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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기 및 정보/- 부산. 경남

지리산 언저리 여행(산청, 함양) : 슬리퍼 신고 가도 지리산을 볼 수 있다.

by 혜강(惠江) 2009. 9. 21.

 

 

지리산 언저리 -산청, 함양

 

지리산 언저리 마을 산청 예담촌

 

 

글 김신영 기자 / 사진 김승완 기자

 

 

 

경남 함양과 산청은 지리산의 북쪽을 살포시 물고 있어 이 큰 산의 좋은 기운을 넉넉히 받는다. 함양 화림계곡 부근 논 위로 바람이 스친다.

 

 

  산청·함양·하동(경상남도) 구례(전라남도) 남원(전라북도) 다섯 개 군에 걸쳐 있는 이 푸근한 산을 '종주'로만 즐기기는 아까운 일이지요. 지리산의 '옆모습'을 보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걷기 전문가 세 명이 길과 지도를 정리한 책, <지리산 둘레길&언저리길 걷기여행>(황금시간·1만7000원)이 최근 출판됐습니다. 책에 소개된 29개 코스 중 초보자도 쉽게 걸을 수 있는, 경남 함양과 산청의 지리산 언저리길 세 개를 골라 소개합니다.

 

 

 <산청 예담촌 >


  "최씨 고가 열쇠 좀 줘요. 가방 앞주머니에 있어요." "던졌어요. 찾았어요?"
열쇠 하나가 담벼락을 넘더니 흙길에 툭 떨어졌다. 경남 산청군 단성면 성내리, 지리산 언저리 마을 예담촌을 안내하는 문화해설사 정구화(72)씨에겐 담 넘어 아내와 물건을 주고받는 게 일상인 모양이었다. 예담촌의 담은 집안이 들여다보이지 않을 정도로만 높아 아낙의 가는 팔로도 담 넘기기가 거뜬하다. 돌멩이와 진흙을 섞어 쌓은 소박한 담은 감시용 카메라와 창살로 무장한 서울의 높은 담과 같은 이름으로 불리는 게 억울할 듯했다.

  담이 아름다운 예담촌엔 30채의 한옥이 터를 지키고 있다. 대부분 꽃 가꾸고 마루 닦으며 사람들이 생활하는, 살아있는 집이다. 정씨는 "이 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한옥은 이씨 고가(古家)로 지은 지 약 400년이 흘렀다"며 "담벼락 중엔 200년 넘은 것도 있다"고 했다. 돌과 흙으로 만든 담은 물이 천적이라 담 위에 기와지붕을 얹어 비를 가렸단다.

 

 
              산청 예담촌의 오래된 담벼락.

  "양반집 주변 집들의 담은 좀 더 높은 편입니다. 양반들이 조랑말 타고 행차를 하니, 그들에게 집 안이 보일까 걱정해서지요."

  천천히 돌면 한 시간 정도 걸리는 예담촌을 즐기는 덴 규칙이 따로 없다. 천천히 담 사이를 걷는 게 방법이라면 방법이다. 담 사이를 걷는 덴 제한이 없고 대문이 열려 있는 집은 들어가서 구경해도 된다. 단 이씨 고가, 최씨 고가, 사양정사(泗陽精舍) 등 규모가 큰 한옥은 정씨에게 하루 전쯤 미리 연락(011- 789- 0801)해야 속속들이 둘러볼 수 있다. "골동품 장사들이 하도 뭘 가져가서" 취한 조치란다.

  이씨 고가 앞에 X자 모양으로 서 있는 두 그루의 회화나무는 담과 어우러진 모양새가 기이하다. "회화나무가 뿜는 산소가 유난히 머리를 맑게 해준답니다. 그래서 선비가 많은 고장엔 회화나무가 많다지요. 이사할 때 나무를 파서 함께 옮길 정도로 귀하게 여겼지요."


             ▲ 함양 화림계곡 탐방로.

