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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기 및 정보/- 충청북도

유·유·자·적, 충북 괴산 9곡(九曲) 기행

by 혜강(惠江) 2008. 7. 9.

 

충북 괴산

 

유·유·자·적 충북 괴산 9곡(九曲) 기행

- 하늘과 바람과 물, 이것으로 족하다

 

 

글 사진=문화일보 박경일기자

 

 

 

 

▲ 충북 괴산 화양구곡의 금사담. 뒤로 보이는 한옥이 우암 송시열이 벼슬에서 물러나 은거하던 암서재다. 암서재에 들어 밖을 내다보는 시야도, 반대로 밖에서 암서재를 바라보는 풍광도 어느 것이 더 낫다 할 수 없을 정도로 빼어나다. 어찌 이런 자리를 찾아냈을까. 안목이 감탄스러울밖에….

 

 

충북 괴산에는 도처에 ‘구곡(九曲)’입니다. 알려지기로는 화양구곡이 으뜸이지만, 선유구곡도 못잖습니다. 거기다가 쌍곡구곡과 갈은구곡에다가 괴강줄기를 따라 이름 붙여진 고산구곡까지 합한다면 괴산 땅에는‘구곡(九曲)’으로 이름 붙여진 맑은 물 흐르는 수려한 계곡이 무려 다섯 개나 있는 셈입니다.

아시다시피 ‘구곡’이란 이름은, 중국 남송 때의 학자 주희(주자)가 지은 무이산 아홉계곡을 ‘무이구곡’이라 이름붙이고 이를 기리는 ‘무이구곡가(武夷九曲歌)’를 짓자 이를 본따 붙인 것들입니다. 주희는 무이산 계곡 아홉 곳의 빼어난 경치를 읊으면서 자연 경관뿐만 아니라, 은근한 상징과 은유로 자신의 학문적 성취까지 묘사해냈습니다.

주희의 주자학을 흠모하던 조선의 선비들에게 구곡이란 그야말로 ‘미적 유토피아’였습니다. 퇴계 이황과 우암 송시열, 송강 정철…. 이름난 조선의 선비들은 경치 좋은 곳에 은거하거나 주유하며, 구곡을 정하고 시를 읊었습니다. 이들은 자연풍경을 칭송했지만, 그 안에는 멋들어진 풍류와 삶에 대한 태도까지 깃들어 있음은 물론입니다.

구곡이란 아름다운 9개의 곡(구비)을 일컫는 말이니, 다섯곳의 구곡을 모두 합친다면 괴산 땅에는 45곡이나 되는 절경이 있는 셈입니다. 모르긴 해도 선비들도 여름철의 계곡을 으뜸으로 쳤겠지요. 아름다운 풍광을 앞에 두고 버선 벗어 탁족을 하거나 시를 짓고, 노래도 하고, 술잔도 기울였을 겁니다.

사실 ‘계곡의 풍광이야, 다 거기서 거기’라고 한다면야 더 할 말이 없긴 합니다. 계곡을 그저 ‘물놀이 장소’로만 여긴다면 그것도 별반 틀린 말은 아닐겁니다. 하지만 옛 선비들이 이름 붙인 구곡에서 꼭 경치만을 봐야하는 것은 아닙니다. 아름다운 풍광과 함께 옛 선비들의 정신을 보겠다면 괴산 땅의 다섯 개의 구곡은 저마다 다른 풍경으로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우뚝 솟은 바위봉을 끼고 있는 화양구곡이 웅장한 계곡이라면, 너른 암반이 펼쳐진 선유구곡은 부드럽고 또 편안한 느낌이 드는 곳입니다. 제수리재를 넘는 산간도로를 따라 이어지는 쌍곡구곡이 변화무쌍하다면, 첩첩이 숨겨진 갈은구곡은 오밀조밀한 것이 마치 수줍은 색시와도 같습니다.

그 계곡에 차례로 들어봤습니다. ‘구름이 그림자를 드리운 물가’란 뜻의 ‘운영담(雲影潭)’이니 ‘옥처럼 맑은 물이 닿는 벼랑’이란 뜻의 ‘옥류벽(玉流壁)’이니 하는 이름만으로도 옛 선비들의 풍류가 느껴집니다. 삶의 가치를 물질로 재지 않았던 시절. 소박하면서도 유유자적한 생활이 선비들이 닿고자 하는 목표였던 시절. 바람이 불고 물이 흐르듯 자연의 흐름에 따라 ‘도의 경지’에 닿도록 풍류를 즐겼던 옛 사람들의 정취가 손에 잡힐 듯합니다.

