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과 닿은 동화나라
‘쇠락한 폐광촌’ 강원 영월 모운(募雲)동의 변신
문화일보 박경일기자
▲ 구름이 모여든다는 강원 영월군의 산골마을 모운동은 도무지 마을이 들어설 것 같지 않은 산 정상쯤에 터를 잡았다. 옥동탄광이 호경기를 누리던 시절에는 1만여명이 북적였던 곳이라지만, 지금 마을 주민들은 60여명이 고작이다. 이렇듯 좁은 터에 ‘도시급’의 마을이 들어섰다는 것도 그렇지만, 폐광과 함께 그 도시가 감쪽같이 사라져버렸다는 것도 마술처럼 느껴진다.
‘구름이 모이는 곳’이라 했습니다. 망경대산(1087.9m)의 8분 능선쯤에 들어선 작은 마을 강원 영월군 하동읍 주산리의 모운(募雲)동. 비가 오고 난 뒤면 마을이 늘 안개와 구름으로 뒤덮인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답니다. 비가 오는 날을 겨누었다가 구불구불 산길을 올라 모운동을 찾아갔습니다. 흰 구름을 이불처럼 덮고 누워있는 마을 풍경이 장관이라 해서, 이른 새벽부터 넓은 초지의 서로(曙露)목장 언덕 끝에 올라 기다렸습니다. 그림 같은 목장의 초지에서 소들이 평화롭게 풀을 뜯고 있었습니다. 마을 이름도 그렇지만 ‘새벽 서(曙)’에 ‘이슬 로(露)’. 새벽이슬이라니, 목장 이름에도 서정이 넘칩니다.
전날에는 대낮에도 산허리에 구름을 둘러 숨이 턱 막히는 경관을 보여줬다는데, 이날은 구름이 망경대산 이마에만 살짝 걸쳐져 있다가 아침 햇살을 받아 다 사라져버리고 말았습니다. 못내 아쉽긴 했지만 손바닥만한 작은 마을 모운동은 자연과 어우러진 빼어난 정취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웠습니다.
모운동은 33가구의 60여명에 불과한 작은 마을이지만 20년 전까지만 해도 이 작은 산골마을에 무려 1만명이 넘게 살았답니다. 어찌 이 좁은 터에 그리 많은 사람이 살았을까, 건너편 능선에서 멀찌감치 마을을 바라보며 이리저리 가늠해보아도 도무지 믿기지 않습니다.
이 산골마을로 사람들을 불러모았던 것은 탄광이었습니다. 지난 1954년 채굴을 시작한 옥동광업소에 탄부들이 모여들면서 모운동은 전국 각지에서 온 이들로 북적북적했답니다. 산골 비탈진 사면에는 촘촘히 집들이 들어서 있었고, 마을 안쪽에는 제법 큰 시장과 양복점, 당구장부터 색시집까지 없는 게 없었다는군요. 심지어 마을 한쪽에는 번듯한 극장까지 있어 ‘미워도 다시 한번’ 같은 영화를 틀어줬다네요. 당시 영월읍에도 변변한 극장이 없던 터라 읍내 사람들까지 영화를 보러 이 산골마을까지 비탈진 고개를 올라왔답니다.
그러던 것이 지난 1989년 탄광이 문을 닫은 뒤 하나둘씩 모운동을 떠나면서 마을은 썰렁한 빈터로 남고 말았습니다. 탄부들은 새로운 일거리를 찾아 다 떠났고, 마을에는 지치고 병든 이들만 남았더랍니다. 빈집들은 무너지고, 사람 손이 안 간 밭은 묵은 밭이 되고…. 그렇게 20년이 흘렀습니다.
이렇게 감쪽같이 사라졌던 마을이 이즈음 다시 사람들을 불러모으고 있습니다. 지난해 가을부터 마을 주민들이 허름한 집 담마다 서툰 솜씨로 벽화를 그려넣고 석탄을 운반하던 운탄도로를 산책로로 가꿨습니다. 마을로 드는 길에는 구절초와 국화, 코스모스를 심었습니다. 한때 학생수가 1000명이 넘었다는 폐교는 번듯한 펜션으로 만들어졌고, 주민들은 마을 곳곳에 소박한 나무 팻말을 세워놓았습니다.
