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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기 및 정보/- 강원도

옛 철원 노동당사엔 전쟁의 상흔(傷痕)이 그대로 남아

by 혜강(惠江) 2008. 6. 3.

 

철원 노동당사

옛 철원 노동당사엔 전쟁의 상흔(傷痕)이 그대로 남아

 

글·사진 = 남상학

 

 

 



  노동당사를 찾아가는 길은 드넓은 철원평야를 끼고 간다. 철원평야는 남한 땅에서 가장 위쪽에 자리 잡은 평야로 강원도 제1의 곡창지대이다. 1930년대부터 봉래지·봉양저수지 등의 수리시설 건설과 토질개량을 한 결과 비옥한 벼농사지대를 이루었다. 철원쌀은 품질이 좋기로 유명하며 현재 휴전선이 지나고 있어 민통선(民統線) 북방에서는 출입 및 입주에 의해 농사를 짓고 있다.

  이곳 넓은 평야 한쪽에 뼈대와 겉모습만 덩그러니 서 있는 3층짜리 건물이 있다. 이곳 철원은 광복이후 6.25전까지만 해도 북한 땅이었다. 노동당사는 북한이 해방 직후부터 한국전쟁 때까지 사용한 조선 노동당 철원군 당사로서 이곳 철원을 관할하기 위해 지었다. 때문에 이곳의 노동당사는 당시 철원의 행정중심지이자 김일성식 혁명의 발원지이기도 했다.

 

  조선 노동당은 이 건물을 지을 때 성금으로 1개 마을 당 쌀 200가마씩을 거두는 등 수많은 농민들이 수탈을 당해야 했고, 반공을 부르짖던 사람들이 끌려가 고초를 겪어야 했던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몇 안 되는 러시아 풍의 건물양식에 철골구조 없이 순전히 시멘트로만 지어진 건물이어서 건축학적으로도 의미가 남다른 곳이다.

  그러나 6.25전쟁 때 철원은 가장 치열했던 전투장이었던 터라, 이 노동당사 건물뿐만 아니라 철원 시가지 전체가 폐허가 되다시피 했다. 실제로 노동당사 부근에는 옛 철원의 상업용 창고와 금융기관, 경찰서 부지 등 광복 이전 번성했던 철원읍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그로 인해 지금은 이곳을 구철원이라 부르고 갈말에 신철원이 들어서게 된 것이다. 교과서나 각종 반공책자에만 소개되던 이곳이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90년대 중반 가수 서태지가 ‘발해를 꿈꾸며’ 라는 노래의 뮤직비디오를 이곳에서 촬영하고 곧 이어 열린음악회가 노동당사 앞에서 열리면서부터다.

  노동당사는 시멘트 건물의 우중충한 퇴색 때문인지, 쳐다만 봐도 흉가처럼 으스스해 뒷걸음쳐진다. 전쟁당시의 치열함과 참혹했던 상황들은 현재의 노동당사 건물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기둥이나 벽에 아직도 포탄과 총알이 박혔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고 3층 건물이었던 건물이 지붕과 3층은 없어지고 골격만 남은 2층 건물이 되어 있다.

  그나마도 건물 안으로는 들어갈 수 없도록 통제가 되어 있어 살펴볼 수 있는 것은 고작 1층. 뻥 뚫린 방에는 온갖 낙서들이 즐비하고, 어떤 방에는 작은 화장실까지도 들여다보인다. 또한 일순 좁고 긴 복도가 한편으로는 섬뜩한 느낌으로 와 닿지만, 반공인사들이 심하게 탄압을 받았던 곳이라는 인식을 하고 나면 왠지 손으로라도 만져 그 쓸쓸함을 달래주고 싶어지기도 하는 곳이다.

  여기서 백마고지는 얼마 안 된다. 그야말로 지척지간이다. 백마고지 전투는 6·25전쟁 당시(1952년 10월 6일부터 15일까지 10일간) 우리 보병 제9사단이 철원평야 북서쪽에 있는 395고지에서 중국군과 벌인 전투를 말한다.

  395고지는 전술적 중요성 때문에 치열한 쟁탈전의 대상이 되었고, 심한 포격으로 고지의 모습이 백마(白馬)와 같다 하여 백마고지라고 불리게 되었다. 이 고지가 철원을 방어하고 주요 도로를 확보하는 데 유리한 위치에 있어서 한국군과 중국군은 12번이나 빼앗고 빼앗기는 혈전을 벌였다.

  중국군은 제38군 소속의 제112~114사단을 투입한 결과 사망 8234명, 포로 5097명, 귀순 57명의 희생을 내면서 물러났다. 반면 한국군 제9사단은 3428명의 사상자를 내면서도 고지를 지켜냈다.

  이 승리는 우세한 포병화력과 공군의 항공근접지원, 예비대의 적절한 운용 외에도 백마부대 장병들의 감투정신에서 비롯되었지만, 나는 여기서 피아간 전쟁으로 죽어간 넋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백마고지 잔인한 어머니, 그 품속에 말없이 누워
     하늘의 별을 세는 땅 위의 별들을 본다.
     우람한 원시의 생명과 작은 들꽃의 향기와
     새들의 노래 대신, 포탄의 잔해와
     화약냄새와 그 밑의 생명이
     별이 되어 쉬고 있는, 그 산은 백마고지
     다시는 생명을 잉태할 수 없는
     다가서고 싶은 그리움도 민통선에 묶이는 산
     395고지 백마산, 이름 없는 능선이
    세계의 전사(戰史)에 떨친다
    언제면 별들은 고향으로 돌아가고
    산은 산으로 돌아오려나.

 

  이 시는 제9사단 제28연대 제6중대장 김운기 대위가 전투로 전우들이 처참하게 죽어가는 것을 보고 피를 토하며 쓴 글이다. 하늘을 쳐다보며 마지막으로 어머니를 부르다 목숨이 꺾인 젊은이들에게 백마고지는 ‘잔인한 어머니’였다. ‘하늘의 별을 세는 땅 위의 별’은 죽은 전우들이다. 6·25전쟁을 다룬 어떤 영화보다 전쟁의 참상이 생생히 그려지지 않는가.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별들. 들꽃처럼 사라진 그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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