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 소나기마을 황순원문학관
인간의 본성을 아름답게 그려낸 '소나기' 마을을 탐방하다
글·사진 남상학
어린 시골 소년과 도시에서 온 소녀의 순수한 마음과 추억을 아름답게 그려낸 황순원 문학의 백미 <소나기 마을>. 소설 속의 아름다운 장면들을 추억할 수 있도록 꾸며진 황순원문학촌 소나기 마을이 양평군에 마련되었다. 수도권 최고의 데이트 코스로 각광받고 있는 양수리와 북한강카페촌에서 멀지 않은 곳이다. 이곳에는 야외 소나기마을의 주요 장면을 테마로 한 공원과 황순원 선생의 작품 생활을 집대성해 놓은 문학관, 황순원 묘역 등이 들어서 있다.
북한강을 왼쪽으로 끼고 오르다가 문호리에서 지방도 352번을 가다보면 소나기 마을 안내판이 보이므로 쉽게 찾을 수 있다. <소나기마을 황순원문학촌>이라고 쓴 돌비에서 올려다 보면 우측으로 언덕 위에 세운 건물이 보인다. 이것이 문학관이다. 소나기마을에서 가장 먼저 가봐야 할 곳은 역시 문학관이다. 문학관은 황순원 선생의 문학세계와 인생을 고스란히 되살려냈다.
* 문학촌의 구성도(상)와 문학관 배치도 *
계단 위에 세운 문학관으로 들어가면 먼저 주앙홀 우측에 있는 영상실로 안내된다. 이름이 '남폿불 영상실'이다. 남폿불 영상실은 소설 소나기를 영상으로 볼 수 있는 곳이다. 나무 책상과 의자를 들인 옛날 교실 분위기의 영화감상실에서 ‘소나기’ 애니메이션이 상영된다. 소나기를 만난 소년·소녀가 수숫단 안으로 피하는 장면에서는 천장에서 몇방울의 물방울이 떨어진다. 눈으로 소나기를 보고 실제 비를 맞기도 하는 공감각적 체험을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영상실을 나와 중앙 현관 좌측에 있는 제1전시실 ‘작가와의 만남’ 방에는 선생의 육필 원고와 시계·만년필·도장 등 유품들과 미당 서정주 시인이 선생에게 써 보낸 ‘국화 옆에서’ 서예 작품, 복원된 서재 등이 관람객을 맞는다. 모두 90여 점의 유품이 전시됐다. 또 연대별로 작가의 문학적 특성을 보여준다. 여기서 잠시 그의 주요 연보를 살펴보자.
1915. 평안남도 대동 출생하여, 평양에서 숭실학교, 일본 와세다대학 영문과(1936-1939)를 졸업했다.
1931.『동광』에 시 '나의 꿈', '아들아 무서워말라' 등을 발표하여 작품활동을 시작하였으며,
1934.『삼사문학』 동인에 참가하면서 소설 작품을 창작하기 시작,
1940. 단편집 『늪』 간행한 이후 소설 창작에 주력했다.
1946. 서울중고등학교 교사 재직(1955까지)
1957. 경희대학교 문리대학 교수 재직(1982까지)
1982. 경희대학교 명예교수 재직(1992까지) 23년 6개월간 경희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있으면서 많은 문인을 배출했으며,
2000년 9월 14일 타계하였다.
