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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기 및 정보/- 전라북도

고창 선운사의 5월

by 혜강(惠江) 2010. 5. 18.

 

고창 선운사의 5월

 

선운산에 자리잡은 한국의 명승 고찰

 

·사진 남상학

 

 

 

미당 서정주 시비

 

 

   5월, 날씨마저 화창한 날이다. 고창 나들이에 나선 우리는 선운사로 향했다.  선운사로 들어가는 길가의 한 모퉁이에는 미당(未堂) 서정주(徐廷柱)의 친필로 새겨진 '선운산 동구' 시비가 서있다. 일찍 피는 남도에 비해 늦게 피는 선운산 동백꽃의 특성을 미당은 막걸리집 여자의 육자배기로 돌려놓았다.

 

 

    선운산 골짜기로

    선운산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안 했고

    막걸리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작년 것만 상기도 남았습니다.
    그것도 목이 쉬어 남았습니다.

 

      - 서정주의 '선운사 동구'

 

 

서정주 시 '선운사 동구'



  그 옆에는 ‘선운산가(禪雲山歌)’비가 서 있다. 선운산가는 백제시대에 지어진 작자 미상의 노래인데, 원사(原詞)도 한역사(漢譯詞)도 전하지 않는다. 다만 ≪고려사≫ 권71 속악조(俗樂條)와 ≪증보문헌비고≫ 권106 악고(樂考) 17에 각각 ‘선운산’·‘선운산곡’이라는 제목과 해설이 기록되어 있다. 내용은 

   “長沙人 征役 過期不至 登禪雲山 望而歌之(장사인 정역 과기부지 등선운산 망이가지)”

 

 

선운산가비


  번역하면 “백제 때에 장사(長沙) 사람이 정역(征役 : 일정한 나이 이상에 이른 남녀가 서울에 가서 일에 복역하는 것)에 나갔는데 기한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으므로, 그의 아내가 남편을 사모한 나머지, 선운산에 올라 바라보며 이 노래를 불렀다는 것이다. 해설로 보아 한 여인이 남편을 그리워하는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오늘날 거의 전하지 않는 백제가요의 단편을 보여주는 자료이다. 육자배기를 읊어대는 막걸리집 아낙이나 백제 여인이나 모두 선운산을 배경으로 한다.  

  선운사는 소백산줄기에서 뻗어 나온 노령산맥을 등지고 있는 선운산(일명 도솔산)에 자리 잡고 있다. 호남의 내금강으로 불리는 선운산은 조계종 제24교구 본사이며 김제의 금산사와 더불어 조계종의 도내 2대 본사로 한국의 명승 고찰로 유명하다.

 

 

선운사 대웅보전과 그 안에 모셔진 금동보살좌상(보물 279호)


  신라 진흥왕이 창건하였다는 설과, 577년(위덕왕 24) 백제의 고승 검단(檢旦)이 창건하였다는 설이 있으나, 가장 오래된 조선 후기의 사료에는 모두 진흥왕이 창건하고 그 뒤에 검단선사가 중건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1354년(공민왕 3) 효정(孝正)이 중수하였고, 1472년(성종 3)부터 10여 년 동안 극유(克乳)에 의해 중창되었다.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 때 어실(御室)을 제외한 모든 건물이 소실되었으나, 1840년에 이르기까지 여러 차례에 걸쳐 거듭 건물을 세우고 화상을 조성하는 등의 불사를 계속하였다.

  경내 문화재로는 대웅전(보물 제290호), 금동보살좌상(보물 제279호), 도솔암 내원궁(內院宮)의 지장보살좌상(보물 제280호), 참당암 대웅전(보물 제803호) 등이 있다. 현재 선운사에는 만세루, 대웅전, 육층석탑, 영산전, 팔상전, 산신각, 명부전, 관음전, 향운전 등이 있고, 동운암, 석상암, 참당암, 도솔암 등의 부속 암자를 거느리고 있다.

 

 

참당암 대웅전(보물803호)
도솔암 내왕궁과 지장보살좌상(보물280호)
동불암지 마애여래좌상


  또 선운사 뒤 산속에는 천애의 적벽과 기암괴석과 많은 천연굴이 있다. 또 웅장한 계곡을 따라 낙조대에 오르면 서해의 칠산바다와 변산반도가 일목요연하게 보인다. 주변 경관이 수려해서 사철 수많은 참배객들과 관광인파가 끊이질 않는다.

 

 

용문굴
낙조대



  도솔계곡을 흐르는 서출동류(西出東流)하는 맑은 물에서는 은어가 노닐고 절 뒤편으로는 천연기념물 제184호로 지정된 사시상청(四時常靑)의 동백나무숲이 둘러쳐 있다. 약 5천여 평에 이르는 선운사 동백숲은 수령이 약 500년쯤 된 것으로 매년 3~4월이면 붉고 탐스러운 동백꽃을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선운사를 찾고 있다. (절정기는 4월 초순~중순)

 

   그렇습니다. 꿈은 이루어집니다.

   간절한 마음이 내닿는 곳, 그곳에서

 

 

 

 

  어느 해 겨울방학 중에 국어과 교사들과 함께 연수차 선운사에 와서 선운사 아랫동네에서 하루를 묵은 적이 있다. 다음날 새벽 일정이 새벽길을 걸어 도솔암을 거쳐 낙조대까지 오르는 것이었다. 졸고 <새벽, 도솔암을 오르다>라는 시는 그날에 느꼈던 것을 정리한 것이다.     

 

 

   달빛 어린 미명의 새벽길
   산마루에 아득한 꿈 하나 걸어놓고
   어둠 속에 엎드린 계곡을 오른다.

   선운사 부처님도

   아직은 깊은 잠에 들었는데
   중생의 간절한 소원이

   동백 숲에서 붉은 꽃망울로

   소리 없이 터지고

   겨울 숲 사이로
   찬 서리 털고 일어서는 상큼한 바람이
   앞질러 어둠을 이끌고
   희부연 능선을 넘어간다.

   적막한 골짜기를 흘러넘치는
   저 묵시(默示)의 강물
   어둠 속에 제 모습 드러내는 등걸처럼
   잠든 영혼이 부스스

   잠을 털고 일어설 때

 

   도솔암 주변 숲속에서

   순간 둔탁한 날갯짓으로
   고사목(枯死木)을 후려치며
   허공을 가르며 힘차게 사라지는
   딱따구리 한 마리

 

   광막한 적막 속
   칠성대 가파른 암벽을 타고 내려
   가슴 후려치는 소리, 천지개벽하는 소리
   허공을 찌르는 호곡(號哭)소리
   그 소리가 죄 많은 가슴에 날아들어
   비수처럼 사정없이 꽂힌다.

   새벽 산길
   산천초목을 호령하는 소리에 놀라
   나는 깊이 잠든

   영혼의 눈을 뜬다.

 

     <새벽, 도솔암을 오르다> 전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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