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장산 단풍
그 현란한 세상 속을 걷다
글·사진 남상학
<좋은벗님네>의 금년 단풍여행은 내장사 쪽으로 잡았다. 먼저 내장사를 보고 백양사로 이동하여 백양사 쪽 단풍을 구경한 다음 전주에 가서 1박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그 동안 호남을 즐겨 찾았으면서도 전주는 그냥 지나치는 아쉬움이 많던 터에 이번에는 하루 일정이지만 전주를 탐방하고 싶어서였다. 12명의 회원 중에서 심한 감기로 한 쌍이 참여하지 못해 아쉬운 마음을 안고 떠났다.
정읍 금호호텔 앞에 있는 정금식당(정읍시 수성동 711-6, 063-535-3644 )에서 백반으로 점심을 했다. 남도의 음식은 넉넉하고 인심 좋기로 유명하지만 5천 원짜리 백반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풍성하다. 푸짐한 상차림을 받고 먼저 내장사로 행했다.
평일이라 해도 예년 같으면 내장사에 이르는 도로가 정체되어 무작정 기다려야 하는 불편을 겪어야 할 길인데 예상이 빗나갈 정도로 순조롭다.
국내에서 ‘단풍’ 하면 바로 떠오르는 산이 내장산이다. 그만큼 다양한 군락의 단풍들이 만산홍엽을 이룬다. 굳이 산에 오르지 않더라도 사찰인 내장사까지 걷다보면 진입로에 도열한 108개의 아기단풍 자태에 빠져든다. 정상까지 올라갈 수 있는 케이블카도 있다.
맨 끝에 있는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내려와 주변을 살펴보니 ‘역시 내장산이로구나’ 싶을 정도로 울긋불긋한 단풍으로 온 산이 물들었다. 예부터‘호남의 금강’이라 불리기도 한 내장산은 조선8경 중 하나로, 지리산·월출산·천관산·능가산과 더불어 호남 5대 명산으로 손꼽혀 왔다.
그런데다 단풍으로 유명한 산을 꼽는다면 세인들은 으레 내장산을 꼽아왔다. 그만큼 내장산은 최고의 단풍을 자랑한다. 실제로 내장산에는 30여종의 단풍나무에 형형색색의 고운 빛이 장관을 연출한다.
다리를 지나 장터를 거쳐 단풍길로 들어섰다. 매표소에서 내장사까지 이어지는 길의 가로수가 모두 단풍나무다. 단풍이 든 나무사이로 군데군데 빨갛게 익은 감을 달고 키 큰 감나무들이 버티고 서 있다.
내장산의 가을은 말 그대로 만산홍엽(滿山紅葉), 어디를 보아도 노랗고 붉은 색 뿐이다. 곳곳에서 탄성이 들려온다. 단풍나무 아래 잔디밭에선 가족인 듯 무리지어 자리를 깔고 흥에 젖어 있고, 계곡 저 편에는 널찍한 바위에 누워 가을의 정취를 마음껏 즐기고 있다.
별이 분신 낙하하는
아, 저 섬광(閃光)
그립고 아득한 품에 안겨
제 몸 저리 불태우는가
그대 향한 열애 불꽃처럼 타올라
미처 다 사르지 못한 사랑
가슴 뜨겁게 달궈
한 잎 두 잎 그대 가슴에
아낌없이 스러지는가
오늘 비록 그대 품을 떠난다 해도
이승을 밝히는 혼(魂)불이 되어
부활을 꿈꾸는 불꽃이 되어
그 대 옷깃 스치는
바람이 되리
- 졸고 <단풍> 전문
위를 올려다 보아도, 당을 내려다 보아도 보이는 것은 단풍 뿐이다. 문득 언젠가 써놓았던 시 한 편이 떠올랐다. 단풍에 취해 걷다가 눈을 들면 내장산의 유면한 봉우리들이 얼굴을 잠시 내밀다가 사라진다. 산의 골이 워낙 많고 깊은데다 그 봉우리들에 둘러싸여 그만큼 시야가 좁기 때문이다. 단풍을 감상하는 사람들은 계곡을 끼고 차도 옆 인도를 따라 걷기도 하고, 아니면 무료셔틀버스나 미니관광열차를 타고 오르내린다.
정읍시 남쪽에 자리 잡은 내장산은 순창, 장성군과 경계를 이루고 있는데, 700M 내외로 그리 높지는 않지만 서래봉을 시작으로 불출봉, 망해봉, 연지봉, 까치봉, 신선봉, 연자봉, 장군봉에 이르는 여덟 개의 봉우리기 있다.
