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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기 및 정보/- 제주도

제주의 ‘진짜 올레’를 압도하는 길, 곽금 올레길

by 혜강(惠江) 2010. 12. 15.

 

제주 곽금올레길

 

‘진짜 올레’를 압도하는 길   

 

‘찾으며’ ‘걸으며’ ‘굴리며’ 마을 아이들이 낸 길 

 

 

글·사진 = 박 경 일 기 자

 

 

 

 

▲ 곽금초등학교 교사와 학생들이 마을길을 이어 만든 ‘곽금올레길’의 10.9㎞구간 중에서 최고의 경치를 자랑하는 해안도보길. 곽지리와 금성리의 빼어난 경치를 모은 ‘곽금8경’의 제3경인 ‘치소기암’이 이곳에 있다.

 

 

# 제주 바닷가 초등학교 아이들, ‘찾으며’ ‘걸으며’ 길을 만들다



제주시 애월읍 곽지리. 제주 올레길 15코스가 외곽을 잠깐 스치고 지나치는 마을이다. 그 마을 한가운데에 곽지해수욕장의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자그마한 초등학교가 있다. 곽지리 마을과 이웃한 금성리 마을의 이름에서 한 자(字)씩을 따서 이름 붙인 곽금초등학교다. 전교생이라고 해야 100명 남짓.

곽금초등학교 아이들은 학교가 파한 뒤에도 따스한 겨울 햇살이 푸근하게 내리쪼이는 교정에서 논다. 사내 아이들 몇몇은 하교 종이 울리자마자 총알처럼 교정으로 뛰어나갔고, 새침한 표정의 6학년 여학생들은 읽을 책을 뽑아들고 학교 도서관으로 향했다. 교무실 한쪽의 난로에는 물주전자가 조용히 끓고 있다. 오후 나절의 학교 풍경이 이렇듯 평화로울 수 없다.

아이들은 처음 보는 외지인 앞에서도 주눅드는 법이 없다. 큰소리로 인사하며 꾸벅 고개부터 숙인다. 표정은 더없이 해맑다. 방과 후에 학원으로 내몰리는 도회지의 아이들과는 전혀 다르다. “너희들은 학원에는 안 가니?” 아이들이 입을 모아 소리친다. “우리는 학원에 안 가는데요.” 한 아이가 자랑스럽게 한 발 앞으로 나섰다. 학원에 안 가도 이번 시험에서 98점을 받았단다. 머리라도 쓰다듬어 달라는 뜻일까. 웃음이 절로 났다.

곽지리와 금성리에는 마을의 명소를 잇는 ‘걷는 길’이 새로 났다. 이름하여 ‘곽금 올레’다. 올레란 이름을 빌리긴 했으되, 사단법인 제주 올레와는 상관없는 길이다. 그 길을 만든 것은 제주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이 평화로운 학교의 아이들과 교사들이다. 고려시대부터 곽지리와 금성리는 탐라의 17현 중의 하나인 곽지현이었다. 번성했던 당시에 주민들은 마을 곳곳에 여덟 곳의 명소를 정해놓고 ‘곽금 8경’이라 불렀다. 아이들과 교사는 올초부터 곽지리 뒤편의 제 1경인 ‘곽악삼태’(郭岳三台·과오름과 주변의 경치)부터 제 8경인 ‘유지부압(柳池浮鴨·버들못에 오리가 떠있는 모습)까지 한 번에 다 돌아볼 수 있도록 마을 길을 붙여 이었다. ‘?≠低發?찾으며) ‘걸으멍’(걸으며) ‘굴리멍’(자전거를 굴리며) 찾아낸 길이다. 학부모는 물론이고 출향 인사들까지도 고증에 나서 고서를 뒤지고 빛바랜 자료를 보태서 길은 지난 7월에 완성됐다.

 

 

 # 가만히 들여다보면 비로소 진면목이 보이는 곽금 올레길

 

 

 

 곽금 올레길을 짚으면서 곽금 8경을 찾아나선 길에는 교사 김혜수(여·26)씨와 김씨의 반 아이들인 곽금초교 5학년생 6명이 동행했다. 검사가 되고 싶다는 대권이와 노란색 나팔바지를 입고서는 ‘늘 누나에게 물려받은 옷만 입는다’며 투덜거리던 야구선수가 꿈인 장원이, 여자경찰이 되고 싶다는 로운이, 패션디자이너의 꿈을 가진 은주와 헤어디자이너가 되고야 말겠다는 유빈이, 그리고 사진작가가 꿈인 수빈이까지 여섯명의 아이들은 연방 재잘거리며 까르르 웃음을 터뜨리며 줄곧 앞서 걸었다.

