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국맛집 정보/- 맛집

대치동 '후레쉬빌', 7080 추억의 경양식 풍미를 복원하다

by 혜강(惠江) 2011. 5. 10.

 

서울 맛집 :  대치동 '후레쉬빌' 

 

7080 추억의 경양식 풍미를 복원하다

 

 

월간외식경영 글·이정훈 기자 사진·엄태헌 기자  

 

 

 

            

 

 

                             

   잡지에서 오려낸 ‘양식 먹는 방법’을 외우고 약속시간보다 30분 일찍 나간 경양식(輕洋食) 집은 아무래도 편안한 자리는 아니었다. 친구들과 노상 출입하던 학교 앞 분식집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밝지도 어둡지도 않은 조명, 생전 처음 들어보는 잔잔하면서 조용한 음악, 레이스가 달린 커튼 장식, 참으로 어색하고도 어색한 분위기였다. 드디어 상대방이 와서 앞에 앉고 메뉴판이 나오면, 대개는 돈가스나 함박스테이크를 시켰다. 가끔씩 오므라이스와 하이라이스를 시키는 축들도 있었다.

  지금의 중장년층에게 70~80년대 경양식집은 대개 쑥스러움과 설렘이 있는 추억의 장소였다. 소개받은 이성 친구를 앞에 두고 칼과 포크를 서투르게 잡은 채 새로운 양식문화를 그곳에서 처음 접했다. 경양식집의 주력 메뉴였던 돈가스와 함박스테이크는 당시 스무 살 안팎 청년들로서는 정찬 메뉴이자 한 번쯤 꼭 맛보고 싶은 음식이었다.

 

 

          


 


돈가스는 양식인가, 일식인가?



  돈가스는 일본을 통해 들어온 음식이다. 서양음식이되 일본화 한 뒤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널리 퍼졌다. 원래 육식 전통이 없었던 일본에서 육식을 허용한 것은 메이지 시대였다. 1872년(메이지 5년)에 일왕이 직접 고기를 먹음으로써 1,200년 동안 금지했던 육식을 공식적으로 해금하였다. 나가사키를 통해 서양인을 중심으로 육식문화가 들어와서 퍼지기 시작하고, 남쪽의 오키나와를 통해 중국의 돼지종자와 영국의 버크셔·요크셔가 보급되면서 일본에 서서히 돈가스(일본명: 돈가츠) 탄생의 환경이 조성되었다.


  서양의 쇠고기 커틀릿이 일본에 들어와서 소, 닭, 돼지로 번갈아 주 재료가 바뀌었고 고기에 붙어있던 뼈도 사라졌다. 조리법도 서양에서는 약간의 기름에 살짝 지지는 형태(shallow fat frying)였는데 일본에 와서 기름에 잠기도록 튀기는 형태(deep fat frying)가 되었다. 익힌 채소를 곁들여 먹는 서양식 커틀릿과 달리 난데없이 채 썬 양배추가 접시에 함께 올라왔다. 서양에서 원래 없었던 밀가루와 튀김옷과 굵은 빵가루를 일본에서는 고기에 입혀서 튀겼다. 나중에는 포크가 필요 없이 젓가락으로 집어먹을 수 있도록 썰어서 내오기도 하였다.

  돈가스는 서양요리인 커틀릿과 일본 요리인 덴푸라(튀김)가 서로 절충해서 탄생한 음식이라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서양에서 들어온 돈가스는 메이지 시대와 다이쇼 시대를 거쳐 소화 시대 초기에 와서 일본화된 모습으로 정형화 한다. 서양에서 일본으로 들어온 커틀릿이 포크커틀릿→포크가쓰레쓰→돼지고기가쓰레쓰→돈가쓰레쓰→돈가쓰(스)로 되는데 60년의 세월이 걸린 것이다. 경로는 다르지만 함박스테이크, 카레라이스, 오무라이스, 고로케 같은 음식들도 서양음식이 일본화 되는 과정에서 나온 일본식 양식이다.

