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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 및 정보/- 이스라엘(해외성지)

므깃도, 이스르엘 평야를 지키는 군사적 요충지

by 혜강(惠江) 2009. 7. 13.

 

성지순례 (13) : 므깃도

 

이스르엘 평야를 지키는 군사적 요충지


시대마다 치열한 전쟁으로 정복
·파괴되었던 장소

 

 

글·사진  남상학

 

 

 

 

▲ 멀리서 바라본 므깃도 유적지

 

 

  아마겟돈 전쟁은 과연 일어날 것인가.일어난다면 그 시기는 언제인가.인류종말의 전쟁터로 예언된 성서의 아마겟돈 므깃도를 찾아가는 길은 흥분으로 가득했다. 세 악령이 왕들을 불러 모아 하나님의 군대와 영적 전쟁을 벌이는 곳으로 묘사된 아마겟돈(요한계시록 16장16절)은 먼 곳에 있지 않았다.

  므깃도는 나사렛에서 약 18㎞, 하이파(Haifa)에서 남동쪽으로 약 32km 정도 떨어진 이스르엘 평야에 자리 잡고 있다. 평지보다 50m 높은 언덕에 있는 성읍이다. 이곳은 아마겟돈이라는 말로  더 유명한 군사전략적 요충지 중의 하나다.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아마겟돈(Amageddon)'은 므깃도 산(Har megiddo)이라는 히브리말을 희랍어로 옮긴 말이다.

   이스르엘 평야는 이스라엘에서 가장 비옥한 평야 지대이며 곡창지대로, 므깃도는 고대로부터 이스르엘 평야를 지키는 요새도시였다. 더구나 므깃도는 이스르엘 평야 중에서 동서남북으로 서로 연결하는 중요한 교통의 요지였다. 해안을 따라 애굽으로, 남쪽으로는 사마리아와 세겜을 지나 예루살렘으로, 북쪽으로는 악고를 지나 두로와 시돈으로, 또 갈릴리를 거쳐 다메섹으로, 벳산을 거쳐 암몬으로 연결되는 사통팔달의 교통로여서 지정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이었다.

   따라서 평화시에는 대상들이 왕래하는 길목이었고, 전시에는 북쪽의 앗수르, 바벨론, 페르시아 등이 애굽을 치러 남쪽으로 갈 때, 남쪽의 애굽이 북쪽을 치러 갈 때, 항상 므깃도를 거쳐 가야만 했으므로 이 므깃도는 아군에게는 방어요새로, 적군에게는 점령해야만 하는 교두보로 이용되었다. 그래서 20여회 이상의 국제 전쟁을 치른 지역이었다.

   역사 고고학자들에 의하면, 이 므깃도에는 주전 3천 5백년 전부터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출애굽 당시에는 여호수아에 의해 가나안 땅과 함께 정복되었다. 그 후 다윗왕에 의해 점령되고, 솔로몬 왕은 므깃도의 중요성을 감안하여 하솔, 게셀과 함께 견고한 요새로 구축하였다 한다.(왕상9:15) 그러나 923년경 애굽의 시삭이 므깃도를 파괴하여 그 후 아합 왕 때 다시 재건되었다. 부상당한 아하시아 왕이 여기에서 죽었으며,(왕하 9:27), 요시아 왕은 북진하는 느고 왕의 애굽 군대를 이곳에서 맞아 싸우다가 전사하였다.(왕하 23:28~30) 그 후 이곳은 폐허로 남아 있게 되었다. 그리고 1917년 영국의 알렌비(Allenby) 장군이 터키군을 패배시켜 승리로 이끈 곳도 므깃도였다.

 

 

 

 

 


   이토록 므깃도는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크고 작은 수많은 전쟁을 통하여 점령, 파괴가 반복되는 전쟁터의 상징으로 여겨져 왔다. 더구나 신약의 요한계시록에 이 도시가 헬라어로 음역되어 '아마겟돈' (Armegeddon)으로 등장하는데, 종말에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는 곳으로 표현되어 있는 것(계 16:16)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 도시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이집트 카르낙 신전 벽면에 부조되어 있는 투투모스 3세의 승전 기록인데, 그는 BC 1468 년 므깃도에서의 전투를 승리로 이끈 왕이었음을 자랑하고 있다. 므깃도는 1925~39년 시카고대학의 동양연구소에 의해 발굴되었고, 1960년 니가엘 야딘(Yigael Yadin)이 추가로 발굴하였다. 이곳에서 가나안 원주민들이 만들었던 산당(High Place)식 신전을 발굴하였고, 또한 솔로몬 때 건설한 성벽, 성문, 관저들도 발굴되었다.

   므깃도에서 중요한 것은 '솔로몬의 마병장(Solomon's Stables)이다. 솔로몬은 그 당시 군사력의 상징인 기병대를 육성하여 ‘병거성(City of Chariosts)'과 ’마병의 성(City of Horsemen)‘ 등을 건설하였다. 말의 고삐를 매는 돌기둥들은 약 450마리 정도의 말과 150대의 병거를 수용할 수 있는 큰 규모이며, 중앙에는 말에게 물을 먹이던 큰 물통도 있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이것을 '솔로몬의 마병장'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실제로 발굴된 지층은 솔로몬 왕 때의 주거층이 아니라, 이보다 약 100년 후 아합 왕 때(BC 869-850)의 것이라고 한다. 므깃도는 이러한 병거, 마병성의 하나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특히 주목할만한 것은 성밖에 있는 샘물을 무사히 걸어 올 수 있도록 만든 굴이다. 큰 통로가 지하 10m의 바닥까지 내려 있고 그 통로의 끝에서 바위 구멍을 뚫고 도시 밖의 샘으로부터 도시 내부로 끌어 들이도록 되어 있다. 이것은 적의 외침이 있을 때 성이 포위되더라도 주민들이 생활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밖의 샘 입구는 포위하고 있는 적에게 발견되지 않도록 흙으로 덮여 있다.

   므깃도 정상에서 바라본 이스르엘 평야는 푸른 양탄자를 깔아놓은 듯 평화롭다.그 가운데 기손강이 흘러 평화와 풍요를 상징하는 음악소리가 들리는 듯했다.이런 곳에서 인류 종말의 전쟁이 일어난다니?  므깃도를 방문하는 사람들이 누구나 의문을 품을만하다.

   그러나 요한계시록의 아마겟돈(므깃도)은 수많은 전쟁의 역사로 인해 세상종말의 전쟁터로 기록된 것에 불과하며, 므깃도는 종말이 이루어지는 구체적인 장소가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이 완성될 때의 공간적 상황에 대한 예시로 제시된 것이라고 본다면 잘못일까? 중요한 것은 그곳이 언제, 어디가 되었든 마지막 날을 대비하는 나의 태도가 중요한 것이 아닐까? 



 

* 멀리서 바라본 므깃도

 

* 므깃도 박물관 입구(상), 안내판(하)

 

*므깃도 유적지 모형도  

 

 * 정상의 성읍으로 올라가는 길이 돌계단으로 길게 이어진다.

*정상에 폐허가 된 채 흩어진 유적들*

 

* 굴로 내려가는 계단(상), 물 저장소(중), 수로터널(하)

 

*므깃도 정상에서 내려다 본 평원, 이스라엘에서 가장 비옥한 곡창지대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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