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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기 및 정보/- 여행 종합

손재식의 사진여행, 가을을 찍어라

by 혜강(惠江) 2008. 11. 2.

 

[손재식의 사진여행] 가을을 찍어라

 

야생화·코스모스·단풍 등 100㎜ 내외 접사렌즈면 OK

 

 

 글·사진 손재식 사진가

 

 

 

 

 

 

   무덥기만 하던 여름이 슬그머니 꼬리를 감췄다. 그리고 그 자리에 맑은 햇빛과 푸르른 하늘이 개벽처럼 다가왔다. 아직 한낮의 볕이 따갑긴 해도 새벽녘이면 어깨위로 내리는 한기와 풀냄새에 가을기운이 한껏 담겨 있음을 느낀다. 해마다 이 때 태풍이 기승을 부리곤 했는데 다행히 그런 기색은 없다. 나이 들면서 가을은 기다릴만한 계절이 아님을 느끼게 된다. 그래도 지리산에 가고픈 생각이 드는 것은 아무래도 별빛 또렷한 밤하늘 영향이 큰 듯하다. 시간의 흐름을 알려주는 가장 감각적 기운은 역시 온도 변화가 아닐까.

 

  풍경을 즐겨 찍는 사진가들은 날씨 변화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어느 날 기온이 뚝 떨어지면 그 때가 바로 기회다. 가을은 그런 날이 많다. 봄에는 봄 사진, 여름엔 여름 사진을 찍지만 시계가 맑은 가을철이 가장 유리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제대로 된 풍경 사진 한 장은 조건을 맞추는 일에서 출발한다. 예를 들어 산에 골안개 깔린 장면을 보려면 가장 일교차가 심한 때 맑은 날을 골라야 한다. 직장인이라면 이런 때가 주말이어야 한다. 시기상 10월 초에서 11월 중순이 가을촬영의 적기이지만 어떤 때는 비가 오거나 흐린 날로 끝나기도 한다. 그렇게 되면 해를 넘기게 되고 완성도 있는 풍경을 만나기 위해 몇 년이 걸렸다는 표현을 종종 쓴다. 한두 번 실패하다 보면 캘린더에서 보던 흔한 풍경 사진 한 장 만들기가 만만치 않음을 알게 된다. 생각과 실제는 늘 그렇게 다르다.

 

                         

                                                   

       

                                                          * 은행이 무르익은 깊은 가을. 

 

  사진가는 멋진 풍경을 보고 감탄에 그칠 수 없다. 그 속에 담겨진 시각적 장애요인을 봐야하고 독자적 앵글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눈을 현란하게 하는 현상들을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보았던 것은 아닌지, 반복적으로 보이는 것인지도 의심해야 한다. 그렇게 하여 남들이 보지 못하는 그 무엇을 발견해야 한다.


  인터넷이 생활화된 우리 삶은 이미지의 홍수 속에 있다. 특히 휴대폰이 카메라화 되어 언제 어디서든지 찍을 수 있는 조건이 한 몫을 더한다. 그러나 사진가의 고민은 오히려 이러한 환경과 무관하다. 평범한 사진에 머물러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필요한 것은 일상을 뛰어넘는 시각이다. 사진 찍기 좋은 가을에 쉽사리 셔터를 누를 수 없는 사진가들은 아마 이런 고민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이미지 홍수 시대, 독자적 앵글 필요


  근대 사진예술에 큰 공헌을 한 에드워드 웨스톤(Edward Weston·1886-1958)은 사물을 클로즈업하여 실재감을 강조하고 현실을 초월하려 했다. 그는 다른 매체로 표현 가능한 것은 굳이 카메라를 사용하지 말라는 사진의 길을 제시한 바 있다. 언어는 언어대로, 영상은 영상대로 각기 최선의 표현이 있다. 사진으로 표현할 수 있는 독자적 시각을 에드워드 웨스톤은 간파한 것이다. 에드워드의 방법론은 이미 보편화 되어있지만 그가 택했던 방식은 아직도 사진에 몰두하는 창조적 사진가들을 채찍질한다.

