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팔공산
소원 빌러 가는 길 ‘팔공산 석굴암·갓바위’
박경일기자
▲ 경북 군위의 삼존석굴. 까마득한 벼랑의 자연 동굴을 다듬어서 석불을 앉혔다. 석굴로 오르는 석조계단이 놓여있지만 훼손의 우려로 출입을 금지하고 있다. 대신 벼랑 아래 제단을 만들어놓았는데, 제단에서 올려다보는 석굴 속의 삼존불에서 위엄이 느껴진다.
새로 한 해를 맞았습니다. 새해 첫날의 정갈한 시간 앞에서 결의와 소망 하나쯤 내어보셨습니까. 올 한 해는 참으로 어렵고 가혹한 해가 될 것이라지만, 그렇다고 해서 첫 마음으로 품은 희망마저 꺾을 수야 없겠지요. 본디 ‘첫 마음’을 내기는 쉬워도, 이를 끝까지 가져가는 일은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새해에 비는 소원이란, 스스로의 의지를 묻는 시간 앞에서 첫 마음을 끝까지 가져갈 수 있기를 바라는 일에 다름이 아닌 것 같습니다.
새해의 소원 하나를 깊이 품고 팔공산 자락을 찾아가는 길. 영험하다는 ‘관봉석조여래좌상’을 만나러갑니다. 흔히 ‘갓바위’라고 부르는 석조불상입니다. 영험하기로 소문이 난 곳입니다. 이른 아침 갓바위가 있는 팔공산 관봉으로 오르는 산길은 흰 입김을 내쉬며 새해 소망을 빌러 오르는 사람들로 가득했습니다. 가파른 계단길을 두 세 걸음마다 한 번씩 쉬면서, 때묻은 손수건을 꺼내 땀을 닦으면서도 오르기를 포기하지 않는 촌로들이 한둘이 아니었습니다. 이들이 품은 소망과 기원이 그만큼 깊은 것이겠지요.
갓바위 부처 앞에는 그야말로 발 디딜 틈조차 없었습니다. 소원등을 매달아놓은 석불 앞에는 108배를 올리는 사람들로 빼곡하고, 석불이 올라앉은 바위에는 소원을 외며 동전을 붙이는 소망의 손들로 가득합니다.
‘약사여래불’을 외는 독경소리에 맞춰 소원등 아래 빼곡히 들어찬 사람들이 108배를 올리고 있었습니다. 한 촌부는 찬 바닥에 몸을 낮추고 땅에 머리를 대고 일어설 줄 몰랐습니다. 무엇이 그리도 간절한지 방석 위로 눈물이 툭툭 떨어졌습니다.
팔공산 자락에는 갓바위 외에 석굴암도 있습니다. 경주의 석굴암보다 1세기나 앞서 지어졌다는 군위 삼존석굴입니다. 바위 벼랑의 석굴 안에서 불상이 이쪽을 굽어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제단 아래 켜놓은 촛불이 바람에도 꺼지지 않고 타오르고 있었습니다. 몇몇은 두 손을 모은 채 모전탑 주위를 돌고, 다른 이들은 석굴의 불상 앞에서 몸을 낮추고 절을 올립니다.
너무도 간절해 보여서였을까요. 갓바위 부처 앞에, 석굴의 불상 앞에서 머리를 숙인 사람들에게서는 사실 희망에 대한 기대보다는, 삶에 지친 표정들이 먼저 읽혔습니다. 자신의 희망은 누군가 이뤄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성취해나가야 하는 것임을 저들도 왜 모르겠습니까. 그럼에도 이렇게 무거운 짐을 부리듯 소망을 내려놓고는 찬바람 속에서 두 손을 모아 간절하게 기원하는 까닭은, 그 소망의 대상이 자신을 향한 것이 아니라 대개가 가족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겠지요. 가족들의 건강, 자녀의 취업…. 모은 손이 간절하면 간절할수록 그 소망은 작거나 소박한 것이 틀림없습니다. ‘로또복권 당첨’ 따위의 허황한 소망이 저리도 간절할 턱이 없기 때문입니다.