그리고, 정상마다 독특한 기암이 내장사를 중심으로 원을 그리고 있어 어디에도 뒤지지 않는 경관을 보여준다. 본래는 영은산이라 불리다가 산의 골이 워낙 많아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들어가도 마치 양의 창자 속에 들어간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하여 내장산(內藏山)이라 불려지게 되었다.
계곡을 따라 한참을 올라가면 작은 연못이 있고 그 가운데 우화정(羽化停)이 있다. 돌다리를 건너서 갈 수 있도록 만든 정자는 5각형 기와지붕을 한 정자로 목교에서 건너다보이는 정경이 한 장의 그림 같다.
연못 주변은 온통 단풍으로 물들었고, 산봉우리와 오색 단풍이 연못에 비쳐서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내장산 단풍은 그야말로 산홍(山紅), 수홍(水紅), 인홍(人紅)을 이루었다. 아마도 이곳을 찾는 이들은 잔잔한 연못에 비치는 내장산의 가을 정취를 못 잊어 찾는 것은 아닐까.
우화정이 있는 시설지구에는 케이블카를 설치 놓았다. 케이블카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내장산 일대를 놀은 곳에서 조망해 보려는 사람들과 이곳까지 가서 연자봉과 장군봉까지 오르려는 등산객들이 이용한다.
케이블카를 타고 내장산 일대를 조망해 보는 것도 괜찮을 듯해서 가까이 다가갔더니 이용객들이 길게 줄을 서 있다. 이것을 타려고 기다리다가는 백양사는 못 갈 것 같아 포기하고 내장사로 향했다.
우화정을 지나면 내장사 일주문. 이곳에서부터 내장사 천왕문 앞까지가 수령이 오래된 단풍나무로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여준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단풍터널로 단풍터널에 관한 한 최고로 알려져 있다.
단풍터널을 지나서 만나게 되는 내장사는 땅의 너비와 하늘의 너비가 비슷할 정도로 봉우리들에 둘러싸여 있다. 내장사는 백양사(白羊寺)의 말사로 636년(백제 무왕 37) 영은조사(靈隱祖師)가 50여 동의 대가람(大加藍)으로 창건하였다.
그 후 여러 차례에 걸쳐 중건·수축하였으나, 6·25 당시에 모두 불타 버렸다. 1958년 대웅전을 중건하였고, 1971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되면서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특히 대웅전 처마에 연이어 올려다 보이는 서래봉(624m)이 아주 인상적이다. 내장산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손꼽히는 곳이 서래봉. 아래서 보면 마치 닭벼슬처럼 생겼으며 옆 봉우리에서 보면 농기구인 서래처럼 생겨서 붙여진 이름. 그러나 그 명성에 비례해 숱하게 많은 전설과 이름에 대한 유래들이 전해져 오기도 한다.
서래봉 바로 아래에 벽련암이 있는데 본래 이곳에 내장사였다고 전해지고. 추사 김정희가 이곳에서 수도하면서 "백련암(白蓮菴)"을 벽련암(壁蓮菴)"으로 개칭할 것을 권하고 서액을 써 걸었다고 하는데 아깝게도 6·25사변 때 소실되었다.
벽련암에서 눈여겨 볼 것이 절 마당 아래의 석축. 전설에 의하면 벽련암의 창건자인 희묵대사가 서래봉 정상에서 돌을 던지면 수제자 희천이 이를 받아 쌓아 올렸다는 것이다. 삐죽삐죽 솟아있는 흰색의 암봉을 꼭 한번 올라가 봤으면 하는 충동을 느끼게 한다.
이외에도 내장산에는 벽련암와 원적암, 도덕암, 성불암이 있으며, 도덕폭포와 금선폭포에서 이어지는 뛰어난 계곡과 금선문(용문), 금선대, 용굴 등의 볼거리들이 산재해 있다.
내장사를 둘러보고 내려오는 길에서 우린 산에서 내려오는 등산객들을 만났다. 단풍에 물든 산이 좋아 오전에 산에 올랐던 이들이 내려오는 길일 터. 등산로 안내도를 자세히 들여다 보니 내장산을 오르는 등산코스는 상당히 많다. 그 어느 길을 택한다 해도 산은 온통 단풍 일색이다.
그 중에서 특히 내장사에서 벽련암으로 간 다음 서래봉을 올라 불출봉을 거쳐 원적암으로 내려오는 코스는 5.7㎞로 4시간이면 넉넉하게 내장사로 되돌아 올 수 있다고 했다. 이들은 아마도 암봉을 오르내리는 능선을 지나며 산행의 재미를 톡톡히 맛보고 오는 것일 게다.
주차장으로 내려왔을 때 누군가가 눈이 충혈된 것 같다고 했다. 그 말에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그렇다'고 맞장구를 쳤다. 우리는 내장산의 단풍을 눈에 가득 담고 다음 방문지인 백양사으로 향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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