 
  고목(古木) 아래서 심호흡을 하며 선비 흉내를 낸 다음엔 이 마을에서 20번 국도를 따라 3.5㎞ 정도 떨어진 '목면시배유지'(木棉始培遺址·경남 산청군 단성면 사월리 106-1)에서 '고려 선비' 문익점의 흔적을 찾아보는 것도 좋겠다. 문익점이 원나라에서 1363년 붓 통 속에 몰래 넣어 가져온 목화씨를 처음 뿌려 재배했던 목화밭 주변에 1997년 전시관(입장료 1000원)이 세워졌다. 문익점의 일대기를 설명한 영상물과 목화의 재배 과정을 풀어내는 3차원 입체 영상 등 목화에 대한 상식을 배우는 재미가 쏠쏠하다. 전시관 한 바퀴 둘러보고 나면 매표소에서 파는 솜털 보송보송한 목화씨(한 봉지 1000원)를 사서 커다란 화분에 심어 보고픈 욕심이 밀려온다.


≫더 걷고 싶다면
(거리·시간: 약 6.5㎞·2시간)


  예담촌 뒤, 마을을 휘감아 도는 남사천 옆 붉은색 산책로까지 간다. 개천을 왼쪽에 두고 걷다가 '초포동교'를 건너 왼쪽 길을 따라 뒷산으로 들어선다. 왼쪽 길이 약간 오르막인 Y자 갈림길을 만나면 왼편으로 가고 바로 다음 갈림길에서도 왼쪽으로 간다. 다랑이 논을 내려다보며 조금 더 걸으면 운동장이 나온다. 운동장을 통과해 정면의 길로 쭉 가면 덕산골 마을이다. 콘크리트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가다 넓은 아스팔트 도로를 만나면 오른쪽으로 간다. 오르막 하나 넘어 새터마을로 들어서서 오른쪽에 '드림모텔' 보이는 사거리를 만나면 왼쪽 비닐하우스와 논 샛길로 가서 굴다리를 지난다. 배양상회 지나 오른쪽으로 꺾으면 목면시배유지다.

◆가는 길

●자가용으로
: 대전-통영고속도로 단성 나들목으로 나와 우회전→중산리·시천 방면 20번 국도→남사사거리→예담촌
●대중교통으로: 산청군 신안면 '원지터미널'에서 '중산리·대원사행' 버스를 탄다. 오전 6시30분~오후 9시30분, 약 30분 간격으로 버스가 출발한다.
● 음식
산악지역 음식은 좋게 말해서 소박하고 담백하고, 야박하게 말하면 먹을 게 없다. 그런데 경남 산청과 함양의 음식은 이러한 산골 음식의 편견을 깬다. 풍요롭고 다양하다. 넉넉한 지리산이 낳은 다양한 식재료와 사람과 돈 모이는 곳에 손맛도 따라오는 경제 원리 덕분이다.
 

경남 산청 맛집 - 지리산 재료에 원숙한 손맛까지

◆산채정식
  산청군 '춘산(春山)식당'에서 맛본 음식은 의외였다. 산악지역 특유의 소박한 상차림을 기대했는데, 넉넉하고 다채롭다. 그만큼 지리산의 품이 넉넉하기 때문일 것이다.  춘산식당은 1976년 이순이(76)씨가 열었다. '지리산의 봄을 밥상 가득 올리겠다'는 뜻을 담았다. 이씨는 친어머니가 운영하던 '풍미관'에서 어렸을 때부터 요리를 도우며 배웠다.
 
 
             ▲ 산청 '춘산식당' 흑돼지불고기(앞)와 비빔밥.

  가을이 저만치 보이는 늦여름, 춘산의 밥상을 받았다. 정식은 3인분 이상만 주문 가능하다고 해서 비빔밥을 시켰다. 된장콩잎, 가죽나물, 취나물, 콩비지, 마늘선, 고구마줄기무침, 물김치, 저냐 등 반찬이 10여 가지나 된다. 멍게에 청어알을 무쳐 삭힌 젓갈, 꼬막 등 바닷가 반찬도 있어서 놀랐다. 식당에서 일하는 '할매'는 "삼천포가 멀지 않다"고 했다. 경상도 사람들은 맛을 모른다고들 하는데, 이 식당만큼은 예외로 해야겠다. 모든 음식이 간이 충분히 배 있으면서도 짜지 않다. 균형이 절묘하다. 전라도처럼 화려하게 멋 부리진 않았지만, 정갈하고 우아한 기품이 있다. 모시 적삼 갖춰 입고서 허리를 꼿꼿이 편 종갓집 종부 같은 맛이다.