제2전시실인 ‘작품 속으로’ 방에서는 ‘소나기’ ‘학’ 등 명 단편들에 대한 간략한 소개글과 함께 발췌 녹음한 작품 일부분을 들을 수 있다. 황순원 문학을 개괄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작품별 구성을 해 놓았다. 여기서 작가의 작품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초기 단편들인 〈별〉(인문평론, 1941. 2)·〈목넘이 마을의 개〉(개벽, 1948. 3)·〈황노인〉(신천지, 1949. 9)·〈노새〉(문예, 1949. 12)·〈독짓는 늙은이〉(문예, 1950. 4) 등은 빼어난 서정성을 바탕으로 인간의 섬세한 내면세계와 인간 사이의 교감을 그려내는 휴머니즘이 주조를 이룬다. 또한 시적 정취를 자아내는 간결하고 서정적인 문체는 당시 문체미학의 새로운 경지를 이루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8·15해방 후 장편 〈별과 같이 살다〉(여러 잡지에 분재하다가 1950년 단행본으로 펴냄)를 발표한 이후 단편소설보다 장편소설에 주력하여 잇따라 주목할 만한 작품을 내놓았다. 장편소설을 통해 본 그의 문학세계는 크게 2가지로 나뉜다. 〈카인의 후예〉(1954)·〈인간접목〉(1957)·〈나무들 비탈에 서다〉(1960) 등은 6·25전쟁 전후의 사회적 혼란과 인간의 실존적 고뇌를 그려낸 데 반해, 〈일월〉(1962)·〈움직이는 성〉(1972)·〈신들의 주사위〉(1982) 등은 신분적 질곡, 현대사회의 윤리와 전통의 문제, 종교문제 등을 다루어 소설적 주제가 매우 다양해졌다.
이중 〈별과 같이 살다〉는 그의 첫 장편소설이며, 곰녀라는 한 여인의 짧은 생애를 통해 일제강점기의 민족수난사를 그려냈다. 곰녀는 〈카인의 후예〉에 나오는 오작녀와 매우 닮은 인물로, 그의 소설에 나오는 인물의 한 원형을 이룬다. 〈카인의 후예〉는 8·15해방 직후 북한의 토지개혁과정을 통해 인간의 소유욕과 윤리적 패덕에 대한 강한 응징을 보여준 작품이며, 〈나무들 비탈에 서다〉는 전쟁 체험이 낳은 비극적인 인간성 파괴를 다룬 작품으로 장편소설로서의 진가를 유감 없이 발휘한 문제작으로 꼽힌다.」(다음 백과 참조)
그는 조선청년 문학가협회 회원, 한국문학가협회 소설분과 위원장을 역임했으며, 아시아자유문학상(1995), 예술원상(1961), 3.1문화상(1966), 국민훈장 동백장(1970), 대한민국문학상(1983), 제1회 인촌상)(1987)을 수상했다.
중앙홀 우측 영상실 옆에는 문학카페가 마련되어 있다. 가볍게 차를 마시면서 책도 읽고 소설 소나기를 음미해볼 수 있는 멀티미디어 카페다. '마타리꽃 사랑방'이란 이름을 붙여 서정적인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그리고 옥상으로 올라가면 갈밭머리쉼터 등을 마련했다. 야생화 화단 옆으로 조약돌을 깔고 징검다리를 놓아 작품 '소나기'의 내용을 연상하도록 꾸몄다. 이곳에서는 소나기광장 전체를 내려다볼 수 있다.
문학관을 나서면 문학관 좌측에 황순원 부부묘역이다. 그라고 언덕 아래로 소나기광장이 넓게 펼쳐진다. 소나기광장은 '소나기' 속에 등장하는 주요 장면을 담아놓은 정원이다. 넓은 정원에는 잔디밭 위에 수숫단을 세워놓고 정자와 분수를 시설하여 매일 3회(13시, 15시, 17시) 인공 소나기체험도 할 수 있다. 광장 주변을 도는 산책길에는 '사랑의 무대'(관람계단)와 '고백의 길'도 마련했다.
또한 광장을 중심으로 말발굽 모양의 야산 능선을 따라 700m 길이 산책로가 조성돼 있다. 이 산책로는 소설 속 소나기의 장면들을 테마로 구성해 놓았다. 소나기를 피하던 수숫단 우장을 설치해 둔 '수숫단 오솔길'을 지나면 '고향의 숲'과 '해와 달의 숲'이 바로 이어지고 작은 내리막길을 내려서면 야생화로 꾸며놓은 '들꽃마을'이 있다. 여기에는 큰 벤치와 나무탁자까지 있어 잠시 쉬면서 소나기마을을 굽어볼 수 있다.
또 이어지는 길 옆은 '학의 숲'이고, 이어 '송아지 들판'이다. 그리고 산책로의 끝이자 문학관의 맞은편이 되는 곳에는 '너와 나만의 길' 테마구역이 있다. 여기에는 작은 초가정자 앞으로 연못이 있고 연못에는 돌다리와 나무다리가 운치 있게 걸려 있다. 또한 산책로에서 뒤쪽으로 나가면 목넘이 고개를 넘어 소나기마을 뒤쪽 주차장으로 나가게 된다.
