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아프리카 튀니지
북아프리카의 진주 튀니지를 가다
시디 부사이드-튀니스-나불-마트마타-도우즈-토주르 순례
글·사진 김원섭 여행사진작가
지중해와 만나는 북아프리카에 보석처럼 박혀 있는 튀니지. 영어보다 프랑스어가 더 일상적으로 쓰이는 이곳은 한니발의 숨결이 오롯이 살아 있는 곳이다. 또한 지중해에 면한 아름다운 해변과 이국적인 사막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아랍국가다. 한반도보다 작은 규모지만 유구한 역사와 다양한 문화, 아름다운 자연을 간직한 나라다.
▲ 비르사 언덕에서 본 카르타고 유적지. 한니발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한니발 장군의 영광을 간직한 카르타고(Carthage). 카르타고는 페니키아가 북아프리카에 세운 무역 거점도시로 출발했다. 한때 지중해 무역을 독점하던 세력이었고 전략적 요충지였다. 또한 로마를 정복한 명장 한니발의 고향이기도 하다. 한니발 전쟁으로 잘 알려진 제2차 포에니 전쟁에서 로마에게 패하기 전까지 1,000여 년 동안 강국으로 명성을 떨쳤지만, 승리한 로마는 카르타고를 철저하게 유린했다. 파괴된 도시에 풀 한 포기도 자라지 못하도록 소금을 몇 겹이나 뿌렸으니 말이다.
한니발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비르사(Byrsa) 언덕에 오른다. 세인트루이스 성당 오른쪽, 지중해를 배경으로 돌기둥과 흙벽만 남은 카르타고 유적지가 펼쳐져 있다. 지중해의 따사로운 햇살 아래 만개한 봄꽃 사이에 방치된 유물들, 페허 아래로 보이는 비취빛 바다가 눈부시다. 영광의 시대를 지나 흔적만 남은 유적을 보니 기원전 146년에 사라진 도시의 허망함이 밀려온다.
지중해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위치한 시디 부사이드(Sidi Bousaid). 16세기 스페인 남부지방에서 건너온 사람들이 정착하면서 형성된 이 마을은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을 닮은 풍경이 이국적이다. 오렌지 나무가 늘어선 길을 따라 흰 벽과 파란 색 대문과 창을 한 집들이 늘어서 있다. 파리와 모기가 하늘로 착각해 집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파란 색으로 칠했다고 하니 그 발상이 재미있다.
또한 왕성한 작품활동을 벌이는 예술가들이 많이 살고 있어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다. 이곳에서 꼭 들러봐야 할 곳이 카페 나트. 앙드레 지드, 모파상, 화가 폴 클레 등 수많은 예술가들이 찾은 곳으로 지중해를 바라보면서 마시는 커피 한 잔은 각별하다.
튀니지의 수도 튀니스는 인구 213만 명에 모여 사는 대도시다. 7세기에 세워진 이 도시는 20세기로 넘어오는 동안 프랑스가 점령하여 프랑스 문화가 많이 퍼져 있다. 오래된 유적지와 박물관, 구시가지 메디나, 이슬람 사원인 모스크, 전통시장인 수크, 음식점 등이 밀집해 있다.
찬란했던 튀니지의 흔적을 찾아보려면 바르도 국립박물관을 방문하면 된다. 세계 최대의 타일모자이크를 모아놓은 바르도 박물관. 이곳은 19세기 오스만터키 시대의 왕궁건물에 자리 잡고 있다. 튀니지의 복잡한 역사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도록 카르타고, 로마, 중세의 기독교, 아랍의 각 문화권별로 전시되어 있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2층에 자리한 로마시대의 로만 타일모자이크와 초기 기독교 시대를 보여주는 크리스천 타일모자이크다. 박물관은 시내에서 서쪽으로 4km 정도 떨어져 있고, 택시나 트램으로 쉽게 갈 수 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구시가지 메디나의 가장 큰 볼거리는 아름다운 지투나(Zituna) 모스크로 7세기에 세워졌다. 이 건물을 지을 당시 카르타고 유적지에서 가져온 200여 개의 돌기둥을 이용해 중앙 예배당을 지었다고 한다. 비 이슬람교도들은 정원까지만 들어갈 수 있다. 이 모스크를 중심으로 전통시장 수크가 자리 잡고 있는 이곳에 서면 튀니스 사람들의 일상을 가감 없이 접할 수 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 원형경기장은 긴 지름이 162m, 높이 40m로 3만5천 관객을 수용할 수 있는 큰 규모다. 경기장 동쪽 관객석은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으나 서쪽은 심하게 훼손되어 있다. 17세기 정부의 가혹한 세금 징수에 불만을 품은 주민들이 반란을 꾀하였고, 이 과정에서 원형경기장을 방어요새로 삼았다 한다.
이곳 베르베르인들은 천 년 전부터 사막의 뜨거운 열기를 피해 땅을 파 지하에 주거공간을 만들었다. 대략 6m쯤 위에서 아래로 파내려가 가운데 정원을 두고 양쪽으로 방과 창고, 부엌을 만들었다. 비가 거의 내리지 않는 사막기후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엘젬의 원형경기장.