괴산의 구곡에는 유독 신선 ‘선(仙)’자가 붙은 곳이 많았습니다. 자연과 더불어, 깎아지른 절벽의 경치는 곧 신선이 내려오는 곳이었고, 그곳에서 풍류를 즐기면 자신도 신선이 될 것이라고 믿었던 것일까요. 옛 선비들도 구곡에 들어 하는 일이란 ‘노는 것’이었겠지만, ‘노는 일’이 감각적인 쾌락이나 외형적인 즐거움에만 멈추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아름다운 풍광으로 스스로를 정화하고, 자연에 다가가는 삶을 지향하며, 또 자유를 만끽하는 일이었을 겁니다. 마치 신선처럼 말입니다.

호화로운 호텔이나, 으리으리한 콘도미니엄에 들어 쾌적한 여름을 보내는 휴가를 계획하고 계십니까. 혹 그렇게 휴가를 보낼 비용이 모자라 전전긍긍하거나 박탈감을 느끼지 않으시는지요. 이렇듯 소모적인 휴가가 아니라도 뭐 어떻습니까. 깊은 계곡에 들어 청류에 몸을 담그거나, 계곡가에 자리를 펴고 싸온 김밥 몇줄만으로 충분히 행복하게 여름을 보낼 수 있지 않을까요.

계곡가의 식당에 닭백숙을 청해놓고, 무릉반석에 놓인 평상에 가족들과 둘러앉는 ‘오래된 추억의 경험’은 또 어떻겠습니까.

 

 

 충북 괴산 ‘산중 九曲’을 찾아서

 

 

▲ 선유구곡과 화양구곡의 최상류인 제비소 부근. 작은 마을이 끼고 있는 맑디 맑은 개울이 선유구곡과 화양구곡의 절경을 빚어낸다. 개울은 경상도와 충청도의 경계가 되는데, 왼쪽은 충청남도 땅이고, 오른쪽은 경상북도 땅이다. 소박한 시멘트다리를 건너고 있는 아이들은 경상북도에서 충청남도로 가고 있는 셈이다.

 

* 칡뿌리 캐먹으며 은둔하는 곳

… 갈은구곡

계곡이란 뭐니뭐니 해도 호젓해야 제 맛이다. 산이 깊은 괴산은 도처에 계곡이다. 화양구곡부터 선유구곡, 쌍곡구곡, 고산구곡, 갈은구곡까지…. 세속의 티끌을 털어내고 자연 속에서 노닐고자, 선비들이 찾았을 이들 계곡들은 한때는 깊은 산중에 숨은 오지였으리라.

충북 괴산군 칠성면 갈론마을의 ‘갈은구곡’은 호적한 옛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갈은(葛隱)이란 ‘칡뿌리를 캐먹으며 숨어지내는 곳’이란 뜻으로 붙은 이름이다. 갈론마을은 잡초 무성한 묵정밭과 버려진 집들이 흩어져 있는, 버스마저 들지 않는 오지 중의 오지다. 대개 오지마을은 인근 지역이 개발되면서 대처로 나앉게 되는 법. 그러나 갈론마을은 개발 바람에 오히려 더 꼭꼭 숨었다. 무슨 소린고 하니, 계곡 하류에 괴산댐이 들어서면서 큰 길은 다 잠기고, 작은 길은 흐려졌고, 마을은 더 깊숙이 갇히게 돼버렸다는 것이다.

수년 전까지만 해도 갈론마을 앞을 흐르는 갈은구곡은 현지인들에게조차 잘 알려지지 않았다. 괴산댐을 지나 외줄기 비포장길을 5㎞가 넘게 들어가야 한다는 불편한 교통 때문이기도 했지만, 구태여 이곳까지 찾아들지 않아도 편리하게 접근할 수 있는 다른 계곡들이 곳곳에 즐비한 탓도 있었겠다.

그러나 2년여 전쯤 괴산댐을 지나 갈론마을로 드는 길이 포장되면서 갈은구곡을 굳이 찾아드는 이들이 하나둘씩 늘었다. 길 폭이 차량교행이 불가능할 정도로 좁은 건 예전 그대로지만, 그래도 번듯하게 포장이 되면서 심리적인 거리감이 좁혀진 탓이다. 또 괴산 인근의 계곡들이 외지인들에게 알려지면서 피서철이면 인파들로 북적거려 조용한 계곡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난 까닭도 있겠다.

