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 성주산~시흥 소래산
산꼭대기에서 ‘도시와 바다’를 품다
글·사진 엄주엽 기자
▲ 높지는 않지만 사방으로 거칠 것이 없는 위치에 있는 소래산의 정상에는 전망대
시설이 잘 꾸며져 있다. 멀리 보이는 고층 건물들이 송도신도시 건설 현장이다.
제2경인고속도로 신천IC나 서울외곽순환도로 소래터널 부근을 지나다 도드라지게 눈에 띄는 산이 소래산(蘇萊山·299.4m)이다. 봉우리 하나만 비쭉하니 볼품 없어 각별히 마음을 내서 가볼 정도는 아니었다. 장마가 걷힌 뒤 새털구름이 파란 하늘을 가리며 초가을 냄새가 나던 지난 25일 소래산을 찾았다. 경기 부천시의 남쪽 끝에 동서로 길게 뻗은 성주산(聖柱山·217m)에서 시작해 시흥의 소래산까지 종주를 했다. 겉보기보다 소래산은 아기자기하면서도 정상의 전망이 서울과 인천 앞바다까지 시원하게 트인 좋은 산이었다.
부천 성주산의 들입목은 전철 1호선으로 부천역이나 소사역에서 내린 뒤 10분 정도 걸어서 서울신학대 옆으로 오르면 된다. 이날은 부천남부역 건너편에서 시흥교통 31번 버스를 타고 네댓 정류장쯤 가다가 ‘어머니도시락’ 앞에서 내려 올라갔다. 정류장에서 가던 방향으로 100m 정도 더 가면 눈앞에 여우고개의 구름다리가 보일 즈음 오른쪽으로 관음사라는 작은 사찰 입구로 난 등산로가 들입목이다. 완만한 길을 20여분 오르면 바로 여우고개에서 하우고개로 향하는 널찍한 등산로를 만난다.
여우고개는 ‘여우(狐)’가 아니라 ‘소같이 생겼다’는 뜻의 ‘여우(如牛)’다. 하지만 이곳이 옛적엔 수풀이 우거진 외진 지역이어서 여우가 많아 ‘여스고개(狐峴)’였다는 설도 있다. 어쨌든 여기서 서쪽으로 ‘하우고개’와 ‘와우고개’가 잇따라 이어지는데 모두 소(牛)와 관련된 이름들이다. 성주산은 마치 소가 누워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 하여 일명 와우산(臥牛山)이라 불렸고 동네 사람들은 지금도 그렇게 부르기도 한다. 하우고개란 지명에는 몇 가지 설이 있는데, 가장 잘 알려진 것은 옛적에 이 고개가 소래와 김포의 장돌뱅이들이 많이 다녔다는 데서 유래한다. 그러다 보니 산적들이 들끓었는데, 장사꾼들은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산 밑 주막에서 떼지어 고개를 넘었다. 언제 어디서 도둑떼가 기습할지 몰라 사람과 소는 가파른 길을 숨이 턱에 차게 넘었고 이때 나오는 ‘하우~, 하우~’하는 숨소리를 따서 하우고개로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 성주산 하우고개의 구름다리. 예전에는 다리 아래로 김포에서
소래포구를 오가는 장돌뱅이들이 소에 짐을 싣고 다녔다.
산 이름과 관련해서 ‘성주산’이란 이름은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예로부터 와우산 또는 계곡마을의 지명을 따서 댓골산으로 불렸던 이 산은 북쪽 자락인 지금의 부천시립도서관 심곡동 분관 터에 1938년 일왕에게 참배를 강요하던 소사면 신사(神社)가 지어지면서 산 이름이 바뀌었다. 당시 일제에 의해 성주산(聖主山)으로 개명된 것이 지금의 성주산(聖柱山)으로 정착됐다(디지털부천문화대전, ‘성주산’목록). 그렇다면 ‘일제 잔재’가 분명해 보여 개명을 한번 생각해봄 직하다. 지금도 부천시 청사나 멀리 고층건물에서 보면 소가 앉아 있는 모양인 이 산의 본래 이름을 찾아줘야 하지 않겠나.
