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국내여행기 및 정보/- 충청북도

충북 보은, ‘크고 높은 풍경’을 찾아

by 혜강(惠江) 2008. 12. 26.

충북 보은

 

‘크고 높은 풍경’을 찾아, 나 무릎 꿇을 밖에

 

 

박경일 기자

 

 

▲ 보은의 삼년산성에 오르면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역사를 되짚어보기도 전에 먼저 거대한 성곽의 풍모앞에 압도당하게 된다. 성곽을 딛고 도는 길에서는 속리산의 주능선이 주르륵 펼쳐진다

 

 

   충북 보은에는 도처에 ‘크고 높은’ 풍경이 있습니다. 먼저 널리 알려진 것만 꼽아봅니다. 속리산 법주사의 우람한 금동미륵불이 그렇고, 가지를 높이 뻗어올린 정이품송이 그렇습니다. 이것만이 아닙니다. 보은에는 까마득한 높이로 세워진 웅장한 삼년산성이 있고, 무려 22년 동안 지어진 99칸짜리 집 ‘선병국 가옥’이 있습니다. 미륵불이나 정이품송이야 워낙 잘 알려져 그렇다고 쳐도, 산성과 가옥의 규모는 탄성이 나올 정도로 대단하답니다.

난공 불락의 요새. 충북 보은의 ‘삼년산성’ 서문지 쪽의 성벽에 올랐습니다. 이처럼 까마득한 높이의 성벽은 처음입니다. 성벽의 높이는 20m가 넘습니다. 성벽 위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기에도 아슬아슬하고, 성벽 아래서 올려다보기에도 까마득한 성은 그야말로 웅장했습니다.

삼국시대였다지요. 보은 일대는 신라, 고구려, 백제가 치열하게 다투던 영토분쟁 지역이었고, 상주 사벌성을 점령한 신라가 자비왕 13년(470년)에 한강유역으로 진출하기 위해 이 성을 쌓았다고 했습니다. 무려 1500년도 더 된 아득한 세월이지요. 한때 관산성 전투 부대가 이곳에 있었고, 태종무열왕이 이곳에서 당나라 사신을 접견했으며, 헌덕왕 때 김헌창반란군이 여기서 무릎을 끓었다는군요.

그러나 이런 역사보다도, 성 앞에 서면 그 규모와 웅장함에 먼저 입이 딱 벌어지고 맙니다. 3000여명의 인부들이 3년에 걸쳐 한장 한장 납작한 돌을 골라 쌓아올린 정성의 흔적 앞에서는 감탄사가 먼저 터져나옵니다.

이렇듯 웅장하고 장대한 성을 쌓은 이들의 의지, 혹은 난공불락의 요새와도 같은 이 성을 무너뜨리러 나섰던 이들의 집념에 먼저 마음이 가닿는 것이지요. 보은에는 속리산이며 법주사며 정이품송 등 이름난 명소들이 곳곳에 있지만, 보은군의 학예사는 “삼년산성 하나만 제대로 봐도 ‘본전’은 뽑는다”고 했습니다.

여기다가 독특한 느낌의 ‘선병국 가옥’은 또 어떻구요. 호남지방 제일의 만석꾼이던 보령 선씨 일가가 당대 제일의 풍수지리 대가와 함께 ‘큰 인물이 나올 땅’을 찾아 전국을 유랑하다가 잡은 땅이 이곳 속리산 아래 자락이었습니다.

뒤로는 속리산이 솟아있고 앞으로는 맑은 물이 굽이쳐 흐르는 너른 들이 펼쳐진 이곳은 문외한이 한 눈에 척 봐도 ‘명당중의 명당’으로 꼽힐 만합니다. 구한말 지어진 이 집은 장대합니다. 끝간데 없이 이어진 집 담 안쪽에도 찻길이 뚜렷할 만큼 큰 규모입니다. 집이라기보다는 ‘마을’의 규모에 더 가깝지요. 여기에 공(工)자 모양의 안채와 사랑채가 웅장하게 들어서있습니다. 마당에는 장독대가 즐비합니다.

