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서 충주 가는 하늘재
관음서 미륵으로 하늘길을 넘다
박경일기자
▲ 문경에서 충주를 잇는 하늘재 옛길에 들면 청정한 숲길의 정취도 좋지만 가늠할 수 없는 시간들이 안겨주는 감동이 진하게 느껴진다. 이 길에서는 발끝에 채이는 돌 하나도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 1800여년 시간을 가로질러 가는 옛길… 포암산 하늘재
전국 곳곳의 험준한 고갯마루에는 다 옛길이 있다. 차로 훌쩍 넘어가는 대관령과 구룡령에도, 터널이 뚫려 순식간에 넘나들게 된 소백산 죽령자락에도 옛길은 있다. 그 옛길 중에서 가장 오랜 세월을 건너온 길이 바로 경북 문경읍 미륵리와 충북 충주시 상모면 미륵리를 잇는 하늘재다.
수천년 전에도 이 땅 어디엔들 길이야 없었을까. 하지만 옛길들은 새로 뚫린 길에 하나 둘 자리를 내주면서 흐려져갔을 터이다. 굽은 길을 질러가고, 막힌 길을 뚫어내면서 효용성을 잃은 옛길은 곧 잊혀 갔다. 하지만 하늘재는 ‘이동’이라는 길의 목적을 다 잃었으되, 2000년이 다 되는 세월을 건너 성성하게 살아남아 있다. 하늘재를 넘는 길이 다른 옛길보다 유독 각별하게 느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늘에 닿을 듯이 높다 해서 하늘재란 이름이 붙여졌겠지만, 실제로는 하늘재의 높이는 고작 해발 525m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 작은 고갯길에 얽히고 깃든 사연을 펼쳐보자면 해발고도보다도 훨씬 높고, 또 길다. 한강 유역으로의 진출을 꿈꾸며 신라가 이 길을 낸 뒤로 고구려의 온달장군이 남진을 위해 이 길을 다녔고, 후삼국의 궁예가 상주지방을 치러 가면서 이 고개를 넘었다. 망국의 한을 품고 금강산으로 들어간 마의태자도, 홍건적을 피해 내려온 고려 공민왕의 피란행렬도 이 길을 밟았다. 이렇듯 오랜 역사를 간직한 하늘재가 쇠락한 것은 조선 태종때. 문경새재 쪽에 길이 새로 나면서 하늘재는 서서히 쇠퇴의 길로 접어들고 말았다. 그러나 그 길은 다행스럽게도 숨통이 끊어지거나 아주 잊히지 않은 채 지금까지 명맥을 유지해오고 있다.
하늘재는 걷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길이다. 단숨에 차로 닿는 문경 쪽의 하늘재 정상에서 출발해 순한 내리막으로 내려서는 3.2㎞의 그 길에서는 ‘생각’보다 ‘몸’이 먼저 나간다. 울울창창한 숲으로 뒤덮여 촉촉한 습기를 머금고 있는 길, 붉은 수피의 소나무들과 우르르 둘러선 낙엽송들이 길 옆으로 솟아 있다. 길이 품고 있는 오랜 시간을 가늠하다보니 진초록 이끼가 낀 석축이며 발끝에 채이는 돌들까지도 새삼스럽다. 지나온 구간이 길어지고, 가야 할 길이 짧아지는 것이 아쉬워서 자주 걸음을 멈춰서거나 보폭을 좁힌 것은 그 길이 처음이었다.
# 하늘재에 내려서 만나는 자애로운 얼굴의 미륵불
▲ 미륵리사지의 미륵불은 몸체는 비례가 맞지 않아 어색하지만 얼굴만은 자애로운 표정을 정교하게 조각해놓았다.
▲ 미륵리사지 한쪽에는 마치 공처럼 생긴 바위가 다른 바위 위에 올려져 있다. 온달장군이 가지고 놀던 공깃돌이라는 전설이 내려온다.
하늘재 고갯길의 끝자락에는 미륵리사지의 거대한 미륵불이 고갯길을 넘어온 길손을 맞듯 서있다. 언덕 아래부터 차근차근 돌을 쌓아 조성한 석실 안에 우뚝 선 미륵보살의 표정은 자애롭기 그지없다. 몸체는 비례가 맞지 않아 어설프지만 눈을 반쯤 감은 미륵불의 얼굴만큼은 단정하고 자애롭고 온화하다.