가을비 촉촉하게 내리는 날에는 모운동을 찾아가보면 어떨까요. 모운동에서는 산 능선을 넘나드는 구름을 만날 수 있고, 옛 탄광선로가 깔린 자취를 따라 짙은 숲길을 산책할 수 있습니다. 인근의 예밀리에서는 이제는 폐허가 된 탄광사택이며, 버려진 작은 교회도 만날 수 있습니다. 물론 이름난 관광지처럼 눈길을 확 휘어잡는 볼거리야 없지만, 촉촉한 안개와 구름으로 뒤덮인 마을을 느릿느릿 산책하는 것만으로도 비탈진 산길을 올라온 보람이 느껴지실 겁니다.
한때 1만여명 북적이던 곳… 이젠 삶의 애틋한 추억만 남아
강원 영월군 ‘폐광촌’ 모운동
▲ 산골마을 모운동에는 유독 길이 많다. 1만여명이 북적거리며 살던 시절의 마을길은 물론이고, 옛 탄광열차가 다니던 선로부터 탄을 실은 트럭들이 오가던 운탄로가 거미줄처럼 이어져 있다. 어떤 길로 들어서든 짙은 숲으로 이어진다.
# 망경대산 발치에서 가파른 산길을 넘어 모운동 마을에 올라서다
구름이 모이는 곳, 모운동에 가 닿으려면 망경대산 발치에서부터 굽이굽이 산길을 올라야 한다. 영월에서 상동 쪽으로 이어지는 88번 지방도로는 줄곧 옥동천을 끼고 달린다. 김삿갓 계곡 못미쳐 옥동천을 가로지른 주문교를 건너자마자 길은 단숨에 산자락에 딱 붙어 갈 지(之)자의 가파른 산사면을 타고 오른다. 도무지 그 끝에 마을이 있을 것 같지 않은 길을 따라 힘겹게 닿는 곳이 해발 650m에 꼭꼭 숨어있는 마을 모운동이다. 모운동의 행정구역은 강원 영월군 하동읍 주문 2리. 모운동에서 동(洞)이란, 인제의 개인동이나 조경동처럼 행정구역의 명칭이 아닌 ‘마을’을 뜻하는 것이다.
예부터 모운동이 얼마나 오지였는가는 고려 때 이곳에 천민 집단주거지인 ‘주문이소’가 있었다는 데서도 드러난다. 모운동 인근 예밀리에도 역시 천민주거지인 ‘성미탄소’가 있었다. 논이나 밭 한 뙈기 변변히 없는 깊고 깊은 산중에 고립돼 키나 고리짝을 만들었던 천민들은 신분차별 속에서 중앙정부의 과도한 공물과 수탈에 시달리며 설움 속에서 생계를 유지해왔으리라.
모운동에 올라서면 고개를 돌리는 곳마다 첩첩산중이 펼쳐진다. 겹겹이 이어지는 산 능선들은 마을을 빙 둘렀다. 산자락의 주름진 골짜기 아래로 마을들이 폭 파묻혀 있다. 마을 어디에서 내려다봐도 하늘에 바짝 다가선 느낌이다. 한때는 고리짝을 만들던 천민들이 그랬을 것이고, 이후에는 탄광의 석탄을 캐던 늙은 탄부들도 이 자리에 서서 겹겹이 늘어선 산등성이를 내려다보았을 터다.
# 낡은 기억을 지워가는 벽화와 들꽃 그리고 구름
산골마을 모운동으로 드는 길의 초입은 지금 가을꽃들이 만발해 있다. 가파른 길 옆으로 주민들이 손수 심어놓은 국화 꽃이 노랗게 피어났고, 절로 자라난 구절초며 코스모스도 가을 바람에 하늘거리며 한창 꽃을 피워올렸다. 지난해 가을부터 외지인들이 마을로 하나둘 찾아들자 주민들이 마을가꾸기의 일환으로 함께 힘을 보태 심어놓은 것들이다.
산속에 꼭꼭 숨어 있는 모운동에 외지인들이 찾아들기 시작한 것은 폐허가 된 낡은 탄광촌 마을에 벽화가 그려지면서부터. 초라한 폐광마을 집의 누추함을 가리기 위해 주민들이 그려놓은 벽화가 소문이 나면서 외지인들이 산골마을로 찾아들기 시작했다. 사실 주민들이 처음 벽화를 그려넣은 것은 ‘치장의 의미’보다는, 밭 한 뙈기 변변히 없어 일거리가 없는 모운동 주민들의 ‘소일거리’에 더 가까웠다.
