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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기 및 정보/- 충청북도

충주 미륵사지, 월악산 국립공원 내 석불의 미소

by 혜강(惠江) 2009. 3. 23.

 

충주 미륵사지 

 

월악산 국립공원 내 석불의 미소

 - 마의태자와 덕주공주 남매의 전설이 서린 곳 -  

 

 

·사진 남상학

 


 

 

* 산세가 수려하고 역사 유물이 많은 월악산은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

 

 

국립공원인 월악산(月岳山)은 제천시 덕산면과 한수면계에 위치한 해발 1,097m의 월악 영봉(靈峰)을 비롯해 부근의 주흘산(1,106m)과 문수봉(1,162m), 하설산(1,028m) 등 16개의 산봉우리와 송계계곡(약 4,000m), 선암계곡(약 5,000m), 덕주골 등 풍부한 관광자원을 가지고 있다. 월악산국립공원은 1984년 12월 31일에 우리나라 20개 국립공원 중 17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는데, 월악산 주변의 금수산과 도락산, 충주호에 떠 있는 옥순봉과 구담봉까지 공원지역으로 포함되어 있다.

 

 

* 멀리 보이는 월악산의 한 모습(위)과 덕주산성 내의 마애불 * 

 


  월악산은 한수면(寒水面)의 덕주사(德周寺)에서부터 덕산면(德山面) 신륵사(神勒寺)에 이르기까지 뛰어난 경관을 이룰 뿐만 아니라 계곡마다 많은 유적이 있다.  


  당당한 월악산의 위용과 더불어 여름철에는 풍부한 수량의 계곡물이 무더위를 잊게 하며, 겨울철 눈 쌓인 산과 계곡은 가히 신선들이 노닐던 경치라 할 만큼 아름다운 절경을 이뤄 제2의 금강산, 또는 동양의 알프스라 불린다. 인근에 드넓은 충주호와 수안보온천(水安堡溫泉), 미륵사지(彌勒寺址) 등이 있어 주말 가족 나들이에 더없이 좋다.  


* 하늘재 *

 

   월악산 입구 충주시 상모면 미륵리(彌勒里)에서 경북 문경으로 넘어가는 하늘재는 지리적 요충지.<삼국사기>에 의하면 신라 8대왕 아달라왕이 156년에 북진을 위해 길을 뚫었다고 적고 있다. 고대 국가의 기틀을 갖추기 시작하던 초기 신라 사람들이 영토 확장을 위해 개척한 옛길‘계립령’이 바로 하늘재다.


  이름만 봐선 하늘과 맞닿은 고개 같지만, 실제로는 해발 고도 525m로 그리 높지 않다. 이곳을 통해 신라는 중원을 꿈꿨고 고구려와 백제는 남녘 바다를 도모했다. 세력 다툼의 접점인 탓에 싸움이 빈번할 수밖에 없었다.


* 미륵사지 안내도 *

 

 

   하늘재 아래 위치한 미륵사지는 수안보 온천에서 동남쪽으로 11km지점, 송계계곡 상류에 있는 아름다운 폐사지다. 전북 익산에도 같은 이름의 미륵사지가 있는데, 익산의 절터가 도회지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면 충주의 미륵사지는 심심산골 외진 곳에 틀어박혀 있는 것이 다르다.



* 미륵사지 입구에 세운 안내판 *

 


  1977년 청주대 발굴 팀에 의해 세상에 드러난 이곳의 미륵사지는 고(古)기록에 전하는 계립령과 충북과 경북을 연결하는 하늘재 사이의 분지에 남북향으로 펼쳐져 있다. 이는 남쪽이 높고 북쪽이 낮은 이곳 특유의 지형 때문이라고 하지만, 후일 삼국을 통일한 후 북쪽 고구려 땅을 되찾겠다는 염원을 가득 담고 있는 것은 아닐까.


* 미륵사지의 석불 입상 뒤로  멋진 산봉우리가 이어져 있다. * 

 

 

  미륵사지는 마의태자(麻衣太子)와 덕주공주(德周公主) 남매가 금강산에 입산하던 도중에 이곳에 머물러 사찰과 미륵, 탑 등을 세웠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마의태자는 신라의 마지막 왕 경순왕의 아들로 나라가 망하자 금강산으로 들어가 베옷을 입고 풀뿌리와 나무껍질을 먹으며 일생을 마쳤다고 한다.


 금강산으로 가던 중 누이인 덕주공주는 월악산에 덕주사를 세우고, 마의태자는 이곳에 석불을 세웠는데, 덕주공주가 세운 덕주사가 바라보이도록 불상을 북쪽으로 향하게 세웠다고 전한다. 