 

 

▲ 가을의 전령 버들강아지.

 

  하늘이 좋아 사진 찍고 싶은 마음이 일어난다면 가을을 생각해보자. 가을은 과연 찍을 수 있는 것일까. 만일 눈으로 볼 수 있을 때 이런 조건은 성립된다. 아마도 가을을 나타내는 사물이거나 이미지가 해당될 것이다. 이미지를 발견하고 만남으로써 촬영은 이루어진다.

 

  길가에 하늘거리는 코스모스, 들에 핀 메밀꽃, 산야에 물든 단풍, 길에 떨어진 낙엽 등과 같이 꼭 부스러기 같은 대상을 다시 한 번 주시해보자. 시점을 낮추면 비로소 움직이는 이미지를 발견할 수 있다. 대개의 아름다운 것들은 은밀한 곳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그런 이미지를 찾아내는 작업이 바로 가을촬영의 재미다.

 

 

▲ 하늘거리는 모습으로 가을을 알리는 코스모스.

 

시기상 9~11월에 해당하는 가을은 천문학적으로 추분인 9월23일부터 동지가 시작되는 12월21일까지를 말한다. 이 때 단풍이 물들고 하늘은 맑아진다. 이것은 대기의 대류가 여름보다 약해서 먼지가 높은 하늘로 올라가지 못하고 비에 씻겨 내리기 때문이다. 하늘에는 북상하던 제트기류가 남하하여 강한 편서풍이 불기도 한다. 이 제트기류에는 갖가지 구름이나 난기류가 나타난다. 그래서 가을철 태풍이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 대륙으로부터 이동성고기압이 통과하며 서리가 내리고, 강가나 분지 등에 안개가 끼기 시작한다. 사진가들은 이런 날을 노려 현장에 나가야 한다.

 

   나는 사진 찍는 방법을 알려달라는 간청을 종종 받는다. 이런 부탁은 마치 서울역에서 김서방 찾는 것과 같다. 예를 들면 어떻게 해야 멋진 사진을 찍을 수 있는가 하는 식이다. 때론 어떤 근사한 사진을 예로 들기도 한다. 인물사진이나 풍경사진 짤 찍는 방법으로 접근하는 것이 조금 더 구체적이긴 하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의 사진 잘 찍는 방법이란 선명하고 정확한 사진을 말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 정도는 카메라 매뉴얼에 구현되어 있다. 매뉴얼 보기를 귀찮아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호기심에만 머물러 있기 마련이다. 서울역 김서방이란 불특정 대상을 구체화하다 보면 결국 사진 찍는 일이란 사물을 보는 통찰력에 근거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사진 잘 찍는 방법에서 메커니즘의 습득은 시작일 뿐이다.

      

        사물을 보는 통찰력 있어야

 

  사진은 사물을 보는 것에서 출발한다. 본다는 것은 그냥 보는 것이지만 보인다의 의미는 사뭇 다르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그 무엇이 눈에 띄는 것이기 때문이다. 보인다는 것은 사물에서 그 무엇을 파악했거나 자기 시각의 성립을 의미한다. 그래서 감각에서 철학의 문제로 귀결될 수 있다. 그렇다면 철학자나 과학자는 조건이 유리하다고 할 수 있을까. 만일 사진이 예술일 수 있다면 그것은 답이 아닐 것이다. 예술이란 수학적으로 계산되거나 과학적으로 검증되는 것만은 아닐 테니 말이다.

 

▲ 억새와 산의 대조.

 

 이제 다시 사진 찍기에 도전해보자. 사진이 어렵다는 것을 알면 일단 문제에 도달한 셈이다. 문제를 쉽게 처리하면 전문가의 반열에 오른 사람이거나 혹은 눈높이가 낮은 초보일 수도 있다. 어쨌든 사진 잘 찍으려면 먼저 마음이 절실해야 한다. 무슨 일이든 갈구해야 흥미가 생기기 때문이다. 호기심과 절실함이 있을 때 스스로 재미를 느끼며 자연스럽게 단계를 높일 수 있다.