모두에게 고통스러운 날들이 될 한 해랍니다. 새해에는 누군가를 물리치게 해달라거나, 내가 어떤 자리에 앉게 해달라는 소망은 다 거두고, 첫 마음 그대로 한 해를 보낼 수 있기를 기원해봅니다. 1월 1일 아침에 찬물로 세수하면서 먹은 첫 마음으로 1년을 산다면 /… / 사랑하는 사이가 처음 눈이 맞던 날의 떨림으로 내내 계속된다면 / 첫 출근하는 날 신발 끈을 매는 마음으로 직장일을 한다면 /…. (정채봉 시 ‘첫 마음’ 중에서). 내 소망이 타인의 고통이 되는 소원보다는, 이렇듯 초심을 지켜내는 것이야말로 올 한 해 뜻하는 소원을 이루는 첫걸음이 아니겠습니까.
머리위 너른 판석엔… 중생들 소망 ‘한가득’
▲ 팔공산의 관봉 정상에 앉아있는 관봉석조여래좌상. 갓 모양의 판석을 쓰고 있어 ‘갓바위’로 더 잘 알려진 이 석불은 ‘누구든 한가지 소원은 들어준다’는 소문이 나서 입시철이나 연초에는 수많은 사람의 기원이 모인다
▲바위와 짝을 이루는 약사불이 있는 불굴사.
▲ 갓바위의 바위에 동전을 붙이는 기도객들
# 간절한 소망이 모여드는 곳… 팔공산
경북의 영산으로 꼽히는 팔공산(1193m). 해발고도는 그리 높지 않지만 팔공산은 대구를 비롯해 영천, 경산, 군위, 칠곡 등 경북 내륙의 5개 시·군을 두루 아우르는 두껍고 우람한 산이다. 통일신라때는 동쪽의 토함산, 서쪽의 계룡산, 남쪽의 지리산, 북쪽의 태백산의 중심에 있다고 중악(中岳)으로 불리기도 했단다. 팔공산 주변에는 크고 작은 절집이나 굿당들이 즐비하다.
팔공산에서는 특히 동쪽 끝자락 해발 850m 관봉의 정상에 앉은 ‘관봉석조여래좌상’이 그 영험함으로 이름이 나 있다. 불상이 갓 모양의 너른 판석을 이고 있어 흔히 ‘갓바위’로 불리는 이 불상은 현세의 구복을 비는 약사신앙의 명소다. 갓바위 불상은 신라 선덕여왕 때 만들어졌다고 전해지지만, 정확한 조성연대나 목적은 명확하지 않다. 소원성취와 관련한 설화나 구전 하나쯤 있을 법한데도 전해지는 것이 없다. 하긴 갓바위의 존재가 알려진 것도 1960년대 초 어느 일간지의 신문기사에 의한 것이라니, 갓바위 석불은 1000년의 오랜 잠을 깬 지 이제 50년이 채 안된 셈이다.
갓바위의 영험함은 실제는 물론 전설로도 증명된 바는 없지만 매년 수능 시즌이나 연초에 간절한 소원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든다. 무엇이든 ‘보아야 믿는’ 불신의 시대에 사람들은 왜 소원성취했다는 구전 하나 없는 갓바위의 영험함에 기대는 것일까. 그건 소원을 이뤄줄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보다는, 그저 소원을 말할 수 있는 대상으로의 역할만으로 충분하기 때문이 아닐까. 간절한 소망을 마음으로 전하며 위로받는 일. 그 소망이 내가 손을 쓸 수 없는 영역이라면 성취에 대한 바람은 더 간절할 터다.
# 소원이 간절할수록 더 어렵게 가는 길
▲ 갓바위 앞의 제단에 피워놓은 향불.
갓바위로 오르는 길은 두 가지가 있다. 경북 경산시 와촌면 선본사를 거쳐 오르는 코스가 1㎞ 남짓으로 짧고 정비도 잘 돼 있다. 제법 땀이 배는 돌계단 길을 올라야 하지만 주차장에서 관봉 정상의 갓바위까지 30분이면 넉넉하다. 반면 대구 도심에서 가까운 능성동 집단시설지구에서 관암사를 거쳐 오르는 코스는 2㎞쯤으로 1시간 정도가 걸린다. 등산이 아닌 참배가 목적이라면 와촌면 쪽에서 오르는 편이 낫다. 하지만 구태여 능성동 쪽으로 오르는 기도객들도 있다. 그 이유는 단 한가지. ‘그 길이 더 힘들어서’다. 능성동 쪽에서 산길을 따라 오르던 김순이(여·69)씨는 “소원을 성취해주는 기도처에 가는데, 한방울이라도 땀을 더 흘려야 그 보답을 받을 것 같아서…”라고 말끝을 흐렸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갓바위를 오른다는 김씨는 “대장암 선고를 받고 투병 중인 맏아들을 위해 어미가 할 수 있는 일이 이것밖에 없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이른 아침인데도 와촌면에서 갓바위로 오르는 길은 북새통이었다. 신년을 맞아 몰려든 기도객들은 줄을 서듯 돌계단 길을 메웠다. 계단이 가팔라지면서 제법 숨이 가빠왔다. 양초 몇개와 공양할 쌀이 담긴 작은 배낭을 멘 촌로들은 때묻은 손수건으로 땀을 닦아내며 자주 난간에 기대 쉬었다. 무릎을 절룩이면서, 굽은 허리를 두드려가면서 촌로들은 묵묵히 산을 올랐다.
