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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및 교회, 학교/- 성지순례(국내)

서울 명동성당, 한국 천주교회의 상징

by 혜강(惠江) 2009. 4. 27.

 

서울 명동성당

 

한국 천주교회의 상징

- 한때 민주화 운동의 성지로 인식되기도 -

 

 

·사진 남상학

 

 

 

한국천주교회의 상징 명동성당 전경


           

 서울 중구 명동은 2가에 있는 한국천주교 서울대교구 본당건물인 명동성당(사적 제258호)은 우리나라 최초의 본당이며 한국 천주교회의 상징으로, 지난 세기 동안 우리 사회와 애환을 함께 나누며 많은 사람들의 가슴 속에 오늘날 한국 사회를 대표하는 상징의 하나로 자리매김해 왔다. 


성당이 자리잡기 전 명례방(명동) 일대

 


  성당이 자리 잡은 명동 일대는 지난날 명례방(明禮坊)으로 불리던 곳이며, 명동성당 앞 고갯길을 북고개 또는 북달재라 하고 한자로 종현(鐘峴)이라 불렀는데, 이 곳은 정조 8년(1784) 우리나라에 천주교가 전래된 직후부터 천주교 신도들의 신앙공동체가 형성되었던 곳이다. 또한 이 일대는 1830년대 이후 선교사들이 은거하며 비밀리에 신앙을 전파하는 선교의 중심지였고, 1845년 조선에 돌아온 우리나라 최초의 사제 김대건(金大建)신부가 활동하던 곳도 바로 명동성당에 이웃한 석정동(石井洞)이었다. 

 

 

명동성당 주변 모습과 명례방공동체

 

 

  고종 19년(1882) 한미수호조약(韓美修好條約)이 체결되면서 종교의 자유가 어느 정도 허용되자 당시 교구장이던 블랑(Blanc)주교가 김가밀로라는 한국인 명의로 이 일대를 매입함으로써 명동성당이 현재의 위치에 터를 잡게 되었다.

 

  역사적으로 종현 일대의 이 터는 원래 이조판서를 지낸 윤정현의 저택이 있던 곳으로 바깥채만 60여 칸 되는 대형 가옥과 함께 김범우(토마스) 명의의 명례방 터를 구입하여 블랑 주교가 그대로 이용, 우선 신학생 교육을 위한 종현서당을 설립 운영하였다.

 

 

성당 전면에 세운 예수상과 명동 성당, 입구와 중앙문


 

   블랑 주교의 뒤를 이은 뮈텔(Mutel) 주교는 1892년 8월 5일 정초식을 가지면서 한국 교회를 위해 일했던 주교와 선교사, 은인들의 명단을 머릿돌 밑에 묻고 머릿돌을 축성 기초하였다. 성당의 설계와 공사 감독은 코스트(Eugene Coste) 신부가 맡아 진행하였다.


  그러나 1896년 2월 코스트 신부가 선종함에 따라 프아넬(V. L. Poisnel) 박신부가 업무를 이어받아  1898년 5월 29일 명동 성당의 전신인 종현 성당(鐘峴聖堂)을 완성,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 봉헌하였다. 역사적으로는 한국 근대 건축사에서 가장 규모가 큰 첫 고딕 양식 건축물(사적 제258호)로 기록된 성당이다. 1945년 광복을 기점으로 이름을 종현 성당에서 명동 성당으로 개칭했다. 현재는 서울대교구 주교좌 명동대성당이라 칭하고 있다. 

 

 

 

주교좌 본당의 측면과 후면 모습 

 


   명동성당은 벽돌로 쌓은 우리나라 최초의 교회로 평면은 라틴십자형 삼랑식(三廊式)이며 본당 길이가 68.25m, 폭29m, 높이 23m, 십자가를 제외한 종탑 높이가 45m, 면적 1453㎡이다. 건축양식은 고딕양식이지만 일반적 고딕양식인 석조(石造)가 아닌 연화조이기 때문에 고딕양식의 장중함은 덜하지만 가능한 한 벽돌로 고딕적인 디테일을 추구하였다.


  건물의 배치형태는 정북에서 30.5도 서쪽으로 기울어진 북북서 쪽에서 입구를 냈다. 주요 목구조부(木構造部)로는 지붕의 트러스트구조, 내부의 궁륭천장구조, 종탑의 종지지(鐘支持)구조와 뾰족탑 등을 들 수 있다. 건축에 사용한 벽돌은 우리나라에서 만든 적색 및 회색 2종류를 이용했다. 

 

 

 

본 성당 내부 모습과 옆 스테인드그라스상 유리화 및 영성체 난간  

 

 

  내부는 왼쪽에 1952년 설치한 79위(位) 복자 제대(祭臺) 및 복자 상본(像本)과 예수성심상이 있으며, 오른쪽엔 세례를 위한 세두대(洗頭臺) 대리석과 건축가의 주보성인 성베네딕토 상이 있다. 교구장석 강론대(講論臺)는 프와넬 박 신부의 고향에 있는 성당의 강론대를 모방한 것이라 한다. 후에 뒷면 성가대석에 한국 최초의 파이프오르간이 설치되었다.

