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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수상 및 후보시

<시> 천지간(제8회 미당문학상 후보작품)/ 김명인

by 혜강(惠江) 2008. 9. 3.

 

        [제8회 미당문학상] 최종 후보작 지상중계 ① [중앙일보] 

 

   제8회 미당문학상 및 황순원문학상의 최종심 후보작 지상 중계를 시작합니다. 시인과 소설가가 들려주는 자신의 작품 이야기, 예심 심사위원의 해설 등을 모아 모두 10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올해는 누가 국내 최대 규모의 문학상을 차지할지 관심을 갖고 지켜봐 주십시오. 연재 순서는 시인·소설가 이름의 가나다순입니다.






모든 사람의 바다 이야기
공허 지난 뒤 맑음의 경지


  그는 바다의 시인이다. 등단작 ‘출항제’부터 35년이 흐른 요즘의 작품까지, 그의 시엔 바다의 심상이 빠지지 않는다. 기네스북에 오를 만큼 빽빽이 늘어선 파라솔과 그 그늘 하나 차지하려 몰려드는 여름 휴가객들의 바다와는 다르다. 가난과 상처가 뒤얽힌 유년의 바다는 소년의 발을 묶어놓았던, ‘출항’을 해서라도 벗어나야할 무엇이었다. 그러나 물살을 거스르는 고행을 무릅쓰고 고향으로 향하는 연어처럼, 35년 시력을 쌓는 동안 시인은 끊임없이 바다로 향했다. 다른 누구도 쓸 수 없는, 자신만의 시를 찾아 체험의 세계로 향하는 회귀본능이었을 게다.

  ‘장엄해진다, 노을 강으로/무리지어 돌아오는 연어 떼!//지금, 울진 왕피천 하구는/저무는 날갯짓으로 요란하다!’(‘연어’ 중)

  그의 바다는 바다에만 있지 않다. 잔술에 취해 토악질을 하는 사내에게서 바다가 보인다. ‘길바닥에 쪼그리고 앉더니/사내가 울컥 한 마리 백상어를 토해낸다’(‘백상어’ 중)

  바다의 시인에게 소금은 바다의 꽃이다. 해와 바람에 한참 시달리고서야 바다에서 벗어난 바다의 결정체. 말라붙은 눈물에 허연 소금기가 서리듯, 시어로 쓰인 소금은 은은히 빛나는 눈물이 된다.

  ‘나귀는 무거운 사연을 지고 터벅터벅/사막을 가로질러 왔을 것이다/(…)나귀, 여기저기에 제가 소금을 부려놓은 줄/문맥을 찍어 맛보지 않았는데 어떻게 알 수 있었으리/나귀가 지고 온 것이 소금 가마니였음을/달빛이 적셔놓기까지 나도 미처 몰랐으니!’(‘나귀’ 중)

  그는 꽃의 시인이다. 시인의 꽃에는 치명적인 아름다움과 피비린내나는 죽음이 공존한다.

  ‘푸르디푸른 판유리를 미는/시뻘건 맨살들, 하늘 벽에 파고든/핏빛 너무 선명해서/어느새 너도 쉬 지워지리, 잔상만으로 아득하리’(‘맨드라미’ 중)

  생과 사가 엇갈리고, 존재와 부재가 자리바꿈한다. 꽃보다 주어진 시간이 조금 더 길 뿐,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일이다. 회갑을 넘긴 시인은 ‘그러고 보면 나 어느새 부재와도 사귈 나이,’(‘대추나무와 사귀다’ 중)라 하고 ‘마침내 뼛속으로 옮겨 앉은 집 허물지 못해/나 또한 퇴락을 안고 살아가느니’(‘낡은 집’ 중)라 고백한다.

  김 시인은 예심위원 5명 전원의 추천으로 최종심 후보에 올랐다. 예심위원들은 신문에 게재할 대표작으로 ‘독창(毒瘡)’을 추천했다.

  ‘한 구덩이에 엉켜들었던 뱀들/봄이 오자 서로를 풀고 구덩이를 벗어났지만/그 혈거 깊디깊게 세월을 포박했으니/이 독창은 내가 내 몸을 후벼 파서 만든 암거(暗渠)!’(‘독창’ 중)

  시인 특유의 팽팽한 긴장감이 살아있는 작품이다. 그러나 시인은 편안히 읽을 수 있는 ‘천지간’을 대표작으로 골랐다. 시인만의 것이 아닌, 누구든 제 경험과 이해의 깊이만큼 헤아릴 바다 이야기. 이광호 예심위원은 “공허를 돌파한 뒤의 맑음의 경지에 이른 듯하다”고 말했다.

이경희 기자


<출처> 2008. 8. 7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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