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회 미당 문학상] 최종 후보작 지상중계 ⑩
죽음·가난 넘나드는 폭넓은 시어
나이 마흔이 채 되지 않았다. 그런데 등골이 서늘한 죽음, 뼈에 사무치는 가난을 노래한다. 최현식 예심위원은 “경험의 폭이 어디서 얻어진 걸까 궁금할 정도”라며 “일상적인 경험이 많은 사람들이 제대로 다가가지 못하는 관념적 부분까지 자유롭게 넘나든다”고 평했다.
죽음을 다룬 시 중 압권은 ‘잉어떼’다. ‘저수지의 잉어들은 빠져죽은 사람 얼굴과 닮았지/(…)/유서도 못 쓰고 죽은 신원미상 젊은 여자와/병들어 앓다가 엉금엉금 기어와/신발만 겨우 벗고 뛰어든 할망구/물 먹고 죽은 그들의 너덜너덜한 얼굴 조각들이 흘러다니는 저수지’(‘잉어떼’ 중)
사물에도 혼이 깃들어 있다는 ‘물활론’은 그의 시 세계를 관통한다. ‘쌀밥에서 나온 머리카락들이 논에 가득하고/우리 집 사람들은 올해 풍년이 들겠네/모든 사람들은 한 마지기 머리카락 농사를 짓다가 가는 것이네’(‘머리카락 농사’ 중)
시인의 고향은 충북 제천이다. 삼한시대에 축조된 저수지 ‘의림지’가 있는 곳. 의림지엔 한해 너덧 명은 빠져 죽었다. 아버지는 세 살 무렵 돌아가셨다. 아버지 쪽 친척 예닐곱도 세상을 떴다. 그는 ‘멸망한 가문의 삼대독자’(‘불행한 밥’), ‘심심하면 죽은 아버지 얼굴을 쓰고 대문을 뛰어넘어/집 나간 엄마를 찾아 나섰’(‘호랑이와 놀다’)던 아이였다.
남자들의 죽음엔 가난이 뒤따른다. 가난이 먼저였는지도 모른다. ‘돈 없어 죽은 조상귀신들이 나무열매처럼 주렁주렁 열린 밤하늘이 싫다’(‘여기에 없는 사람’ 중)
“어릴 때 너무 가난했어요. 어머니는 멀리 돈 벌러 떠돌고,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주인 없는 땅에 집을 지었다 번번이 철거될 위기에 놓이고….”
가난은 최첨단을 걷는 현재에까지 연장된다. ‘인터넷 무료계정으로 세운 나의 HOME’이 ‘나이 서른여섯에 처음으로 가져보는 방 한칸’(‘즐거운 나의 집’)이다. 연체 독촉 전화는 ‘카드빚에서 날 구원해 줄 것마냥 출동해선/따르릉, 안부를 묻는 것이 아니라 불행을 묻’(‘교묘한 따르릉’)는다.
교육대학 출신인 그는 사립학교와 학원을 전전했다. 이직 과정에서 백수의 쓴맛을 제대로 봤다. 광주광역시 인근에서 작은 학원을 운영하는 지금까지도 ‘내 집’은 없단다. “세든 집도 알고 보니 경매에 넘어갔더라고요.” 또 쫓겨날 위기다.
‘퇴근하면 다시 출근이 기다리는 집에 나는 왜 돌아가나/나는 왜 화날 일이 아닌데 화가 나나’(‘凡우주적으로 쓸쓸하다’ 중)
가난에서 탈출할 유일한 희망은 로또다. ‘왜 사느냐, 를/왜 로또를 사느냐, 로 이해해도 무관하다’(‘로또를 안 사는 건 나쁘다’ 중)
시인에겐 할아버지 대의 가난에 88만원 세대로 통하는 청년들의 가난까지, 신화를 실제처럼 말하는 옛 어른의 사고방식부터 ‘외계인’의 존재를 믿어 의심치 않는 현대의 전설까지 체화됐다. 비록 집은 짓지 못했지만, 아무도 넘보지 못할 견고한 시 세계를 지었다. 이광호 예심위원은 “80년대의 리얼리즘이 21세기에는 어떻게 변주돼야하는지 대안을 보여주는 시”라고 말했다.
