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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수상 및 후보시

2009 불교신문 신춘문예시 당선작 : 가게 세 줍니다 / 유금옥

by 혜강(惠江) 2008. 12. 31.

 

                                * 2009 불교신문 신춘문예 당선 *

 

                   가게 세 줍니다 

 

 

                                                                        - 유 금 옥

 

 


나뭇가지에 빈 가게 하나 있었어요. 참새 두 마리가 날아와 화원을 차렸죠. (햇살 꽃방) 정말 그날부터 햇빛들이 자전거 페달을 쌩쌩 밟았다니까요

가게에 봄이 한창일 때는 산들바람도 아르바이트를 했죠. 사랑에 빠진 벌 나비가 주 고객 이였는데요 창업에 성공한 사례였어요

참새들은 날개 달린 유니폼을 입고 있었고요. 가위로 꽃대를 자르다 서로 눈이 부딪치면 재재거리며 웃었어요. 앗! 그때 여름이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갔어요

가을이 이삿짐 트럭을 타고 지나간 다음 날 나는 보았죠. 양은냄비 브래지어 구두 숟가락들이 낙엽이 되다니 아스팔트 바닥에 나 뒹굴다니

비 내리던 가을 밤 무슨 일이 있었나요? 꽃방은 다시 문을 닫았어요. 가랑잎 한 장만한 쪽지를 붙여 놓았지만 겨울 내내 가게는 나가질 않았어요. 가게 세 줍니다

 

 



시ㆍ시조 심사평 / 오세영 (서울대 명예교수 )


일상 속 깨달음 발견한 시적통찰 탁월


  투고된 작품들을 몇 차례씩 숙독하여 마지막 까지 남은 작품은 ‘가게 세 줍니다’, ‘자작나무의 행로’, ‘정씨 목공예방’, ‘신발 속에서 걸어나오다’, ‘딱다구리 경전’, ‘꽃들의 언어’, ‘호수의 법문’, ‘안부’ 등이었다. 이 중에서 ‘가게 세 줍니다’를 당선작으로 뽑는다. 최후까지 겨룬 ‘자작나무의 행로’도 당선작으로 별반 손색이 없었다. 그러나 미학적 완결성이 다소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쉽지만 다음 기회에 도전해 보시기 바란다.

  ‘가게 세 줍니다’는 스케일이 크거나 문제성을 지닌 작품은 아니다. 그러나 평범 속에서 진리를, 일상 속에서 깨달음을 발견한 시적 통찰이 돋보였다. 그리고 그것을 미학적 차원에서 신선하게 형상화시킬 수 있는 언어적 감수성도 탁월하였다. 자연과 하나 된 인생의 참 모습이 나무의 사계절을 통해 잘 표현되어 있다. 모든 훌륭한 시는 쉽게 읽히면서도 감동을 주는 법이다. 굳이 어렵게 쓸 필요가 없다. 당선작은 이 같은 시의 원리를 잘 터득한 듯 하다.

  이 작품은 일반적으로 시론에서 논의되고 있는 시의 보편적 원리를 교과서적으로 보여준다. 시창작의 모범이 되기에 충분한 정석이다. 첫째 이미지의 등가적 반복이다. 1, 2연은 봄의 이야기를, 3연은 여름의 이야기를, 4연은 가을의 이야기를, 5연은 겨울의 이야기를 빌어 같은 자연의 의미를 네 번 굴절시키면서도 각각 전혀 새로운 이미지로 형상화시키고 있다. 둘째 상상력의 이원적 대립이다. 시인은 자연과 문명이라는 상반된 두 세계를 한가지로 일원화시킨다. 셋째 이미지들의 병렬적 기법이다. 1연에서 ‘자전거 페달’을 이야기한 것은 3연에서 ‘오토바이 질주’에 2연 ‘산들 바람’은 3연에서 ‘이삿짐 트럭’에 대응된다.

  ‘자작 나무의 행방’은 사유가 깊고 복선적이다. 그런 점에서 당선작보다 무게가 더 있어 보인다. 그러나 상상력의 논리가 부족하며 그런 까닭에 다소 산만하다. 주제 의식보다도 형상화의 완결성에 더 관심을 기울이기 바란다.