곽금 올레길은 한 번에 이어져 있으되 곽지리 마을 쪽과 금성리 마을 쪽으로 나누어서 돌아볼 수도 있다. 곽지마을 쪽의 코스는 5.1㎞이고, 금성마을 쪽은 5.8㎞. 길을 다 잇는다면 거리는 10.9㎞. 길이 워낙 순해서 여유 있게 돌아보더라도 서너 시간이면 족하다.

곽금 올레길은 전체적으로 보자면 진짜 ‘올레길’처럼 한눈에 반할 정도의 풍광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곽지해수욕장의 끝부분의 산책로에 있는 제 3경인 치소기암 쪽의 호젓한 산책로만큼은 진짜 올레길을 압도하고도 남았다. 다른 곳들도 찬찬히 들여다보니 제주의 숨겨진 소박한 아름다움이 느껴졌다. 이를테면 곽금 1경인 과오름에서 2경인 문필봉 쪽으로 부드럽게 내려서는 길에서는 마을과 밭 너머로 제주의 곽지해안의 푸른 바다가 주르륵 펼쳐진다. 금성리 마을 쪽에서 8경인 유지부압까지 이어지는 길은 밭의 경계가 되는, 돌담을 끼고 걷는 운치 있는 길이다. 이런 길은 멀찌감치서 보거나 쓱 한번 훑어보는 것만으로는 그 운치를 알아챌 수는 없다. 그 길을 직접 걸어봐야 비로소 진면목을 알아챌 수 있다. 4경인 장사포어(長沙捕魚)에서 5경 남당암수(南堂岩水)를 지나 6경 정자정천(鼎子亭川)으로 이어지는 ‘옥빛바닷길’도 좋고, 7경과 1경이 한꺼번에 있는 과오름의 풍경도 좋다.

아이들은 시키지 않았는데도 곽금 올레길에 버려진 페트병이며 쓰레기들을 주웠다. 말 그대로 아이들이 만들고, 스스로 가꿔나가는 길이었다. 아이들은 제 손으로 서툴게 그린 그림으로 캐릭터를 만들고 8경의 경치를 그려 엽서를 만들 생각이란다.

 


# 부녀회사무실은 살롱, 구멍가게는 갤러리…월평마을 이야기길

 

 

▲ 도보여행자들의 명소가 된 월평마을의 ‘송이슈퍼’.

 


올레길 7코스의 종착점이자 8코스의 출발점이기도 한 서귀포시 월평마을에도 새로운 마을길이 만들어졌다. 이쪽은 ‘길’이라기보다는 ‘탐방코스’라고 하는 것이 적당하겠다. 월평리는 마을 초입이 올레길 코스에 포함돼 있으되, 도보여행자들이 획 지나치고 마는 곳이다. 7코스를 다 걸어온 이들에게는 지쳐서 당도하는 곳이라서 그렇고, 8코스를 걸으려는 이들에게는 걸어야 할 길이 멀어 마음이 바빠서 그렇다.

월평마을은 들어서는 순간부터 독특한 느낌이 든다. 월평마을 입구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것은 올레길을 걷는 이들에게 이정표가 되곤 하는 ‘송이슈퍼’. 자그마한 구멍가게지만, 마을 주민들 사이에서는 ‘월평 갤러리’로 불리는 곳이다. 그림이라고는 담벽에 그려진 벽화 하나가 고작이지만, 가겟집 안의 풍경이 더 정감 있다. 가게 한쪽에는 콩나물이며 두부의 가격이 손글씨로 빼곡히 적혀 있다. 가겟집 아주머니가 자리를 비우면 중학생 아들이 대신 가게를 보곤 하는데, 공산품의 가격이야 대충 안다고 쳐도 콩나물이며 두부 가격은 모를 터이니, 그걸 보고 돈을 받으라고 붙여놨단다. 이렇게 써붙인 가격표가 여느 미술작품보다 더 정감 있다.

월평마을 노인들은 매주 토요일이면 마을을 찾아드는 외지인들을 위해 ‘월평이야기길 탐방’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송이슈퍼 앞에 이야기길 탐방을 안내하는 동네지도가 세워져 있다. 이야기길 탐방은 ‘월평살롱’이라 이름 붙여진 마을 한복판의 부녀회사무실에서 출발한다. 마을 돌담을 돌며 우물이며 이른바 ‘똥돼지’를 키우던 화장실까지 아직까지 번듯하게 남아있는 전통 초가집을 들르고, 말이 끄는 방아가 있었다는 몰벵이터도 둘러본다. 한때 마을 앞에 지천으로 자랐으나 이제는 버스정류소 뒤편에 딱 한 그루만 남아 숨은 듯 서있다는 아왜낭목(아왜나무)도 코스에 포함돼있다. 이어 길은 마을 주민들이 치성을 올리거나 액막이를 위한 굿을 했다는 본향당으로 이어진다.