벽화는 그림책 속의 한 장면을 그려넣은 것들. ‘개미와 베짱이’‘인어공주’‘토끼와 거북이’…. 벽화라야 투박한 주민들의 솜씨로 그려진 것이어서 그림만 놓고 보자면 볼품없지만 비뚤비뚤한 그림은 산골마을의 소박한 정취와 오히려 더 잘 어울린다.
모운동에서는 마을을 돌아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꽃길을 따라 소박한 벽화를 감상해도 좋고, 오래 전에 시계가 멈춘 듯 낡은 집들을 돌아봐도 좋다. 마을 한복판의 2층 건물 ‘마을자료관’도 볼거리가 많다. 자료관 옥상에는 동네 노인들이 페트병을 잘라 만들었다는 독특한 모양의 바람개비가 휙휙 돌아가고 있다. 1층은 마을도서관. 도서관이라고 해도 책을 읽을 아이들이 없는 마을이라 늘 비워져 있다. 책꽂이에는 폐교가 된 인근 초등학교에서 가져왔음직한 낡은 책들이 꽂혀 있다. 이곳에서는 책을 읽기보다는 ‘괴도 루팡’이니 ‘세계 명작단편’ 같은 낡은 책들에서 추억을 새겨볼 수 있겠다. 2층은 잡동사니들을 모아둔 전시장이 있다. 전시장에서는 오래된 레코드판과 낡은 재봉틀 같은 1970∼1980년대의 옛 물건들로 가득하다.
▲ 마을 주민들이 손수 벽마다 그려넣은 벽화들.
# 극장까지 있었다던 산골 탄광마을의 옛 추억들
마을을 이리저리 기웃거리는데 개미와 베짱이가 그려진 길 옆 함석집의 문을 삐걱 열고 최순옥(79) 할머니가 마실을 나섰다. 50여년 전 한국전쟁 중에 모운동에 찾아들었다는 최 할머니는 “한때 모운동에 1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살았다”고 했다. 지난 1989년 4월3일 폐광된 석탄광산인 옥동광업소가 한창 경기가 좋았을 시절의 이야기였다. “그땐 여기를 반(半) 서울이라고 했어. 큰 시장도 있었고, 양복점이며 요리집, 색시집들도 즐비했었지. 영월읍내에도 없었던 큰 극장까지 있었다니까.”
석탄산업이 한창 호경기를 누리던 시절에 모운동은 ‘동네 개들도 1만원짜리를 물고 다니던 곳’이라고 했다. 영월읍내에서도 장을 보러 오거나 극장 구경을 하러 이 산골마을까지 올라왔다고 했다. 옥동극장은 ‘미워도 다시 한번’류의 영화들이 단골 레퍼토리였고, 낡은 필름이 끊기면 휙휙 휘파람을 불어대던 그런 극장이었다. 검은 얼굴의 탄부들도 읍내에 볼일이 있으면 ‘가다마이’를 쫙 빼입고 나서 인근 마을 주민들의 부러운 시선을 한몸에 받았다고 했다. 산 아래 마을들이 호롱불을 켜고 살 때도 모운동에는 일찌감치 전기가 들어왔고, 편의시설도 읍내보다 훨씬 앞서 들어와서 마치 별천지 같았다는 게 주민들의 설명이었다. 그러나 산골마을의 탄부생활이 어디 녹록한 것이었을까. 술만 취하면 다른 이들과 드잡이를 하거나 뒷방에 모여 노름을 하는 이들도 허다했다. 갱도가 무너지는 사고라도 날라치면 마을의 사이렌은 길게 울렸고, 탄부 가장을 둔 가족들은 가슴이 덜컹 내려앉기도 했다.
▲ 버려진 예밀리의 작은 교회. 작고 초라하지만 도회지의 번듯한 교회보다 이곳이 하나님과 더 가까운 곳인 듯 경건한 마음이 든다.
▲ 모운동이 한창 활황이던 시절에 옥동광업소의 계장급 이상 간부들의 숙소였던 곳. 지금은 김경숙(58)씨 등 3가구가 거주하고 있다
# 산골 마을 모운동을 둘러보는 법
모운동을 찾아가는 때는 촉촉히 가을비가 내린 날이면 좋겠다. 마을 주민들은 비가 그친 뒤 산허리로 밀려오는 구름이 마을을 이불처럼 덮을 때의 풍경을 최고로 쳤다. 그런 날이면 마을은 온통 밀도 높은 안개로 가득찬다고 했다. 마을에서는 폐광마을 흔적이 묻어나는 집의 애잔한 모습과 서툴게 단장한 벽화를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좋겠다. 그러다가 마주치는 동네 노인들에게 옛 호경기 시절의 추억담을 청해 듣는 것은 어떨까. 마을 주민들은 저마다 한타래씩의 이야깃거리를 담아두고 있었다.
