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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수상 및 후보시

2009 한라문예 당선시 : 오래된 잠 / 이민화

by 혜강(惠江) 2009. 1. 1.

 

<2009 한라문예 시 당선작>

 

오래된 잠

 

- 이 민 화


 

              

                 ▲삽화 오승익(서양화가)

 

 

                     다섯 송이의 메꽃이 피었다.
                     아버지의 부재를 알리는 검은 적막을 깨고,
                     돌담을 딛고 야금야금 기어올라
                     초가지붕 위에 흘림체로 풀어놓는다.
                     무게를 견디지 못한 바람벽이
                     움찔 다리를 절면,
                     마당가에 선 감나무도 키를 낮춘다.
                     아버지의 귀가에서 나던 솔가지 타는 냄새
                     너덜너덜해진 문틈으로 새어나오고,
                     가쁜 숨을 몰아쉬던 수도꼭지
                     끄윽끄윽 울음을 뱉어낸다.
                     산 그림자 마당으로 내려서면,
                     거미줄에 걸린 붉은 노을
                     점점 시력을 잃어가고,
                     먼지 쌓인 잠을 쓱쓱 문질러 닦아내면
                     아버지의 오래된 시간이 푸석한 얼굴로 깨어난다.
                     늙은 집이 메꽃을 피우고 있다.

 

 

 


[시 심사평/문충성]언어로 잘 그려낸 아버지의 폐가 풍경

  응모작품은 2백여 명이 보내온 8백여 편이었다. 2008년 1백 50여명 6백여편에 견주면 응모자만도 50여 명이나 늘어났다. 응모자들을 살펴보자면 서울을 비롯해서 전국 곳곳에서 10대에서 80대까지 고루 응모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이 응모한 시 작품들은 풍족하게 많은데도 평년 수준을 밑도는 이상한 현상을 보였다. 당선작을 고르는 데 그래서 진땀이 났다.

  우선 10편, 강병철의 '허수아비', 장유정의 '빈집', 권혁찬의 '노트북', 이민화의 '오래된 잠', 김웅철의 '11월 대정 골', 한규현의 '밥', 엄계옥의 '매미 집', 정현의 '곶감', 권삼현의 '까치밥', 임창선의 '우리 집 베란다에서는'을 뽑았다. 여기서 5편을 뽑았다. '허수아비''빈집' '노트북' '오래된 잠' '11월 대정 골'이 그것들이다. 모두 만만찮은 시 쓰기의 경지에 있다. 그런데도 모두 조금씩 부족감을 느끼게 되는 것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구두점 쓰기 등에 좀더 마음 썼으면 한다. 여기서 '부족감'이라고 지적하는 바는 읽고난 뒤에 받는 시 읽기의 감동이다. 시 읽기는 혼의 울림을 깨닫는 자리가 아닌가. '11월의 대정 골'은 제주어로 시를 쓰고 그 시를 표준어로 다시 쓰고 있다. 아무리 인간의 혼이 언어라 하더라도 그 혼의 노래를 두루 알려져 있지 않는 토박이어로 쓴다는 것에 대한 논의는 계속되어야 마땅하다.

  마침내 우리는 최종심에서 '빈집'을 떨어뜨리고 당선작으로 '오래된 잠'을 뽑기로 했다. 시의 구조가 견고하지 못한 점도 없지 않지만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하는데 아기자기한 사물들의 이미지를 통해 절제된 감정을 언어로 수채화 그리듯이 잘 그려내었다. 시간 구조도 과거를 현재로 잘 풀어냈다. 아버지가 살았던 집이 폐가인 데도 '낡은 집'이 아니고 '늙은 집'으로 의인화시키는 놀라운 표현을 간단히 해내고 있다. 정진하시라! <시인>

 

 "처음으로 이름 석 자를 얻은 기분"

 

시 당선자 이민화씨

  새벽에 꿈을 꾸었다. 누군가 하얀 봉투를 제 손에 꼭 쥐어주고 갔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온몸에 따뜻한 기운이 퍼지는 느낌이었다. 뭔가 그럴싸한 일이 생길 듯한 예감, 응모 작품을 보내고는 잊어버리리라 생각했으면서도 은근한 기대와 설렘으로 지낸 것도 사실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서서히 포기 쪽으로 기울던 참이었다. 올해도 빈손으로 한 해를 건너는가보다 하며 초조한 기다림은 허탈함으로 바뀌는 중이었다. 그러다가 당선 통보를 받았다.

  3년 전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다. 마흔을 넘긴 나이에 무슨 용기로 뛰어들었는지 알 수가 없지만, 그저 하지 않으면 평생 후회하게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신이 났다. 그런데 시를 쓸수록 자신이 없어지고 한쪽 가슴께에 통증이 왔다. 중간에 주저앉기도 여러 차례, 결국 시의 길로 회귀할 수밖에 없었다. 쓰는 것보다 쓰지 않는 것이 더 힘들고 아팠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를 생각하면 많이 아팠던 기억뿐이다. 오랜 기간 병원을 들락거렸지만 병명을 알 수 없었다. 그런 저를 업고 다니시느라 어머니의 등에서는 항상 쉰내가 났다. 하지만 그 냄새가 결코 싫지 않았다. 그러기에 글을 쓰게 된다면 꼭 어머니의 냄새에 대한 글을 써 보고 싶었다. 이제 그 출발점에 서 있다.

  누구보다 기뻐해준 남편과 아이들한테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특히 그 동안 온갖 짜증 다 받아준 남편한테 더없는 고마움을 전한다. 그리고 주말마다 시의 벽돌을 함께 쌓는 다층문학동인과 지도해 주신 변종태 선생님, 부족한 글을 선택해주신 심사위원 선생님께도 아울러 고마움을 전한다. 살아 계셨으면 엄지손가락 치켜세우며 기뻐하셨을 시아버님께 이 상을 바치고 싶다. 고인 물이 되지 않고 자만하지 않을 생각이다.

▷65년 경남 남해 출생 ▷방송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다층문학동인▷제주MBC 여성백일장 시부문 동상 ▷제주신인문학상 시당선 ▷동서커피문학상


 

 

<출처> 2009. 1. 1 - 한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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