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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기 및 정보/- 부산. 경남

경남 함안, 여름 끝자락의 ‘순초록 세상’ 함안 무진정

by 혜강(惠江) 2009. 9. 23.

경남 함안

여름 끝자락의 ‘순초록 세상’  함안 무진정

물과 나무와 빛의 마술… ‘모네의 정원’거니는 듯

 

 

박경일 기자

 

 

 

▲ 초록색 한가지만으로 어찌 이렇듯 아름다운 그림을 그려낼까. 경남 함안의 무진정 앞 연못에는 미처 가을이 당도하지 않아 초록의 기운으로 가득하다. 빛에 따라 채도를 달리하며 반짝이는 초록색을 대하면 마치 인상파 화가가 그린 그림 속으로 빨려들어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곳에서 맨 처음 떠올린 것은 ‘모네의 정원’이었습니다. 인상파 화가 클로드 모네가 프랑스 파리 북동부 지르베니에 저택을 사들인 뒤 영감을 얻기 위해 조성했다는 연못이 있는 멋진 정원. 모네의 그림 속에서 정원의 수목들은 빛에 따라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매혹적인 색감으로 그려졌지요. 경남 함안 땅에서 만난 무진정이 꼭 그랬습니다.

 

정자 앞 연못에는 습지식물들이 깔려 있고, 연못 가운데 작은 섬에는 수백년 된 수양 버드나무며 느티나무들이 하늘을 가린 채 가지를 드리우고 있었습니다. 연못과 정자 주변은 온통 초록색이었지만, 같은 초록이라도 저마다 다른 채도로 물들어 있어 화려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빛의 방향이 달라질 때마다 색감까지 달라져서 마치 빛으로 가득한 인상파 화가의 그림 속으로 발을 들여놓은 기분이었습니다.

 

경남 함안은 사실 여행목적지로는 낯선 곳입니다. 가야시대 안라국의 땅이었던 함안에는 고분군 외에는 알려진 이렇다 할 명소가 없습니다. 그러나 함안 땅에 당도한 지 반나절도 채 안 돼서, 어찌 이런 곳들이 알려지지 않았을까 의문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빛나는 연못 정원을 품고 있는 무진정의 정취가 그랬고, 기품 있는 고택 무기연당도 그랬습니다.

 

남강과 함안천이 만나는 벼랑에 세워진 악양루의 정취도, 그 아래 남강 제방을 따라 끝없이 이어진 코스모스 꽃길의 아름다움도 마음을 빼앗기기에 충분했습니다. 함안 땅에는 경치나 풍류뿐만 아니라, 그곳에 깃든 곧고 맑은 정신도 그득하게 고여 있었습니다. 세조의 왕위 찬탈에 벼슬을 버리고 단종의 시신을 거둔 뒤 낙향한 선비 조려가 여생을 보냈다는 채미정에서는 현판 곁에 내걸린 ‘백세청풍(百世淸風)’의 맑은 기운이 청량했습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이성계의 역성혁명을 거부하며 아예 마을 주민들이 세상으로 난 문을 죄다 닫아걸고는 평생 담 밖으로 나서지 않았다는 고려동에서는 함안 선비들의 곧은 정신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백세청풍(百世淸風)… 영원토록 변치 않는 함안 선비의 절개를 만나다

 

 

▲ 빼어난 전통정원인 무기연당. 장방형의 연못을 두고 그 가운데 석가산을 앉혔다. 마주보이는 정자가 하환정이고, 가지를 뒤튼 곰솔 뒤편의 건물이 바람으로 몸을 씻는다는 풍욕루다. 하환정 툇마루 난간에 기대 앉아 연못을 내려다보면 그윽한 정취가 느껴진다.