번듯한 펜션으로 거듭난 폐교 뒤편에는 짙은 숲길의 산책로가 있다. 산책로는 산허리를 빙 둘러 40~50분쯤 걸리는데, 옛 탄광의 철로가 놓인 자리다. 아직도 입을 떡 벌리고 있는 폐광의 입구로 이어진 이 길에는 가을 들꽃들이 군데군데 피어 있다. 이 길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 한가지. 길 옆에 불쑥 솟아있는 바위봉우리 위를 조심조심 오르면 깎아지른 벼랑을 내려다볼 수 있다. 마을 사람들이 ‘그랜드캐니언’이라고 부르는 곳인데 한발만 더 나가면 100m도 훨씬 더 돼 보이는 까마득한 벼랑이어서 오금이 저린다. 깎아지른 계곡 저 아래로 물소리가 힘차다.
모운동마을을 지나 산허리를 도는 포장도로를 따라가면 초지가 펼쳐진 서로목장이 펼쳐진다. 소들이 초지에서 평화롭게 풀을 뜯는 모습이 아름답다. 목장을 지나면 역시 산골마을인 예밀리가 있다. 예밀리에는 옛 광업소 시절의 탄부들이 기거하던 관사가 오롯이 남아 있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아 폐허가 되긴했지만 관사 앞에는 ‘이 건물은 정부에서 지어준 것이니…고맙게 사용합시다’란 동력자원부장관 명의의 돌비석이 서 있다. 도대체 누가 누구에게 고마워해야 한다는 것인지…. 마치 낡은 레고블록처럼 자그마한 교회도 쇠락한 탄광마을의 애잔함을 그대로 전해준다.
예밀리에는 또 망경사란 절집이 있다. 산 아래 번듯하게 들어선 망경산사는 근래에 새로 지은 절집. 여기서 숲길을 따라 20분쯤 오르면 진짜 망경사가 있다. 망경사의 절집 건물도 최근 중창을 한 것이라 옛맛은 덜하지만 절집의 불단 앞에는 탄부를 가장으로 둔 아낙들의 무사를 기원하는 불공들이 켜켜이 쌓여 있을 터다.
▲ 모운동의 마을자료관에는 마을의 탄부들이 쓰던 헬멧 등 추억을 되살려주는 온갖 잡동사니들이 전시돼 있다.
“천국·지옥이 맞닿고 사람이 아름다운 곳”
“모운동은 어떤 점에서는 천국 같은 곳이고, 또 다른 점에서는 지옥 같은 곳입니다.”
지난해 모운초등학교 폐교를 인수해 2007년부터 ‘하늘아래펜션’을 운영하고 있는 정광복(54)씨는 모운동이 아름다운 자연과 산촌마을의 풍광을 간직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천국’이되, 땅 한 뙈기도 변변치 않은 곳이라 도무지 ‘먹고 살 것’이 없다는 점에서는 ‘지옥’이라고 표현했다.
전남 광주와 서울에서 제법 규모 있는 음식점과 카페 등을 운영해온 정씨가 이곳 산골마을 모운동과 인연을 맺은 것은 15년 전. 당시 정씨는 식당에서 쓸 김치를 저장해둘 저장고를 물색하다가 우연히 모운동에 들르게 됐다. 고랭지 배추밭이 가까이 있고, 해발 고도가 높아 여름에도 서늘한 모운동을 최적지라고 판단해 폐교가 된 모운초등학교를 매입했다.
김치저장고를 짓기 위해 모운동을 오가던 정씨는 그러나 모운동의 주변 경관에 반해 저장고 대신 노후의 거주지로 이곳을 남겨뒀다. 이른 아침이면 낮은 구름이 걸리는 산촌마을의 풍광과 밤이면 쏟아질듯 뜨는 별들에 마음을 뺏긴 덕분이다. 그렇게 15년을 준비해 지난해 여름 정씨는 부인과 함께 도회지에서의 생활을 청산하고 이곳 모운동으로 내려왔다.
