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정리역
월정리역(月井里驛), 철마는 달리고 싶다.
강원도 철월군철원읍 홍원리 703-9(폐역)
글·사진 남상학
월정리역(月井里驛)은 철원군 어운면 월정리(동경 127°14′5″,북위 38°19′7″)에 위치해 있던 역사(驛舍)로 서울서 원산으로 달리던 경원선 기차가 잠시 쉬어가던 곳으로, 철원역과 평강군 남면 가곡리에 소재한 가곡역 사이에 있던 간이역이었다. 현재는 비무장 지대(휴전선)의 남방 한계선의 철책에 근접한 최북단 종착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1950년 6월 금강산을 향해 달리던 경원선 열차는 월정리역이 종착역이 되고 말았다.
원래 경원선은 한일합방 이후 조선사람들을 강제동원하고, 당시 러시아의 10월 혁명으로 추방된 러시아인을 고용해 1914년 8월 만들었다. 서울에서 원산까지 223.7Km를 연결하는 산업철도로 철원에서 생산되는 생산물을 수송하는 역할을 했다. 따라서 월정리역은 개통 이래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농축산물과 토산물 등을 서울과 원산 등지에 수송하고 원산에서 어류, 서울에서 생활필수품 등을 반입하는데 중간 역무를 담당해 온 역사였다. 그러나 6.25 동란으로 역사와 기타 시설물이 파괴되었던 그 자리에 철원군에서는 철의 삼각전적지 관광개발사업 계획의 일환으로 철도청 주관으로 서기 1988년 월정역을 정비하였다. 그러나 살지 않는 집은 퇴락해 지듯, 손님이 찾아들지 않는 역사는 휑하니 덩그렇게 서 있다.
이렇듯 역사의 조명을 받은 월정리역은 여러 소설의 무대가 되기도 했다. 이태준의 소설 「사냥」에서 몰이꾼 중의 한 청년이 죄를 짓고 도망친 역이다. 일제시대 월정리역은 어떻게 해도 죄인이 될 수밖에 없는 민중들이 운명을 거는 곳이었다. 그러나 경원선가 15절중 월정리를 그린 이 대목을 보면 해방이 되자 월정리역은 민중들의 현실로 나타났다.
월정리를 잠간 거쳐 평강이르니
금강산의 탐승객은 끄치지 않아
길을 덮고 팔을 메여 오고 가니
자동차는 승객운반 분주하구나
그리고 다시 월정리역이 비극적인 역사의 한 장에 등장했다. 전쟁이 계속되는 동안 월정리는 전투장이었다. 열차는 이미 폭격으로 해체되어 있었고, 이때 총격전의 엄폐물로 만신창이가 되었다. 그리고 월정리역엔 길게 누워 있는 철마와 함께 역사의 시계가 멎었다.
매표소 쪽문은 쥐구멍 되어 반질반질 길들고
출찰구 비치던 외등 녹슨 슬픔으로 울고 있다.
덩덩더덩 쿵쿵덕쿵
어쩌나 어쩌나 쑥대밭에 깨어 있는
별빛 부스러기 주워 모아 제단을 놓고 살을 풀어 본다.
붉은 화염 노한 포성 아주 아주 씻어버리고
엉크러지고 찢긴 영혼 새로 가닥잡아 펴 주시고
금강산 원산 길도 수월케 풀고
오, 월정리 역. 맑은 달빛 샘으로 고여 흥건하게 흐르고
철길 옆에 버려진 깨어진 역사 팽개치고 흩어진 목숨 깁고 꿰매
덩더덩 덩더더덩 일어나시게.
- 문효치의 ‘월정리역’
또, 다른 시 한 편,
1.
미완성의 전쟁터 뼈대 앙상한 녹슨 철마를 스치던
솜털 보송보송한 민들레 씨앗 장마에 떠밀린 바람타고
훌쩍 휴전선 철조망을 넘어 북으로 유유히 나른다.
엄니의 실향의 땅으로 내딛는 내 발목만은 왜
상기도 족쇄가 옥조이고 놓아주지 않는가?
철의 삼각지 7월 바람과 구름은 화분(花粉)과 들꽃 향을 품고
벌 나비 고라니 앞세워 건너는, 분단의 북녘 우리땅으로
북상하는 백로의 날개깃 빗끼며 대남비방 방송은 시끄러이 넘어와
총알처럼 무수히 가슴에 박힌다. 한줄기 거미줄 하늘대는
먼지 푸석이는 대합실 "열차표 주세요"
대답대신 매표창구에서는 곰팡이 냄새만 일고
역사(驛舍)는 무성한 주변의 잡초와
흐드러진 하이얀 개망초꽃에게 "철마는 달리고 싶다"속삭인다.
2.
육이구 퇴출당한 실향민의 동화주식* 망향의 한 덧칠한 백지조각으로 변신
사모의 정 몽땅 뭉개놓고 오, 어머니 어찌 하오리까
끝내 한탄의 기인 한 숨과 함께 철조망너머 북녘 하늘로 찢긴 채
깨어진 망향의 꿈만 훨훨 날려보낸다.
- 함동진의 '월정리역에서'
월정리역 뒤쪽에는 현재 철도 종단점을 알리는 <철마는 달리고 싶다>는 입간판과 객차의 잔해가 남아 있어 분단 상황을 실감케 한다. 간판 아래 심하게 부식되어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기차는 머리가 북쪽으로 있는 것으로 보아 원산을 향하던 기차였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한국 전쟁 때 원산을 향해 가다가 포탄을 맞아 멈추어 찌그러진 채, 더 이상 가지 못하고 50년 동안을 쓸쓸히 누워있다. 표지판에 쓰인 <철마는 달리고 싶다>는 절규가 분단의 아픔을 실감하게 한다. 그리고 표지판에 쓰인 “월정리역에서 서울 104Km. 평강 19Km” 글귀에서 보는 남과 북의 거리가 새삼 뭉클하다. 북쪽 평강까지의 거리는 아무리 가까워도 통일 전에는 별 의미가 없어 보여 가슴이 아프다.
철길은 누워있는 시간이다. 지나온 시간이 과거이듯 다가올 시간은 미래이다. 미래의 길을 묻기 전에 나는 끊어진 철길 위에서 지나온 길의 의미를 되새겨 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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