* 소나기광장과 산책로 *
* 단편 <소나기> 맛보기*
소년은 개울가에서 소녀를 보자 곧 윤 초시네 증손녀(曾孫女)딸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소녀는 개울에다 손을 잠그고 물장난을 하고 있는 것이다. 서울서는 이런 개울물을 보지 못하기나 한 듯 이.
벌써 며칠째 소녀는,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물장난이었다. 그런데, 어제까지 개울 기슭에서 하 더니, 오늘은 징검다리 한가운데 앉아서 하고 있다.
소년은 개울둑에 앉아 버렸다. 소녀가 비키기를 기다리자는 것이다.
요행 지나가는 사람이 있어, 소녀가 길을 비켜 주었다.
다음 날은 좀 늦게 개울가로 나왔다.
이 날은 소녀가 징검다리 한가운데 앉아 세수를 하고 있었다. 분홍 스웨터 소매를 걷어올린 목덜미가 마냥 희었다.
한참 세수를 하고 나더니, 이번에는 물 속을 빤히 들여다본다. 얼굴이라도 비추어 보는 것이리 라. 갑자기 물을 움켜 낸다. 고기 새끼라도 지나가는 듯.
소녀는 소년이 개울둑에 앉아 있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그냥 날쌔게 물만 움켜 낸다. 그러나, 번번이 허탕이다. 그대로 재미있는 양, 자꾸 물만 움킨다. 어제처럼 개울을 건너는 사람이 있어야 길 을 비킬 모양이다.
그러다가 소녀가 물 속에서 무엇을 하나 집어낸다. 하얀 조약돌이었다. 그리고는 벌떡 일어나 팔짝팔짝 징검다리를 뛰어 건너간다.
다 건너가더니만 홱 이리로 돌아서며, "이 바보."
조약돌이 날아왔다.
소년은 저도 모르게 벌떡 일어섰다.
단발머리를 나풀거리며 소녀가 막 달린다. 갈밭 사잇길로 들어섰다. 뒤에는 청량한 가을 햇살 아래 나는 갈꽃뿐.
이제 저쯤 갈밭머리로 소녀가 나타나리라.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고 생각됐다. 그런데도 소녀는 나타나지 않는다. 발돋움을 했다. 그러고도 상당한 시간이 지났다고 생각됐다.
저 쪽 갈밭머리에 갈꽃이 한 옴큼 움직였다. 소녀가 갈꽃을 안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천천한 걸음이었다. 유난히 맑은 가을 햇살이 소녀의 갈꽃머리에서 반짝거렸다. 소녀 아닌 갈꽃이 들길을 걸어가는 것만 같았다.
소년은 이 갈꽃이 아주 뵈지 않게 되기까지 그대로 서 있었다. 문득, 소녀가 던진 조약돌을 내려다보았다. 물기가 걷혀 있었다. 소년은 조약돌을 집어 주머니에 넣었다.
다음 날부터 좀더 늦게 개울가로 나왔다. 소녀의 그림자가 뵈지 않았다. 다행이었다.
그러나, 이상한 일이었다. 소녀의 그림자가 뵈지 않는 날이 계속될수록 소년의 가슴 한 구석에는 어딘가 허전함이 자리 잡는 것이었다. 주머니 속 조약돌을 주무르는 버릇이 생겼다.
그러한 어떤 날, 소년은 전에 소녀가 앉아 물장난을 하던 징검다리 한가운데에 앉아 보았다. 물 속에 손을 잠갔다. 세수를 하였다. 물 속을 들여다보았다. 검게 탄 얼굴이 그대로 비치었다. 싫었다.
소년은 두 손으로 물 속의 얼굴을 움키었다. 몇 번이고 움키었다. 그러다가 깜짝 놀라 일어나고 말았다. 소녀가 이리로 건너오고 있지 않느냐.
