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왕릉
역사의 배움터 조선왕릉을 찾아서
성북구 의릉, 동대문구 영휘원·숭인원, 강남구 선릉·정릉으로의 여행
정지섭 기자
산 자와 죽은 자가 만나고, 권력의 흔적이 남겨진 곳. 조선의 임금과 가족들이 잠든 왕릉은 역사의 배움터이고 아름다운 공원이다. 태극 문양이 달린 홍살문, 우뚝 선 정자각, 봉분을 지키고 있는 갖가지 모양의 석인상 등 비슷비슷한 모양 같아도 각 왕릉마다 전해주는 느낌은 제각각이다. 번잡하지 않고, 고요한 풍경과 마주할 수 있어 가을을 코앞에 둔 요즘 짧은 여행지로 제격이다.
◆주택가에 숨은 비밀의 숲 의릉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 삼거리 주택가를 뒤로하고 북쪽 큰길로 접어들어 보자. 5분도 지나지 않아 회색 건물들 사이로 숨어있던 푸른 숲이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들어온다.
조선 20대 임금 경종과 계비(繼妃) 선의왕후가 묻힌 '의릉'(懿陵·사적 제204호)이다. 1996년 5월부터 일반에 개방됐기 때문에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아 한결 호젓하고 고요하다.
문을 들어서자마자 눈앞에 홍살문과 정자각, 두 개의 봉분이 거의 일직선상으로 펼쳐진다. 그 뒤로 작은 야산 천장산이 병풍처럼 왕릉을 부드럽게 감싸 안는다. 여름에는 짙푸른 녹음으로 눈을 시원하게 해주고, 가을이 되면 빨갛고 노란 단풍으로 물들며 수채화 같은 풍경을 선사한다.
왕릉을 에둘러 닦여 있는 산책로도 잊지 말고 들르자. 오른쪽에는 잘 가꿔진 정원처럼 곱게 깔린 길이, 왼쪽에는 숲 내음을 맡으며 부드러운 흙과 모래를 느끼며 걸을 수 있는 길이 있다. 천장산 자락을 따라 빙 둘러갈 수 있는 탐방로도 있다. 경사가 가파른 구간도 있으니 얕볼 수준은 아니다. 지하철 1호선 신이문역과 6호선 돌곶이역에서 걸어서 15분. (02)964-0579
- ▲ 조선 경종 임금과 선의왕후가 잠들어 있는 서울 성북구 석관동 의릉. 정자각과 무덤, 뒤의 야산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고 있다. /정지섭 기자
한 담 안에 있는 동대문구 청량리동 영휘원(永徽園)과 숭인원(崇仁園·이상 사적 제361호). 구한말 격동의 시대를 살았던 할머니와 손자가 나란히 잠들어있다. 먼저 만나게 되는 곳은 고종황제의 손자였던 이진(李晉)이 잠들어있는 숭인원. 안내판에는 무덤 주인공이 1921년 8월에 태어나 이듬해 5월에 세상을 떠났다고 돼있다. 세상에 나온 지 1년이 안 돼 눈을 감아야 했던 회한 때문일까. 무덤 앞 정자각의 색깔이 유난히 어둡다.
왼쪽은 이진의 할머니이자 고종황제의 후궁 순헌귀비가 잠든 영휘원이다. 정자각 오른편에는 무덤 주인의 삶을 적은 비각이 서 있다. 아직도 이곳을 찾는 많은 사람들이 "여기가 홍릉이군요"라고 운을 뗀다고 한다. 그럴 만도 하다. 이웃한 가게들 간판을 보니 은행과 음식점 등 대다수가 '홍릉'이라는 상호를 붙였고, 심지어 인근 길 이름과 초등학교 이름도 '홍릉'이다.
하지만 명성황후가 잠든 '홍릉'이 근처 홍릉 수목원 안에 있다가 경기도 남양주시로 옮겨간 것이 1919년이다. 관리자는 "명성황후가 너무 유명하다 보니 오히려 제 이름이 알려지는 데 지장이 있는 것 같고, 다들 홍릉으로 알고 온다"며 웃었다. 1호선 청량리역·6호선 고려대역에서 걸어서 10분 거리다. (02) 962-0556
◆ 강남의 대표공원으로 사랑받는 선릉·정릉
고층빌딩들이 숲을 이루고 길마다 사람과 차들로 넘쳐나는 강남의 중심대로 테헤란로변에서 살짝 벗어난 곳에 조선 임금들과 왕비의 능이 있다는 사실은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강남구 삼성동에 9대 성종 임금과 계비 정현왕후의 선릉(宣陵)과, 11대 중종 임금의 정릉(靖陵·이상 사적 제199호)이있다.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주변은 조용한 주택가였지만, 일대가 번화가로 바뀌면서 지금은 콘크리트 공간에 갇힌 숲이 됐다.
하지만 그런 변화는 이곳을 인기만점의 도심 공원으로 탈바꿈시켰고, 지금은 서울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는 왕릉 중 한 곳이 됐다. 평 일 점심 때에는 산책에 나선 직장인들 발걸음이 몰린다. 선릉과 정릉 사이에 놓인 산책로가 인기다. 워낙 숲이 우거져 한가운데에선 기세 높은 고층빌딩들이 보이지 않을 정도다.
관람객들이 계속 늘자 문 여는 시간을 오후 9시(입장은 한 시간 전 마감)까지 늦췄고, 한 달 동안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월(月)상시권(1만원)도 나왔다. 지하철 2호선·분당선 선릉역 8번 출구에서 걸어서 3분 거리. (02)568-1291
<출처> 2008.08.15 /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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