 

 일본서 나고 한국에서 재탄생한 경양식 메뉴
 

  이 음식들은 우리가 외국에 갔을 때 김치와 된장찌개가 먹고 싶어지는 것처럼 일본사람들이 외국에 갔을 때 간절히 생각나는 먹을거리기도 하다. 이 음식들이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일본음식이 아닌 서양음식 행세를 했다. ‘경양식집’은 간단한 서양식 음식을 파는 집이라는 뜻인데 실상은 이들 일본식 서양음식을 파는 곳이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김치볶음밥’같은 한국식 양식(?)과 몇 가지 한국화 된 서양요리로 메뉴 구색을 갖춘 곳들이 70~80년대 ‘○○경양식’이나 ‘☓☓레스토랑’으로 영업을 했다.


  필자의 기억으로 70년대 후반 서울 정동에 ‘이따리아노’라는 고급 경양식집이 있었는데 그 당시 고등학생들도 많이 다닌 걸로 안다. 이따리아노에서 돈가스 등을 썰어서 먹는 학생들이 마치 귀족처럼 보일 정도로 경양식은 그 당시에는 제법 품격(?)이 있었다.

  90년대 이후, 급격한 경제발전과 해외여행 자유화로 내국인이 직접 서구 여러 나라 음식을 접할 기회가 많아졌다. 또 외국인의 내한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최신 현지 콘셉트를 그대로 옮겨놓은 캐주얼 다이닝(causal 스타일의 패밀리 레스토랑이 국내에 여럿 생기자 이들 경양식집들은 점차 퇴조하였다. 경양식집들이 사라지면서 더불어 그 메뉴들도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물론 돈가스나 함박스테이크를 파는 곳이 아직도 더러 있지만 ‘옛날의 그 맛’은 거의 사라졌다.


 

집념으로 개발한 돈가스 소스, 옛 맛 재현해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후레쉬빌>은 예전 맛에 가까운 돈가스(7,000원)와 함박스테이크(8,500원, 햄버그스테이크 hamburg steak)를 비롯, 오므라이스(베이컨 6,500원, 소시지 7,500원)와 카레라이스(6,500원)도 판다. 중년에게는 추억의 맛, 젊은 층에게는 색다른 맛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이 집 주인장인 박호찬(50) 사장이 바로 자신이 청년기에 먹었던 돈가스 맛을 누구보다 또렷이 기억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박 사장은 본래 주얼리 사업을 하였다. 우연한 기회에 외식업에 투자하면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지인의 말만 믿고 2002년에 <후레쉬빌>을 열었다. 그런데 외식업 경영 전반에 대한 자문을 해주기로 했던 이 지인은 박씨가 식당을 열자마자 사망하였다. 이미 식당에 투자한 돈이 적지 않아 식당을 포기할 수도 없었다. 외식업에 문외한이었던 그는 우선 당장 음식 만들어내는 일이 급했다. 서둘러 주방장을 채용했으나 심한 알코올중독자여서 할 수 없이 내보내고 자신이 직접 주방에 들어갔다.

  급한 대로 박씨가 주 메뉴였던 돈가스를 직접 만들어내야 했다. 소스 만드는 일이 가장 중요했지만 어디 물어볼 곳도 도움 받을 곳도 없었다. 식재료 공급처에 무턱대고 제일 비싸고 좋은 것으로 보내달라고 주문하였다. 비싸고 좋은 재료를 섞어서 만들다보면 소스 맛도 좋을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기 때문이다. 소스 재료를 가지고 부인과 둘이서 며칠 밤을 새웠다. 예전에 먹었던 최고의 돈가스 맛을 기억해 내고, 그 맛에 가장 가까운 맛을 찾기 위해 여러 가지 식재료를 조합해가며 소스를 만들어보았다. 사람들이 모르는 사이 2002년에 수많은 돈가스 소스가 세상에 나왔다가 사라졌다. 그중 가장 옛맛에 가깝고 맛이 좋은 소스 몇 가지를 최종 후보로 압축시켰다. ‘위대한 탄생’이나 ‘슈퍼스타 K’보다 더 치열한 경쟁률을 뚫은 소스들이었다.