'숨어서 내가 하는 일을 엿보고 있었구나.' 소년은 달리기를 시작했다. 디딤돌을 헛디뎠다. 한 발이 물 속에 빠졌다. 더 달렸다.
몸을 가릴 데가 있어 줬으면 좋겠다. 이 쪽 길에는 갈밭도 없다. 메밀밭이다. 전에 없이 메밀꽃 냄새가 짜릿하게 코를 찌른다고 생각됐다. 미간이 아찔했다. 찝찔한 액체가 입술에 흘러들었다. 코 피였다.
소년은 한 손으로 코피를 훔쳐내면서 그냥 달렸다. 어디선가 '바보, 바보' 하는 소리가 자꾸만 뒤따라오는 것 같았다.
토요일이었다.
개울가에 이르니, 며칠째 보이지 않던 소녀가 건너편 가에 앉아 물장난을 하고 있었다. 모르는 체 징검다리를 건너기 시작했다. 얼마 전에 소녀 앞에서 한 번 실수를 했을 뿐, 여태 큰길 가듯이 건너던 징검다리를 오늘은 조심스럽게 건넌다.
"얘." 못 들은 체했다. 둑 위로 올라섰다.
"얘, 이게 무슨 조개지?"
자기도 모르게 돌아섰다. 소녀의 맑고 검은 눈과 마주쳤다. 얼른 소녀의 손바닥으로 눈을 떨구었다.
"비단조개."
"이름도 참 곱다."
갈림길에 왔다. 여기서 소녀는 아래편으로 한 삼 마장쯤, 소년은 우대로 한 십 리 가까운 길을 가야 한다.
소녀가 걸음을 멈추며, "너, 저 산 너머에 가 본 일 있니?"
벌 끝을 가리켰다.
"없다."
"우리, 가보지 않으련? 시골 오니까 혼자서 심심해 못 견디겠다." "저래 봬도 멀다."
"멀면 얼마나 멀기에? 서울 있을 땐 사뭇 먼 데까지 소풍 갔었다." 소녀의 눈이 금새 '바보, 바보,'할 것만 같았다.
논 사잇길로 들어섰다. 벼 가을걷이하는 곁을 지났다.
허수아비가 서 있었다. 소년이 새끼줄을 흔들었다. 참새가 몇 마리 날아간다. '참, 오늘은 일찍 집으로 돌아가 텃논의 참새를 봐야 할걸.' 하는 생각이 든다.
"야, 재밌다!"
소녀가 허수아비 줄을 잡더니 흔들어 댄다. 허수아비가 자꾸 우쭐거리며 춤을 춘다. 소녀의 왼쪽 볼에 살포시 보조개가 패었다.
저만큼 허수아비가 또 서 있다. 소녀가 그리로 달려간다. 그 뒤를 소년도 달렸다. 오늘 같은 날 은 일찍 집으로 돌아가 집안 일을 도와야 한다는 생각을 잊어버리기라도 하려는 듯이.
소녀의 곁을 스쳐 그냥 달린다. 메뚜기가 따끔따끔 얼굴에 와 부딪친다. 쪽빛으로 한껏 갠 가을 하늘이 소년의 눈앞에서 맴을 돈다. 어지럽다. 저놈의 독수리, 저놈의 독수리, 저놈의 독수리가 맴 을 돌고 있기 때문이다.
돌아다보니, 소녀는 지금 자기가 지나쳐 온 허수아비를 흔들고 있다. 좀 전 허수아비보다 더 우쭐거린다.
논이 끝난 곳에 도랑이 하나 있었다. 소녀가 먼저 뛰어 건넜다.
거기서부터 산밑까지는 밭이었다.
수숫단을 세워 놓은 밭머리를 지났다.
"저게 뭐니?"
"원두막."
"여기 참외, 맛있니?"
"그럼, 참외 맛도 좋지만 수박 맛은 더 좋다."
"하나 먹어 봤으면."
소년이 참외 그루에 심은 무우밭으로 들어가, 무우 두 밑을 뽑아 왔다. 아직 밑이 덜 들어 있었다. 잎을 비틀어 팽개친 후, 소녀에게 한 개 건넨다. 그리고는 이렇게 먹어야 한다는 듯이, 먼저 대강이를 한 입 베물어 낸 다음, 손톱으로 한 돌이 껍질을 벗겨 우쩍 깨문다.