도우즈(Douz)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 무하라스의 집을 방문했다. 그와 아내 3남 3녀의 자식들이 함께 살고 있는 집은 위에서 아래로 파내려가지 않고 길가 언덕에 큰 구멍을 파고 큰방과 부엌, 창고 등 필요한 공간을 만들었다. 부엌에서 그의 아내가 맷돌에 밀을 갈고 있는데, 정겨워 보인다. 방으로 들어가 보니 사막의 열기를 느낄 수 없을 만큼 시원하고 쾌적하다.
튀니지의 대표적인 요리 쿠스쿠스로 점심을 한다. 밀을 잘게 부수고 향료와 버터, 양고기를 넣어 죽처럼 만든 쿠스쿠스는 잘게 부순 밀이 씹혀 감칠맛이 나는 스튜 요리 같다.
도우즈에서 케빌리(Kebili)를 지나면 거대한 제리드(Jerid) 소금호수가 나온다. 호수를 가로질러 낸 둑길 위로 차가 지나가는데, 중간 중간에 호수를 구경할 수 있다. 우기 때는 물이 좀 있지만, 건기인 4월에는 메말라 작은 연못 크기의 소금호수로 변해 있었다. 하얀 색 소금호수는 사막쪽으로 바닥을 드러낸 채 광활하게 펼쳐져 있었는데, 색다른 볼거리였다.
▲ 시디 부사이드 언덕으로 오르는 길에 만난 자스민꽃을 파는 아저씨. 세상을 향해 내뿜 는 강렬한 향이 인상적이었다.
석양의 사막 낙타투어
석양이 질 무렵 도착한 사하라 사막의 관문인 토주르(Tozeur). 200개의 샘이 있는 오아시스에서 물을 끌어와 키운다는 20만 그루의 대추야자나무숲이 인상적이었다. 이곳의 매력적인 구시가 울레드 엘하데프(Ouled el-Hadef)는 14세기 무렵 낙타 대상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한 엘하데프 가문이 살던 곳으로, 전통적인 벽돌 제조방법이 인상적인 곳이다.
해질녘, 낮의 뜨거운 열기를 피해 낙타 투어를 하기로 한다. 조심스럽게 낙타 등에 올라 일어서기를 기다리는데, 긴 뒷발로 벌떡 일어서자 순간 몸이 확 쏠리며 아찔하다. 낙타가 완전히 자세를 잡고서야 편안해진다. 아름답게 석양이 물드는 사막으로 들어간다. 사막여우를 든 사람, 낙타를 모는 사람, 전통 의상에 말을 타고 달리는 사람들로 이국적인 풍경이 펼쳐진다.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것은 사막여우를 든 청년이다. 검은 색 전통의상을 입고 수줍어하며 외계의 푸른 별에서 온 듯한 귀 큰 여우를 안았다. 애완용으로 키우는 사막여우란다. 특유의 큰 귀를 쫑긋 세우며 경계한다. 낯선 시선들이 두려운가 보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 동쪽 하늘엔 보름달이 떴다. 사막에서 오아시스로 돌아오는 길만큼 행복한 여정이 또 있을까. 낙타 등에 몸을 싣고 아리랑, 고향의 봄, 월드컵송을 부른다. 누군가의 눈에는 눈물이 맺혔다.
다음날 메틀라위(Metlaoui)에서 옛날 튀니지 왕이 즐겨 이용했다는 붉은 도마뱀 열차에 오른다. 셀자강이 흐르는 거대한 사암 골짜기 사이로 도마뱀처럼 날렵하게 기차가 들어간다. 영화의 한 장면 같은 풍경이다. 레데예프(Redeyef)로 가는 동안 기차는 두 번 정차하는데, 아마도 멋진 협곡을 즐기도록 한 배려인 듯하다.
한니발의 영광을 간직한 도시 카르타고의 흔적과 로마 유적이 곳곳에 남아 있는 곳, 게다가 비취빛 지중해를 따라 형성된 아름다운 해변과 끝없이 펼쳐진 사막이 만들어 내는 독특한 풍경은 분명 매력적이다.
▲ 튀니지 왕이 즐겨 이용했다는 붉은 도마뱀 열차. 지금은 관광객을 위한 열차로 이용되고 있다. / 마트마타의 베르베르족 동굴집. 지상에서 6m쯤 파고 내려가 가운데 정원을 두고 방과 부엌, 창고를 만들어 놓았다.
교통 아직 한국에서 직항편은 없다. 항공편은 유럽의 주요 도시나 터키 이스탄불에서 연결편을 이용하면 된다. 도심과 관광지로 연결되는 대중교통이 불편하므로 미니버스와 택시를 주로 이용한다. 튀니지의 주요 도시들을 국영버스회사인 신트리(SNTRI)에서 에어컨이 달린 버스를 운행하기에 편리하다.
여행상품
시차 한국보다 8시간 늦다.
기후 지중해성 기후로 7월 평균기온 29.3℃, 12월 평균기온 11.4℃로 6월 초에서 8월 말까지는 덥고 건조한 날씨가 이어진다. 겨울은 지중해성 기후의 영향으로 온화하나 쌀쌀하며 비가 자주 내린다. 봄이 시작되는 3월부터 6월까지, 9월부터 11월까지 봄·가을이 여행하기에 좋다. 북서쪽 산악지방은 겨울에 종종 눈이 내리기도 하지만, 남쪽으로 내려가면 덥고 건조하다. 사하라 사막 부근은 몇 년간 비가 내리지 않을 때도 있다.
환율 1달러=1.25튀니지 디나르(TD)
<출처> 2008.03 / 월간산 [46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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