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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기 및 정보/- 충청남도

덕숭산, 수덕사와 한 몸이 되어 있는 ‘호서의 금강’

by 혜강(惠江) 2008. 9. 26.

 

예산 덕숭산

수덕사와 한 몸 이룬 ‘호서의 금강’  

                                      

글·사진 김홍주 소산산행문화연구소 소장

 

 

 

▲ 하산길 도중에 있는 거북처럼 생긴 큰 바위. 벼랑 위여서 조망이 좋다.

 

      

  원래 덕숭산은 호서의 금강이라 불리기도 했다. 산 전체에 숲이 울창하고 멋이 있는 노송을 어디서나 볼 수 있다. 숲에 둘러싸인 산 한가운데의 골짜기는 바위로 되어 있으며, 깊고 가팔라 낮에도 해를 보기 어렵다. 이 경관이 좋은 덕숭산 남면 일대는 거의가 수덕사 경내로 산 여기저기에 정혜사, 정월사, 금선대, 향운각, 소림초당, 비구니 암자인 견성암, 환희대, 그리고 만월당, 선수암, 운수암, 극락암, 만공탑, 관음보살상 등이 자리 잡고 있다.


  소림초당 등은 깎아지른 바위벼랑 위에 벽을 등지고 숨은 듯 앉아있기 때문에 길에서는 나무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다. 덕숭산의 또 다른 멋은 등성이 산비탈 곳곳에 갖가지 모양의 큰 바위덩이가 높이 솟아있는 점이다. 숲 위로 솟아 있어 그 위에 서면 조망이 좋고 시원하다.


  덕숭산은 내포 땅을 조망하기에 좋은 자리에 있다. 당진 서산 예산 홍성 고을 일대를 일컫는 내포는 산과 바다가 조화를 이루고 있고 농산물과 해산물도 넉넉하여 살기 좋고 민심도 좋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바로 건너의 가야산은 물론 도고산 금오산(예산) 봉수산 오서산 백월산 팔봉산 삼준산 등 내포의 모든 산들이 조망된다.

 

 

▲ (좌)사 아래에서 본 덕숭산.(우)국보 수덕사 대웅전의 배흘림 기둥.

  

  수덕사의 창건 연대는 확실하지 않다. 백제 위덕왕(554-597)때에 창건되었을 것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수덕사 안내판에도 그렇게 추측하고 있고, 명저 ‘명찰순례’를 쓴 최완수씨도 1권 수덕사 편에 같은 주장을 하고 있다. 최완수씨는 그 근거로 백제가 위세를 떨친 위덕왕 때에 홍주(현재 홍성)가 당진 태안 등 해상활동의 배후거점(정치 중심지)으로 굳혀가는 시기여서 이 때에 서산 마애불이 조성되었으며, 주류성(현재의 홍주-김정호,대동지지 홍주편)을 위한 비보사찰의 필요에서 수덕사가 창건되었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 최완수씨가 그 근거로 당나라 도선이 쓴 속고승전 ‘백제국 달나산 석혜현전’에 써있는 혜현 스님(570-627·삼국유사 혜현 구정편 참조)의 행적을 들고 있다. 그 기록에는 혜현 스님이 ‘본국 북부 수덕사에 살면서 삼론을 강론했다’는 내용이 있는 것이다.

 

  국보 제49호인 수덕사 대웅전은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과 함께 고려시대에 지은 가장 오래 된 목조건물이며, 기둥이 예술적인 배흘림 기둥으로도 유명하다. 이 대웅전은 1937년 해체 수리 때 나온 묵서명에 의해서 고려 충렬왕 34년(1308년)에 세워졌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 (좌)명물 천연 바위문을 아래를 지나고 있는 일행.(우)산행 전에 수덕사 약수를 받아 마시고 있는 최윤정씨와 신영순씨.

 

 

 

 

 

  수덕사에 관한 재미있는 전설도 있다. 백제 때 세운 이 절은 백제가 망한 뒤 매우 쇠락했다. 중창하려 했으나 비용이 모자랐고 시일도 많이 걸리게 되어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이 때 묘령의 여인이 중창을 돕겠다며 나섰다. 이 수덕 아씨의 소문으로 많은 사람이 중창을 돕게 되었다.
 