 

 

함안군 가야읍에서 함안면으로 드는 경계지점인 괴산리의 국도변. 은행나무 가로수가 늘어선 그 길이 휘어지는 곳에 무진정이 있다. 무진정은 조선 중종때 춘추관 편수관을 지낸 조삼의 덕을 기리기 위해 후속들이 그의 호를 따서 지은 정자. 정자는 숲 가운데 깊이 들어 이끼로 가득한 돌담을 두루고 서있다. 그러나 이곳은 정자의 풍모나 내력보다는 정자 앞으로 펼쳐진 연못의 정취가 훨씬 더 빼어난 곳이다.

반월형으로 석축을 쌓아 만든 연못주변에는 아름드리 느티나무며 왕버드나무들이 우람하게 가지를 뻗고 서있다. 연못에는 저마다 다른 모양으로 섬을 띄워놓고 다리를 놓아 건널 수 있도록 해놓았다. 자그마한 섬에서 자란 우람한 수양버드나무 한그루가 가지를 축축 늘어뜨리고 있다. 이곳에는 아직 가을이 당도하지 않았는지 주변은 온통 초록빛으로 가득하다. 마침 촉촉하게 가을을 재촉하는 빗방울이 떨어지자 비에 적셔진 초록이 저마다 다른 채도로 반짝거렸다.

연못 앞에 서면 걸음이 절로 느려진다. 그리 크지 않은 연못 주위로 심어진 왕버드나무 그늘을 따라 천천히 걷거나 섬으로 이어진 다리를 건너가며 숲 속에 숨어있는 무진정에 올랐다가 되돌아나온다면 마치 초록빛이 환한 화폭 속으로 걸어들어가는 것 같은 느낌을 경험할 수 있다.

 

정원으로 이어진 한서문을 들어서자마자 저절로 탄성이 터진다. 이쯤이면 우리나라 3대 전통 정원이라는 담양의 소쇄원이나 보길도의 부용동 정원, 영양의 서석지에 비견할만 하겠다. 무기연당. 의병을 모아 이인좌의 난을 평정했다는 국담 주재성의 생가이자 주씨 집안의 종가가 거느리고 있는 전통정원이다. 칠원면 무기리의 무기연당은 한국적인 정원의 정취를 그대로 담고 있다.

무기연당의 중심이 되는 하환정 앞에는 석축을 쌓아만든 제법 깊은 연못이 있고 그 물 가운데 석가산이라 이름한 작은 섬이 띄워져 있다. 석가산을 이룬 돌 하나 하나에도 형상과 놓인 방향에 따라 이름이 붙여져 풍류를 더 한다. 연못 옆으로는 아름드리 곰솔 한그루가 둥치를 뒤틀며 시선을 끌어당긴다. 곰솔 뒤쪽으로 세워진 누각에는 풍욕루란 현판이 걸려있다. 바람으로 몸을 씻는 곳이란 이름 때문일까. 누각은 가운데 칸을 비워놓아 자연스레 바람이 들고 나도록 했다. 무기연당에 들어서서 하환정의 툇마루에 앉아 연못 위의 석가산을 내다보거나, 풍욕루의 대청에 소슬한 바람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풍류를 한껏 즐길 수 있다.

무기연당의 정원은 한꺼번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맨처음 연못이 만들어졌고 이어 차례로 하환정과 풍욕루가 만들어졌다. 시간이 쌓여가며 하나씩 건물이 덧붙여지면서 후손들에 의해 비로소 이렇듯 아름다운 정원이 완성된 셈이다. 아직도 정원은 후손들의 정성으로 잘 손질돼 있다. 다만 무분별한 개발로 인근에 공장들이 하나 둘 들어서면서 고택이 섬처럼 떠있는 신세가 된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남강과 함안천이 합류하는 합안군 법수면에서 강을 건너면 절벽에 운치있는 누각 하나가 걸려 있다. 동쪽에서 흘러들어온 남강이 앞을 막는 산에 비켜 북쪽으로 살짝 물굽이를 틀고 남쪽에서 흘러든 함안천이 이 물길에 합류하는 T자 모양의 중심의 단애에 물길을 굽어보듯 우뚝 서있는 누각이 바로 악양루다. 악양루는 안에서 밖을 보거나 밖에서 안을 보아도 모두 빼어나다. 강 건너편에서 올려다 보면 단애에 솟아있는 누각이 그림 같고 누각에 올라보면 남강의 물굽이, 그리고 법수면의 제방과 너른 들판이 한눈에 들어온다.