구한말에 지어진 집이라 그리 오랜 시간이 묻어있지는 않지만, 옛 것을 잘 간수해 오롯이 남겨놓은 집주인의 정성에 마음이 따뜻해지는 곳입니다. 따지고 본다면 외진 곳에 자리잡고 있어 목적지가 아니고서는 지나칠 일이 없는 보은 땅의 때묻지 않은 풍경이 다 그런 듯 싶었습니다.

 

 

 

복잡한 세속 떨치고 담담한 여유 되찾다

 

 

▲ 505번 지방도로를 따라가는 삼가천에서 만난 풍경. 서원계곡을 따라 흘러내리는 맑은 물길 주변으로 갈대 숲이 넓게 펼쳐져있다. 겨울 햇볕을 받아 반짝이는 갈대의 모습이 매혹적이다

 

 

▲ 법주사 천왕문 앞에 수문장처럼 서있는 두 그루의 전나무. 발돋움을 하듯 하늘을 향해 높이 둥치를 뻗고 서있다.

 

 

 

# 불법이 안주하는 절집… 법주사에 들다.


  충북 보은군. 그동안에는 뜻을 새겨 보겠다는 생각없이 무심히 지나쳐 갔지만,‘보은(報恩)’이란 곧‘은혜를 갚는다’는 뜻이다. 이런 이름에 숨은 이야기 하나쯤 없을 리 없다. 때는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태조 이성계의 다섯째 아들 이방원. 훗날 정종에 이어 태종대왕으로 왕위에 오른 그는 왕권 계승을 위해서는 피도 눈물도 없었다.


  정종에 이어 신덕왕후 강씨의 소생인 일곱째, 여덟째 왕자가 세자로 옹립될 기미를 보이자, 방원은 심복을 시켜 무참하게 살해했다. 이른바 ‘왕자의 난’이다. 훗날 방원은 태종으로 왕위에 오르지만, 두 동생을 살해한 사실은 원죄처럼 따라다녔다. 이에 태종은 속리산 법주사에서 두 왕자들의 원혼을 달래는 천도불사를 크게 벌여 위로했고, 이 불사 이후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던 죄책감이 씻은 듯 사라졌단다. 그래서 당초 ‘보령’이었던 이 지역 이름을 보은이라고 칭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보은이라면 곧 속리산과 법주사, 그리고 정이품송을 떠올리게 된다. ‘속리(俗離)’란 산 이름이 ‘속세와 이별한다’는 뜻이니, 법주사가 아니더라도 속리산은 이른바 ‘불법의 산’이겠다. 법주(法住)란 이름도 ‘법이 안주할 수 있는 탈속의 절’이란 뜻이니 산과 절집의 이름이 대구를 이루는 셈이다. 신라 진흥왕 때 불법을 구하러 천축국으로 건너간 의신조사가 경전을 얻어 귀국해 창건했다는 법주사는 높이 33m의 금동미륵대불로 유명하지만, 그보다 목탑형식으로 지어진 팔상전과 팔상전 뒤편의 쌍사자 석등이 보여주는 풍경이 더 깊고, 또 짙다.

  국보며 보물들이 즐비한 법주사에서 유독 눈길을 붙잡은 것이 고통스러운 듯 그릇을 받쳐든 모습의 희견보살상이다. 희견보살은 몸과 뼈를 태우면서 아미타불 앞에 공양을 하는 보살.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강한 의지를 배양하라’는 뜻으로 세운 것이라는데, 그래서일까. 이즈음같은 혼란스러운 세상에 이 초라한 불상이 더 새삼스러운 것은….


# 이렇듯 웅장한 성이 있다니… 삼년산성에 오르다,


  충북 보은은 5세기 후반 고구려와 백제, 신라가 국경을 맞댄 곳이었다. 당시 백제와 고구려는 보은 일대에서 밀고 밀리는 싸움을 벌이고 있었고 여기에 신라가 뛰어들었다. 지금이야 보은은 외진 고을이지만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영남에서 추풍령을 넘어 서울로 가자면 보은 땅을 밟아야 했다. 서북진을 하려던 신라와 남진을 꿈꾸던 백제는 이곳에서 치열하게 맞섰다.