관봉 정상은 ‘산정법당’이다. 우뚝 솟은 암봉에 정좌한 높이 5.6m의 거대한 석불 앞에는 향불이 피어올랐다. 촘촘히 매달린 소원등 아래는 방석을 펴놓고 108배를 올리는 기도객들로 가득 차 있었다. 몇몇은 석불의 좌대인 암벽 앞에서 동전을 붙이느라 여념이 없다. 동전이 직벽에 척하고 붙으면 소원이 이뤄진단다. 참배객들은 소원성취를 다짐받으려는 듯 굴러 떨어지기만 하는 동전을 끈질기게 다시 올려붙였다.
# 경주 말고도 석굴암이 또 있었네… 군위 삼존석굴
▲ 군위 삼존석굴 앞 비로전의 동자상.
팔공산 자락에는 갓바위 말고도 유서깊은 절집들이 즐비하다. 규모나 위세를 따지자면 아무래도 동화사가 대표격이지만, 신비감이나 영험함으로 보자면 갓바위에 견줄 만한 곳이 경북 군위의 삼존석굴이다.
깎아지른 절벽의 굴 속에 석불을 들인 군위의 삼존석굴은 흔히 경주 석굴암과 유사해 ‘제2석굴암’으로 불린다. 그러나 ‘제2 석굴암’이란 명칭은 발견 시점에 따라 붙여진 것. 조성연대를 따지자면 신라 소지왕 15년(493년)에 만들어진 삼존석굴이 경주 석굴암보다 280년쯤 앞선다. 연대로 따지면 군위 삼존석굴이 경주 석굴암의 원조인 셈이다.
삼존석굴은 1927년 11월 한 마을 주민이 돌산 꼭대기에 밧줄을 매고 절벽을 내려가다 발견했다. 석굴 입구를 뒤덮은 칡넝쿨과 나무를 쳐내자 막혀 있던 굴이 열리고 그 안에서 1500년 전의 석불이 홀연히 모습을 드러냈다. 신라에 불교를 전한 고구려 아도화상이 숨어 불법을 닦았다는 도량이 빛을 보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삼존석굴은 발견 뒤에도 수십년 동안 방치돼 있었다. 그러다 1962년 경주 석굴암의 대대적인 보수 과정에서 ‘또 다른 석굴암’의 존재가 외부에 알려졌고 곧바로 국보로 지정됐다.
20m 높이의 직벽에 뚫린 석굴에는 계단이 놓여 있지만, 지금은 훼손을 막기 위해 문을 닫아걸었다. 대신 석굴이 바라보이는 절벽 아래에 따로 제단을 마련해두었다. 기도객들은 이곳에서 촛불을 켜고 향을 피워올리고 몸을 낮춰 소원을 빌었다. 몇몇은 석굴 앞 벽돌 모양의 자연석으로 쌓은 모전탑 주위를 돌며 탑돌이를 하고 있었다. 탑을 도는 그림자가 뉘엿거리는 겨울 햇살에 길게 끌렸다.
# 갓바위, 삼존석불과 짝을 이루는 것들을 찾아가다
▲ 삼존석굴 인근 한밤마을에서 만난 붉은 산수유 열매.