“이름난 관광지나 유흥과 행락의 목적지는 많지만, 이렇듯 산촌의 자연과 마을이 어우러져 마음을 차분하게 해주는 곳은 흔치 않습니다. 옛 탄광마을의 흔적이 남아 있는 마을과 평화로운 목장을 둘러보고, 망경대산 자락에 거미줄처럼 나있는 운탄도로를 걷다보면 도회지의 소란스러움을 다 잊을 수 있지요.”
유독 여행과 레포츠를 즐겼던 정씨는 골프와 스키 실력도 수준급이다. 다녀온 나라를 다 꼽지 못할 정도로 해외여행도 많이 해봤다. 이렇게 여행을 즐기면서 그가 깨달은 것은 ‘가장 아름다운 것은 사람들이 사는 모습’이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가진 것도 없고 먹고 살 것도 없지만 마을회관에서 둥글게 모여앉아 국수 한 그릇을 나눌 줄 아는 모운동 주민들의 삶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라고 설명했다고 했다.
가는 길
모운동 가는 길 = 수도권에서 가려면 영동고속도로를 타고가다 만종분기점에서 중앙고속도로로 갈아타고 제천까지 내려가야 한다. 제천에서 영월까지는 38번 국도를 타고 간다. 영월읍내를 지나 경북 춘양 쪽으로 향하는 88번 지방도를 따라가다가 옥동천을 건너는 주산교를 건너 산길을 4㎞쯤 오르면 길 옆으로 국화꽃이 심어진 길을 나온다. 이 길을 지나면 모운동이다. 모운동을 지나 만경대산 산허리를 끼고 도는 포장도로로 계속 달리면 모운동과 마찬가지로 한때 탄광촌이었던 예밀리가 나온다.
숙소·맛집
어디서 묵고, 무엇을 맛볼까 = 모운동에는 모운초등학교 폐교를 개조한 ‘하늘아래펜션’이 있다. 한때 1000명이 넘었다는 폐교는 도회지의 학교에 버금갈 만큼 크다. 탄광이 문을 닫으면서 썰물처럼 사람들이 빠져나가 분교가 됐다가 급기야 문을 닫았다. 펜션은 페인트칠을 새로 해서 깔끔한 분위기지만 외관은 영락없는 초등학교 모습이다. 그러나 안으로 들면 대리석 바닥에 먼지 한톨 없다. 방마다 클래식한 침대와 가구들이 비치돼 있어 실내공간만 치자면 웬만한 호텔 버금간다. 맑은 날 밤에 운동장 마당에 평상을 펴고 누우면 산골마을에 쏟아지는 별들을 만날 수 있다. 모운동에는 식당이 없다. 펜션 주인에게 청해 식사를 하는 수밖에 없다. 주민들이 간혹 마을 노인들을 위해 점심때 끓여내놓는 잔치국수 맛을 볼 수 있다면 행운이다.
산 아래쪽으로 내려가 주산교를 건너면 지척에 김삿갓 유적지가 있다. 전남 화순에서 숨을 거둔 김삿갓의 무덤을 후손들이 옮겨온 것을 영월군이 관광지로 정비해놓은 곳이다. 이 부근에 식당들이 몰려있다. 칡냉면과 된장찌개 등을 내놓는 김삿갓기사식당( 033-374-9224 )이 유명하다. 옥동천을 따라 영월 쪽으로 가다보면 갓잡은 싱싱한 송어를 썰어내놓는 옥동 송어횟집( 033-372-9143 )도 알아주는 맛집이다. 영월읍내 법원 입구 근처에 김인수할머니순두부집( 033-374-3698 )은 따로 시간을 내서 찾아가볼 만하다.
<출처> 2008-10-01 / 문화일보
'국내여행기 및 정보 > - 강원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제 방태산, ‘어머니의 품인 듯’ 마지막 남은 원시림 (0) | 2008.10.16 |
---|---|
동해 내음 한아름 안겨주던 길, 7번 국도 (0) | 2008.10.15 |
강원도 원주, 섬강과 치악이 빚어낸 강원도 으뜸 고을 (0) | 2008.10.01 |
춘천 삼악산, ‘三岳’에 올라 ‘삼락(三樂)’에 젖다 (0) | 2008.09.16 |
고성 화암사(禾巖寺), 금강산 신선봉 아래 터잡은 고찰 (0) | 2008.09.01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