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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수상 및 후보시

2009 경상신춘문예 당선시 : 골목 안으로 열리는 봄날의 동화 / 정원

by 혜강(惠江) 2009. 1. 1.

 

<2009 경상일보 신춘문예 당선시>

 

 

골목 안으로 열리는 봄날의 동화(童話)


- 정원

 


                    

                      ▲ 그림: 윤문영

 


                    봄은 아이들 시린 손끝에서 왔다

                    골목 안은,


                    어김없이 가위질 소리로 짤랑거리고
                    덩달아 온 세상 흰 밥풀꽃 가득한 뻥튀기 소리 
                    와아, 골목 안 가득 풀려나오면
                    햇살처럼 환하게 웃음이 되는 아이들
                    달그락달그락 알사탕 같은 꿈들은 호주머니 속 숨겨둔
                    꽃망울처럼
                    시린 바람 끝에서도 붉었다
                    햇살에 투영되는 꽃무늬, 유리알 속엔
                    알록달록 봄을 틔우는 화원(花園)이 열리고
                    동네 골목골목 안은 그 화음에
                    구슬 같은 아이들의 눈빛으로 가득 채워지곤 했다
                    냄비, 헌 세숫대야, 그렇게 찌글찌글한 “찌글이” 아저씨는
                    아이들 입에서 동실동실 허연 엿가루의 봄날을 띄우고
                    봄바람에 갈라 터진 손등, 닳아빠진 소매 깃엔
                    이따금 춘삼월을 어루는 흰 조팝꽃 같은
                    이른 봄빛이 마구 피어오르곤 했다

                    골목 길, 
                    아이들 하나 둘 길 위에 비워지고
                    전등불 스윽 노란 개나리꽃 한 다발 피워낼 즈음
                    봄날은 그렇게 장난기 많은 얼굴로
                    아이들의 긴 그림자 꼬리를 물고 서 있곤 했었다.

   
● 심사평]선명한 생동감 넘쳐
 

 

 







본선에 올라온 시들은 대체로 수준이 높았다. 이 본심에 올라온 시들은 대체로 수준이 높았다. 이미 많이 공부하고 많은 문학수련을 거쳤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시들이 대부분이었다. 반면에 어떤 시는 너무 잘 쓰려고 공연히 어렵게 쓰고 있는 시도 있었다. 아주 개성적인 시도 있었다. 그러나 지나치게 주관적 심성에 매몰되어 있어 화자가 말하고자 하는 고통이 고통으로 전달되지 못하는 게 안타까웠다. 산문시의 지나친 산문성이 시 읽는 재미를 떨어뜨리는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이미지의 비약 적절하지 않은 비유가 도리어 시상을 흐트러뜨리는 경우도 발견됐다. 그중에서 ‘고구려로’는 남성적, 대륙적인 시풍이 돋보였다. 시원하게 탁 트인 넓은 시야와 현실과 과거를 넘나드는 상상력으로 끌고 가는 긴 호흡도 안정되어 있었다. 그런데 함께 투고한 다른 작품들은 이 시에 못 미쳤다. 어떤 시는 지나치게 ‘~의 은유(of metaphor)’를 많이 사용하는 것이 흠이었다.

 

  마지막까지 고민하게 만든 시 ‘Vicent Van Gogh’ 연작도 좋은 시였다. 당선작으로 결정해도 전혀 손색이 없는 시였다. 탄탄한 사유와 치열한 예술정신을 금방 느낄 수 있게 하는 시였다. 산문시이면서도 꽉 찬 느낌을 주었다. 그렇지만 이미 많은 이들이 알고 있는 예술가의 삶을 그릴 때, 우리가 알고 있는 것 이상의 새로운 이야기를 해야 하고 새롭게 발견한 걸 보여주어야 한다. 같이 투고한 다른 작품에서 드러나는 육화되지 않은 개념어가 자주 등장하는 것도 아쉬운 점이었다.

 

  여러 번을 망설인 끝에 ‘골목 안으로 열리는 봄날의 동화’외 4편을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다섯 편 모두 안정돼 있었다. 이미지가 선명하고 생동감이 넘치는 게 장점이었다. 과장과 현란한 수식 없이도 충분히 다 말하고 있는 시였다. 한 행도 함부로 쓰지 않는 섬세함과 문장 하나도 팽팽한 긴장으로 끌고 가는 게 보였다. 그리고 그렇게 끌고 간 문장의 끝에 새로운 이미지를 생성하는 서술어를 배치하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복고적 서정에 머물고 있는 점, 작품마다 ‘그렇게’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고 있는 점 등이 걸리기는 했으나 작품마다 연륜의 무게가 느껴져서 당선작으로 밀었다. 당선을 축하하며 삶으로 시를 쓰는 시인이 되길 기대한다. 그리고 한 사람만을 선정해야 하기 때문에 선정하지 못한 ‘Vicent Van Gogh’를 쓴 시인 역시 어디서든 상을 받을 만한 시인이라고 생각하며 정진을 바란다. <심사위원 도종환>

 

 

따뜻한 시선으로 시 세상 만들고파


 
 
  ▲ 정원  
 


 

   “열매를 맺는 일이 허공에 길 하나 내놓는 일과

같아서 나무는 늘 제 몸 안에 산(山) 하나 들이는 일이다 햇살 한 올 한 올 숲을 들이는 일처럼 그렇게 가을 산山 하나, 물결치듯 외로움 하나 얹어놓는 일이다 턱 끝까지 숨이 차도록 한 아름의 달빛을 둥글게 부풀어 올리는 일이다 가지마다 출렁이는 우주 하나 내어 놓는 일이다.”(자작시에서)

  세상에 대한 긍정이, 조금은 더 가벼워질 수 있다면, 내 안의 한 잎 물결은 한 마리 물고기처럼 푸른 바다에 물결을 그리며 지느러미를 흔드는 사랑일 것입니다. “팽, 울려나는 세상에 대한 울림처럼 물결쳐가는 그런, 그리움일 것입니다.

  따뜻한 시선으로, 시 세상을 만들어나가고 싶습니다. 풍랑의 바다에 힘찬 등대가 되어주신 경상일보사와 그 빛의 항로를 열어주신 심사위원님들께 진심으로 깊은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사랑하는 나의 아내 이찬희씨와 아들 김민철이에게 먼저 이 기쁨을 전하며, 아울러 사랑하는 가족, 시공(詩空)동인, O2문학, 문학사랑 회원 모두께 함께 나눌 기쁨을 또한 전해드립니다. 아울러 사랑할, 사랑하는 모든 이들께 기쁨을 함께 합니다.

 

                ● 프로필 
                 정 원(본명 김균태)
                 1960년 서울 출생.
                 대전 목원 대학교 경제학과 졸업.
                 현 대전지하철 영상광고사업단 
                 (주)엠파크코리아 국장.
                 1996년 오늘의 문학 신인상.
                 2007년 대전문인협회 공로상.
                 2006년 시집 <어느, 어느 봄날에>.
                 2008년 현대시문학 신인상.

 

 

<출처> 2009. 1. 1 / 경상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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