  확실한 창건연대는 알 수 없으나 신라 말에서 고려시대에 걸쳐 크게 번창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1987년 7월 10일 사적 제317호로 지정되었다. 오래전에 소실되어 현재는 넓고 네모반듯한 절터에 여기저기에 고려 때의 것으로 추정되는 석불입상과 석탑, 석등, 주춧돌, 돌거북 등 다수의 석조물만이 남아있다. 


 

  * 석실에 둘러싸인 석불입상(위)과 설명판 * 

 


   미륵당 석굴에는 높이가 9.8m의 석불입상을 세우고 불상전면을 제외한 3면에 높이 6m의 석축을 쌓아 놓았는데 특이한 것은 이 석축은 불에 심하게 타서 돌이 탄 흔적이 역력하여 석축에 조각된 불상의 모습을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화상과 손상이 되었는데 본존불상인 미륵입상 두상 부분은 전혀 불에 탄 흔적이 없이 매끄러운 형태로 남아 있어 많은 의문점이 되고 있다.  


  일부에서는 화재로 손상된 얼굴을 파불 처리하고 새로 조성된 것이라고는 하지만 석불우측 3백m지점에 파불이 거꾸로 쳐 박혀 있는데 이 또한 깨끗하다는 점에서 더 더욱 신비롭다. 


* 둥근 얼굴과 활 모양의 눈썹, 넙적한 코 등이 정감 있고 친근한 석불 *



  보물 제96호로 지정된 석불입상은 높이 10.6m로, 1개의 돌로 조각한 것이 아니고 화강암 덩어리 6개를 탑처럼 쌓아 올려 조성한 석불이다. 누가 쌓은 것일까. 지방 호족이 세를 과시하기 위해 경주의 석굴암을 흉내 낸 게 아닐까 한다. 고도로 세련된 경주의 석굴암에 비하면 덩치만 커다란 엉성한 석불이지만 둥근 얼굴과 활 모양의 눈썹, 넙적한 코 등이 정감 있고 친근하다. 

  석불이 바라보고 있는 것은 치맛자락 펄럭이는 듯한 월악의 고운 산자락들. 정면으로 뻗은 월악 송계계곡이 심심산골 한복판에 시원하게 시야를 뚫어낸다. 석불도 뒤편의 꽉 막힌 산자락을 보고 면벽수도 할 생각이 없었던 모양이다. 지붕도 없이 바위 산 가운데 덩그러니 서 있는 석불입상 앞에선 한 스님이 목탁을 두드리며 '미륵존불(彌勒尊佛), 미륵존불…'을 읊고 있었다. 참배객 한 사람이 스님 뒤에서 절을 하고 되돌아 나올 뿐 주위는 고요하다.

 

 * 석불이 있는 곳에서 바라본 북쪽의 월악영봉(위)과 석불 *

 

 

  부드러운 미소의 석불도 볼거리지만 석불이 들어앉은 돌집이 이색적이다. 거대한 무사석들을 쌓아올려 높이 6m의 형 석실을 구축하였고, 석불은 ㄷ자 모양으로 앞이 터진 돌집 한복판에 우뚝 솟아 있다. 경주의 석굴암처럼 석굴 안에 석불을 들어앉힌 모습이다. 


* 오층석탑(위)과 석등(가운데와 아래) * 

 


   석실 앞에는 지방문화재 19호인 석등과 보물 95호인 5층 석탑이 있고, 사각석등, 당간지주, 3층 석탑 등이 있다. 산재되어 있는 유물로 보아 미륵리 사지가 어느 정도 컸다는 것이 증명되고 있다.

 

* 온달장군의 전설을 간직한 공기돌 바위 *

 

  이 외에도 절터 옆에는 기이하게 생긴 둥그런 바위 하나가 눈에 확 들어온다.  미륵사지 내에 있으나 미륵사지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자연적인 바위에 약간의 인공이 가미된 바위로 생긴 모양이 거북이와 비슷하다 하여 거북바위라 불리우는 바위 위에 올려져 있는 직경 1m 가량의 둥근돌(공기돌) 바위로 온달장군의 전설로 인해 공기돌 바위로 알려진 바위이다.  