미륵리사지에 들어서면 다른 폐사지와는 전혀 다른 느낌을 받는다. 웅장한 미륵불과 5층석탑과 석등 그리고 토막난 당간지주와 돌거북, 온달이 가지고 놀았다는 큼지막한 바위, 어지러이 흩어진 초석들로 가득한 절터는 그것만으로도 폐사지의 공간들을 충만하게 채운다. 그래서일까. 미륵리사지에서는 다른 폐사지에서 만나는 사라진 절터의 적막이나 애잔함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대신 세월의 부질없음보다는 그 오랜 시간을 견뎌내며 남은 것들에 대한 경외감이 더 묵직하게 다가온다.
언제, 누가, 무슨 연유로 이곳에 절집을 세웠을까. 왜 미륵은 서방정토가 있는 서쪽이 아닌 북쪽을 바라보고 서 있을까. 미륵리사지는 온통 수수께끼 투성이다. 절터에서 나온 기와에 적힌 ‘미륵대원’이란 글로 미루어, 삼국유사에 기록된 ‘미륵대원’과 같은 곳으로 추정할 뿐이다. 그렇다면 이 절터와 우람한 미륵불의 조성연도도 일연이 삼국유사를 쓰기 이전인 신라말에서 고려초까지 올라가게 된다. 이런 셈법으로 따지자면 미륵불의 나이는 1000년을 헤아리는 셈이다.
지난 1000년의 세월을 같은 자리에 서서 지켜보았을 미륵불을 이제 여기서 올려다본다. 문경 쪽으로 하늘재를 넘어가거나, 문경 쪽에서 하늘재를 넘어온 이들도 모두 이 미륵불 앞에 머물며 두손을 모았으리라. 헤아릴 수 없는 무수한 기원들을 다 들었을 미륵불은 오후나절 빗긴 햇살을 받아서 따스한 미소를 짓고 서 있다.
# 중원을 지배하는 자가 천하를 가지리니… 충주에서 만나는 중원의 역사
▲ 조정지댐 인근의 중원 탑평리 칠층석탑. 흔히 ‘중앙탑’으로 불리는데, 현존하는 것 중 가장 큰 신라시대 석탑이다.
▲ 신립장군이 왜적과 싸우면서 활시위를 식히기 위해 열두번을 오르내렸다는 탄금대의 열두대에서 내려다본 남한강 풍경.
미륵리사지가 있는 충주는 예부터 국토의 한복판이라는 의미에서 ‘중원’으로 불린다. 남한강을 끼고 있는 중원 땅은 삼국시대때 물길을 차지하려는 삼국이 뺏고 빼앗기는 격전지였다. 고구려나 신라, 백제도 가장 빠른 교통로였던 중원의 물길을 놓고 치열한 격전을 벌였다. 고구려와 신라의 유적지가 혼재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하늘재를 넘어 미륵리사지를 거쳐 왔다는 중원 땅인 충주에서는 문화유적을 돌아보는 여정이 잘 어울리겠다. 충주에서 빼놓지 말아야 할 곳이 가금면 용전리의 중원고구려비다. 남한 땅의 거의 유일한 고구려 유적이라는데, 고구려 장수왕이 한강유역 일대를 손에 넣으면서 세운 척경비로 추정된다. 작은 누각 안의 비석은 광개토왕비처럼 우람하지도 않고, 비문의 판독도 완전하지 못하지만 비석 앞에 서면 중원의 땅을 말 달리던 고구려 군사들의 말발굽 소리가 혹여 들릴까 귀를 기울이게 된다.
중원고구려비 인근의 남한강변에 서있는 중원 탑평리 칠층석탑은 현존하는 것 중 가장 높고 큰 신라시대 석탑이다. 한반도의 중앙에 위치한다고 해서 흔히 ‘중앙탑’으로도 불린다. 높은 축대 위에 하늘을 찌를 듯 솟아오른 탑은 높이에 비해 너비가 좁아 상승감이 대단하다. 중앙탑 일대는 조정지댐의 물을 끼고 공원으로 꾸며져 있어 함께 둘러봐도 좋다.
충주에는 또 악성 우륵이 가야금을 켜던 탄금대가 있다. 탄금대란 딱히 어느 한 곳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남한강과 달천이 합류하는 물길을 끼고 벼랑에 송림이 우거진 봉긋 솟은 구릉의 일대를 일컫는다. 탄금대는 임진왜란때 신립장군이 군사 8000명과 배수진을 치고 왜군에 맞섰다가 몰살을 당한 곳이기도 하다. 탄금대에서 가장 절경으로 꼽히는 ‘열두대’는 신립장군이 전시에 열두번이나 오르내리며 달궈진 활줄을 물에 적셔 식혔다는 이야기가 전해오는 곳이다.