  비빔밥에는 달걀 지단과 각종 나물, 다진 쇠고기 따위가 고추장과 함께 새하얀 밥에 얹혀 나온다. 고명도 고명이지만 밥이 기막히다. 고슬고슬 엉기지 않아 다른 재료들과 쉬 섞인다. 쫄깃하달 정도로 차지고 달다. 이 식당에서는 산청 '탑라이스(Top Rice)'만을 사용한다. 탑라이스는 산청의 쌀 브랜드. 서울 백화점에서도 인기 높다. 탑라이스 생산단지 회장 오대환씨는 "완전미(完全米) 비율이 95% 이상인데다, 단백질 함량이 6.2% 이하에 불과하다"고 설명한다.

  완전미란 깨지지 않고 온전한 모양을 유지한 쌀이란 뜻. 쌀에 깨진 부분이 있으면 익히는 과정에서 전분이 흘러나와 밥맛이 나빠진다. 영양학적으로는 아무 문제 없지만, 단백질이 많으면 밥맛이 떨어진다. 국내산 쌀은 대개 완전미 비율은 85% 정도이고 단백질 함량은 7%가량이다.

  흑돼지양념구이도 훌륭하다. 산청에서 키운 흑돼지의 삼겹살을 살짝 데쳐뒀다가, 주문이 들어오면 고추장 양념에 버무려 식당 앞 연탄 풍로에 구워서 상에 올린다. 꼬들꼬들한 껍데기가 붙은 돼지고기와 달콤매콤한 양념이 아주 어울린다. 쉬는 시간에 찾아가 밥 달라는 손님이 귀찮을 법도 한데, 웃는 얼굴로 음식을 내주는 할머니들 덕분에 더 기분 좋은 밥상이었다. 비빔밥 6000원, 정식(3인분 이상 주문 가능) 1인분 1만5000원, 흑돼지불고기 2만5000원(3~4인분), 추어탕 6000원. ●춘산식당: 경남 산청군 산청읍 옥산리444-1 / 055- 973- 2804)
 
 
◆ 한방요리

  산청은 허준의 스승 류의태의 고향이다. 산청군은 이를 내세워 산청을 '약초의 고향'으로 인 식시키려 하고 있다. 물론 지리산에서 나는 다양한 약초와 나물을 생각하면 억지는 아니다. '한방식당'을 표방하는 식당이 엄청나게 많다. 이 중 '갑을식당'(한방닭백숙), '시골별장식당'(맥문동 호박백숙), '세검정가든'(약초정식) 등이 괜찮다는 평이다.
●갑을식당: 경남 산청군 삼장면 유평리 23 / 055- 973- 0053)
●시골별장식당: 경남 산청군 시천면 동당리 520-3 / 055- 973- 6066)
●세검정가든: 경남 산청군 금서면 주상리 502 / 055- 973- 6564)
 
           ▲ 산청 흑돼지 삼겹살.

참기름 울리는 고소함의 절정

◆흑돼지

  지리산 자락 돼지들은 다 맛있는 것으로 소문났다. 청정자연에서 키우는 똥돼지의 맛은 비교할 수가 없는 경지. 그러나 요즘 산청에서 자라는 흑돼지는 '똥돼지'라 불리던 토종돼지는 아니다. 산청군청 농업기술센터 민형규씨는 "지난 20년 동안 전국 각지의 흑돼지를 모아 개량한 품종"이라고 했다. 토종 흑돼지는 육질이 좋지만 새끼를 적게 낳고 살이 덜 올라 경제성이 떨어졌는데, 이런 부분을 개선했다는 것이다. 확실히 '흑돼지와 누렁이'에서 맛본 삼겹살은 쫄깃한 껍질이 붙어 있고 고소했다. 산청군 안에는 '흑돼지'를 내건 식당이 많다. 아직 군 차원에서 산청산 흑돼지만 쓴다는 인증을 해주지는 않는다.
●흑돼지와 누렁이: 경남 산청군 산청읍 옥산리 128 / 055- 973- 8289) 
  

 

 <함양 상림>
# 마냥 걷고 싶다.

 신라가 만든 최고(最古)의 인공숲 

 

 

 

  남서쪽으로 멀리 내다보이는 지리산 능선이 넉넉하고 포근하다. 경남 함양군 함양읍, 한국최초의 인공 숲인 상림(上林)을 느릿느릿 걷다 보면 천왕봉의 그 멋있다는 일출도 아무려면 어쩌나 하는 느긋한 마음을 품게 된다. 지리산과 백암산에 폭 안긴 상림의 조성자는 신라 시대 함양 태수(太守)로 온 최치원이다.

