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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기 및 정보/- 경북. 울산

울산 신불산, 은신자 안아주던 공룡능선

by 혜강(惠江) 2008. 10. 16.

울산 신불산

 

은신자 안아주던 공룡능선

 

울산 | 김한태기자

 

 

 

▲신불산 정상에서 홍류폭포 쪽으로 내려가는 능선 위 바위가 공룡의 등뼈처럼 험상궂어 보인다.

 

 

  울산 울주군 상북면 신불산(해발 1209m)은 높지만 거칠지 않다. 정상은 넓고 평평하다. 멀리서 보면 높고 마치 거대한 성채를 연상시킨다.

 

  신불산의 큰 특징은 사면은 절벽처럼 가파르지만 정상에 올라가면 넓은 평원이 펼쳐진다는 것이다. 정상은 구름에 가려 신비로움을 더하고, 초겨울부터 흰 눈에 덮여 차갑고 투명한 기운을 던진다. 그래선지 ‘신불(神佛)’이란 이름처럼 불성이 깃든 산으로 여겨진다.

  정상 부근 평원에는 억새 바다가 펼쳐져 있다. 여기에는 오래된 성터가 있다. 단조산성이라 불린다. 적을 피해 농성하기에 알맞은 형태다. 지금도 성터에는 돌무더기가 군데군데 남아있다. 이곳에서 집단생활이 가능했던 것은 평원에서 물이 나오기 때문이다.

  신불산은 7개 산악으로 이뤄진 ‘영남알프스’의 한 부분이다. 남쪽에 영취산, 북쪽에 간월산을 끼고 있다. 신불산과 간월산 사이에 있는 고개는 ‘간월재’란 이름으로 불리며 많은 사연을 지니고 있다. 예전에는 울산에서 생산된 소금을 밀양시 산내와 단장 일대에 공급하는 길로 사용됐다. 이른바 ‘솔트로드’ 역할을 했는데, 이 길을 다니던 장꾼들이 간혹 호랑이에게 해를 당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 고개는 소설가 김원일씨가 울산 일대의 광복운동을 소재로 쓴 장편소설 <솔아 솔아 푸른 솔아>에서 우국지사들이 넘나들던 곳으로도 등장한다.

  숲이 깊고 험준한 산세를 이용해 조선 말엽 병인박해 때는 많은 천주교인들이 이곳에 숨어들어 관헌의 단속을 피했다. 첫 여성 신자로 어렵게 신앙을 지킨 뒤 이곳에서 생을 마감한 아가사의 묘소가 산 기슭에 있고 반대편 산에는 수십명이 모여서 예배를 보던 죽림굴이 있다. 이들의 자취는 100년이 넘은 언양 천주교의 텃밭이 됐고 성지순례지가 됐다.

  장꾼과 은신자들이 고생스레 다녔던 심산유곡은 오늘날에는 더할 수 없이 좋은 경관을 제공하고 휴양 요지로 변했다. 산의 동서쪽 사면에 각각 1개씩의 휴양림이 조성됐다. 산림청이 1988년에 서쪽 사면에 조성해 운영하는 자연휴양림은 국내 첫 휴양림으로 전국에 휴양림 조성 붐을 일으키기도 했다. 동쪽의 휴양림은 민간이 운영한다. 간월재는 행글라이더들의 활강이륙장이 되고, 캠핑장으로 변신했다.

  신불산은 양산단층과 이천단층이란 2개의 큰 단층선 사이에 있다. 지각이 잘린 면쪽에 급한 비탈면이 생겼으며, 다양한 형태의 계곡이 펼쳐진다. 동쪽 사면에는 홍류폭포, 서쪽 사면에는 파래소폭포가 있어 운치를 더한다.

 

 



  서쪽 사면에 있는 계류는 ‘배내골’이라 부르며 물이 넉넉하고 맑다. 최근에는 상업시설이 많이 들어서 번잡스러움이 거슬리기도 한다. 동쪽 사면에는 작괘천이 대표적인 계곡이다. 물과 모래가 만든 수많은 구멍은 술잔을 걸어놓았다고 작괘(酌掛)란 이름을 얻었다. 이 계곡 물이 시작되는 곳에는 등억온천지구가 있고 이 지구 안에는 간월사가 있다. 간월사는 신라 선덕여왕 때 자장율사가 창건했는데 지금은 탑과 석불이 남아 유서깊은 곳임을 말해준다.

 

  계곡 언덕 위의 자수정광산은 세계 최고급의 수정을 생산했으나 지금은 생산을 중단하고 동굴탐험장으로 바뀌었다. 신불산은 산세가 웅장하고 역동적이다. 산의 늑골을 이루는 능선들은 뾰족한 바위가 날카롭게 솟아 공룡의 등 지느러미처럼 보인다. ‘공룡능선’이란 이름이 붙은 등산로가 3개 있다. 능선에서는 가끔 추락사고가 난다. 계곡을 따라 오르내리면 위험은 없다.

 


정상에 탁 트인 평지…억새밭 ‘은빛 춤’ 장관

 

 

* 신불산 억새평원 *

 

 

  신불평원의 억새밭은 2시간 이상 땀을 흘려야 만날 수 있다. 억새밭은 무엇보다 광활한 면적이 보는 이의 마음을 압도한다. 억새밭은 신불산 정상에서 좌우로 이어진 긴 능선의 평탄지에 펼쳐져 있다. 가파르게 올라온 등산길과는 달리 평탄한 지형이 독특한 느낌을 준다. 평탄지의 탁 트인 풍경이 마음을 열게 한다.

  신불산 정상에서 만나는 억새는 키가 작고 부드럽다. 수억만 그루의 억새가 촘촘히 자라 양탄자처럼 매끄러운 느낌을 준다.

  가을이면 신불억새밭을 찾는 사람이 부쩍 늘어난다. 억새꽃이 피기 때문이다. 억새밭이 바람 따라 은빛 물결처럼 출렁이는 광경이 아름답다. 억새밭 아래 펼쳐진 긴 능선과 산 아래 마을을 보면 마치 구름 위에 떠올려진 느낌을 받는다. 날씨가 맑으면 파란 하늘과 대비되는 은빛 억새 물결이 아름답고, 구름에 덮이는 날에는 안개 속을 거니는 듯한 신비로움에 젖는다. 달빛에 비치는 억새밭의 이색적인 풍경을 보기 위해 캠핑을 하는 등산객도 있다.

  신불산 정상과 영취산 정상 사이 억새평원 가운데에 단조산성이 있다. 산성으로 둘러싸인 억새밭은 수분이 많아 거의 습지와 같다. 산성 이름을 따 단조늪이라 부른다. 습지 속에 나 있는 샛길을 걸으면 억새밭에 파묻힌 고즈넉한 느낌을 받는다.

  신불산 억새밭은 천황산 사자평 억새밭과 종종 비교된다. 높은 지대의 평탄지에 있고, 면적이 크다는 점이 같고 자라는 억새의 종류가 같기 때문이다. 사자평은 신불산과 천황산을 갈라놓은 배내골 서쪽 건너에 있다. 사자평은 산속에 파묻혀 있는데 반해 신불억새밭은 울산시가지와 동해를 바라볼 수 있는 산의 능선을 따라 길게 펼쳐진 차이가 있다.

  신불억새밭에서는 매년 가을 ‘억새축제’가 열린다. 대한산악연맹 울산광역시연맹이 주최하는 등반과 산악자전거, 마라톤대회가 주요 행사이다.

 

 

 

<출처> 20008. 10. 16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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