악양루는 ‘낙동강 강바람이 치마폭을 적시면…’으로 시작되는 노래‘처녀뱃사공’이 만들어진 곳이기도 하다. 1953년 9월 유랑극단 단장인 고 윤부길(가수 윤항기, 윤복희의 부친)씨가 피란을 끝내고 서울로 가면서 함안군 가야장에서 공연을 마치고 악양에 머물렀는데, 그곳에서 군에 입대한 뒤 소식이 끊긴 오빠(박기준·6.25전쟁에서 전사)를 대신해 나룻배로 길손들을 건네주던 여동생의 사연을 듣고는 ‘처녀뱃사공’의 노랫말을 지었다고 전해진다.

 

 

▲ 남강변의 악양제방을 따라 끝간데 없이 이어진 코스모스 꽃길.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코스모스 길이지 싶다. 화창한 가을볕 아래서 걷기에 딱 좋은 흙길이다.



악양루에서 내려다보면 남강변을 따라 악양제방이 끝없이 이어져 있는데, 그 제방 양옆으로는 코스모스가 만개해 있다. 본래 홍수가 잦았던 함안에는 오랜 세월동안 제방을 쌓아왔다. 믿기지 않지만, 함안군내의 제방을 다 잇는다면 무려 383㎞에 달한단다. 대산면의 제방에 조성된 코스모스 꽃길을 어림잡아 재보아도 7~8㎞에 달하니 아마도 여기가 우리땅에서 가장 긴 코스모스 꽃길이리라.

함안에서는 물이 남에서 북으로 흐른다. 남쪽이 높고 북쪽이 낮은 이른바 ‘남고북저(南高北低)’의 땅인 탓이다. 남쪽에는 여항산이, 서쪽에는 방어산이, 동쪽에는 청룡산이 물길을 가로막아 낮은 목을 찾아 물이 북쪽으로 흐른다. 그래서일까. 남강댐이 건설되기 전만 해도 홍수 때면 하천이 범람해 함안 땅은 물바다가 돼버렸다. 이렇듯 거꾸로 흐르는 물길에서 옛 사람들은 ‘반역의 기운’을 감지했고, 함안 사람들은 이런 굴레를 벗기 위해 무진 애를 썼다. 함안 북쪽에는 낮은 지형에도 모두 산이란 이름을 붙여 죽산, 대산으로 이름을 붙였고, 우뚝 솟은 산줄기임에도 ‘낮아서 배가 넘어간다’는 뜻의 여항산(艅航山)이라 이름을 붙였다. 그것도 모자라 남쪽의 높은 땅에는 반대로 병곡, 비사곡 등 곡(谷)이란 이름을 붙였다. 높은 지세는 낮은 이름, 낮은 지세는 높은 이름으로 다스리려 한 것이다.

그러나 이름만 바꾼다고 땅의 기운이 달라질까. 함안은 ‘반역의 땅’은 아니었지만, 유독 대쪽같은 심성의 선비들이 많았다. 이들은 역성혁명과 왕위찬탈에 반대하고 미련없이 벼슬자리를 던지고 칩거했다. 요동정벌에 나섰다가 이성계에 맞서 위화도 회군에 반대해 벼슬을 버린 조순. 조선이 건국되자 고향 땅 함안으로 돌아와 자신의 거처를 고려동이라 이름하고 평생을 담장 밖에도 나가지 않았던 이오. 단종을 폐위하고 세조가 등극하자 과거도 보지 않고 두문불출했던 조려. 연산군의 폭정에 맞서다가 무오사화때 부관참시를 당한 이인형. 병자호란에 비분강개하다 죽은 박진영. 이들이 모두 함안 사람이었다.

