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석정(花石亭)
율곡이 학문과 사상을 키운 작은 정자
주소 : 경기 파주시 파평면 율곡리 산 100-1
글·사진 남상학
이율곡의 유적이 가장 많이 남아있는 파주 땅에서 자운서원과 더불어 이율곡의 인품을 느껴볼 수 있는 곳이 화석정(花石亭)이다. 자운서원에서 12km쯤 떨어진 임진각 상류의 화석정(花石亭)은 임진강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언덕(파주시 파평면 율곡리 산 100-2) 위에 앉은 작은 정자에 불과하지만, 나라를 걱정했던 이율곡의 혜안을 살펴볼 수 있는 곳이다.
본래 화석정은 1443년 율곡의 5대조인 강평공 이명신이 고향마을에 세워 대대로 사용되어 왔던 정자였다. 율곡은 여섯 살 때 외가인 강릉에서 이곳 친가로 올라와서 화석정에서 수양을 했으며, 그가 여덟 살에 지었다는 시가 지금도 화석정 안에 편액으로 걸려있다. 임진강 풍치를 사랑했던 이이는 고향 땅에 올 때마다 늘 이곳을 찾았으며, 벼슬에서 물러난 뒤엔 이곳에서 제자들과 학문을 연구했다.
하지만 화석정은 임진왜란 때 전소됐고, 그 뒤 80년여 년이 지나 1673년(현종14) 이후지(李厚址) 등 율곡의 후손들에 의해 복원되었으나, 또 한번 6·25 전쟁 때 불타 없어졌다가 1963년 파주 유림들에 의해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그러나 한국전쟁 때 또 불탔다. 현재 건물은 그 이후 다시 지은 것이다. 화석정의 현판은 당시 대통령이었던 박정희가 쓴 글이다. 정자 좌편 뜰에 세운 돌비에는 여덟 살에 쓴 율곡의 시 <花石亭詩>가 새겨져 있다.
숲 속 정자에 가을이 깊어드니
시인의 시상이 끝이 없구나
멀리 보이는 물은 하늘에 잇달아 푸르고
서리 맞은 단풍은 햇빛을 향해 붉구나
산 위에는 둥근 달이 떠오르고
강은 만 리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머금었네.
변방의 기러기는 어느 곳으로 날아가는고
울고 가는 소리 저녁구름 속으로 사라지네.
林亭秋已晩 (임정추이만) 騷客意無窮 (소객의무궁) 遠水連天碧 (원수연천벽) 霜楓向日紅 (상풍향일홍) 山吐孤輪月 (산토고륜월) 江含萬里風 (강함만리풍) 塞鴻何處去 (색홍하처거) 聲斷暮雲中 (성단모운중)
10만 양병설을 주장했던 그의 우국충정을 화석정에서 엿볼 수 있다. 한 가문의 소유물에 불과했던 화석정이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게 된 것은 율곡 선생이 세상을 떠나고 8년 후에 일어난 임진왜란 때문이었다. 선조가 궁을 버리고 의주로 피난을 갈 당시에 어가가 임진강 나루에 도착하니 뱃길을 잡을 수 없는 칠흑 같은 어둠으로 인해 갈피를 잡지 못하였다. 이 때 피난길을 인도하던 문신 이항복이 미리 기름칠을 해두었던 화석정에 불을 지르라 명령했으며 불타는 화석정을 등불로 삼아 임금과 백관, 호위 군졸을 태운 배는 무사히 강을 건너 피난할 수 있었다.
이 사실에 대해 율곡이 미리 왜놈의 침략을 예견하고 화석정에 기름칠을 해 두었다는 기록도 전해진다. 10만 양병설을 주장하기도 했던 율곡은 벼슬에서 물러나 낙향한 뒤 매일 이 화석정을 찾았는데, 그때마다 율곡은 하인에게 송진을 채취해와 정자 기둥에 바르게 했다. 그리고 세상을 떠날 무렵 하인에게 “어려움이 닥치면 열어보라”며 봉투를 남겼다. 얼마 뒤 임진왜란을 당하여 선조가 피신을 가다가 임진나루에 도착했을 때, 비바람이 몰아치는 칠흑 같은 밤이라 한치 앞도 분간할 수 없었다.이때 율곡의 하인이 나타나 편지를 전달했다. 대신 중 한 사람이 율곡이 남긴 봉투를 열자 편지엔 “화석정에 불을 질러라”는 글이 씌어 있었다. 화석정에 불을 붙이자 나루 근처가 대낮같이 밝아져 선조 일행은 강을 무사히 건널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화석정 오른쪽에는 500년이 훌쩍 넘었을 법한 큰 느티나무가 정자에 그늘을 드리워주고 있다. 이 나무는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는데 율곡 선생의 5대조 이명신이 심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곳에 서면 굽어 흐르는 임진강 줄기가 여유롭게 보이고, 임진리와 장파리 일대의 평야가 시원스럽게 들어온다. 낮은 언덕이지만 이런 정도의 전망을 확보하고 있는 곳이 또 있을까?
한 가지 아쉬운 것은 문산에서 전곡으로 이어지는 37번도로가 화석정이 있는 언덕 바로 밑으로 통과하기 때문에 소음은 물론 풍광을 해치고 있다는 점이다. 역사적인 기념물의 소중함을 안다면 다른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는 일이 아니었을까?
*화석정 아래임진강물이 유유히 흘러가는 모습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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