  그 때 신라의 대부호이자 재상의 아들도 수덕 아씨를 보고 한눈에 반하여 청혼을 하게 되었다. 청혼을 받은 수덕 아씨는 대불사가 이루어지면 청혼을 받아들이겠다고 약속했다. 그래서 돈과 권력의 뒷받침으로 10년이 걸려야 할 불사가 3년만에 이루어졌다. 정승의 아들은 수덕 아씨를 만나 혼인을 재촉했다. 수덕 아씨는 잠간 옆방에서 옷을 갈아 입고 나오겠다며 옆방으로 갔다. 한참을 기다리던 정승의 아들이 그 방에 가보았으나 수덕 아씨는 없고 언듯 수덕사 대웅전 오른편(서편) 큰 바위의 갈라진 틈으로 수덕 아씨가 들어가는 것을 보고 급히 따라갔으나 수덕 아씨의 버선 한 짝만 줍게 되었다.
 
  사람들은 그 뒤 관음보살이 수덕사 중창을 돕기 위해 수덕 아씨로 현신했다는 것을 알고 그 바위를 관음바위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지금도 매년 봄이면 관음바위에 버선 모양의 꽃이 피고 사람들은 그 꽃을 버선꽃이라 한다는 것이다. 
 
 수덕사가 또 유명한 것은 경허, 만공 등 걸출한 스님들이 일본의 압제에 굽히지 않고 선지를 연구하고 실천하며 많은 제자를 길러 근대 선(禪)의 중흥을 이룬 것이다.‘청춘을 불사르고’라는 글을 남긴 일엽 스님도 수덕사에서 평생을 지냈다.
 
  절 바로 아래에 있는 수덕여관 뜰에는 세계적인 화가 고암 이응로 화백이 ‘삼라만상의 영고성쇠를 문자적 추상’으로 새긴 암각화가 여러 점 있다. 이것은 동백림 간첩사건으로 서울에 붙잡혀와 옥살이를 하고 풀려나온 고암이 수덕여관을 경영하며 수절하고 있던 본부인에게 와서 정양을 하고 있을 때 새긴 작품이다.
 
  덕숭산과 수덕사를 찾아 들어가는 관문인 덕산에는 매헌 윤봉길 의사의 사당 충의사가 있고 덕산온천도 있다.  
 
 
수덕사에서 시작하고 끝낸 덕숭산 산행
 
  오후에 비가 내릴 것이라는 일기예보를 듣고 덕숭산 산행을 서둘렀기 때문에 오전 9시30분 수덕사 금강문 안에 들어설 수 있었다. 이 날의 덕숭산 산행에는 대전상고 총동창회의 대규모 산악회인 청원산악회의 산악대장 강창권씨, 부대장 신광수 사장, 계룡산행회 총무 최윤정씨, 회원 신영순씨가 일행이 되었다.
 
 
▲ 만공 스님이 조성했다는 관음보살입상.


  우리는 사천왕문 안에 들어서서 바로 앞에 있는 약수터에서 물을 받아 마신 뒤 왼편 언덕에 있는 견성암으로 올라갔다. 일엽 스님이 계셨었다는 이 비구니 암자는 예전과는 사뭇 달라 규모도 커져 있었고 조경도 잘 되어 있었다. 특히 뜰에서의 조망이 좋았다.

 

 우리는 견성암에서 나와 포장길을 따라 위로 위로 올라갔다. 찻길은 향적당까지 이어졌다. 높은 석축 위에 세워진 향적당도 선원인 듯 조용했다. 정혜사으로 가는 길은 향적당 별채인 진영당 오른편 아래에서 이어졌다.

 

  향적당을 나서면 바로 천연 돌다리 아래를 지난다. 높이가 2m쯤 되는 굽은 다리가 마치 사람이 다듬어 올려놓은 것 같다. 다리가 아니라 대문 위의 대들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돌다리를 지나 숲길을 더 나아가면 정혜사 아래에서 수덕사 본전에서 골짜기를 따라 올라온 길과 만난다. 정혜사 앞을 지나지만 대문은 굳게 잠겨 있었고 조용했다.

