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 걸고 지킨 보령 천수만
그 바다는 더 예뻐 보였다
문화일보 박경일기자
▲ 변합없는 서해 낙조 충남 보령시 천북면 학성리의 어촌마을에서 바라본 낙조풍경. 삽으로 떠낸 모양의 작은 섬 ‘맨삽지’너머로 낙조가 물드는 풍경은 황홀하기까지 하다. 해안에 바짝 붙어 떠있는 맨삽지는 썰물때면 바닷길이 드러나 건너갈 수 있다. 뒤로 보이는 병풍처럼 펼쳐진 땅이 안면도다.
최악의 태안 앞바다 기름유출 사고가 발생한 지 이제 한 달을 넘어섰습니다. 사고 이후, 서해안 일대에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긴 것은, 차량 통행량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주말은 물론 평일에도 차량들로 넘쳐나던 서해안 고속도로에 교통정체가 사라졌습니다. 태안은 물론이고, 안면도며 대천이며 멀리는 전북 군산이나 변산 쪽까지 관광객들의 발길이 뚝 끊긴 것이지요.
충남 태안의 안면도며 홍성, 보령을 너머 전북 군산과 부안까지 서해안 일대를 돌아보다가, ‘기름 오염이 안 된 곳’을 찾아나선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생각해보았습니다. 타르덩어리에 해안이 오염되지 않았거나, 훨씬 피해가 덜한 곳을 골라내 소개하는 것이 더 심한 피해를 당한 곳에 대한 배려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하지만 고민스럽다고 아예 외면할 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나선 길에서 남북으로 길게 누운 안면도의 안쪽 바다인 충남 보령쪽의 천수만을 찾았습니다. 천수만의 바다는 여전히 맑고 아름다웠습니다. 사력을 다했던 방제작업 덕이겠지요.
충남 보령의 천수만과 닿아 있는 해안에서 꼭꼭 숨겨져 있는 ‘맨삽지’란 이름의 작고 아름다운 섬과 낭만적인 작은 어촌을 만났습니다. 마침 섬 뒤쪽으로 붉은 해가 넘어가는데, 마을의 모래언덕 위에 올라 노을에 물든 바다를 내려다보았습니다. 막 해넘이가 시작된 작은 어촌의 풍경은 평소보다 훨씬 더 소중하게 느껴졌습니다. 한순간의 실수로 잃은 ‘평화로운 바닷풍경’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지를 깨닫게 해줬기 때문이었을까요.
천수만 일대를 돌면서, 한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섬 ‘빙도’와 그 섬에 얽힌 도미부인 설화를 들었습니다. 빙도의 폐교된 초등학교가 어찌 그리 단출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는지, 우람한 느티나무를 마당에 거느린 절집 선림사의 고요함도 알게 됐습니다. 또 토정비결을 지었다는 토정 이지함의 묘가 천수만을 내려다보는 충남 보령에 있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습니다. 충청수영이 주둔하고 있었다는 오천성곽에 오르면 오천항 일대가 한눈에 들어온다는 것도, 도미부인의 사당과 묘가 실제로 보령 땅에 있다는 것도, 병인박해때 순교장소였던 갈매못성지의 성당이 이렇듯 아름답다는 것도 미처 몰랐던 것이었습니다.
▲ 천수만 안쪽의 내륙 깊숙한 곳에 떠있는 자그마한 섬 빙도의 끝간 데 없이 펼쳐진 갈대밭. 지금은 연륙교가 놓여서 섬 아닌 섬이 됐지만, 7년 전까지만 해도 마을 주민들은 사공이 젓는 거룻배를 타고 건너다녔다. 섬 연안에는 나무로 지은 거룻배가 아직 떠있다.
바다를 떼어놓고서도, 보령의 작은 마을과 어촌들은 여러 이야기와 아름다운 풍경으로 풍성했습니다. 어찌보면 우리가 그런 곳들을 알지 못했던 것은, 바다가 눈을 가린 때문이 아닐까요. 바다를 버리고 서니, 비로소 그 이야기와 풍경이 하나씩 다가왔습니다.
이렇게 여행을 떠나본다면 어떨까요. 태안에는 아직 눈부신 백합이 피어나는 꽃밭과 푸른 연잎이 돋는 아름다운 연밭이 있고, 서산에는 마애삼존불이며 개심사의 느슨하면서도 여유로운 멋이 있습니다. 안면도에는 쭉 뻗은 적송이 늘어선 휴양림이 있고, 군산에는 금강하구언을 찾아온 철새들로 그득합니다. 바다를 빼고도 다른 곳보다 나은 여행 목적지들이 즐비하답니다. 이렇게 길을 나선 차들로, 서해안 고속도로가 하루빨리 다시 예전의 정체를 되찾았으면 합니다.
<출처> 2008. 1. 9 / 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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