  가을은 사진 찍고 싶은 욕구가 충만한 계절임에는 틀림없다. 맑은 하늘과 투명한 광선이 바로 강력한 조건이 될 것이다. 산과 들, 그리고 길가의 풀섶에도 가을 이미지가 넘실대고 있다.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잔잔한 사진 한 장을 남겨야 한다면 때는 바로 지금이다.


 

가을 이미지 촬영 가이드


  길가에 핀 코스모스와 누렇게 익어가는 벼이삭, 노란 은행과 붉은 단풍잎, 해마다 똑 같이 일어나는 현상이지만 투명한 광선을 보노라면 카메라 파인더에 시선을 뗄 수 없다. 아무리 하늘이 맑다 하더라도 가을 이미지는 근경으로 접근해야 한다. 미시적으로 접근해 들어갈 때 현실은 이미지가 되어 보인다. 50~60mm 혹은 105mm 접사 렌즈 하나면 가을 이미지를 담아낼 수 있다. 똑딱이 디지털 카메라는 접사모드로 클로즈업 할 수 있다. 땅에 떨어진 낙엽과 야생화처럼 키 낮은 피사체는 위에서 내려다보지 말고 눈높이를 맞추는 게 좋다. 이 때의 광선은 역광이 유효하다. 억새와 갈대, 풍경과 단풍까지 역광은 빛의 맛을 느끼게 해준다. 다만 유해 광선이 렌즈로 직접 들어오지 않도록 가려주어야 한다. 특히 후드가 달리지 않은 디지털 카메라의 경우가 더 그렇다. 단 렌즈 하나로 평소에 지나치던 사물을 좀 더 깊이 들여다보자.

 

 

▲ 제각기 다른 빛을 지니는 단풍.

 


가을에 만나는 이미지


  자연에서 가을이미지를 만나보자. 먼 거리에 있는 산에 갈 수 없다면 가까운 주변에서 찾아야 한다. 가을을 나타내는 이미지들은 기온에 따라 변하는 모든 사물에 있다. 먼저 시기를 알아두는 편이 좋다. 코스모스는 일찍부터 늦도록 볼 수 있지만 일년생인 메밀꽃과 꽃무릇 등은 대체로 9월 중에 꽃이 피고 진다. 태백의 해바라기도 9월이면 지고 없다. 그러나 금대봉과 함백산은 10월에 야생화가 핀다. 쑥부쟁이, 산부추, 꽃향유, 자주쓴풀, 벌개미취, 둥근잎꿩의비름, 물매화, 투구꽃, 구절초 등의 가을꽃 등을 이곳에서 쉽게 볼 수 있다.

 

 

▲ 해맑은 웃음처럼 피어나는 들국화.

 

10월이 되면 단풍이 물든다. 남녘의 산들은 여름 빛깔을 지닌 채로 있지만 북쪽의 산들은 생각보다 빠르다. 설악산 대청 부근은 이미 9월 중순이면 단풍이 든다. 단풍명소로 꼽히는 내장산과 백양사는 10월 하순에서 11월 초가 되어야 절정을 이룬다. 10월 중순엔 천관산과 화왕산 억새가 빛나고, 청송 주왕산 단풍이 고운 빛깔을 띠기 시작한다. 요즘은 한강고수 부지에서도 메밀꽃을 볼 수 있으며 코스모스 축제가 열리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난지도 공원에서도 억새 핀 가을을 만날 수 있다.

 


‘손재식의 사진여행’에 초대합니다


우리 산하를 영상에 담기 위해 떠나는 사진여행에 동참을 원하는 분은 이메일로 문의 바랍니다. 이메일 주소 alpinephoto@naver.com

 

 

         <출처> 2008. 10 / 월간산 46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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