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산토리니
이아여, 너의 아름다운 하루여
사진/글·최상운(여행작가
*산토리니 신항구에 닻을 내린 배에서 여행객들이 내리고 있다.
그리스 신화에는 태양이 뜨고 지는 것이 태양의 신 아폴론이 불의 전차를 몰고 가기 때문이라고 돼 있다. 아폴론이 하늘에서 온통 불에 휩싸인 전차를 끌고 나오면 태양이 뜨는 것이고, 그가 전차를 끌고 들어가면 태양이 진다는 것이다. 붉게 빛나며 스러져가는 태양도 멋있지만, 하늘이 형형색색으로 변하며 황홀한 색채의 향연을 펼치면 대자연의 신비에 찬사를 보낼 수밖에 없다. 그리스의 수많은 섬 중에 산토리니를 찾아가는 이유는 바로 세계 최고의 석양이라 하는 산토리니 이아의 석양을 보기 위함이다. 산토리니로 가는 배 안에서 당신에게 편지를 쓴다.
한 폭의 그림 같은 ‘피라’
산토리니로 가기 위해 키클라데스 군도의 북쪽에 있는 미코노스를 떠났다. 아테네에서 미코노스로 가는 배는 일반 여객선이라 선실 바깥에서 바다를 감상하는 것이 가능했다. 하지만 이번엔 작지만 속도가 빠른 쾌속선이어서 선실 안에만 있어야 한다. 약간 지루한 감이 없지 않지만 대신 이동시간은 짧아졌다. 가끔씩 배가 중간 기항지에 들를 때면 밖으로 나와 지나치는 섬들을 바라볼 수 있다.
아름답기로 유명한 그리스의 섬들은 아테네를 중심으로 크게 다섯 구역으로 나뉜다. 먼저 아테네의 북서쪽에는 스포라데스 군도가, 북동쪽에는 북에게해의 섬들이 있다. 그리고 아테네의 바로 옆 동남쪽에는 키클라데스 군도가, 거기서 더 내려가면 로도스 섬 인근의 섬들이 있다. 마지막으로 아테네에 인접한 서남쪽에는 사로니케만의 섬들이 있다. 여행객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섬은 키클라데스 군도의 미코노스와 산토리니다. 그리스 사람들도 이 두 섬을 가장 많이 추천한다. 그 외에도 크레타, 로도스, 델로스, 시오스, 히드라, 파로스 등 멋진 섬이 많이 있으니 여유가 있다면 같이 둘러보는 것도 좋다.
*이아의 절벽 위에서 내려다보면 이곳이 화산섬임을 금방 알 수 있다.
*태양이 지고 하늘이 붉게 물들면 이아 마을에도 하나 둘 불이 켜진다.
산토리니는 크게 피라와 이아(Oia) 두 개의 섬으로 나뉘는데, 산토리니 중앙에 있는 피라는 이아에 비해 꽤 번화한 느낌을 준다. 수많은 상점과 여러 문화가 뒤섞인 것 같은 번잡함이 있다. 그래도 바닷가 절벽 위로 난 좁은 길을 가다 보면 절벽 위에 마치 바다로 흘러내릴 것같이 위태롭게 서 있는 집들, 쪽빛 바다와 그 위를 떠다니는 배들이 한 폭의 그림을 만든다.
잃어버린 대륙 ‘아틀란티스’
산토리니의 남쪽에서 피라 쪽으로 오다 보면 화산 폭발의 흔적을 볼 수 있다. 기원전 약 1450년에 일어난 대폭발의 흔적이다. 지금의 산토리니는 가라앉은 화산의 일부라고 하는데 일설에는 이곳이 바로 플라톤이 말한 잃어버린 대륙 ‘아틀란티스’로 전해지기도 한다. 불안정한 단층에 위치한 탓에 지진도 가끔 있다. 가장 가까이는 1950년대에 지진이 있었는데 막대한 피해를 보아 1970년대에 새 단장을 한 뒤에야 관광명소가 되었다.
이제 피라를 떠나 버스를 타고 이아로 향한다. 위태로운 산길을 굽이굽이 돌면서 보는 풍경이 장관이다. 아래로 까마득히 바다가 보이고 성냥갑보다 작아 보이는 집과 예배당이 점점이 흩어져 있다. 20분쯤 지났을까. 드디어 이아에 도착해 바닷가 절벽 쪽으로 난 길을 걸어가보았다. 중간에 지진의 피해를 당한 것으로 보이는 집 몇 채가 남아 있어 그때의 아픔을 되돌아보게 해준다. 마을 전체는 아기자기하게 잘 꾸며놓아서 수많은 그리스의 섬 중에서도 가장 아름답다는 말이 괜한 소리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레스토랑과 갤러리, 가게들도 한결같이 그리스의 색채를 보여주는 듯하다.
눈물나게 아름다운 이아의 석양
마을을 둘러보다 요기나 할 요량으로 샌드위치 가게에 들어갔다. 이층 테라스에서 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멋진 곳인데 주인아주머니가 참 재미있다. 더위에 지친 손님들에게 약간 투덜거리는 듯한 농담을 즐겨 하는데, 듣는 사람들 모두에게 웃음을 준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지이지만 야박하지 않은 인심이다. 여기서 눈앞에 펼쳐진 바다를 보며 시간을 보내다가 일몰을 보러 절벽가로 향했다. 그런데 그리 넓지 않은 절벽이 벌써 사람들로 가득하다.
절벽 위에 겨우 자리를 잡고 지는 해를 바라보고 있자니 문득 TV에서 본 한 장면이 떠오른다. ‘한 갓난아이가 할아버지 앞에서 재롱을 피우고 있다. 갑자기 아이가 넘어지면서 옆의 물건을 쓰러뜨린다. 아이가 울음을 터뜨리자 할아버지가 아이를 안으며 달랜다. 그래도 아이가 울음을 그치지 않자 이제는 할아버지가 아이보다 더 크게 울면서 말한다. “아가야. 괜찮아. 이건 아무것도 아니란다. 앞으로 네가 더 크면 훨씬 더 많은 실수, 큰 잘못을 하게 될 거”라고.’ 산토리니의 이아, 그 특이한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생뚱맞게도 우리말의 ‘아이’를 떠올렸다. 눈물나게 아름다워서 가슴이 서늘해지는 이아의 석양을 바라보자니 그 어린아이와 인생의 황혼길에 선 할아버지의 모습이 겹쳐진다. 이아의 저 노을을 당신에게 보낸다.
*레스토랑이나 카페 지붕 위의 멋진 장식품과 소파는 주변 풍광과 잘 어울린다.(상좌) 피라의 마을은 이아보다 꽤 번화한 인상을 준다.(상우) 산토리니를 그린 그림과 기념품들이 즐비한 가게들.(하좌)
여행 정보
산토리니의 다른 이름은 ‘Thira’이고 그중의 한 섬이 피라(Fira)이니 헷갈리지 말자. 산토리니 남쪽의 페리사(Perissa) 해변은 검은색을 띤 모래밭이 넓게 펼쳐져 해수욕과 일광욕을 하기에 좋다. 주변에 저렴한 숙소들도 있다. 이아에서는 바닷가 절벽에 있는 호텔과 펜션에서 묵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석양을 보러 온 세계 각지의 사람들은 태양이 지면 대부분 곧 자리를 뜨는데 정말 멋진 노을은 그 후에 볼 수 있다. 조금만 더 기다려서 여유 있게 감상해볼 것을 추천한다.
<출처> 2008. 8. 1 / 신동아 58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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