 

  함양읍 가운데를 흐르던 위천이 자주 넘치자 물길을 돌리고 둑을 쌓은 다음 그 위에 길이 6㎞짜리 숲을 만들었다. 세월이 흘러 숲은 상림과 하림으로 나뉘었다가 하림에 군부대가 들어서면서 이제는 상림만 남았다. 느티나무와 개서어나무가 완전히 합쳐서 하나가 된 연리목이 입구에서 인사를 하고 꽃이 거의 진 연꽃 길은 넓은 잎만으로도 화려하다. 가을이면 한창 빨갛게 숲을 수놓을 꽃무릇도 벌써 피어나기 시작했다. 길게 뻗은 모양의 산책로는 편도 1.6㎞. 곳곳에 약수와 정자와 벤치가 있어 쉬엄쉬엄 놀며 산책하기 좋다.

 

 

           ▲ 한국 최초의 인공 숲인 상림. /조선영상미디어 김승완 기자

 


≫더 걷고 싶다면

  지리산 능선을 조금 더 감상하고 싶다면 상림 남쪽 끝에서 이어지는 필봉산에 들렀다 와도 좋겠다. 상림 한쪽 끝에 있는 물레방앗간으로 간다. 물레방앗간 뒤 차도를 건너 맞은편 마을 길로 직진한다. 작은 고개 하나 넘어 아담한 저수지를 만나면 오른쪽으로 간다. 100m쯤 걸으면 필봉산 산책로 입구다. 필봉산 정상에 올랐다가 돌아오는 길은 4㎞로 한 시간 정도 걸린다. 중간에 나오는 '한남군 묘역'에서 상림 쪽으로 가로질러 내려와도 된다.


◆ 가는 길
●자가용으로: 88올림픽고속도로 함양나들목→함양 방면→'상림' 이정표
●대중교통으로: 함양공용터미널에서 1.5㎞ 거리. 걸어가면 25분 정도 걸린다.

 

 

 

 

 

  <함양 화림계곡>

 

 

 

 선비들이 앉아 놀던 정자만 7개

 

 

 

 

 

  구불구불하고 깊은 화림계곡은 지리산 북쪽의 정중앙을 물고 있는 경남 함양군 북부를 가로지른다. 이 계곡은 옛 선비들에게 술 한 잔, 노래 한 가락 읊는 '정자 명소'였나보다. 거연정<사진> 영귀정 군자정 동호정 경모정 람천정 농월정…. 약 6.5㎞ 길이의 '선비문화탐방로'지도엔 옛사람들이 놀던 정자가 7개나 그려져 있다.

  거연정 휴게소에서 계곡 따라 농월정에 이르는 길은 잘 정비된 탐방로 덕분에 걷기 편하다. 나무 데크가 잠시 끊어지면 벼가 넘실대는 논길이 이어진다. 허벅지 높이만큼 자란 벼 위로 부는 바람은 이리 오라며 손짓하는 듯 생기가 넘친다.

 

           조선영상미디어 김승완 기자 wanfoto@chosun.com

 

 

  탐방로 마지막 지점인 농월정 터는 여유로이 계곡 풍경 즐기고 싶은 이들에게 제격이다. 도로와 멀리 떨어져 있어 한갓지고 조용하다. 정자 이름 '농월'(弄月)은 '한 잔 술로 달을 희롱한다'는 멋스러운 뜻을 지녔다. 술 한잔 기울이고 싶은 넓은 너럭바위가 계곡과 어우러져 근사한 풍경을 빚어낸다. 농월정은 조선 중기 학자 지족당(知足堂) 박명부가 광해군 때 영창대군의 죽음과 인목대비의 유배에 대한 부당함을 지목하다 고향 함양으로 유배 왔을 때 지은 정자로 지난해 화재로 쓰러져 복원 중이다. 바로 앞 바위에 새겨진 '지족당장구지소(知足堂杖�d之所)'란 글자는 '지족당 선생이 지팡이 짚고 놀던 곳'이란 뜻이다.
 