  매월 한차례씩 음식봉사를 하는 장애인 시설에 약속했던 그달의 메뉴가 마침 돈가스여서 자신들이 개발한 돈가스를 들고 가서 대접했다. 그런데 의외의 반응이 나왔다. 돈가스를 먹어본 40명이 모두 한결같이 ‘맛도 좋고 옛날에 먹어본 그 맛’이라며 평소와는 전혀 다른 반응을 보였다. 자신감을 찾은 박씨는 레시피를 그대로 적용해서 손님에게 내놓았더니 역시 호응이 뜨거웠다. 이후 여러 조리학원을 섭렵하고 틈나는 대로 벤치마킹을 하면서 돈가스의 맛을 더욱 정교하게 다듬었다.

 

 

 

잘 만든 돈가스와 함박스테이크는 스테디셀러

 일본에 여행 갔다가 그 맛을 본 뒤 충격을 받고 처음부터 다시 새롭게 만든 함박스테이크, 우연히 방문한 손님인 한국계 미국인 샌드위치 전문가에게 ‘이게 무슨 샌드위치냐?’며 모욕에 가까운 질책 끝에 재탄생한 ‘샌프란시스코 샌드위치(6,500원) 등이 이젠 이집의 주력 메뉴로 어엿하게 올라가 있다. 이 집 메뉴 하나하나에는 주인장 박씨의 ‘맨땅에 헤딩’식 메뉴 개발 뒷이야기들이 무궁무진하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개발한 메뉴들이 지금은 40여 가지나 된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고, ‘이 많은 메뉴를 어떻게 끌고 가느냐, 몇 가지 메뉴만 특화시키라’는 얘기를 주변에서 많이 한다. 그렇지만 열 손가락 깨물어 아프지 않은 메뉴가 없다. 모두 박씨가 산전수전 겪은 끝에 직접 개발해 내어 애정이 각별한데다, 각 메뉴별로 고객층이 형성되어 있고 매일 오는 직장인 단골손님들이 순환주문을 하기 때문에 사라질 메뉴는 하나도 없어 보인다.

  후레쉬빌 정식(8,000원)을 시키면 훈제 베이컨, 그릴 수제소시지, 계란 프라이와 함께 돈가스가 나온다. 짜지 않고 훈향이 나는 베이컨과 소시지도 좋지만 역시 너무 두껍지 않으면서 튀김옷도 바삭한 돈가스와 소스는 옛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기본 소스 베이스와 토마토케첩을 재료로 사용한 것은 요즘 소스와 다를 것이 없어 보이지만 뒷맛이 예전에 먹었던 돈가스의 소스 맛과 비슷하다. 그러면 이 집의 주 고객이 중장년층일까? 물론 옛맛을 즐기러 찾아오는 중년 고객이 많지만 주 고객은 아니다. 인접한 여러 사무실에서 일하는 젊은 회사원들이 주 고객이다. 점심과 저녁 피크타임에는 조금 기다려야 한다. 이들 직장인들이 몰려오는 것은 가격이 저렴한 양질의 음식을 선호하는 측면도 있지만, 세대를 넘나드는 ‘좋은 맛’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즉, 잘 만든 돈가스와 함박스테이크는 일종의 스테디셀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 집은 식구들끼리 부담 없이 찾아가 입맛대로 주문하기 좋은 가족식당이기도 하다.

 

<위치> : 후레쉬빌(서울 강남구 대치동 999 부림빌딩 1층, 02-501-9797)

 삼성역 1번출구에서 종합운동장 방향. 미래에셋타워끼고 우회전 50m 좌측 건물 1층,

 

 

<출처> 2011. 5. 6 / 조선닷컴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