  나머지 시들도 모두 상당한 수준에 있어 조금만 노력하면 좋은 성과를 거둘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다만 시 창작의 도움이 될까하여 여기서는 약점만을 지적해 보도록 하겠다. ‘호수의 법문’은 긴장감이 부족했으며, ‘안부’는 설명적이었으며, ‘꽃들의 언어’는 작위적이었으며, ‘딱따구리 경전’은 다른 시인들의 이미지와 유사한 점이 있었으며, ‘신발 속에서 걸어나오다’는 상상력의 비약이 지나쳐 보였으며, ‘정씨 목공예방’은 사실적이었다.


시 당선 소감 / 유 금 옥

“원고지 위를 자유분방하게 뛰어놀겠다”
 

  영동지방 적설량, 108cm 하얀 눈이 내리는 날이었습니다. ‘02-733-1604’ 낯선 전화벨 소리가 서울에서 강원도 대관령 중턱, 폭설로 버스도 끊긴 이 산골짝까지 어떻게 찾아왔을까요.

  길이 어디에도 없을 때 온통 절망으로 세상이 캄캄해져 있을 때 나의 시는 이렇게 불쑥 찾아오곤 했습니다. 마치, 어렸을 때 가지고 놀던 부메랑처럼 내가 당도할 수 없는 먼 곳으로 사라졌다가 신기하게 되돌아오곤 하였습니다. 지금, 내 앞에 사뿐히 놓여 있는 부메랑이 둥글다는 것은 왜 이제야 알게 되는 걸까요.

  내가 초등학교 시절 운동장에서 함부로 날려 보냈던, 연필 칼이나 가위로 오려낸 장래희망, 비뚤비뚤한 각이나 모가 나 있던 장래희망이 어느 세월을 떠돌며 스스로 지워지고 닳아버린 다음에 돌아오는 걸까요.

  흰 눈이 내리고 있습니다. 내가, 떠돌던 부메랑처럼 돌아와 잠시 근무하고 있는 초등학교 도서관, 전교생이 스무 명도 안 되는 산골학교 운동장은 오늘같이 흰 눈이 내리지 않아도 날마다 순백의 백지였습니다. 아이들 마음 속에는 크레파스 공장이 한 채씩 들어 있습니다. 몽당 크레파스 같은 아이들이 뛰어와 아름드리 살구나무 밑동을 타고 오르면 우르르, 분홍빛 봄이 몰려왔고, 가끔은 초록빛 소나기들이 뛰어다녔고, 또 어느 날은 실바람 혼자 가오리연을 날리는 일요일도 있었지요.

  훌쩍 그 연을 타고 올라가, 실눈을 뜨고 서울 방향을 가늠해 보아도 여기서 임 계시는 서울은 너무 먼 곳이었지요. ‘거무데데한 나의 시들이 도시체험 한 번 못하고 저 살구나무처럼, 뿌리박혀 살다가 죽어가는 것도 괜찮은 인생이야’라며 제법, 똑똑한 생각이 들 때쯤 이렇게 폭설이 내려 마을이며 운동장을 온통, 새하얀 도화지로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이렇게 순백의 마음이 되기까지 나는 얼마나 먼 길을 돌아와야 했던가요.

  드디어, 지금까지 내가 방황했던 모든 길들은 지워졌습니다!  살구나무 한 그루로 살 수 있도록, 우둔한 나에게 미리 시를 가르쳐 주신 정진규 스승님, 이승훈 스승님, 그리고 송준영 선생님 고맙습니다. 또 전국 미인대회에서 산골 아이처럼 생긴 글을 뽑아주신 심사위원 선생님께 큰절 올립니다. 앞으로도 결코 미인이 되지 않도록 맨발로 흰 눈밭을 뒹굴 것이고 햇볕에 그을리면서 크레파스처럼 자유분방하게 원고지 위에서 뛰어놀겠습니다.


[불교신문 2490호/ 1월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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