소녀도 따라 했다. 그러나, 세 입도 못 먹고, "아, 맵고 지려."
하며 집어던지고 만다.
"참, 맛없어 못 먹겠다."
소년이 더 멀리 팽개쳐 버렸다.
산이 가까워졌다.
단풍이 눈에 따가웠다. "야아!"
소녀가 산을 향해 달려갔다. 이번은 소년이 뒤따라 달리지 않았다. 그러고도 곧 소녀보다 더 많은 꽃을 꺾었다.
"이게 들국화, 이게 싸리꽃, 이게 도라지꽃......."
"도라지꽃이 이렇게 예쁜 줄은 몰랐네. 난 보랏빛이 좋아! ......그런데, 이 양산 같이 생긴 노란 꽃이 뭐지?"
"마타리꽃."
소녀는 마타리꽃을 양산 받듯이 해 보인다. 약간 상기된 얼굴에 살포시 보조개를 떠올리며. 다시 소년은 꽃 한 옴큼을 꺾어 왔다. 싱싱한 꽃가지만 골라 소녀에게 건넨다.
그러나 소녀는
"하나도 버리지 마라."
산마루께로 올라갔다.
맞은편 골짜기에 오순도순 초가집이 몇 모여 있었다.
누가 말할 것도 아닌데, 바위에 나란히 걸터앉았다. 유달리 주위가 조용해진 것 같았다. 따가운 가을 햇살만이 말라가는 풀 냄새를 퍼뜨리고 있었다.
"저건 또 무슨 꽃이지?"
적잖이 비탈진 곳에 칡덩굴이 엉키어 꽃을 달고 있었다.
"꼭 등꽃 같네. 서울 우리 학교에 큰 등나무가 있었단다. 저 꽃 을 보니까 등나무 밑에서 놀 던 동무들 생각이 난다."
소녀가 조용히 일어나 비탈진 곳으로 간다. 꽃송이가 많이 달린 줄기를 잡고 끊기 시작한다. 좀처럼 끊어지지 않는다. 안간힘을 쓰다가 그만 미끄러지고 만다. 칡덩굴을 그러쥐었다.
소년이 놀라 달려갔다. 소녀가 손을 내밀었다. 손을 잡아 이끌어 올리며, 소년은 제가 꺾어다 줄 것을 잘못했다고 뉘우친다. 소녀의 오른쪽 무릎에 핏방울이 내맺혔다. 소년은 저도 모르게 생채기 에 입술을 가져다 대고 빨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홱 일어나 저 쪽으로 달려간다.
좀 만에 숨이 차 돌아온 소년은
"이걸 바르면 낫는다."
송진을 생채기에다 문질러 바르고는 그 달음으로 칡덩굴 있는 데로 내려가, 꽃 많이 달린 몇 줄기를 이빨로 끊어 가지고 올라온다. 그리고는, "저기 송아지가 있다. 그리 가 보자."
누렁송아지였다. 아직 코뚜레도 꿰지 않았다.
소년이 고삐를 바투 잡아 쥐고 등을 긁어 주는 체 훌쩍 올라탔다. 송아지가 껑충거리며 돌아간다.
소녀의 흰 얼굴이, 분홍 스웨터가, 남색 스커트가, 안고 있는 꽃과 함께 범벅이 된다. 모두가 하 나의 큰 꽃묶음 같다. 어지럽다. 그러나, 내리지 않으리라. 자랑스러웠다. 이것만은 소녀가 흉내 내지 못할, 자기 혼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인 것이다.
"너희, 예서 뭣들 하느냐?"
농부(農夫)하나가 억새풀 사이로 올라왔다.
송아지 등에서 뛰어내렸다. 어린 송아지를 타서 허리가 상하면 어쩌느냐고 꾸지람을 들을 것만 같다.
그런데, 나룻이 긴 농부는 소녀 편을 한 번 훑어보고는 그저 송아지 고삐를 풀어내면서,
"어서들 집으로 가거라. 소나기가 올라."