시퍼렇게 날이 선 함안 선비의 기개를 보겠다면 군북면 조려의 생가 일대와 산인면의 고려동 유적지를 찾아가야 한다. ‘백세청풍(百世淸風)’. 생육신 조려의 생가가 있는 군북면 원북리 일대에서 가장 자주 마주치는 글이 바로 ‘백세청풍’이다. 조려가 낚시로 세월을 보냈다던 ‘고바위’의 절벽에도, 영월에서 단종의 시신을 수습해 장례를 지내고 고향 땅으로 내려온 뒤 은거했다는 정자 채미정 현판에도 ‘백세청풍’이란 글씨가 새겨져 있다. 백세(百世)란 말그대로 100세대를 뜻한다. 한 세대를 30년으로 치니 100세대란 3000년이다. 청풍(淸風)에서 청(淸)은 ‘매섭도록 높고 맑음’을, 풍(風)은 바람이 아닌 ‘군자의 덕과 절개’를 일컫는 말이다. 함께 풀어보자면 ‘백세청풍’이란 ‘영원토록 변치 않는 매운 선비의 절개’를 말하고자 함이겠다.

뒤쪽으로는 도로가, 앞으로는 철길이 나긴 했지만 흙담으로 둘러치고 작은 연못까지 거느리고 있는 채미정에 들면 고즈넉한 정취가 느껴진다. 정자에 오르면 백이산과 숙제봉이 나란히 눈앞으로 다가선다. 원래 이름은 쌍안산이었다는데, 단종 복위 후 숙종이 글을 내려 백이산이라 이름하자 나란한 봉우리에 숙제봉이란 이름이 따라 붙었다고 전해진다. 두말할 것 없이 은나라가 망한 뒤 수양산에 들어 고사리만 캐먹다가 굶어죽었다는 백이와 숙제에서 따온 이름이다.

산인면에는 고려말 성균관 진사였던 이오가 칩거했던 마을 ‘고려동’이 있다. 고려가 망하고 조선왕조가 들어서자 충절을 지키기로 결심하고 이곳에 거처를 정한 이후 담을 높이 치고 평생을 담밖으로 나서지 않았다고 전해지는 곳이다. 후손들은 19대 600년을 이르는 동안에도 이곳을 떠나지 않았고, 지금도 높은 담을 둘러친 안쪽에 한옥들이 모여있다.

 

 



함안 가는 길

경부고속도로로 대전까지 가서 대전∼통영선으로 갈아타고 진주 분기점까지 간다. 진주분기점에서 부산방향 남해고속도로로 바꿔 탄 뒤 함안나들목에서 나가면 된다.
수도권에서 가자면 4시간 이상이 소요된다. 함안에는 어계고택이나 고려동유적지, 무기연당, 악양루 등이 곳곳에 흩어져 있어 동선을 잘 짜서 움직여야 한다. 아예 남해고속도로를 타고 먼저 장지나들목으로 나와 어계고택과 채미정 등을 둘러본 뒤 가야읍 쪽이나 악양루로 가는 편이 낫다.

 


어디서 묵고 뭘 먹을까

함안에는 호텔이나 콘도가 없다. 모텔도 대부분 시설이 낡은 편이다. 가야읍의 황실모텔(055- 585- 1515)이 가장 최근에 지어진 것이라 시설이 깔끔하다.
맛집으로는 악양루 입구의 악양루가든(055- 584- 3479)을 손꼽을 만하다. 어탕으로 3대를 잇고 있는 집이다. 어탕밥과 어탕국수, 참게탕 등을 내놓는다. 함안은 한때 우시장으로 유명했던 곳. 함안면 북촌리에는 한우 국밥촌이 형성돼 있는데 가게는 허름하지만 대구식당(055- 583- 4026)이 첫손으로 꼽힌다.

 



<출처> 2009. 9. 23 / 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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