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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기 및 정보/- 경북. 울산

경북 고령 정정골에 세운 우륵박물관에선 은은한 가야금 소리가 -

by 혜강(惠江) 2008. 6. 25.

 

 경북 고령

 경북 고령 정정골에 세운 우륵박물관

 가야금에 평생을 바친 우륵의 삶 -

 

·사진 남상학

 



 고령의 대가야박물관은 대가야전시관(역사관)과 대가야왕릉전시관, 우륵박물관 등 3개의 전시관으로 구성되어 있으면서도, 우륵박물관은 대가야 왕릉이 모여 있는 주산 기슭(고령읍 지산리)에 있지 않고, 여기서 좀 떨어진 정정골(고령읍 쾌빈리 162번지)에 자리 잡고 있다.

 

   그 이유를 물었더니, 우륵이 정정골에서 가야금을 창제하였다는 기록이 있어 그 자리에 우륵박물관을 건립하였다는 것이다. 이 사실을 잘 챙기지 않으면 고령까지 왔다가 대가야전시관에 있는 우륵 관련 자료 몇 가지만 보고 돌아가기 십상이다. 차를 몰아 주차장에 세우고 내려서니 가야금을 타는 악성 우륵상이 반겨 맞는다. 연못이 있는 중앙의 통로를 지나면 우륵박물관이다.

 

 

 

 

   2006년 3월 31일, 쾌빈리에 건립한 우륵박물관은 가야금을 창제한 악성 우륵과 관련된 자료를 발굴, 수집, 보존, 전시하여 국민들이 우륵과 가야금의 세계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건립한「우륵과 가야금」 테마박물관이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는 우리 고유악기인 가야금과 창시자인 우륵을 흥미롭게 이해할 수 있는 살아 있는 교육의 장이며, 성인들에게는 잊혀져가는 전통 음악의 향기를 느껴볼 수 있는 곳이다.

 

  9,098㎡의 대지 위에 지은 우륵박물관(건축 면적 965㎡)은 1층은 전시실, 사무실, 기계실 등을 갖추고, 2층에는 강당, 악기고 등이 있다. 부대시설로 가야금공방(우륵국악기연구원)이 있다. 악성 우륵의 얼을 이어받아 국악의 고장인 정정골에서 국악기를 연구, 제작, 보급하기 위해 설립한 것이다. 이곳을 통해 우리의 고유문화를 널리 알리고 전통문화 체험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우륵(于勒)은 우리나라 3대 악성(우륵, 박연, 왕산악) 중의 한 사람이다. 우륵은 가야 말기 가야의 성열현 출신으로 가실왕(嘉實王)의 명을 받아 정정골(지금의 고령읍 쾌빈리)에서 중국의 쟁을 본 따 12현금(絃琴:가야금)을 창제하고 작곡․연주하였으나, 현재까지 남아 있는 악곡은 없고 가야 12지방 이름을 딴 12곡명만 전하고 있다.

 

  그 후 가야국의 악사 우륵은 대가야가 멸망되기 11년 전(551년, 신라 진흥왕 23)에 제자 이문과 함께 적국인 신라에 망명하였다. 그가 적국 신라의 음악인이 되는 길을 선택한 것은 어지러워진 조국 때문이었다. 사람마다 자신의 이익만 추구하고 부정부패와 사치, 방탕에 절어 있는 가야인들에게서 우륵은 희망을 찾기 어려웠다. 조국 가야가 사라질 날이 가까웠음을 짐작한 우륵은 가야금도 함께 사라질까 두려웠다. 그가 선택한 길은 가야금을 안고 신라로 투항하는 길이었다.

 

 

 

  진흥왕은 신라로 넘어온 우륵을 받아들여 국원, 지금의 충주 땅에 머물게 했다. 충주의 탄금대(시도기념물 제4호)가 그곳이다. 아울러 신라 청년 세 사람을 제자로 삼도록 보내 주었다. 대내마(大奈麻) 계고(階古), 법지(法知), 만덕이 그들이다. 가야국에 있을 때 가실왕의 요청에 의해 이미 열두 곡을 만들었던 우륵은 이 세 사람의 재주를 높게 평가해 계고에게는 가야금, 법지에게는 노래, 만덕에게는 춤을 각각 가르쳤다.

 

  그러나 그들은 그 음악 그대로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음악이 ‘번거롭고 음란하다(번차음;繁且淫)’며 는 5곡으로 줄여버렸다. 아마도 우륵이 가야국에서 만든 음악 열두 곡은 모두 낙동강 유역의 토속성 짙은 음악이었음에 분명하다.

  우륵이 이 소식을 듣고 처음에는 무척 화내었으나 새로 줄인 5곡을 모두 듣고 난 뒤에는 감탄하였다고 전해진다. 우륵은 그 음악을 이렇게 평한다. “즐거우나 지나치지 않고, 슬프나 비탄에 젖게 하지는 않으니 바르다고 이를 만하다.(樂而不流, 哀而不悲, 可謂正也)”

 

  결국 우륵의 음악을 바탕으로 그의 신라 제자들이 편곡한 음악은 신라의 대악(大樂)이 되어 신라 땅에서 명맥을 잇게 되었다. 우륵이 위험을 무릅쓰고 들어간 신라 땅에서 가야의 가야금은 긴 수명을 확보하게 되었고, 이후 가야금은 거문고와 함께 통일신라의 삼현삼죽(三絃三竹) 악기의 하나로 자리하게 되었고, 지금도 전통음악의 한 분야에서 고유의 가락으로 전승되고 있다.

 

 

■ 우륵기념탑과 영정각

 

 

 

우륵박물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우륵기념탑과 영정각이 있다. 악성 우륵의 위업을 기리고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는 등 군민에게 휴식 공간을 제공하기 위해 고령실업고등학교 뒤편(고령읍 연조리 15번지), 정정골이 한눈에 보이는 동산 위에 기념탑과 추모공간인 영정각을 건립하였다. 이곳에서 매년 가을 대가야 축제 때 우륵 선생의 위업을 기리는 추모행사를 올리고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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