참, 먹장구름 한 장이 머리 위에 와 있다. 갑자기 사면이 소란스러워진 것 같다. 바람이 우수수 소리를 내며 지나간다. 삽시간에 주위가 보랏빛으로 변했다.
산을 내려오는데, 떡갈나무 잎에서 빗방울 듣는 소리가 난다. 굵은 빗방울이었다. 목덜미가 선뜻 선뜻했다. 그러자, 대번에 눈앞을 가로막는 빗줄기.
비안개 속에 원두막이 보였다. 그리로 가 비를 그을 수밖에.
그러나, 원두막은 기둥이 기울고 지붕도 갈래갈래 찢어져 있었다. 그런 대로 비가 덜 새는 곳을 가려 소녀를 들어서게 했다.
소녀의 입술이 파아랗게 질렸다. 어깨를 자꾸 떨었다.
무명 겹저고리를 벗어 소녀의 어깨를 싸 주었다. 소녀는 비에 젖은 눈을 들어 한 번 쳐다보았을 뿐, 소년이 하는 대로 잠자코 있었다. 그리고는, 안고 온 꽃묶음 속에서 가지가 꺾이고 꽃이 일그러진 송이를 골라 발 밑에 버린다. 소녀가 들어선 곳도 비가 새기 시작했다. 더 거기서 비를 그을 수 없었다.
밖을 내다보던 소년이 무엇을 생각했는지 수수밭 쪽으로 달려간다. 세워 놓은 수숫단 속을 비집어 보더니, 옆의 수숫단을 날라다 덧세운다. 다시 속을 비집어 본다. 그리고는 이쪽을 향해 손짓을 한다.
수숫단 속은 비는 안 새었다. 그저 어둡고 좁은 게 안 됐다. 앞에 나앉은 소년은 그냥 비를 맞아 야만 했다. 그런 소년의 어깨에서 김이 올랐다.
소녀가 속삭이듯이, 이리 들어와 앉으라고 했다. 괜찮다고 했다. 소녀가 다시, 들어와 앉으라고 했다. 할 수 없이 뒷걸음질을 쳤다. 그 바람에, 소녀가 안고 있는 꽃묶음이 망그러졌다. 그러나, 소녀는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비에 젖은 소년의 몸 내음새가 확 코에 끼얹혀졌다. 그러나,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도리어 소년의 몸기운으로 해서 떨리던 몸이 적이 누그러지는 느낌이었다.
소란하던 수숫잎 소리가 뚝 그쳤다. 밖이 멀개졌다.
수숫단 속을 벗어 나왔다. 멀지 않은 앞쪽에 햇빛이 눈부시게 내리붓고 있었다. 도랑 있는 곳까지와 보니, 엄청나게 물이 불어 있었다. 빛마저 제법 붉은 흙탕물이었다. 뛰어 건널 수가 없었다.
소년이 등을 돌려 댔다. 소녀가 순순히 업히었다. 걷어올린 소년의 잠방이까지 물이 올라왔다.
소녀는 '어머나'소리를 지르며 소년의 목을 끌어안았다.
개울가에 다다르기 전에, 가을 하늘이 언제 그랬는가 싶게 구름 한 점 없이 쪽빛으로 개어 있었다.
그 뒤로 소녀의 모습은 뵈지 않았다. 매일같이 개울가로 달려와 봐도 뵈지 않았다.
학교에서 쉬는 시간에 운동장을 살피기도 했다. 남 몰래 5학년 여자 반을 엿보기도 했다. 그러나, 뵈지 않았다.
그 날도 소년은 주머니 속 흰 조약돌만 만지작거리며 개울가로 나왔다. 그랬더니, 이 쪽 개울둑에 소녀가 앉아 있는 게 아닌가.
소년은 가슴부터 두근거렸다.
"그 동안 앓았다."
어쩐지 소녀의 얼굴이 해쓱해져 있었다.
"그 날, 소나기 맞은 탓 아냐?"
소녀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었다.
"인제 다 났냐?"
"아직도......."
"그럼, 누워 있어야지."
"하도 갑갑해서 나왔다. ......참, 그 날 재밌었어....... 그런데 그 날 어디서 이런 물이 들었는지 잘 지지 않는다."