 

≫더 걷고 싶다면(거리·시간: 6.5㎞·2시간)

  거연정휴게소에서 거연정에 들러 정자를 구경하고 나온 후 봉전교를 건너 왼쪽 나무 데크를 걷는다. 10분 정도 지나 포장길을 만나면 왼쪽으로 간 후 곧바로 오른쪽으로 방향을 바꿔 대전-통영고속도로 굴다리까지 간다. 굴다리 직전에서 왼쪽으로 꺾으면 나무 데크 산책로가 다시 이어진다. 길이 끊기는 지점에선 자연석(自然石)으로 이어진 징검다리를 건넌다. 비가 많이 오는 날엔 중간 부분이 물에 잠겨 신발을 벗고 건너야 하는데 돌이 흔들리므로 조심조심 걷는다. 징검다리 중간쯤에서 오른쪽 소나무섬으로 빠져 나무 데크 산책로에 오른다. 농로와 시멘트 길을 지나 '호성마을' 앞 산책로를 걷는다. '람천정' 지나 '화림계곡 탐방 안내판'을 만나면 왼쪽으로 꺾는다. 계곡 위 돌다리를 건넌 다음 큰길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고 남강천을 따라 길게 뻗은 둑길을 걷는다. 둑길이 끝나는 지점에선 조심조심 도로를 건넌 다음 '서하교'를 건너 왼쪽으로 굽어지며 이어져 있는 구(舊)도로로 들어선다. 큰길을 다시 만나 잠시만 더 걸으면 왼쪽에 황토색 계단이 보인다. 계단을 내려가 오른쪽으로, 풀 많은 둑길을 걸으면 농월정 이정표가 나온다.

●대중교통으로: 함양공용터미널에서 '서상노선' 군내버스(오전 6시20분~오후 7시40분, 약 30분 간격 출발)를 타고 서하면 봉전리 봉전정류장에서 내리면 거연정이다.
●자가용으로: 대전-통영고속도로 서상나들목으로 나와 26번 국도→서하 방면 우회전→7㎞ 정도 가면 '거연정 휴게소'

 

 

<경남 함양 맛집>

 

점잖은 갈비맛, 역시 양반 음식

  

산악지역 음식은 좋게 말해서 소박하고 담백하고, 야박하게 말하면 먹을 게 없다. 그런데 경남 산청과 함양의 음식은 이러한 산골 음식의 편견을 깬다. 풍요롭고 다양하다. 넉넉한 지리산이 낳은 다양한 식재료와 사람과 돈 모이는 곳에 손맛도 따라오는 경제 원리 덕분이다.

 

점잖은 갈비맛… 역시 양반음식
안의 갈비

 

  '안의원조갈비집'을 찾았을 때 주인 김대영(42)씨는 부엌 옆 작업실에서 쇠갈비를 다듬고 있었다. "최대한 지방을 잘 제거해야 합니다. 하루 종일 갈비에서 지방 발라내는 작업을 하지요. 이 작업이 (식당) 장사하는 것보다 힘들어요." 

           함양 '안의원조갈비집' 갈비찜.
 
  함양군 안의면(安義面)은 갈비찜으로 이름난 고장이다. 갈비찜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이 일곱 집이나 된다. 이 한적한 마을에 갈비찜을 하는 식당이 왜 이렇게 많은 걸까. "안의가 지금은 함양군 안에 있는 면 중 하나지만, 예전에는 안의현(安義縣)이었지요. 안의현 안에 거창도 있고 함양도 있었어요. 현감이 여기 살았고, 그래서 정자며 기와집 같은 고택이 많아요. 양반들도 많이 살았죠. 양반들이 자시던 게 안의갈비라고 합니다. 또 예전에 이곳에서 큰 우시장이 열렸어요. 갈비탕이 더 유명했는데, 요즘은 갈비찜으로 알려졌죠."

  일주일에 서너 번 갈비 여덟 짝이 들어온다. 갈비를 일단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낸 다음 지방을 발라낸다.

  갈비를 찬물에 담가 핏물을 뺀 다음 삶는다. 남아있던 피와 지방이 우러난 물은 버린다. 찬물을 붓고 다시 끓인다. 센 불에 30분 끓여 냄새를 없앤 다음 갖은 양념을 더해 서서히 달인다. "옛날과 똑같은 방식으로 하고 있어요. 음식들이 조금 촌스럽지요."