 

  정혜사를 지나면 얼마지 않아 산등성이에 오르게 된다. 산등성이엔 대포처럼 비스듬히 하늘로 솟은 바위와 거북처럼 생긴 큰 바위 등을 볼 수 있다. 이것들은 숲 위로 솟아 있어서 그 위에 서면 산 사이로 홍성이 보이고 오서산과 백월산, 남당리 바다도 보인다. 정혜사를 거치지 않고 만공탑에서 올라온 길과 만나고 얼마지 않아 고스락에 올라서게 된다. 고스락은 꽤 넓고 조망도 좋지만 남쪽 용봉산쪽은 나무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고스락 아래 소나무숲 그늘이 시원하여 쉬면서 간식과 점심 먹기에 좋다.

 

 내려갈 때는 정혜사를 거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올라올 때는 몰랐으나 정혜사쪽 길을 가시철망으로 막아 놓았기 때문이다. 정혜사를 거치지 않는 길은 정혜사 바로 아래에서 향적암을 거쳐 돌다리를 지나 올라온 길과 수덕사에서 올라온 길, 그리고 정혜사쪽 길과 만나는 사거리다. 이 사거리에서 조금만 내려가면 공 모양의 둥근 돌을 팔각기둥 셋이 떠받치고 있는 만공사리탑을 보게 된다. 만공월면(滿空月面)과 삼보(三寶) 및 팔정도(八正道)를 나타내는 현대적인 이 사리탑이 60여 년 전에 만들어졌고, 한글로 써 있음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만공탑을 지나 가파르게 돌계단을 내려가면 이번엔 관음보살상이 나타난다. 만공 스님이 1924년 천연암석에 조성한 관음보살상이다. 개울 건너 절벽 위에 향운각이 있지만 문은 굳게 잠겨 있다.

 

 

 

▲ (좌)고스락 표석에서 직은 기념사진 뒤에 나무 사이로 가야산의 통신탑이 보인다. (우)나무 사이로 보이는 초당선원.

 

 그 다음에는 유명한 소림초당이다. 바위벼랑 위에 제비집처럼 지은 이 초당도 역시 만공선사가 1925년 터를 잡고 손수 설계하여 지은 집으로, 선사는 평생 이 초당에서 지냈다 한다. 폭포를 이루고 있는 개울 건너에서 나무 사이로 초당을 볼 수 있다.
 
  우리는 개울에서 옆문으로 수덕사 경내로 들어가 관음바위를 지나 국보인 대웅전을 둘러보았다. 대웅전 양편의 배흘림 기둥은 언제 보아도 신기하다. 우리는 넓은 뜰을 지나 황하정 누각 아래를 지나고 사천왕문 금강문을 지나 절 밖으로 나온 다음 바로 옆에 있는 수덕여관에도 들러 고암이 새긴 암각화를 보는 것으로 덕숭산 산행을 마쳤다. 3시간이 좀 넘은 산행이었다.


 

 

산행길잡이(마패봉 포함)

 

○견성암 등성이길  금강문~사천왕문~견성암~향적당~돌문~정혜암 갈림길~고스락 <약 1시간 30분 소요>
○만공탑 골짜기길  금강문~사천왕문~황화정루~대웅전~관음바위~관음불상~만공탑~정혜암 갈림길~고스락 <약 1시간30분 소요>


교통
  덕숭산 접근 거점은 덕산(예산군 덕산면 읍내리,덕산면 소재지)이다. 덕산에서 홍성으로 가는 40번 국도를 타고 매헌 윤봉길 의사의 사당인 충의사 앞을 지나 첫 고개를 넘으면 바로 덕숭산과 수덕사의 들머리가 있다. 예산 또는 덕산에서 군내버스가 수덕사를 드나든다.   

 

 

 

 

 

 

 

 

                        

<출처> 2008. 9 / 월간산 46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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