  삼년산성은 신라 자비왕 13년(470년)에 축조한 성곽으로, 3000명의 인부를 동원해 3년 동안 쌓았다고 해서 ‘삼년’이란 이름이 붙었다. 지금이야 보은을 찾는 이들은 법주사와 정이품송만 휘 둘러보고는 돌아가버리고 말지만, 삼년산성은 보은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있는 곳이다. 백제 성왕을 공격한 신라의 관산성 전투부대가 이곳 삼년산성에 주둔하고 있었고, 태종무열왕이 당나라 사신을 접견한 것도, 후삼국시대 고려왕건이 패퇴해 물러간 곳도 바로 이곳이었다.

  보은은 신라 멸망 후 보령군이 됐다가, 조선 세조 때 보은군으로 개칭했지만, 이전까지는‘삼년산군’ 혹은 ‘삼년군’이란 이름으로 불렸다. 물어볼 것도 없이 모두 삼년산성에서 따온 것이었다. 이런 역사적인 사실이 아니더라도, 삼년산성은 성광의 웅장함만으로도 감탄사를 터뜨리게 한다. 수직으로 선 성벽의 높이는 까마득하다. 조선시대 축조된 성곽들이 대부분 3m 정도에 불과한데, 삼년산성은 낮은 곳도 13m에 달하고 높은 곳은 20m를 훌쩍 넘어선다.

  근래 복원된 서문 쪽으로 샛길을 따라 올라 성벽 아래 서면 산 허리를 휘어감는 성의 위용에 압도당하고, 성벽에 올라보면 아찔한 높이에 다리가 후들거린다. 더구나 놀라운 것은 이렇듯 크고 작은 돌을 높이 쌓아올렸는데도, 돌 사이에 작은 틈 하나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정밀하게 축조됐다는 점이다. 산성에 오르면 속리산이 눈앞으로 다가온다. 속리산을 내다보며 걷는 호젓한 산책로로 이곳만한 곳이 또 있을까.

 

# 고즈넉한 505번 지방도로를 따라가는 길. 

  속리산으로 오르는 진입로와 법주사에 이르는 길은 다른 관광지만큼 북적거리지만, 그곳만 벗어나면 보은 땅은 고즈넉하다. 국토의 교통망이 대전을 축으로 이어지면서 철도며 고속도로는 죄다 보은을 비켜갔다. 지난해 연말, 청원~상주를 잇는 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전보다 나아지긴 했으되, 그래도 보은은 여전히 목적지가 아니라면 거쳐 갈 일이 없는 ‘숨은 땅’이다. 이런 연유로 보은의 국도변에는 그 흔한 모텔이나 ‘가든’이란 이름의 갈비집이며 오리탕집들을 찾아보기 어렵다. 대신 속리산 자락에 기대선 고만고만한 마을들이며 맑은 냇물이 어우러져 평안한 농촌풍광을 보여준다.

  그 중 가장 빼어난 곳이 외속리에서 내속리로 이어진 505번 지방도로다. 삼가천과 서원계곡을 끼고 달리는 이 길 위에 오르면 멀리 속리산의 암봉들이 주르륵 펼쳐지고, 오른쪽 왼쪽으로 따라오는 삼가천에는 무성한 갈대들이 햇볕에 반짝거리며 바람에 몸을 맡기고 있다. 물가에 피어난 갈대들은 나긋나긋 바람에 몸을 누이며 평화로운 풍경을 그려내고 있다. 자그마한 정자를 지으면서 지붕 위로 솟은 느티나무 가지를 그대로 살려두었다.

  솟은 나뭇가지가 자랄 수 있도록 지붕에 구멍을 뚫어둔 모습에서 마을 주민들의 운치와 여유를 느낄 수 있다. 이 길에서는 가지를 옆으로 뻗은 수령 600년의 장대한 소나무 한그루를 만날 수 있다. 속리면 상판리의 정이품송과 내외지간이라고도 해서 ‘정부인 소나무’로 불리는 것이다. 정이품송이 곧게 하늘로 뻗은데 반해, 이 소나무는 활개를 치듯 옆으로 가지를 뻗어냈다. 높이는 15m이지만, 폭이 23m가 넘는다. 정이품송이 병충해에 시달리고 가지가 부러지면서 옛 기상을 잃은데 반해 이 소나무는 싱싱한 진초록빛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