마을에는 옛 제주사람들의 삶이 진하게 묻어난다. 주민들이 들려주는 체험담은 생생하고, 이야기는 구수하기 이를 데 없다. 앞장선 마을 노인들과 동네 마실을 다니는 맛을 어찌 닳고 닳은 관광지와 비교할 수 있을까.

 

 

곽금올레·월평마을 가는 길

 


 

곽금 올레길은 제주의 서북쪽 곽지리와 금성리 일원에 있다. 곽금초교를 방문하면 간단한 지도를 얻을 수 있다. 8경의 경치를 순서대로 돌려면 제 1경인 과오름을 출발지로 삼아야 한다. 월평마을은 서귀포에 있다. 승용차편으로는 서귀포시 중앙로터리에서 산방산 쪽으로 이어지는 1132번 도로를 타고 10㎞쯤 달리다가 하원교차로에서 약천사·강천 방면으로 좌회전하면 왼족으로 월평마을 초입인 송이슈퍼가 나온다. 월평마을이야기길 탐방의 출발지인 마을회관은 슈퍼 건너편쪽 골목으로 걸어올라가면 된다. 대중교통으로는 서귀포시 중앙로터리 터미널에서 강정·월평행 버스를 타고 월평에서 내리면 된다. 30분쯤 걸린다.

 

 

“곽금 8경’ 옛문헌 뒤지며 아이들과 길 만들었죠”

-김혜수 곽금초교 교사

 

‘갈매기 선생님’. 곽금초교 학생들은 5학년 담임교사인 김혜수(여·26·사진)씨를 이렇게 불렀다. 왜 갈매기일까. 아이들은 “웃을 때 선생님의 눈이 갈매기처럼 보인다”고 합창했다. 앳된 얼굴의 김 교사는 지난 5개월여 동안 학교 아이들과 함께 어울려 ‘곽금 올레길’을 만들어냈다.

김 교사가 곽금 8경을 알게 된 것은 3년 전 첫 곽금초교에 첫 부임하면서. 학교 체육대회며 크고 작은 마을행사를 할 때마다 주민들은 마을 자랑을 하면서 ‘곽금 8경’이야기를 빼놓지 않았다.

“곽금 8경이라면 곽지리와 금성리의 빼어난 경치를 뜻한 것일 텐데, 고증 없이 구전으로 내려오는 이야기라 어디를 8경으로 꼽았는지 궁금하기도 했고…. 그래서 아이들과 마을 8경을 찾아나섰지요.”

애초에 김 교사는 곽금 8경에만 관심이 있었을 뿐 ‘걷는 길’을 만들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아이들에게 애향심을 불어넣어주고, 스스로 마을의 환경을 보전하는 습관을 길러주기 위해 학교연구활동의 주제로 ‘곽금 8경’을 정하고 탐구수업을 진행했다.

고증을 위해 고문헌을 뒤지고, 이웃학교의 고참 교사와 출향 인사들에게도 자문했다. 학부모들에게는 ‘곽금 8경에 대한 자료나 증언이 있으면 보내달라’는 내용의 가정통신문을 보내기도 했다. 그렇게 낡은 서첩과 빛바랜 사진을 뒤지며 곽금 8경을 하나씩 찾아나섰다.

“희미해진 기록 때문에 주민들 사이에서 여기다, 저기다 의견이 갈리기도 해서 선정위원회를 따로 만들어 회의 끝에 8경을 정했어요. 그러곤 이 8경을 한 번에 돌아볼 수 있는 길을 만들자는 데까지 생각이 갔지요. 그 뒤부터는 우리 아이들의 몫입니다.”

김 교사를 비롯한 곽금초교 교사들은 아이들과 함께 길을 더듬으며 길을 찾았다. 걷기를 지루해하는 아이들에게는 학교 측에서 자전거를 구입해 내줬다. 학교뿐만 아니었다. 골목길이며 샛길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학부모들도 팔을 걷어붙였다. 지난 7월 이렇게 이어서 만든 길에 ‘곽금 올레’란 이름을 붙이고 길에 리본을 걸고 표지판을 세웠다.

“사람들이 알음알음 찾아오면서 아이들이 즐거워해요. 시키지 않아도 마을길의 쓰레기를 줍기도 하고…. 자신들이 만든 길을 찾아와주는 게 적잖이 뿌듯했던 모양이에요.”

김 교사는“‘곽금 올레’는 관광객들을 위한 길이기도 하지만, 그에 앞서 아이들을 위한 길”이라며 “사람들을 끌어들이려 만든 길이라기보다는 아이들이 제 사는 마을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알려주기 위한 교육적인 길에 가깝다”고 했다. 그래서 김 교사는 앞으로 그 길을 가꾸면서도 말끔한 편의시설보다는 투박하고 촌스러울지 모르겠지만, 아이들이 제 손으로 직접 그린 그림이며 글을 걸어놓을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출처> 2010. 12. 1 / 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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