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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수상 및 후보시

<시> 소리족(族)(제8회 미당문학상 후보작) / 송재학

by 혜강(惠江) 2008. 9. 3.

 

         <제8회 미당문학상> 최종 후보작 지상중계 ③ [중앙일보]

 

 

 

"소리를 듣는 일이 존재의 이유”

  “분명히 와본 것 같은 느낌 있잖아요. 그러면서 ‘내 것이다’라는 느낌, 내가 가지고 있는 것 중 하나가 발견됐다는 느낌 말이에요.”

  고2 때 신문에서 본 실크로드 사진 한 장을 마음속에 품고 있었던 시인은 기어이 비단길을 밟고야 말았다. 그곳에서 송재학은 마치 전생에서 본 듯한 풍경들을 여럿 마주쳤다고 했다. 그 경험을 두고 “풍경과 나와의 연대감”이라고 말한다. 본디 내면에 있었던 것들이 들리고 보일 뿐이라는 얘기다. “개울물 소리가 내 마음에 있으니까 그 소리가 들리는 거에요.”

  그렇게 여행과 일상에서 마주치는 풍경들에 느끼는 연대감은 곧 시가 됐다. “송재학은 정지된 풍경 속의 어떤 움직임을 포착하는데 탁월하다. 그런데 그 움직임은 이미 주체의 내면에 있다”는 평이 나오는 이유다.

  ‘소리族’에서도 그 특징은 드러난다. 소리는 본래 바깥에서 나서 내게로 들어오는 것이지만 시인은 그것이 원래 내 안에 있었다고 말한다. 자신의 귓속에서 이미 “소리족들은 오래 살림하며 번식해왔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내 귀의 소리와 꽃의 소리, 즉 내부의 소리와 외부의 소리는 하나의 악기가 되어 함께 공명한다.”(이광호 예심위원) 그렇게 ‘연대’하고 있으니 세상을 향해 불평쯤이야 할 수 있어도 증오하거나 해를 가할 수는 없다. 이를 두고 문학평론가 박수연은 시집 『진흙 얼굴』해설에서 “그의 시는 싸움의 앞면을 보지 않고 뒷면의 상처를 감싸 안는다”고 언급한 바 있다.

  그런데 왜 하필 ‘소리’일까. 세상을 어루만지는 그의 감성은 왜 주로 청각에 의존하고 있는 걸까. 시인의 답은 짧다. “소리는 그 존재를 느끼는 일이니까요.” 대상을 바라보고, 만지고, 냄새 맡는 대신 주파수를 맞춰 ‘듣는 일’은 그 존재를 완연히 느끼는 일이라고 그는 말한다.

  소리의 운동성이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지도 모른다. 소리의 어미는 ‘금속과 금속이 부딪치는 불꽃 속에서 똬리를 틀’고(‘징’), 소리가 태어날 때의 고통스러움은 ‘담금질에 겨우 눈뜨며 풋울음 하나가 여린 잎새처럼’(‘징’) 일어나는 것과 같다. 그렇게 태어난 소리는 때로 ‘살점 없이 야위기도’(‘목성과의 대화’) 한다. 그의 언어를 거쳐 소리는, 애면글면 삶을 살아가는 하나의 생명이 된다. 문혜원 예심위원은 “소리를 시각화한다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인데 풍경 안에 시인이 들어가서 생명력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등단 20년이던 2006년 처음으로 낸 시인의 산문집 『풍경의 비밀』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젊은 날, 가장 고통스러웠던 것은 방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책을 가득 쌓아둔 선배의 방을 한없이 부러워하던 그가 처음 방을 갖게 됐을 때 “방과 길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았단다. 시인의 깨달음은 이렇다. “방은 어디론가 숨어야 한다. 방에는 아무도 들여다볼 수 없는 무거운 커튼이 드리워져야 한다.”

  . ‘나만의 방’ 없이는 풍경을 들일 곳이 없다. 소리족들이 살고 풍경의 비밀이 숨어있는 곳, 그 방이 문득 궁금하다.

글=임주리 기자, 사진=이병률 시인

 

<출처> 2008. 8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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