 

* 갈은구곡 따라 흘러내리는 맑은 물

갈은구곡은 비포장 산길을 따라가며 펼쳐진다. 갈론마을 끝의 폐교된 분교를 지나서 계곡을 따라가는 길은 잠깐 시멘트포장이 돼있을 뿐, 위쪽으로는 도저히 차량이 통행할 수 없는 비포장 산길이다. 계곡 입구에 차량진입을 막는 쇠사슬이 쳐져 있다. 차를 타고 들어간다 해도 채 1㎞도 못 가서 찻길이 끊기는 데다, 차를 돌릴 곳도 마땅치 않아 주민들이 아예 길을 막아놓았다.

구곡은 그 길의 옆에 바짝 붙어있다. 그 계곡에서 가장 놀라운 것은 물색이다. 어찌 이렇듯 맑은 물이 남아있을까. 계곡물이 얕게 흐르는 쪽에는 바닥의 잔돌까지 훤히 비치고, 좀 깊은 쪽은 투명하면서도 진한 쪽빛이다. 손을 담그면 금세 푸른 물이 묻어날 것만 같다. 계곡은 완만해서 가장 깊은 곳이래야 어른 가슴쯤이 고작. 수심이 깊지 않고 여울이 없어 가족들이 즐기기는 더없이 좋다.

갈은구곡 입구부터 구곡이 펼쳐진다. 집채만 한 바위에 새겨진 ‘葛隱洞門(갈은동문)’이란 글씨가 뚜렷하다. 이곳이 바로 1곡이다. 오래된 소나무가 빼곡히 들어서 있고 정자터가 있는 7곡 고송유수재와 바위 위에 음각해놓은 바둑판이 있어 신선이 바둑을 두었다는 얘기가 전해오는 9곡 선국암은 옛 선비의 풍류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여기다가 병풍바위며 마당바위, 형제바위, 강선대 등의 이름이 붙은 바위들이 풍류를 더해준다.

갈은구곡에 사람이 드는 것은 고작 여름 한달 남짓. 평소에는 등산객들도 드물다. 아무리 행락객이 몰리는 피서 절정기라도 3곡이나 4곡쯤을 넘어서면 인적이 드물다. 시원하게 굽이쳐 흐르는 맑은 물소리와 산새소리, 이따금 소나무를 흔들고 지나는 바람소리만 가득하다.

 

* 신선이 놀다간 곳… 너럭바위의 선유구곡

 

 

▲ 선유동은 괴산에도, 문경에도 있다. 문경 대아산 자락 아래 선유구곡은 너른 암반으로 이뤄져 있다.

 

 

괴산과 문경의 경계선쯤에서 주민들에게 선유구곡을 물으면 ‘어느 선유동을 말하느냐’는 질문이 되돌아온다. 충북 괴산군 청천면에도 선유동이 있고, 경북 문경시 가은읍의 대아산 자락에도 선유동이 있는 탓이다. 선유동이란 신선(仙)이 노닐(遊) 정도로 아름다운 곳이란 뜻을 담고 있다. 두 곳의 선유동의 바위에는 ‘선유동문(仙遊洞門)’이란 각자가 뚜렷하다.

선유동문이란 이른바 ‘선교(仙敎)’의 성지쯤으로 이해된다. 선교란 중국의 산악숭배에서 시작된 신선사상에 기초를 둔 것. 불로장생의 신선이 되려는 개인적인 기도와 수련으로 후대에는 도교로 발전하기도 했지만, 민간에서는 선교로 전승됐다. 오늘날 그 선풍은 끊어졌지만, 선유동의 정취는 오롯이 남아 있다.

괴산과 문경의 두 선유동 사이의 거리는 10㎞ 안팎으로 가깝다. 외지인들에게 알려지기로는 괴산 쪽의 선유동이 앞선다. 이곳에는 퇴계 이황의 이야기가 전해온다. 퇴계가 송면리 부근의 함평 이씨 집을 찾았다가 산세와 계곡의 절묘한 풍광에 빠져 무려 아홉 달을 머물면서 구곡을 정하고 이름을 지어 새겼다는 것. 커다란 암반과 집채만 한 바위로 이뤄진 괴산 선유동의 풍경은 압축적이다. 2㎞ 안팎의 구간에 구곡이 몰려 있는데, 5곡 와룡폭 일대는 마치 대형 수영장처럼 같이 너른 물놀이 공간이 있어 특급 피서지로 꼽힌다.