소녀가 분홍 스웨터 앞자락을 내려다본다. 거기에 검붉은 진흙물 같은 게 들어 있었다.
소녀가 가만히 보조개를 떠올리며, "그래 이게 무슨 물 같니?"
소년은 스웨터 앞자락만 바라보고 있었다.
"내, 생각해 냈다. 그 날, 도랑을 건너면서 내가 업힌 일이 있지? 그 때, 네 등에서 옮은 물이다."
소년은 얼굴이 확 달아오름을 느꼈다.
갈림길에서 소녀는
"저, 오늘 아침에 우리 집에서 대추를 땄다. 낼 제사 지내려고......." 대추 한 줌을 내준다. 소년은 주춤한다.
"맛봐라. 우리 증조(曾祖)할아버지가 심었다는데, 아주 달다." 소년은 두 손을 오그려 내밀며, "참, 알도 굵다!"
"그리고 저, 우리 이번에 제사 지내고 나서 좀 있다. 집을 내주 게 됐다." 소년은 소녀네가 이사해 오기 전에 벌써 어른들의 이야기를 들어서, 윤 초시 손자(孫子)가 서울 서 사업에 실패해 가지고 고향에 돌아오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것이 이번에 는 고향집마저 남의 손에 넘기게 된 모양이었다.
"왜 그런지 난 이사 가는 게 싫어졌다. 어른들이 하는 일이니 어쩔 수 없지만......." 전에 없이, 소녀의 까만 눈에 쓸쓸한 빛이 떠돌았다.
소녀와 헤어져 돌아오는 길에, 소년은 혼잣속으로, 소녀가 이사를 간다는 말을 수없이 되뇌어 보았다. 무어 그리 안타까울 것도 서러울 것도 없었다. 그렇건만, 소년은 지금 자기가 씹고 있는 대추알의 단맛을 모르고 있었다.
이 날 밤, 소년은 몰래 덕쇠 할아버지네 호두밭으로 갔다.
낯에 봐 두었던 나무로 올라갔다. 그리고, 봐 두었던 가지를 향해 작대기를 내리쳤다. 호두송이 떨어지는 소리가 별나게 크게 들렸다. 가슴이 선뜩했다. 그러나 다음 순간, 굵은 호두야 많이 떨어 져라, 많이 떨어져라, 저도 모를 힘에 이끌려 마구 작대기를 내리 치는 것이었다.
돌아오는 길에는 열 이틀 달이 지우는 그늘만 골라 디뎠다. 그늘의 고마움을 처음 느꼈다.
불룩한 주머니를 어루만졌다. 호두송이를 맨손으로 깠다가는 옴이 오르기 쉽다는 말 같은 건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저 근동에서 제일 가는 이 덕쇠 할아버지네 호두를 어서 소녀에게 맛보여야 한 다는 생각만이 앞섰다.
그러다,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소녀더러 병이 좀 낫거들랑 이사 가기 전에 한 번 개울가로 나와 달라는 말을 못해 둔 것이었다. 바보 같은 것, 바보 같은 것.
이튿날, 소년이 학교에서 돌아오니, 아버지가 나들이옷으로 갈아입고 닭 한 마리를 안고 있었다.
어디 가시느냐고 물었다.
그 말에도 대꾸도 없이, 아버지는 안고 있는 닭의 무게를 겨냥해 보면서, "이만하면 될까?"
어머니가 망태기를 내주며, "벌써 며칠째 '걀걀'하고 알 날 자리를 보던데요. 크진 않아도 살은 쪘을 거여요." 소년이 이번에는 어머니한테 아버지가 어디 가시느냐고 물어 보았다.
"저, 서당골 윤초시 댁에 가신다. 제삿상에라도 놓으시라고......." "그럼, 큰놈으로 하나 가져가지. 저 얼룩수탉으로......." 이 말에, 아버지는 허허 웃고 나서, "임마, 그래도 이게 실속이 있다."
소년은 공연히 열적어, 책보를 집어던지고는 외양간으로가, 쇠잔등을 한 번 철썩 갈겼다. 쇠파리라도 잡는 체.
개울물은 날로 여물어 갔다.
