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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 및 정보/- 멕시코, 쿠바

쿠바 까마구웨이, 또 하나의 전통 음악 뜨로바(Trova)

by 혜강(惠江) 2009. 11. 9.

 

쿠바  까마구웨이(Camaguey)

 

또 하나의 전통 음악 뜨로바(Trova)

 

 

 

▲ 어제 아쉬운 패배를 한 시에고 데 아빌라 팀 선수들이 호텔 여직원들과 기념 촬영을 해 달라고 해서 카메라를 들었다.

 

 

 

   오전에 잠시 외출을 하고 돌아 오다가 6층 복도에서 시에고 데 아빌라 팀 선수들을 또 만났다. 선수들이 호텔 여 종업원들과 농담을 나누며 쉬고 있다가 나를 보더니 순간 달려와 자기들 사진을 찍어 달라고 성화다.

  어제의 아쉬운 패배로 조금 의기소침해 있을 거라 생각한 필자의 예상은 완전 빗나갔다. ‘참 선수들 성격이 낙천적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호텔 여종업원과 격의 없이 어울려 농담을 나눌 정도로 순수하고 여유가 있다는 것이 부럽기도 했다.

 

  산타클라라의 일정을 마무리하고 산타클라라에서 5시간 정도 떨어진 까마구웨이란 도시에 왔다. 관광객들이 잘 찾지 않는 이 도시를 필자가 찾은 이유는 이곳에 쿠바에서도 유명한 트로바 음악을 공연하는 까사가 있기 때문이다.

 

  인구 30만명의 쿠바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인 이 곳 까마구웨이의 시내 센트로는 현지인들만 보일 뿐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였다. 비가 자주 오는 지역이었다. 오후 내내 비가 오더니 밤이 되면서 맹렬했던 날씨가 잠시 주춤하고 있었다.

 

 

▲ 까마구웨이 시내 센트로 마세오(Maceo) 광장 주변 모습과 센트로 중심 이그나시오 아그라몬떼 공원

 

 

 

  그런데 이 도시는 정말 관광객들이 좀처럼 찾지 않는 도시인 것 같다. 호텔 투숙객이 필자 혼자 인 것 같고, 거리에도 현지인 외에 관광객 같은 사람들은 한 명도 보이지 않으니….

 

 

 

▲ 센트로의 중심인데 공원 주변은 초저녁인데 인적이 드물고 어둡다.

 

 

 

  저녁 식사 후 뜨로바로 유명한 <까사 데 라 뜨로바 빠뜨리시오 바야가스(Casa de la Trova Patricio Ballagas)>에 가려고 그 앞의 이그나시오 아그라몬떼 공원(Parque Ignacio Agramonte) 앞 벤치에서 쉬고 있는데, 어떤 흑인 노인이 다가와 자기가 이브라힘 페레르의 ‘쁘리모’라고 한다.

 

 

 

         

▲ 자신이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의 이미 고인이 된 멤버 이브라힘페레르의 사촌동생이라고 소개한 노인

 

 

 

   ‘쁘리모’이면 사촌동생이라는 얘기인데, ‘사실이냐?’ 물으니 ‘맞다’ 하며 오늘 밤에 ‘까사 데 라 뜨로바 빠뜨리시오 바야가스’에서 연주가 있으니 꼭 오라고 한다.  안 그래도 거기 가려고 이 도시에 오긴 왔는데, 가만 보니 이미 고인이 된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의 멤버 이브라힘 페레르와 비슷하게 생긴 것 같은데….(사실 우리가 흑인을 볼 때에는 그 사람이 그 사람 같아 보여서 헷갈린다)

  이 도시 가장 중심가인 이 이그나시오 아그라몬떼 공원은 아직 저녁시간인데도 인적이 드물어 마치 심야시간 같은 느낌이 든다. 도시 분위기가 너무 차분한 느낌이어서 오히려 부담이 될 정도다.

 

 

 

▲ ‘까사 데 라 뜨로바 빠뜨리시오 발라가스‘ 입구는 유서깊은 클럽 답지 않게 아주 평범하다.

 

 

 

  이윽고 시간이 되어서 까사 데 라 뜨로바 빠뜨리시오 바야가스에 갔다. 라이브 연주는 밤 10시부터 시작해서 12시까지 한다고 한다.  일전에도 언급했지만 한국의 통행금지 시대처럼 밤 7~8시만 되면 온 동네가 조용해지고 인적이 드물어지는 쿠바의 지방도시에 그래도 라이브 음악을 연주하는 주점들은 늦은 밤까지 하는 걸 보니, 사회주의여서 다른 것은 통제해도 음악만은 통제하기 쉽지 않은 것인가 보다. 도시 주위가 온통 컴컴해도 이 클럽만이 환하게 불을 밝히고 있으니.