문경의 선유동은 대야산 용추계곡 아래쪽에 펼쳐져 있다. 괴산의 선유동이 조선시대 퇴계 이황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면, 문경의 선유동은 신라시대 최치원이 머물렀던 곳이다. 계곡에는 부드럽게 깎인 암반이 넓게 펼쳐져 있다.

 

* 충청도와 경상도를 가르며 흐르는 물…제비소. 그리고 화양구곡

괴산의 선유구곡 상류에는 제비소가 있다. 제비가 많았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제비바위 아래 청록색의 소(沼)가 바로 제비소다. 제비소는 충청도와 경상도를 가르는 경계다. 제비소로 드는 물줄기의 이쪽은 충북 괴산군 청천면 관평리이고, 건너편은 경북 문경시 가은읍 완장리다. 폭이 7~8m쯤 될까. 마을을 가로지르는 천변의 자그마한 시멘트다리가 충청도와 경상도를 잇는 셈이다.

이곳은 계곡이라기보다는 개울이 흘러내리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라 할 수 있다. 농촌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면, 이곳에서 옛 정취를 그대로 느껴볼 수 있겠다. 한여름에도 그리 사람들이 몰리지 않아 번듯한 숙박시설은 없다. 민박집도 시골집 그대로 방을 들인 것이어서 소박하기 그지없다. 피서철에도 바가지란 없는 곳이란다. 민박요금은 3만~4만원선. 텃밭에 심은 옥수수를 삶아 건네는 마을 사람들의 인정이 마치 외갓집에 간 것 같은 분위기다.

제비소를 지나 32번 국도를 타고 산을 넘으면 화양구곡이다. 화양구곡은 인근의 다른 계곡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규모가 크다.

화양구곡은 죽어서까지도 절대권력이었다는 우암 송시열의 독무대다. 송시열이 환갑을 맞은 해에 찾아들었다는 화양구곡에는 우암의 친필들이 즐비하다. 또 77세로 관직에서 은퇴한 뒤 은거했다는 암서재가 4곡 금사담의 바위에 올라 앉아있다. 암서재는 단연 화양구곡의 특급 전망대다. 암서재에서 밖을 내다보는 맛이나, 거꾸로 밖에서 암서재를 보는 맛이 절묘하다.

 

* 도로를 따라 길게 변화무쌍하게 이어진 계곡…쌍곡구곡

군자산과 칠보산 사이를 흐르는 쌍곡구곡은 퇴계 이황과 송강 정철 등 많은 유학자와 문인들이 찾아들어 풍류를 즐기던 곳이다. 이즈음에는 한여름 쌍곡구곡에도 사람들이 제법 붐비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쌍곡구곡은 괴산 사람들이 화양구곡이나 선유구곡을 외지인들에게 양보하고 조용히 찾아들어 절경을 즐기던 계곡이었다.

쌍곡구곡은 제수리재를 넘는 517번 지방도 곁에 바짝 붙어서 흐른다. 쌍곡계곡을 특징짓는 것은 뭐니뭐니 해도 변화무쌍함이다. 맑은 물이 암반을 휘감아 흐르는 구간이 있는가 하면, 자그마한 폭포를 끼고 있는 소도 있고, 기암괴석에 뿌리를 내린 소나무 아래 작은 여울도 있다. 계곡의 풍경이 워낙 변화무쌍해 한구비를 돌 때마다 어떤 풍경이 나올지 짐작조차 되지 않을 정도다. 계곡을 따라 기웃거리다가 그저 맘에 드는 곳에 자리를 펴고 앉으면 된다.

쌍곡구곡 중 명소로 꼽히는 곳이 2곡인 소금강과 5곡인 쌍벽, 그리고 8곡인 선녀탕이다. 소금강은 금강산의 일부를 옮겨 놓은 듯하다고 해서 붙은 이름. 이곳은 계류보다는 우뚝 솟은 암봉과 소나무의 풍광이 빼어난 곳이다. 5곡인 쌍벽은 계곡 양쪽에 깎아세운 듯한 바위가 이어진 곳.