소년은 갈림길에서 아래쪽으로 가 보았다. 갈밭머리에서 바라보는 서당골 마을은 쪽빛 하늘 아래 한결 가까워 보였다.
어른들의 말이, 내일 소녀네가 양평읍으로 이사 간다는 것이었다. 거기 가서는 조그마한 가겟방을 보게 되리라는 것이었다.
소년은 저도 모르게 주머니 속 호두알을 만지작거리며, 한 손으로는 수없이 갈꽃을 휘어 꺾고 있었다.
그 날 밤, 소년은 자리에 누워서도 같은 생각뿐이었다. 내일 소녀네가 이사하는 걸 가보나 어쩌나. 가면 소녀를 보게 될까 어떨까.
그러다가 까무룩 잠이 들었는가 하는데, "허, 참 세상일도......."
마을 갔던 아버지가 언제 돌아왔는지, "윤 초시 댁도 말이 아니야, 그 많던 전답을 다 팔아 버리고, 대대로 살아오던 집마저 남의 손에 넘기더니, 또 악상까지 당하는 걸 보면......." 남폿불 밑에서 바느질감을 안고 있던 어머니가, "증손(曾孫)이라곤 계집애 그 애 하나뿐이었지요?"
"그렇지, 사내 애 둘 있던 건 어려서 잃어버리고......." "어쩌면 그렇게 자식복이 없을까."
"글쎄 말이지. 이번 앤 꽤 여러 날 앓는 걸 약도 변변히 못써 봤다더군. 지금 같아서 윤 초 시네도 대가 끊긴 셈이지.......그런데 참, 이번 계집앤 어린것이 여간 잔망스럽지가 않아. 글 쎄, 죽기 전에 이런 말을 했다지 않아? 자기가 죽거든 자기 입던 옷을 꼭 그대로 입혀서 묻어 달라고......."
- 1953년 5월 / <신문학> 4집에 발표
황순원의 대표작인 이 작품은 전원적, 향토적인 배경 위에 서울에서 온 윤초시네 소녀에 대한 천진난만한 우정(애정)을 펼쳐놓은 작품이다. 마침내 소녀는 죽고, 구김 없는 소년의 마음을 통해 더욱 선명하게 비치는 인생의 바애가 가슴을 아프게 한다. 이 작품은 간결하고도 함축성 있는 문체(문장)로 인간의 본성을 아름답게 그려낸 작품이다.
문학관 바로 옆에는 황순원과 그의 아내 양정길의 합장묘가 있다. 2000년 9월 14일 타계한 그의 묘에 평양 숭의동창회장을 역임한 양정길 여사를 합장으로 모셨다. 학창시절 연애로 맺어진 황순원 부부는 금슬이 좋았던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황순원은 시인으로 출발해 단편 작가를 거쳐 장편 작가로 나아가는 문학적 궤적을 보인, 해방 이후 이 땅의 대표적인 작가 가운데 한 사람이다. 황순원 문학 세계의 특성은 시적 서정성, 언어의 조탁, 고품격의 간결한 문체, 그리고 인간 존재에 대한 철학적 성찰로 집약할 수 있다.
초기 작품에서는 신변적 소재를 주로 다루었는데, 토속 정서가 두드러진 것이 특징이다. 중기로 넘어오면 수난과 격변의 시대 현실이 작품의 배경으로 자주 깔리면서 격동하는 역사와 현실이 개인의 운명에 어떻게 작용해 삶의 무늬를 만드는가 하는 문제가 탐색된다.
후기의 장편 소설 시대에는 중기에 두드러지게 나타나던 시대 현실이라는 외적 요소가 희미해지며 인간 존재의 근원적 의미에 대한 탐색으로 회귀한다. 황순원은 일제 강점기, 전쟁과 분단, 개발 독재 시대를 거치는 동안 한 번도 품격을 훼손한 적이 없는 작가다. 그는 이처럼 올곧은 삶을 유지하며 고집스럽게 ‘인간성 옹호’ 또는 ‘인간 중심주의’의 문학 세계를 추구함으로써 후학들로부터 “작가 정신의 사표(師表)”라는 말을 듣기도 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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