민들은 지금껏 억눌렸던 자유에 대한 갈망을 표출하기 시작하고, 루이사는 위기에 빠질 때마다 어디선가 나타나 자신을 구해주는 ‘조로’에게 사랑을 느끼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조로를 생포하려는 라몬의 전투 속에 조로는 급기야 위기에 빠지고, 유일하게 조로가 디에고였음을 알고 있었던 집시 여인 이네즈가 조로를 대신하여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한다.
한편 라몬의 부하 가르시아(Garcia)는 집시 여인 이네즈의 매혹적인 모습에 반하여 그를 사랑하게 되면서 심경의 변화를 일으켜 결국 조로와 시민의 편에 서게 되고 가르시아의 결정적인 제보로 조로는 자신의 아버지 돈 알레한드로를 지하 감옥에서 구하고 어릴 적 친구 라몬과 최후의 결투를 한다. 이 결투에서 라몬은 최후를 맞게 되는데 자신의 욕망을 좌절시킨 조로가 자신의 친구 디에고임을 죽음 직전에 알게 돈다. 그러나 때마침 들이닥친 돈 알레한드로와 루이자는 조로가 디에고임을 알지 못한다.
자신과 캘리포니아를 악의 손아귀에서 구해낸 조로는 라몬에 맞서 싸워 승리하고, 사랑도 쟁취한다. 조로에게 감동한 루이지가 사랑을 고백할 때 집시들과 시민들은 춤을 추며 ‘조로’라는 전설의 탄생을 축하한다.」
조로에 대한 한국팬들의 관심이 크다는 것은 공연장의 로비에서 실감할 수 있었다. 몰려든 예매 관객들이 좌석표를 받기 위해 길게 늘어서 있다. 젊은 관객들은 로비에 게시된 배우들의 사진 앞에서 카메라를 들이대고 셔터를 누르기에 바쁘다.
그 가운데 단연 화제는 뮤지컬 조로로 등장하는 대한민국 최고의 스타 조승우, 박건형, 김준현이다. 트리플 캐스팅으로 조로역을 번갈아 맡은 이들 3인 3색의 조로에 대한 관객의 인기는 폭발적이다. 이 외에도 함께 출연하는 조정은, 구원영, 문종원, 최재웅, 김선영, 이영미 등의 사진에 눈길을 주고 있다. 오늘 낮 공연의 배역은 시장인 돈 알레한드로에 김봉환), 아들 디에고와 조로에 중복 케스틴 된 박건형, 루이사엔 구원영, 라몬은 최재웅, 이네즈에는 이영미가 맡았다.
1막, 2막으로 나누어 3시간 동안 진행됐다. 코미디에 환호하고 압도적인 군무와 마술쇼에 감탄하고 놀라다 보니 1막은 믿을 수 없을 만큼 빠르게 흘러갔다. 2막은 불쇼와 앙상블의 몽환적 합창, 조로와 병사들의 군무가 어우러진 환상적 오프닝으로 드라마 전개에 속도를 더했지만, 조역의 러브라인과 악역의 고뇌가 필요 이상으로 끼어들어 속도감이 떨어졌다. 조로의 등장은 눈에 띄게 줄어 수퍼히어로를 기다리는 객석을 목마르게 했다. 그러나 조로는 전체적으로 볼 때 관객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특히 신체적 조건과 외모가 가장 ‘조로’와 흡사하다는 평을 받았던 박건형은 무대에서 절정의 섹시미를 발산하며 관객들을 사로잡는다.
공연 초반 박건형은 풋풋하고 소년 같은 ‘디에고’를 연기할 때는 한 없이 귀여운 모습을, 구릿빛 가슴을 드러내며 자유로운 집시의 노래를 할 때는 열정적인 강렬함을, ‘라몬’에 대한 복수와 정의를 위해망토를 두른 채 ‘조로’의 모습으로 등장하는 순간에는 객석이 일제히 술렁거릴 정도의 드라마틱한 비주얼 충격을 주고 있다.
특히 극중 ‘라몬’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 일부러 순진한 척 하는 ‘디에고’의 능청스러움은 순간순간 관객들을 웃음 짓게 만든다. 특히 이네즈와 함께 하는 만담과도 같은 대화나 목욕 중인 루이사의 집으로 도망 왔을 때의 모습은 한층 인간적이다. 그런가 하면 정의를 위해 싸우는 ‘조로’의 모습은 같은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그 변화의 폭이 커 중복 캐스팅의 부담을 단번에 훌훌 풀어 던진다. 일부러 목소리 톤을 완전히 변형시켜 ‘조로’ 특유의 강하고 남성적인 매력을 배가 시켰고, 극중 격렬하고 위험천만한 공중 액션과 검술 뿐 아니라 이런 세밀한 목소리 연기를 완벽하게 소화하며 전석 기립 무대를 만들어가고 있다.
이네즈를 필두로 한 자유로운 집시들의 플라멩코는 단연 압권. ‘밤볼레오’, ‘조비조바’를 외치는 그들의 화려한 군무는 스페인 대륙을 떠돌던 집시들의 붉은 정열을 담아내 관객들의 이목을 단박에 사로잡았다. 또 라몬에게 착취당해 희망을 잃어버린 시민으로 분했을 때 그들이 보여준 탭댄스에는 삶에 대한 애환과 분노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이들이 연습 기간 동안 얼마나 많은 땀방울을 흘렸을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완벽한 합이었다.
교묘한 마술적 장치는 속도감과 박진감이 떨어지는 줄타기와 칼싸움을 대신해 조로의 신출귀몰한 액션을 상당부분 커버해 주었다. 집시 디에고와 검객 조로를 오가는 변신코드에 마술쇼는 탁월한 선택이다.
줄타기로 등장했다 마술로 퇴장한 조로가 다시 마술처럼 순식간에 디에고로 변신해 재등장하는 것은 스턴트 조로의 활용에 얼마간 설득력을 부여했다. 화려한 검술과 아찔한 와이어 액션, 실제 화염이 동원된 불쇼. 마술과 정열적이고 현란한 집시들의 군무가 교차하는 버라이어티쇼, 특히 집시들이 플라멩고와 스패니쉬 기타의 선율과 매혹적인 리듬으로 품어내는 열정적인 음악은 매력을 넘어서서 마력의 힘을 선물해 주었다.
또한 고통 받는 민중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와 아버지를 구출하고 고향 사람들을 지키는 조로의 ‘정의’를 위한 투쟁은 새해 벽두 내 삶의 중요 가치로 각인되었다고나 할까. 이 자리를 빌어 ‘조로’를 감상하도록 배려해 주신 분께 고마운 인사를 드린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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