성주산은 산벚나무와 낙엽송 등 다양한 식생이 잘 보존돼 있고 등산로와 이정표, 중간 중간의 쉼터도 깔끔하게 정비돼 있어 부천시민의 휴식공간으로 손색이 없다. 여우고개 구름다리는 동물의 생태이동통로로 만들어진 것이고 하우고개 구름다리는 사람이 지나는 길이다. 구름다리에서 소래산 정상까지는 3㎞. 다리 주변은 벤치와 탁자 등 쉼터로 조성돼 있다. 이곳에서 성주산 정상까지는 500m도 안될 듯하다.
성주산은 정상 전체가 철책으로 둘러싸인 군보호시설이다. 여기서 오른쪽(서쪽)으로 철책을 따라가면 와우고개를 지나 인천광역시에 속하는 거마산(巨馬山·209m)과 연결된다. 이 산은 다시 남쪽 외곽순환도로 너머 인천대공원의 관모산(180m)으로 이어지는데 비록 도로를 건너야 하는 불편함이 있지만 소래산, 성주산, 거마산, 관모산을 이어 10㎞는 족히 넘을 이 환상(環狀) 종주코스가 큰 산이 없는 인천과 부천, 시흥 시민들에게 요즘 인기를 얻어가고 있다.
성주산 정상에서 왼쪽으로 철책을 따라가면 소래산으로 연결된다. 철책 옆길은 햇살에 노출되기 때문에 그 아래 능선 사면에 난 등산로로 가는 게 좋다. 1㎞ 정도 짙은 녹음이 우거진 길을 걷다 보면 철탑이 하나 나오고 여기부터 소래산으로 접어들게 된다.
이곳에서 정상까지 오르는 길은 거의 나무계단으로 연결해 놓아 편하다. 요사이 많은 근교 산들에 나무계단이 설치되는데, 워낙 산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등산로 훼손을 막는 데 이만한 방법이 없다. 사람 발길만큼 산을 훼손하는 게 없다. 그런데 나무계단을 놔두고 옆에 샛길을 만들며 다니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 솔직히 무슨 심보인지 묻고 싶다. 나무계단을 설치한 정성과 세금을 생각해서라도 쓸데없이 샛길을 내지 말았으면 한다.
소래산 정상은 한마디로 탁 트여있다. 멀리 서해 방면으로 송도신도시에 건설중인 고층빌딩과 문학경기장, 소래포구까지 선명하게 바라다보인다. 서울쪽으로는 한강과 북한산, 관악산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이만한 전망이 없다. 휴일이면 인천을 비롯해 주변 도시민들이 이곳을 많이 찾는다.
알려진 대로 소래산은 660년경 당나라 소정방이 신라와 연합해 백제를 공략하고자 중국 산둥(山東)성의 라이저우(萊州)를 출발해 이곳으로 왔다 하여 소정방의 ‘소(蘇)’ 자와 라이저우의 ‘내(萊)’ 자를 합쳐 ‘소래산’으로 불렀다고 전한다. 그런데 기록으로 입증되는 것은 아니고 좀 작위적인 냄새도 난다. 그보다는 소라처럼 생긴 지형에서 유래했다는 설과 솔숲과 내가 어우러졌다 하여 ‘솔내’에서 유래했다는 설 등이 더 친근감이 든다.
소래산은 시흥과 인천 방면으로 상당히 가파른데, 이 같은 지형으로 인해 행글라이더 마니아들에게 서울 근교에서 가장 좋은 장소로 통한다. 정상에서는 시흥시 대야동 산림욕장 입구로 내려오거나 내원사 쪽으로 하산하는 코스가 있다. 어디로 내려오든 버스편으로 부천이나 인천 방향으로 나올 수 있어 교통도 편리하다. 하산길에 고려 초기의 것으로 알려진 병풍바위에 선각된 국내 최대 마애보살입상을 볼 수 있다.
<출처> 2009-08-28 / 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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