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회 미당문학상] 최종 후보작 지상중계 ⑧ [중앙일보]
“돌층계를 만드는 건 시를 짓는 작업”
장석남의 ‘석’이 혹 ‘돌 석(石)’자 아니냐고 농을 걸었다. ‘주석 석(錫)’자라 답하는 시인의 얼굴
이 환했다. 돌을 참 좋아하는 시인이다. 갈팡질팡 고민 끝에 대표작으로 택한 시도 ‘돌층계’다.
“돌은 아름다워요. 어떤 디자인도 따를 수 없죠. 또 돌이 나이를 많이 먹었잖아요.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가장 밀접한 자연적 사물이면서 그 안엔 가장 민감한 시간이 함축돼 있죠.”
가장 오래된 물건. 그런 돌을 날라 층계를 만든다. ‘오르락내리락 종교와도 같은, 믿음과도 같
은 리듬이 생겨’나니, 돌층계를 만드는 건 곧 시를 짓는 행위가 된다. 돌층계 앞엔 ‘붉은 꽃바’가
너울댄다.
“옛날 정원은 바위를 놓고 그 앞에 꽃을 심어 영원성과 일시성의 조화를 이뤘어요. 사실 바위
도 꽃인데, 큰 꽃 앞에 작은 꽃이 있는 셈이죠.”
그의 시 세계도 돌과 꽃이 어우러진다.
‘한옥 짓는 마당가/널빤지 위에 누워 낮잠 들어가는 대목수의 꿈속으로 들어가/잠꼬대의 웃음
으로 배어나오는/작약 밭의 긍정, 긍정, 긍정, 긍정’(‘문 열고 나가는 꽃 보아라’ 중)
그늘 한점 없이 환한 시, 서정만을 노래하는 시, 마냥 긍정하는 시에 마음이 환해진다. ‘긍정,
긍정, 긍정, 긍정’ 따라 읽다보면 입술 사이로 작약 꽃이 피는 듯하다.
‘작약 싹 올라온다/작약꽃이 피어 세상을 보다가/떨어질 것을 생각한다’(‘작약’ 중)
시인은 근래 작약을 심었다. 비단처럼 겹겹이 싸인 꽃잎이 꼭 눈동자 같은 꽃.
“작약이 뭘 보러 와서 뭘 보러 갈까. 비밀스러운 건 꽃 속에 다 숨겨두면, 꽃이 매번 피어서 그
얘기를 해주지 않을까.”
시의 세상에선 사람만 꽃을 보는 게 아니라, 꽃도 사람을 본다는 게다.
시인은 ‘촛불의 千手千眼’이란 시에서 ‘지금/맨손바닥 위에 촛불이 한 그루 떠 있다/맨손바닥
위에 촛불이 한 포기 떠 있다/맨손바닥 위에 촛불이 한 송이 떠 있다’고 노래했다. 불은 예쁜 꽃
이다. 불꽃은 부뚜막에 뿌리가 닿는다. 인간이 태초에 불을 다스리기 시작한 곳이다.
‘그녀가 가진 첫 방은 부뚜막이었다 한다’(‘부뚜막 방’ 중)
무엇이든 집어삼킬 수도 있을 무서운 불은 부뚜막 안에선 어미 무릎에 기댄 듯 얌전해진다. 어
머니가 평생 가장 오래 머물렀을 공간. 어머니 품처럼 따뜻한 장소다.
‘천정이 꺼멓게 그을린 부엌 찬 부뚜막에 수십 년을 앉아서 나는/고구려 사람처럼 현무도 그리
고 주작도 그린다/그건 문자로는 기록될 수 없는 서룬 사랑이다’(‘부뚜막’ 중)
현무·주작이 벽화로 남아있는 고구려 무덤처럼 불을 땐 세월만큼의 그을음이 벽화가 된 어머니
의 부엌. 어린 시절의 시인은 온기 남은 부뚜막에서 어머니의 체온을 느끼며 부지깽이로 그림을
그렸을 게다. 그런 부뚜막도 결국 돌이다. 시인에게 돌은 꽃이요, 불이며, 부뚜막이었고, 또한 어
머니의 사랑으로 함축된 세월을 아로새긴 시(詩)였다.
글=이경희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출처> 2008. 8. 12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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