  누가 둥글게 깎아 올렸을까? 천연 바위 위에 옿인 돌덩이는 온달장군이 갖고 놀던 공깃돌이란다. 고구려 평원왕(平原王) 때 신라군과 싸우기 위해 월악산에 주둔하던 온달장군이 '바위 공깃돌'로 힘자랑을 했다는 것이다. 힘껏 손으로 밀어 봐도 꿈쩍하지 않는 거대한 돌을 공깃돌 삼아 놀았다니, 그야말로 '전설 같은 얘기'다. 


 

* 비석의 받침돌로 쓰인 거북바위와 귀두 *  

 


  미륵사지의 또 다른 볼거리는 거대한 돌 거북이다. 길이 6m가 넘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거북 모양 비석 받침돌이다. 우리나라 최대의 거북모양 비석 받침돌로 원위치에 있는 거대한 바위를 다듬어서 만든 것으로 보인다. 위치로 보아 사적비를 세웠던 받침으로 추정되는데 비신은 없어지고 등에는 비좌의 조출이 없이 비신을 꽂았던 구멍만 뚫어져 있다.


  좌측 어깨 부분에 작은 거북 두 마리가 기어 올라가는 형태를 음각하였고 앞쪽 발은 비교적 사실적으로 표현 하였으나 형식화 되었다.거북의 머리는 힘없이 앞으로 내밀어져 있고 등의 구갑문도 생략되는 등 규모만 크고 조각이 약소한 귀부이다. 신라 후기와 고려 전기의 것으로 짐작된다. 


 * 미륵사지 내의 미륵대원 터 *



  폐사지 바로 옆에는 고려 때 길손이 묵던 커다란 역원의 흔적인 미륵대원 터가 남아 있다. 이 옆으로 해서 오르면 하늘재다. 미륵사지가 있는 미륵리에서 월악산 서쪽으로는 8km에 걸쳐 송계계곡이 펼쳐진다. 이름 그대로 울창한 송림과 옥같이 맑은 계곡이 기암괴석과 어우러져 절경을 빚어낸다.


  넓은 바위틈 사이로 작은 폭포를 이루는 팔랑소, 용이 트림하는 듯한 와룡소, 단양의 사인암을 닮은 망폭대 등 기암괴석이 줄을 잇는다.


* 월악산 정상인 영봉 *

 


   기암괴석으로 이뤄진 영봉은 신비스러운 분위기마저 자아낸다. 특히 충주호변에서 보면 숲과 호수, 기암괴석이 어우러져 관광객들의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송계 1경으로 꼽힌다. 월광폭포도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 높이 30m의 폭포수가 찾는 이들을 압도한다. 송계 2경이다.  


  백색암반과 숲이 조화를 이룬 자연대도 좋고, 신라 때 월악신사를 지어 하늘에 제사를 올렸다는 수경대도 볼 만하다. 학소대는 학이 서식했다고 해서 이름이 붙여진 곳으로 층층이 쌓인 기암이 눈길을 끈다. 영봉에 오르면 자연대, 학소대, 수경대, 덕주산성 동문, 덕주사를 모두 볼 수 있다. 


 

* 덕주산성 내성의 북문 *

 

 

먹을거리


  미륵사지 가는 길목에는 꿩요리 전문 음식점이 줄을 잇는다. 꿩요리에 관한 한 중원지역은 전국에서 첫손 꼽힌다. 꿩 한 마리를 가지고 부위별로 각양각색의 요리를 만들어내는데 그 맛이 모두 색다르고 감칠맛을 낸다. 꿩 앞가슴 부위를 가지고 만든 샤브샤브, 날개죽지 부위로 만든 튀김 그리고 나머지 부분을 이용해 탕수육, 육회, 말이, 만두, 스테이크, 보쌈 등을 절묘하게 만들어낸다. 장군식당(043-846-1757, 6076), 감나무집(043-846-0609)이 유명하다. 또 미륵사지 입구에는 뜨끈뜨끈한 손두부를 즉석에서 만들어 파는 민속음식점이 굴뚝에서 뽀얀 연기를 빼 올리며 운치 있게 자리하고 있다. 

가는 길


  중부내륙고속도로를 이용하는 게 빠르다. 괴산인터체인지에서 나와 수안보 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수안보온천단지에서 597번 지방도로를 타고 송계계곡 쪽으로 달리면 미륵사지 입구가 나온다. 중부고속도로를 이용하려면 음성 인터체인지에서 빠져 나와 지방도 518번을 타고 좌회전해 금왕, 충주 방면으로 향한다. 국도 3번과 만나는 오생 3거리에서 우회전해 주덕-달천 4거리에서 건국대 충주분교 쪽으로 우회전한다. 4차선으로 뚫린 국도 3번을 타고 계속 달리면 수안보를 지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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