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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수상 및 후보시

<시> 되새떼들의 하늘(제8회 미당문학상 최종 후보작) / 정진규

by 혜강(惠江) 2008. 9. 3.

 

            [제8회 미당·황순원 문학상] 최종 후보작 지상중계 ⑨ [중앙일보]

 


 

 

이승·저승 넘나들며 세상과 소통

 

  “그의 상가엘 다녀왔습니다. 환갑을 지난 그가 아흔이 넘은 그의 아버지를 안고 오줌을 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 ‘아버지, 쉬, 쉬이, 어이쿠, 어이쿠, 시원허시것다아’ 농하듯 어리광 부리듯 그렇게 오줌을 뉘었다고 합니다.”(문인수, ‘쉬’ 중)



  떠올리니 아름답다. 환갑이 지난 이가 아흔이 넘은 아버지를 안고 오줌을 뉘는 모습은 성스럽기까지 하다. 이 시 속의 주인공이 바로 정진규 시인이다. 이들이 술잔을 건네듯 시를 주고 받는다.

  ‘시인 문인수는 임종 무렵의 아버지 이야기를 시로 썼지만 그런 생각이 들지 않는데 시인 김신용이 아무래도 은인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버지는 김신용이 직접 지은 진솔 수의를 입으시고 이승을 뜨셨다 아무래도 나는 實物(실물) 편인가 보다’ (‘아버지의 수의’)

  정진규 시인이 답례처럼 내놓은 시에 넉넉한 농담과 웃음이 배어난다.

  반세기에 가까운 시간 동안 꾸준히 시를 고집해 온 노시인에게선 그득한 풍채만큼 여유가 묻어난다. 생명 하나하나를 다정하게 바라볼 수 있는 여유, 삶의 여백을 응시할 수 있는 여유다. 이 여유는 죽음도 품는다. “죽음을 바라보는 게 너무나 편안하다. 죽음을 데리고 사는 느낌이다.”(문혜원 예심위원)

  되새떼들이 떼를 지어 나는 모습을 그린 ‘되새떼들의 하늘’에서 시인은 비백(飛白)을 본다. 여백과는 조금 다르다. 나는 듯한 붓질, 붓의 움직임이 빨라 먹물이 미처 묻지 않은 상태를 일컫는 비백은 ‘그리지 않았지만 우러나오는 그림’이다. “새들은 발톱을 가슴에 꼭 품고 하늘을 납니다. 하늘에 상처를 내지 않고 제 가슴에 피를 내면서 그림을 그리는 겁니다. 상대에게 상처를 내지 않기 위해 스스로 흘리는 피로 그리는 그림, 그게 얼마나 아름다운지요.”

  되새떼들은 그렇게 이승과 저승을 오간다.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며 경계를 훌쩍 훌쩍 뛰어넘는 모습이 시인에겐 경외의 대상이다. 새들을 따라 시인도 경계를 넘나든다. 시도 그렇고 삶도 그렇다. “조상님들이 묻혀 계신 곳 근처에서 살고 있어요. 묘지기지요. 매일 새벽 5시면 한 바퀴 천천히 돌아봅니다. 허허”

  무섭지 않느냐고 물으니 “어떨 때는 꼭 저쪽(저승)에 다녀온 듯한 기분도 들고요. 꽃이 피면 어머니가 다녀가신 것도 같고, 저승내도 맡지요.”라고 답한다. 그렇게 넘나들면서 시인은 “사람과 세계와 바로 통하는 시, 죽음도 너그러이 받아들일 수 있는 그런 상태”(문태준 예심위원)를 보여준다.

  어느 날 재미로 ‘오늘의 운세’를 봤단다. “칼슘 성분을 많이 섭취하고 몸을 따뜻이 할 것”이라는 말에 시인은 우유를 두 잔이나 마시고 멸치 볶음을 한 접시 비우고, 내복을 꺼내 입었다. 그러고선 시를 썼다. ‘몸 뎁혔다 왜 뎁혀야 하는지 왜 칼슘이 필요한지는 묻지 않았다 운명이니까 오늘 하루를 잘 통과했다 칙칙한 무당집 냄새가 나지 않아 좋았다 운명이 이런 것이라면 한번 해볼 만하다’(‘오늘의 운세’ 중) 그 넉넉한 웃음에 운명도 고개를 숙이고 가겠다.

글=임주리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출처> 2008. 8. 8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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