갓바위나 삼존석불 앞에 새해 소원을 빌러 간다면 짝을 맞춰 찾아가볼 곳들이 있다. 먼저 갓바위를 찾았다면 팔공산 인근 무학산의 불굴사를 들러보자. 일주문도 천왕문도 없는 다소 초라해보이는 불굴사를 찾아가는 까닭은 이 절집의 약사여래불을 만나기 위한 것이다. 불굴사의 약사여래석불은 팔공산의 갓바위와 짝을 이룬다는 속설이 전해온다. 팔공산의 갓바위가 양의 기운을 가진 남성의 느낌이라면 이곳 불굴사의 석불은 음기의 땅에 여성성을 간직한 불상이다. 두 곳의 불상에 소원을 빌면 기원이 더 잘 이뤄진다고도 전해진다. 아닌 게 아니라 불굴사의 약사여래불은 갓바위의 두꺼운 느낌에 비해 둥글고 선이 한층 부드럽다.
군위 삼존석불을 찾으면 부근의 부계면 대율리 한밤마을을 놓칠 수 없다. 부림 홍씨의 집성촌인 한밤마을은 구불구불 이어지는 돌담으로 유명한 곳이다. 마을 한복판에는 250여년을 지켜온 남천고택이 있다. 우람한 잣나무 두그루와 푸릇푸릇한 대나무숲, 야무지게 쌓아올린 돌담 그리고 날렵한 한옥의 처마선이 한데 어우러진 고택은 푸근한 느낌을 준다. 마당에는 근래에 통나무를 베어 지은 정자가 들어서 있어 격이 맞지 않는 듯하지만, 어찌 보면 이런 풍경도 실제 ‘생활의 공간’으로 친근하게 받아들여진다. 고택의 뒷마당과 마을의 돌담길가에는 아무도 따내지 않아 붉게 익은 채 겨울을 나고 있는 산수유 열매가 독특한 정취를 빚어낸다. 한밤마을에는 대율리석불입상도 있다. 둥글고 우아한 얼굴과 작고 아담한 눈으로 이 역시 여성성을 드러낸다. 발길이 닿지 않는 벼랑 위의 삼존석굴이 은거하는 수도자의 것이었다면, 이곳 석불입상은 마을 한복판에서 소원성취를 갈구하던 평민들의 것이었을 터. 이곳에는 또 얼마나 많은 이들의 남루하지만 간절한 소원들이 바쳐졌을까.
팔공산 가는 길
수도권에서 가자면 영동고속도로 여주분기점에서 중부내륙고속도로를 갈아타고 김천까지 내려간다. 김천분기점에서 경부고속도로로 옮겨탄 뒤 도동분기점까지 가서 대구∼포항간 고속도로를 타고 청통와촌 나들목으로 나온다. 여기서 909번 지방도로를 따라가다 갓바위를 알리는 표지판을 찾아 우회전하면 된다. 여기서 좌화전하면 갓바위와 쌍을 이룬다는 석조여래상이 있는 불굴사다. 갓바위는 대구 능성동 집단시설지구 쪽으로도 오를 수 있지만 이쪽(경산군 와촌면)으로 오르는 길이 훨씬 더 짧다. 군위 삼존석불은 대구에서 팔공산 순환도로를 따라 한티재를 넘어 부계면 쪽으로 10분 정도 내려오면 가 닿는다. 여기서 다시 남산리 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곧 돌담으로 유명한 한밤마을이다.
묵을 곳 먹을 것
팔공산을 끼고 있는 대구에 숙소를 정하는 것이 좋겠다. 시내 한복판인 동성로를 내려다보는 대구노보텔호텔 등 특1급호텔에서부터 깔끔한 모텔이나 여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숙소가 있어 취향이나 주머니 사정에 따라 선택하면 된다. 경산에서는 석정온천호텔이나 상대온천호텔에 여장을 풀고 온천욕을 하는 것도 괜찮겠다.
갓바위 부근에도 숙소들이 곳곳에 있다. 다만 군위 쪽은 숙소 사정이 열악해 추천할 만한 숙소가 없다. 대구에서는 동인동의 찜갈비를 맛보자. 대구 중구청 옆에 대형음식점 13곳이 찜갈비골목을 이루고 있다. 줄잡아 40년을 헤아리는 동인동의 찜갈비는 마늘과 고춧가루를 넣어 첫맛은 달짝지근하지만 뒷맛은 알싸하게 맵다. 수성구 들안길의 미성복어( 053-766-0567 )의 복어불고기도 좋다. 콩나물과 함께 매콤하게 철판에 구워낸 복어불고기의 맛이 일품이다. 중구 남산동의 미성당만두( 053-252-1233 )는 45년이 넘는 이력을 가진 만두집. 납작하게 빚은 납작만두로 유명한 곳이다.
<출처> 2009-01-07 / 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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