글=이경희 기자, 사진=최금진 제공
죽음을 다룬 시 중 압권은 ‘잉어떼’다. ‘저수지의 잉어들은 빠져죽은 사람 얼굴과 닮았지/(…)/유서도 못 쓰고 죽은 신원미상 젊은 여자와/병들어 앓다가 엉금엉금 기어와/신발만 겨우 벗고 뛰어든 할망구/물 먹고 죽은 그들의 너덜너덜한 얼굴 조각들이 흘러다니는 저수지’(‘잉어떼’ 중)
사물에도 혼이 깃들어 있다는 ‘물활론’은 그의 시 세계를 관통한다. ‘쌀밥에서 나온 머리카락들이 논에 가득하고/우리 집 사람들은 올해 풍년이 들겠네/모든 사람들은 한 마지기 머리카락 농사를 짓다가 가는 것이네’(‘머리카락 농사’ 중)
시인의 고향은 충북 제천이다. 삼한시대에 축조된 저수지 ‘의림지’가 있는 곳. 의림지엔 한해 너덧 명은 빠져 죽었다. 아버지는 세 살 무렵 돌아가셨다. 아버지 쪽 친척 예닐곱도 세상을 떴다. 그는 ‘멸망한 가문의 삼대독자’(‘불행한 밥’), ‘심심하면 죽은 아버지 얼굴을 쓰고 대문을 뛰어넘어/집 나간 엄마를 찾아 나섰’(‘호랑이와 놀다’)던 아이였다.
남자들의 죽음엔 가난이 뒤따른다. 가난이 먼저였는지도 모른다. ‘돈 없어 죽은 조상귀신들이 나무열매처럼 주렁주렁 열린 밤하늘이 싫다’(‘여기에 없는 사람’ 중)
“어릴 때 너무 가난했어요. 어머니는 멀리 돈 벌러 떠돌고,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주인 없는 땅에 집을 지었다 번번이 철거될 위기에 놓이고….”
가난은 최첨단을 걷는 현재에까지 연장된다. ‘인터넷 무료계정으로 세운 나의 HOME’이 ‘나이 서른여섯에 처음으로 가져보는 방 한칸’(‘즐거운 나의 집’)이다. 연체 독촉 전화는 ‘카드빚에서 날 구원해 줄 것마냥 출동해선/따르릉, 안부를 묻는 것이 아니라 불행을 묻’(‘교묘한 따르릉’)는다.
교육대학 출신인 그는 사립학교와 학원을 전전했다. 이직 과정에서 백수의 쓴맛을 제대로 봤다. 광주광역시 인근에서 작은 학원을 운영하는 지금까지도 ‘내 집’은 없단다. “세든 집도 알고 보니 경매에 넘어갔더라고요.” 또 쫓겨날 위기다.
‘퇴근하면 다시 출근이 기다리는 집에 나는 왜 돌아가나/나는 왜 화날 일이 아닌데 화가 나나’(‘凡우주적으로 쓸쓸하다’ 중)
가난에서 탈출할 유일한 희망은 로또다. ‘왜 사느냐, 를/왜 로또를 사느냐, 로 이해해도 무관하다’(‘로또를 안 사는 건 나쁘다’ 중)
시인에겐 할아버지 대의 가난에 88만원 세대로 통하는 청년들의 가난까지, 신화를 실제처럼 말하는 옛 어른의 사고방식부터 ‘외계인’의 존재를 믿어 의심치 않는 현대의 전설까지 체화됐다. 비록 집은 짓지 못했지만, 아무도 넘보지 못할 견고한 시 세계를 지었다. 이광호 예심위원은 “80년대의 리얼리즘이 21세기에는 어떻게 변주돼야하는지 대안을 보여주는 시”라고 말했다.
글=이경희 기자, 사진=최금진 제공
<출처> 2008. 8. 7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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