 

 

▲ 위로부터 지하성당 입구, 고해소 및 지하성당 유해실 모습 

 


   1900년 9월 10일 베르뉘(Berneux)주교 등 병인박해시 순교하신 순교자들의 유해를 용산 신학교로부터 대성당 지하묘소로 안치하였으나 이후 연고지로 옮겨 모셨고, 1926년 기해교난과 병오교난시의 순교자 79위의 영광스러운 시보식 후 복자들의 유해를 지하묘소에 모신 후 대성당 좌측 회랑에 복자제대를 설치하고 79위 복자 성화를 모셨다. 

 

 

 

▲ 위로부터 성모동굴, 성모동상

 

 

사제관

 

 

▲위로부터 사제관 뜰에 있는 고난의 예수, 최초의 사제 순교자인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상 *

 

 

    그리고 경내에는 기도동굴이 있으며, 성모동상이 있다. 주교좌성당 오른쪽에는 바오로교육관이 있고, 왼쪽으로 돌아가면 사제관과 수녀관이 있다. 

 

 

 

 

 

  ‘주님의 집이 서 있는 산은 모든 산들 위에 굳게 세워지고 언덕들 보다 높이 솟아오르리라.’(이사야 2,2)라는 말씀처럼, 명동 성당은 가톨릭 정신 구현의 중심지인 동시에, 1980년대에는 민주화 운동에 관련된 수배자나 시위대가 공권력을 피해 명동성당으로 모여들어 민주화 운동의 성지로 인식되기도 하였다. 어쨌든 명동 성당은 한국 정신의 지주로서 변해가는 사회의 시대적 흐름에 발맞추어 가고 있다. 


   성당을 둘러보고 내려오는 길에 안내판에 붙은 한 장의 홍보포스터 앞에 섰다. 얼마 전 선종한 김수환 추기경에 관한 것이었다. 천주교인은 아니지만 신앙을 가진 자로서 그의 위대한 산앙과 삶의 모습 앞에 존경의 고개를 숙이지 않을 수 없다. 

 

 


   김수환 추기경,  2009년 2월 16일  그는 갔다. 40년 가깝게 한국 가톨릭교회의 상징적 인물이었던 김수환 추기경은 교회의 쇄신과 현대화에 각별한 관심을 가졌다. 인류 발전을 위한 공동선(共同善)을 추구했고, 사회복지와 사회정의를 구현하기 위한 노력이 교회의 고유 사명 가운데 하나임을 분명히 했다.

 

  교회가 영혼의 구원에만 집착하기보다는 인간의 보편적 구원에 관심을 가져야 함을 밝혀주었다. 그는 한국 천주교의 진행 방향을 제시했고, 교회의 쇄신을 주도했다. 그래서 그는 한국천주교회사에서도 중요한 업적을 남긴 인물로 평가될 것이다.

  그는 신앙인으로서 자신이 믿는 하느님이 자신만이 아닌 만인(萬人)의 하느님임을 알고 실천했다. 그는 모든 문화에 절대자의 축복이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러기에 그는 자신의 신앙이 중요한 만큼 다른 이의 신앙도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신앙에 대한 그의 이런 태도는 다종교 사회인 한국에서 종교 간의 협력과 평화를 이끌어내는 데 기여했다. 이 점은 그가 한국 현대종교사의 전개에 이바지한 중요 측면으로 기억될 것이다.

  김수환 추기경이 세상을 떠나자 많은 사람이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이는 그들이 어려웠던 시절 그가 고통을 함께하는 사람이었고, 희망의 전령사였기 때문일 것이다. 분열과 갈등으로 얼룩진 역사를 바로잡고자 노력했던 그는 갔고 그의 시대는 끝났다. 사랑과 정의가 함께하는 사회, 화해와 일치 그리고 순리가 통하는 새 역사를 이루는 일은 살아남은 사람들의 몫이 됐다. 강은교 시인은 그를 추모하여  "길 위에서 길을"이라는 추모시를 썼다. 

  지금쯤 어디메 하늘길 가고 계시는지요?/ 아니 다 가셨는지요?
  여기선 하늘이 참 멉니다./ 흐린 구름살(肉)만이 헌 돛처럼 펄럭거리고 있습니다
  길도 우리의 길이 아닙니다/ 어둠의 발소리 길 위에 가득 울릴 뿐입니다/
  시간의 잔기침소리 길 위에 가득 춤출 뿐입니다
  길 위에서 길을 잃었습니다./ 언제나 길이셨던 당신
  언제나 출렁이는 잎이셨던 당신
  아, 스테파노 님/ 지금쯤 어디메 가셨습니까
  우리 길 위에서 길 잃었을 때/ 어디메 쯤에서 당신의 뿌리 출렁이고 계시렵니까
  분홍 종소리가 울려오고 있습니다./ 당신의 뿌리가 달려오는 분홍 종소리 위에 사뿐 내려 앉는군요
  내려와 어느새/ 저녁 걸어오는 세상 받쳐드는군요
  아, 스테파노님/ 그 분홍 종소리 위에서/ 오늘 당신은 불멸(不滅)이십니다.
  당신이 불멸이시니/ 오늘 우리도 불멸입니다
  그 잎 주십시오/ 그 살(肉) 주십시오
  그 향기 주십시오/ 그 뿌리 주십시오
  우리 당신으로 하여 우리의 불멸 깊이깊이 받사오리니.


  그리운 추기경님, 또 뵙고 싶습니다.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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