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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 및 정보/- 멕시코, 쿠바

사탕수수 농장, 한인 애니깽 감시한 44m 망루에서 내려다 보다.

by 혜강(惠江) 2009. 11. 8.

 

쿠바 사탕수수 농장

 

한인 애니깽 감시한 44m 망루에서 내려다 보다

 

 

류수한

 

 

 

▲특유의 괭음과 연기를 내뿜으며 출발.

 

 

뜨리니다드의 증기기관차

 

 

  과거 농경사회에서 비오는 날 농부들은 무엇을 했을까? 오늘 갑자기 그게 궁금해졌다. 이곳 뜨리니나드에서 증기기관차를 타고 19세기에 대규모 사탕수수 농장이었던 잉헤니오스 계곡(Valle de los Ingenios)으로 가기 위해 숙소를 나서는데 갑자기 비가 많이 오는 것이었다. 아마도 그 당시의 사탕수수 농장의 노예들은 오늘 같은 이런 비를 기다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비가오면 작업을 못하니 쉬는 날이 되지 않을까 해서.

 

  잉헤니오스 계곡은 뜨리니나드 동쪽 8Km 지점에 있는 옛 사탕수수 농장으로, 19세기말 대규모 사탕수수가 재배되던 시절에는 50여개의 농장이 있었고 흑인 노예가 1만명을 넘었다고 한다. 지금은 독립전쟁과 사회주의 혁명으로 대부분 농장이 사라진 상태이지만 아직 그 당시의 사탕수수 농장 대부호가 사용하던 저택과 높이 44m의 노예 감시 망루는 여전히 남아있어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명소가 됐고 1988년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으로 지정됐다.

 

 

 

 

목가적인 시골 풍경.

 

 

 

  잉헤니오스 계곡으로 여행 가는 가장 큰 매력 중 하나는 지금은 전세계적으로 그 흔적을 찾아 보기 어려운 증기기관차가 있다는 것이다. 뜨리니나드에서 계곡까지 가는 이 증기기관차는 매캐한 검은 연기를 내뿜으며 시속 30여 Km로 달린다. 이 증기기관차는 많은 관광객들에게 흥미거리를 제공해 주는데, 20세기초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만들어진 기차로 실제로 과거에는 사탕수수 운반을 위해 산티아고 데 쿠바에서 아바나까지 운행했던 열차이기도 하다.

 

 

 

 

▲쉼터

 

 

 

  오전 9시30분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가운데 특유의 굉음을 내며 뜨리니나드 역을 출발한 열차는 천천히 시내를 벗어나 목가적인 풍경의 쿠바 시골마을을 한 폭의 수채화 그리듯이 천천히 또 천천히 달린다. 열차 안의 사람들도 누구 하나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이 없다. 기차 안에서 보이는 전원의 풍경은 마치 시간이 정지되어버린 듯한 느낌이 든다. 기차를 보고 반갑다고 손을 흔드는 시골 아이들, 그리고 머리를 땅에 박고 한없이 풀만 뜯고 있는 소들 모두.

 

  그런데 이 기차는 창문이 없어서 증기기관차의 매캐한 연기가 그대로 승객들의 코로 들어온다. 거기다 오늘따라 내리는 비까지 그렇게 한 2시간여를 달린 열차는 드디어 목적지인 마나까 이스나가(Manaca Iznaga)에 도착했다. 1759년 쿠바의 대지주였던 페드로 이스나가가 세운 사탕수수 대농장으로 지금은 주변 초지 가운데 그 당시 이스나가가 살던 대저택과 높이 44m망루가 남아있으며, 그 저택은 지금 관광객들을 위한 식당 및 기념품 상점으로 사용되고 있다. 

 

 

 

44m 망루에서 본 계곡 모습. 밑에 대저택도 보인다.

 

 

 

  기차가 이곳에 오면서 아주 멀리서도 보였던 높이 44m의 망루에 올라가 봤다. 44m 정상까지 올라가는 계단이 어찌나 가파르던지 숨이 차 왔지만 높이 올라갈수록 눈앞에 보이는 전망은 한층 더 아름다워졌다. 이곳 정상에서 사탕수수 노예들을 감시하였다고 생각하니 허리가 휘도록 노역에 시달렸을 그 당시 노예들의 애환이 눈에 보이는 듯 했다. 

 

 

 

▲ 44m 망루에서 본 계곡 모습. 밑에 대저택도 보인다.

 

 

망루에서 본 열차의 모습

 

 

 

   그러면서 아침에 생각한 비가 오는 오늘 같은 날이라도 좀 쉴 수 있어서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는데 어느덧 비는 그치고 날씨가 맑고 화창하게 변하는 것이다. 하기야 이곳 쿠바의 날씨는 우기에도 잠깐 소나기가 내리고 곧 다시 맑아지니 그 당시에도 전혀 도움은 안되었겠구나 생각을 하며 혼자 쓴웃음을 짓는데 옆에 있던 백인 여행객이 자기에게 웃는 줄 알고 같이 응수해 준다.

 

 

 

열차를 보고 좋아하는 시골 어린이.

 

 

한낮의 더위를 피해 휴식을 취하는 농부.

 

 

 

  일전에 쿠바에 관한 책을 읽은 적이 있는데, 이곳 쿠바에도 한인 애니깽 2세 분이 아직 생존해 있다고 했다. 팔순이 넘으신 한국 이름으로 임은조 옹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100여년전 대개의 애니깽들은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와 사탕수수 노역을 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혹시 그분의 부모님께서도 그러한 이주 노역을 하시지 않았을까? 그리고 어쩌다가 이곳 쿠바까지 그 옛날에 오셨을까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어제도 언급했지만 우리는 지금 참 좋은 시대에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 돌아가는 도중 땔감이 부족해서 보충.

 

 

▲ 다시 땔감을 가득히.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가는 기차는 올 때 보다 더 천천히 달리다가(자전거 보다 느린 것 같다) 중간에 땔감 연료를 넣는다고(진짜 나무 가지를 화로에 넣는다) 몇 차례 쉬고, 다시 달리고 철로 다리를 지나기 위해서 또 한참을 정차하고. 하지만 누구 하나 그냥 시간을 흘려보낸다고 보채거나 답답해 하지 않는 여유 있는 과거로의 시간 여행을 계속했다.

 

 

 

<출처> 2009. 7. 20 / 조선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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