  클럽의 내부는 오래된 역사와 전통에 걸맞게 그 동안 이 클럽을 거쳐간 뮤지션들의 사진과 이름, 그리고 오래된 악기와 축음기 등 이 보기 좋게 전시되어 있었는데, 언뜻 보기에도 상당히 호기심이 가는 실내 구조인 것 같다.

 

 

 

               

▲ 고풍스러운 오래된 악기가 전시되어 있다 (위). 오랜 기간

이 클럽을 거쳐간 뮤지션들의 사진들이 정리되어 있다. (아래)

 

 

 

  모히또 한잔을 주문하고 기다리고 있으니 연세가 지긋한 어르신 악단들로 구성된 뜨로바 악단이 무대 위로 올라왔다. 이 뜨로바 라이브의 특징은 오래된 음악답게 사회자가 먼저 등장해서 악단멤버와 곡목까지 소개하고 박수가 나오면 그 때부터 라이브가 시작된다.

  정식 라이브 쇼의 원칙을 고수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대개의 쿠바 음악이 아프로 쿠바노 특유의 리듬에 바탕을 둔 댄스용 음악이 대세를 이루는 데 비해 이 뜨로바 음악은 노래하는 음유시인처럼 어떠한 메시지를 어쿠스틱한 악기 반주에 맞춰서 노래를 부르고 읊조리기도 한다. 우리나라 음악으로 비유하자면 70년대 포크송과 트로트가 적절히 접목된 그런 음악과 비슷하다고 해야 할 것 같다.

  가장 큰 특징은 대다수의 쿠바 음악은 흑인이나 혼혈 계통이 많이 부르는 것에 비해서 이 음악은 백인 위주 음악인 것 같다. 그리고 음악 자체도 리듬 보다는 멜로디 위주로 연주되는 등 이제까지 들어 왔던 쿠바 음악과는 좀 거리가 멀어서 독특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연배가 지긋한 뮤지션들이 올라와 라이브를 시작했다.

 

 

 

  연세가 지긋한 뜨로바 가수들이 차례로 올라와서 서로 저마다 유서 깊은 노래들을 부르곤 하며 한층 분위기가 올라가는 순간 어디선가 노인 부부가 앞으로 나와 춤을 추기도 한다. 그런데 사실 쿠바 어느 곳을 가던 어떤 음악 장르를 연주하는 곳을 가던 쿠바의 악단들은 한 가지 장르의 음악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할 수 있는 모든 음악을 다 하는 것 같다.

  지금 연주하는 곡들도 보면 천천히 뜨로바 음악을 읊조리는가 하면 갑자기 경쾌한 맘보(Mambo) 곡을 연주하기도 하고. 공연 자체가 다양한 음악을 보여주는 버라이어티 개념인 것 같다.

  어느덧 1시간여가 흘러 라이브 공연은 끝이 날 무렵 저녁때 자기가 이브라힘 페레르 동생이라고 했던 노인이 다가와 CD를 사라고 강요한다. 알고 보니 그는 이 악단의 궂은 일을 도맡아 하는 매니저였다. 악기 세팅부터 라이브 한 타임 끝나면 CD를 판매하러 돌아다니는 등. 그가 만약 진짜 이브라힘 페레르의 사촌동생이고 이미 고인이 된 이브라힘 페레르가 하늘에서 이 모습을 보고 있다면 상당히 가슴 아프게 생각할 것 같다.

 

 

 

경쟁이 없는 사회 사회주의 국가의 현실

 

 

  까마구웨이는 쿠바의 국민시인인 니콜라스 기옌이 태어난 곳으로 관광객들이 많이 찾지는 않지만 2월과 8월에 ‘호르나 다스 데 라 쿨뚜라 까마구웨이(Jornadas de la Cultura Camaguey)’와 ‘카니발’을 개최하는 등 도시 홍보에도 적극적이다. 시내 센트로에는 관광객들이 호기심을 가질 만한 식민시대의 건물들이 몇군데 남아 있으며 센트로를 조금 벗어나면 예쁘게 채색된 멋진 건물들이 이목을 끈다.

 

 

 

 ▲ 빨래줄에 걸린 빨주노초파남보 총천연색 옷가지들이 인상적이다.(좌) 사람 들로 북적이는 시내 중심가(우)

 

 

 

  그러나 관광객들에 대한 서비스와 시설을 점수로 따지자면 낙제 수준이다. 자본주의적 경쟁이 없기 때문인 듯 하다. 이곳 쿠바는 사회주의 국가의 전형답게 정부 통제하에 완벽한 고용 창출이 이루어진다. 우리네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특이한 일을 하는 직업들을 보게 되는 것은 물론이고, 각 업체나 업소간의 경쟁이라는 것 자체를 전혀 의식하지 않는 듯한 모습도 만나게 된다. 오직 관광객들을 유치하는 민박집만 치열한 경쟁이 있을 뿐.