  김대영씨 말처럼 안의갈비찜은 세련되진 않지만, 대신 옛맛을 지키고 있다. 갈비답게 뜯는 맛이 있다. 심심하면서 달착지근한데, 간장 짠맛이 아래 깔려 있다. 기름지지 않고 깨끗하다. 1960년대 음식 같기도 하고, 북한 음식 같기도 하다.

  갈비찜도 갈비찜이지만 갈비탕이 아주 훌륭하다. 갈비탕 맞나 싶을 정도로 기름기 없이 투명하고 시원하다. 무미(無味)하다 싶지만, 소금으로 간을 맞추면 감칠맛이 확 올라온다. 잡내나 잡미가 거의 없이 후추의 후끈한 매운맛만 느껴진다. 갈비찜 3만5000·4만5000원, 갈비탕 8000원. 공깃밥(1000원)을 시키면 갈비탕 국물이 딸려나온다.
●안의원조갈비집: 경남 함양군 안의면 당본리 12-1 /  055- 962- 0666)
 
생선국과 만난 소면… 그냥 넘어간다
어탕국수

 

  식당 이름이 '조샌집'이다. 시어머니 임명자씨에 이어 주방을 맡고 있는 김윤점씨가 이름의 유래를 설명해줬다. "시아버님(조인혁)이 생원이셨어요. 우리 지역에선 생원이 스스로를 낮춰 '샌'이라고 불렀대요. 시어머니가 식당을 관청에 등록하러 갔는데, '조샌이 하는 식당이니 조샌집이라고 하라' 해서 했다네요."

 

 

              함양 '조샌집' 어탕국수.
 
  어탕국수는 함양과 산청에서 즐기는 음식이다. 민물고기를 잡아다 끓인 다음, 체에 뼈를 발라내고 살은 잘게 부수어 국물과 섞고 고춧가루로 슬쩍 간 한다. 시래기를 넣고 푹 끓이다가 소면을 넣고 익히면 끝.

  불그스름한 갈색 국물이 의외로 맑고 구수하다. 생선 비린내가 살짝 나는데, 거북하다기보다 오히려 매력적이다. 제피가루(초피나무 열매의 가루)와 방아잎으로 생선 냄새를 잡는다. 추어탕은 민물고기와 함께 미꾸라지가 들어간다. 더 짙은 갈색이고 국물도 더 진하다.

  "우리 가게를 소개한 기사를 붙여놓지 않아요. 시어머니가 그러시대요. '손님 입에 맞지 않으면 어쩔 거냐'고." 참 '갱상도'다운 마음가짐이다. 어탕국수 5000원, 추어탕 6000원, 민물고기조림 2만5000원.
●조샌집: 경남 함양군 함양읍 운림리 35-5 / 055- 963- 9860)
 
 

곰국에 빠진 콩잎… 푸근함이 입안을 감싸네
콩잎곰국

 

  콩잎은 경상도에서 즐겨 먹는 재료다. 함양에서는 콩잎을 곰국에도 넣는다. '청학산' 주인은 "콩잎곰국을 옛날부터 보양식으로 드셨다"고 한다. "부잣집에서는 사골을 고아서 넣어 드셨고요, 서민들은 들깻가루에 넣어 드셨어요." 

 

 

               ▲ 함양 '청학산' 콩잎곰국.
 
  봄철 여린 콩잎을 따 말려서 저장해두고 일년 내내 쓴다. 뽀얗게 우린 곰국 국물에 콩잎을 넣고 삶은 쇠고기를 쪽쪽 찢어서 얹으면 요리 끝이다. 콩잎에서 물이 우러나 뽀얀 국물이 푸르스름한 빛을 띤다. 푸른 이파리가 잔뜩 들어 있는 게 미역국 같기도 하다. 밥과 함께 국물을 푹 떠서 입에 넣는다. 살짝 씁쓸하면서도 구수한 콩잎이 곰국과 썩 어울린다. 콩잎곰국과 함께 나오는 반찬도 조신하다. 콩잎곰국 8000원, 콩잎곰국정식 1만3000원, 청국장 6000원, 시래깃국·된장국 5000원.
●청학산: 경남 함양군 함양읍 구룡리 641  / 055- 962- 4138)

 

 

 

<출처> 2009. 9. 3 / 조선일보 주말매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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