이 밖에도 괴산에는 괴강변의 고산구곡도 있다. 지금은 강줄기가 바뀌고 다리가 놓이면서 자취를 찾기는 어렵지만, 괴강을 굽어보는 언덕에 세워진 고산정이며 애한정 등의 즐비한 정자를 따라가며 옛 선비들의 정취를 맛보는 재미도 각별하다.

이렇듯 도처에 즐비한 계곡을 찾아 괴산으로 가는 여정. 그 길에서는 짙푸른 초록을 만날 수 있다. 키보다 훌쩍 자란 옥수수와 하얗게 꽃을 틔운 개망초, 밭에는 다 자란 담뱃잎과 열무, 배추가 싱싱하게 자라고 있다. 마을의 민가 담장 아래 붉고 흰 접시꽃이 피어났고, 덩굴을 타고 오른 능소화는 화려한 꽃을 피워내고 있다. 강원도나 서해안쯤의 이름난 피서지로 향하는 멋대가리 없는 길과는 차원이 다르다.

 

 

계곡 곳곳에 민박집, 다슬기 해장국 별미

<가는 길·묵을 곳·먹을 것>

 

 

 

◆ 괴산의 구곡을 찾아가는 길 = 수도권에서 가자면, 중부고속도로를 타야한다. 중부고속도로 증평나들목에서 나와 괴산까지 간 뒤 문경 쪽으로 34번국도를 타고가다 율지리 삼거리에서 517번 지방도로 접어들면 쌍곡계곡으로 접어든다. 여기서 제수리재(530m)를 넘는 오르막길 옆으로 계곡이 계속 이어진다. 제수리제를 다 넘어가면 T자형 교차로가 나온다. 왼쪽으로는 문경을 가는 길이고, 오른쪽으로는 청천면 쪽으로 향하는 길이다. 좌회전해 문경 쪽으로 접어들면 문경의 선유구곡에 가닿고, 우회전해 청천면 쪽으로 가면 선유구곡과 화양구곡이 나온다. 선유구곡은 평소에는 차량통행이 가능하지만, 피서철에는 차량운행이 통제된다. 갈은구곡이 있는 갈론마을은 괴산읍내에서 34번 국도를 타고가다 괴산수력발전소 표지를 보고 좌회전하면 수력발전소를 지나 1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끝까지 들어가면 된다. 길이 좁아서 마주오는 교행차량에 주의해야 한다.

◆ 어디서 묵고 무엇을 맛볼까 = 화양구곡이나 선유구곡 등은 속리산국립공원에 속해 있어 개발행위가 금지된 탓에 번듯한 숙소는 없다. 대신 계곡에 바짝 붙어 민박집들이 있다. 화양구곡의 2곡인 운영담 부근에 산장민박( 043-832-4365 )이 있다. 20여년 전에는 여관이란 간판을 달고 있었으나, 시설이 낡아지면서 ‘무슨 여관이 침대도 없냐’는 항의가 많아 아예 민박으로 간판을 바꿔달았다. 4만~10만원선. 선유구곡의 중심인 와룡폭 바로 앞에는 은선휴게소( 043-833-3871 )가 있다. 그동안 식당과 매점만 운영하다가 올해부터 새로 건물을 짓고 민박을 받고 있다. 새 건물이라 방은 깨끗한 편이다.

선유구곡의 상류인 제비소에는 두 곳의 집( 043-833-8316 · 043-833-8314 ))이 시골집 그대로 민박을 받는다. 시설은 허름하지만, 시골 외갓집에 온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쌍곡구곡은 계곡의 길이가 긴 만큼 곳곳에 펜션형 민박집들이 들어서 있다. 통나무로 지은 송화펜션( 043-832-5595 )과 산촌연가펜션( 010-6393-0504 ) 등이 추천할 만하다. 갈은구곡을 끼고 있는 갈론마을에는 펜션형으로 새로 집을 들인 갈론주막( 043-832-5614 )이 가장 쾌적한 숙소다.

괴산의 이름난 먹거리는 괴강에서 잡은 다슬기(올갱이)로 끓여낸 해장국이다. 괴산 시외버스터미널 주변에 맛집들이 몰려 있다. 서울식당( 043-832-2135 )이 외지인들의 입맛에 맞게 구수한 된장을 푼 다슬기 해장국을 끓여낸다. 그러나 현지인들은 인근의 기사식당( 043-833-5794 )을 더 쳐준다. 두 곳 다 30년 이상 올갱이 해장국을 끓여낸 곳이다.

 

 

 

<출처> 2008-07-09 / 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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