# 정성과 시간으로 지어진 99칸 대갓집에 들다. 

  505번 지방도로는 또 보은에서 놓칠 수 없는 명소인 ‘선병국 가옥’으로 찾아드는 길이다. 삼가천을 끼고 들어선 선병국 가옥은 보성 선씨의 종갓집이다. 호남 제일의 만석꾼이었던 보성 선씨 가문에서 당대 최고의 풍수지리 대가와 전국을 돌며 찾아낸 풍수지리의 명당터에 1903년부터 1925년까지 무려 22년 동안 지어낸 집이다. 이 집은 ‘정성’과 ‘시간’으로 지어진 것이다. 구한말 몰락해가던 조선왕실의 도편수를 ‘스카우트’해서 집을 짓기 시작했다. 속리산의 우람한 적송을 베어낸 뒤 1년6개월 동안 그늘에서 건조한 뒤에야 목재로 썼다. 집은 궁궐을 제외한 민간에 허용되던 99칸까지 지었다. 일제시대 철거당한 서당 관선정까지 합친다면 도합 134칸에 달했다.

  구한말에 지어진 이 집은 땅을 넓게 잡고, 건축물을 작게 앉힌 전통 한옥과는 다르다. 집 담 안으로 차들이 다니는 길이 있을 정도로 드넓은 터에 집을 들였으되, 똑같이 공(工)자 모양으로 화강석 위에 올려 지어진 사랑채와 안채 건물은 기왕의 전통건축물보다 크고 또 우람하다. 길게 이어진 행랑채와 헛간은 10년 넘게 고시원으로 운영하는 중이다. 사람들의 숨결이 들지않으면 쇠락하고 마는 한옥에 온기를 들이고자 했던 집주인의 선택이었다. 이 고시원을 거쳐간 고시생만 4000명을 헤아린다니, 한때 인근 선비들에게 학문을 가르쳤던 서당 관선정의 전통을 이어가는 셈이다.
 

법주사앞 맛집 즐비, 대추왕순대찜 독특

 

가는 길 묵을 곳 먹을 것

 

◆ 보은 가는 길 = 경부고속도로로 청주를 지나 청원갈림목에서 상주방면 30번 고속도로로 갈아타고 보은 나들목으로 내려서면 바로 보은읍내다. 보은읍에서 25번 국도를 타고 가다 말티재를 넘는 37번 국도로 올라서면 정이품송을 거쳐 법주사까지 가닿게 된다.

보은읍에서 상주로 이어지는 25번 국도를 계속 타고 가면 ‘선병국 가옥’과 서원계곡으로 이어지는 505번 지방도로를 만난다. 삼년산성은 보은군청에서 5분 거리에 있고, 표지판도 잘 돼 있어 쉽게 찾아갈 수 있다. 산성은 중턱에 있어 차에서 내려 황토로 포장된 부드러운 언덕을 5분 정도만 걸으면 된다. 성곽에 올라 한바퀴를 도는데 40분 정도 걸린다.

◆ 어디서 묵고 무엇을 맛볼까 = 법주사 입구에는 여관과 식당들이 즐비하다. 가족단위라면 속리산 말티재휴양림이 첫손 꼽히는 숙소다. 주말에는 예약손님들이 밀려 방잡기가 거의 불가능하지만, 주중이라면 쉽게 방을 얻을 수 있다. 맛집으로는 한정식을 내놓는 경희식당( 043-543-3736 )이 가장 유명한 곳이다.

백운호텔 맞은 편의 풍미식당( 043-...)도 튀각으로 만들어낸 산약초로 알려진 곳이다. 가야식당( 04...)은 얼큰한 버섯전골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집이다. 읍내에서는 순대를 내는 국보식당( 043-54...)이 추천할 만하다. 만두찜기에 올려서 내놓는 대추왕순대찜(사진)이 독특하다. 신라식당( 043-544-2869 )의 된장뚝배기와 북어찌개 등도 좋다.

 

 

 

<출처> 2008-12-23 / 문화일보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