 

 

 

 

▲ 트라바자토레스 광장에서 본 인상적인 교회와 건축물들

 

 

 

  필자는 이곳 까마구웨이의 플라사 호텔(Hotel Plaza)에서 머물렀다. 숙박 중 객실을 옮겼는데 새로 옮긴 객실 침대의 커버를 젖혀 보니 바퀴벌레가 3~4마리가 침대 시트위를 기어가고 있었다. 깜짝 놀라 호텔 프론트 데스크에 상황 설명을 하고 방을 바꿔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사람을 보내겠다는 말만 할 뿐 1시간이 지나도록 아무도 오지 않았다. 화가 나서 1층에 내려가서 다시 클레임을 해도 같은 말을 반복할 뿐, 어느 직원 하나 움직이려 들지 않았다.

 

  결국은 고함을 치며 한바탕 난리를 일으킨 다음에야 방을 바꿀 수 있었다. 규모가 큰 것은 아니지만 명색이 호텔이라는 곳에서 객실 시트 위에 바퀴벌레가 나오다니. 그러고도 누구 하나 조치를 취하는 사람도 없고, 사과하는 사람은 없었다.

 

  차후 자기 호텔에 대한 악소문이 두려워 사과와 보상을 하는 자본주의식 해결책은 이곳 쿠바에서는 상상할 수 없다. 주변에 경쟁을 벌이는 호텔도 없고 직원들도 일을 열심히 해봐야 자기에게 좋은 것도 없기에 이런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지는 것 같다.

 

 

 

 ▲ 시가지에 있는 멋진 부조물과 벽화, 그리고 시내 중심가의 소레다드 교회

 

 

 

  경쟁의 원리가 없는 공산주의 국가를 여행하다 어이없는 일을 당한 것은 비단 이번 뿐 아니었다. 식당에 가서나 음식을 먹을 때 음식에서 사람이 먹을 수 없는 이물질이 나온 경우가 종종 있었다. 종업원을 불러 “이게 뭐냐”고 물어도, 사과는 커녕 ‘뭐 이런 것 가지고 그러느냐? 그냥 먹지?’라는 표정으로 쳐다봐 민망해질 때가 태반이다. 주변에 식당도 드물고 서로 경쟁을 하지도 않으니. ‘먹을테면 먹고 말라면 말아라’는 식이다.

 

  버젓이 메뉴판이 있어도 손님이 현지인이 아니고 관광객 같아 보이면 바로 메뉴판이 없다고 하고 자기들이 할 수 있는 음식을 주문하라고 한다. 물론 가격은 자기 마음대로 더 붙여서 가져오기 일쑤이다. 어쩌다가 정식 메뉴판을 보여주는 레스토랑에서는 손님이 뻔히 음식값을 머릿속에 계산하고 있는데도 거스름돈은 대충 자기 마음대로 주기도 한다.

 

  더 악질적인 곳은 식당에서 메뉴판에 분명히 쿠바 내국인용 화폐인 MN(모네다 나시오날, Moneda Nacional)로 표기되어 있는데 나중에 계산할 때에 CUC(세우세, 외국인용 화폐, 환율상 MN의 24배이다)라고 우기는 식당도 있다. 그리고 아바나 같은 대도시를 제외한 지방도시의 대부분의 식당들은 영업 시간도 자기들 마음대로 문을 열고 싶을 때 열고, 닫고 싶을 때 문을 닫는다.

 

 

 

 

 

 
  도무지 우리네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쉽지 않은 일이 비일비재한 곳이 바로 이곳 쿠바다. 이러한 현상들을 보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선의의 경쟁이라는 요소가 사회 발전에 얼마나 지대한 영향력을 미치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것 같다.

 

  가끔 한국에서는 사람들이 너무 많고 경쟁도 심해서 살기 어렵다는 말을 듣곤 한다. 좁은 국토에 많은 사람이 살다 보니 서로간 경쟁이 심할 수 밖에 없는 것은 사실인 것 같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런 치열한 경쟁 덕분에 우리 사회가 나날이 발전하고 살기가 좋아지는 게 아닐까?

 

 

 

까마구웨이 동네 학생들의 모습

 

 

 

  저녁 식사 후 걸어서 호텔로 오는데 이곳 학생들을 만났다. 고등학생 정도 되어 보이는데 저녁 식사 후 별다른 놀이 문화가 없는 탓에 끼리끼리 어울려 다니며 사진을 찍고 산책을 하는 것 같았다. 마침 사진을 찍고 있는 모습이 착해 보이기도 해서 야간에 사진 찍는 요령 등을 설명해 주며 같이 기념 촬영도 했다.

 

   기념사진 촬영을 하고 난 뒤에는 연신 고맙다고 인사를 한다. 사실 내가 더 고마운데. 쿠바의 지방도시의 시민들은 대체로 무뚜뚝한 반면 순수함을 아직 남아 있었다.

 

 

 

<출처> 2009. 8. 11 / 조선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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