▲충주 가는 길 = 충주는 ‘중원’이란 이름답게 한반도의 중심에 있어 전국 각지에서 사통팔달로 이어진다. 수도권에서 가자면 영동고속도로를 타고가다 중부내륙 고속도로로 갈아타고 충주나들목으로 나오면 된다. 하늘재를 걸어볼 요량이라면 중부내륙고속도로로 더 내려가 문경새재 나들목에서 빠져나온다. 문경읍 초입의 문경온천에서 계곡을 끼고 더 들어가면 표암사 안내판을 만난다. 여기서 완만한 오르막길로 더 깊이 들어가면 하늘재 정상 안내판이 나온다. 충주 쪽으로 내려가는 하늘재는 차량으로 진입할 수 없다.
▲어디서 묵고 무엇을 맛볼까 = 하늘재가 목적지라면 수안보 일대에 숙소를 택하는 편이 좋다. 하늘재를 걷고 수안보 온천에서 온천욕을 즐길 수 있는 1석2조의 코스가 된다. 수안보 일대에는 수안보 조선관광호텔( 043-848-8833 )과 수안보 상록호텔( 043-845-3500 ) 등 호텔은 물론 모텔들도 즐비하다. 새로 지은 깔끔한 모텔이 평일은 4만원 주말, 휴일은 5만원 안팎이다. 문경 쪽에서 숙소를 구한다면 문경온천 단지 내에서 찾는 것이 좋다. 썬모텔( 054-571-0235 ), 빌리지모텔( 054-572-2428 ) 등 숙박할 곳이 많다.
충주지방의 중원문화 유적지를 두루 들러보려면 아무래도 충주 쪽에 숙소를 구하는 것이 낫다. 충주시내에는 프린스호텔( 043-843-4522 ) 드림호텔( 04...) 그랜드관광호텔( 04...) 등 5개의 관광호텔이 있다. 맛집으로는 민물고기 참매자를 조려서 내놓는 목계교 부근의 ‘실비집’( 043-852-0159 )이 유명하다. ‘거궁회관’( 043-851-3773 )도 민물고기찜으로 유명한 곳. 꿩전통요리는 ‘대장군식당’( 043-846-1757 )이, 오리백숙은 중앙탑 부근의 ‘중앙탑오리집’( 043-857-5292 )이 알아주는 곳이다. 올갱이해장국을 칼칼하게 끓여내는 ‘운정식당’( 043-847-2820 )도 빼놓을 수 없다.
충주 여행을 역사에 초점을 맞춰 떠났다면 잊지 말고 맛봐야 할 것이 바로 충주의 명주로 꼽히는 청명주다. 순찹쌀로 빚은 청명주는 이름 그대로 1년 24절기 중 청명일에 사용하기 위해 빚었던 술이다. 맑고 밝은 기운을 담고 있어 술을 마시면 급제한다는 통설 덕에 조선시대 과거를 보러가는 선비들이 충주 땅에 들면 너나없이 찾았던 술이다. 과거에 낙방해 귀향하는 길에도 선비들은 청명주 몇 잔에 불콰해져 문경새재를 흔들리며 넘지 않았을까. 이익은 ‘성호사설’에서 평생 가장 좋아하는 술로 바로 이 청명주를 꼽기도 했다.
서른 다섯의 나이에 지방무형문화재 보유자로 지정된 유례가 있을까. 김영섭(35)씨가 바로 충주 지방무형문화재 2호로 지정된 청명주의 보유자다. 충북 중원군 가금면 창동리에서 누대로 살아온 김해 김씨 집안에서 조선조부터 비방으로 만들어 마셔온 청명주는 궁중의 진상주였으며 옛 사대부들이 귀한 손님 접대용으로 쓰던 명주였다. 김씨는 작고한 부친의 뒤를 이어 지금도 청명주를 빚고 있다. 한때는 직원을 두기도 했지만, 갈수록 청명주를 찾는 이들이 줄어들어 지금은 혼자서 술도가를 꾸려가고 있다.
알코올도수는 17도로 다소 독한 편. 노란 빛이 도는 말간 술은 다소 무거우면서도 깊고 은근한 맛이 특징이다. 가벼운 맛을 좋아하는 젊은이들의 입맛에는 잘 맞지 않을 듯싶다. 충주지역의 일부 할인매장에서 구할 수 있다.
<출처> 2008-09-10 / 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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