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보령
보령서 건져올린 숨은 풍경·정취·이야기
문화일보 박경일기자
▲ 천수만 안쪽의 내륙 깊숙한 곳에 떠있는 자그마한 섬 빙도의 끝간 데 없이 펼쳐진 갈대밭. 지금은 연륙교가 놓여서 섬 아닌 섬이 됐지만, 7년 전까지만 해도 마을 주민들은 사공이 젓는 거룻배를 타고 건너다녔다. 섬 연안에는 나무로 지은 거룻배가 아직 떠있다.
# 뜻하지 않았던 맨삽지의 작은 어촌마을에서 만난 황홀한 낙조.
해안선을 따라 천수만을 돌아보다가 꼭꼭 숨어있는 그곳을 찾아냈다. ‘맨삽지’란 이름이 붙은 섬을 끼고 있는 작은 어촌마을. 보령시 천북면 학성리 해안에서 북쪽으로 좁은 길을 따라 올라가서 만난 곳이다. 맨삽지는 밀물이면 섬이 됐다가 썰물이면 물길이 드러나는 자그마한 섬. 뭍에서 불과 30m쯤 떨어져 있다. 마을 주민들은 “삽으로 떠낸 것 같은 모양 때문에 그런 이름이 섬에 붙었다”며 “그래봐야 섬이 별 볼 일이 없어 ‘맨 삽’이라 했다”고 했다. 맨삽지는 그러나 이런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아름다운 풍경을 빚어내고 있다. 활처럼 양편으로 굽은 모래밭 너머로 붙어있는 섬의 주변은 독특한 모양의 바위로 둘러싸여 있다. 봉긋한 섬 중앙에는 소나무들이 빽빽하다.
이곳 맨삽지의 해질 무렵 풍경은 어촌마을의 모래 언덕에 올라야 가장 아름답게 만날 수 있다. 이 언덕에서 굽어보면 해질 무렵의 풍경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멀리 안면도 쪽으로 지는 해가 불 붙는 듯 붉은 노을을 토해내고, 그 붉은 빛이 맨삽지의 소나무를 물들인다.
전국의 내로라하는 명소의 해넘이를 낭만적인 순서대로 순위를 매긴다면, 이곳 맨삽지의 해넘이는 적어도 다섯손가락 안에 꼽히지 싶다. 남쪽 끝으로 보이는 보령화력발전소의 굴뚝이 점수를 좀 깎아먹기는 하지만, 그걸 감수하고도 낙조풍경만큼은 어느 곳에도 안 빠진다.
어찌 이런 곳이 지금껏 잘 알려지지 않았을까. 불편한 교통과 알려진 곳만을 찾는 사람들 탓이다. 5년 전 우연찮게 들른 이곳의 아름다움에 빠져 도회지살이를 청산하고 가족들과 함께 이곳으로 내려왔다는 이준형씨는 “알음알음 아는 사람들만 찾아오는 곳”이라며 “다른 계절은 물론이고 여름 피서철에도 한적하게 지낼 수 있다”고 했다.
맨삽지 부근의 해변에는 발자국 하나 찍히지 않았다. 가뜩이나 인적이 드문 어촌마을인 데다, 태안의 기름유출사고로 서해안을 찾는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어지면서 해안마을은 그야말로 한적하기 이를 데 없다. 그 조용한 해변에서 밀물이 방금 훑고 지나간 단단하면서도 깨끗한 모래밭을 홀로 사각사각 밟는 맛이라니….
# 오천항에 엄숙한 순교의 현장을 둘러보다
▲갈매못 성지
맨삽지에서 서쪽으로 내다보이는 섬이 안면도고, 남쪽은 바다 건너 보령시 오천항이다. 오천에는 충청수영이 있던 오천성이 있다. 서해안에 출몰하는 왜구들을 방어하기 위해 조선시대 축성했다는 성은 1㎞ 남짓만 남아있지만, 오천항을 내려다보는 높은 언덕 위에 세워져 있어 이쪽에서 바다를 내려다보는 맛이 그만이다. 성내에는 진휼청, 장교청 등 부속건물들도 남아있어 정취를 더 한다.
오천성에서 길을 따라 남쪽으로 조금만 더 내려가면 갈매못 성지에 닿는다. 이 땅에 천주교가 전래된 이후, 가장 혹독했다는 병인박해 때인 1866년 3월10일 다블뤼 안 안토니오 주교를 비롯해 프랑스 신부 3명과 2명의 한국인 신도가 순교한 곳이다. 이후에도 10여년동안 이곳에서 수많은 천주교 신도들이 목숨을 잃었다. 당초 다블뤼 주교 등은 서울에서 처형될 예정이었으나, 고종이 혼사를 앞두고 있어 서울에서 피를 보는 것이 자칫 좋지 못한 징조가 될까 우려해 충청수영이 있던 오천지역의 갈매못의 사형터에서 이들을 처형했다. 훗날 샤를 달레 신부는 “형장으로 택한 곳은 바닷가 모래사장이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갈매못 성지에는 순교 기념비와 함께 예수 수난을 기록한 작은 조형물들이 있다. 가톨릭 신도야 다르겠지만, 비신도들의 눈으로는 그다지 볼 것이 없다는 느낌이 먼저 든다. 그러나 지난 2006년 10월에 새로 지었다는 성당을 들어가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성당이 언덕 위에 올라있는 데다, 소나무들에 가려 외관은 한눈에 들어오지 않아 별 기대하지 않고 성당 안으로 들어섰다가 정면의 창으로 가득 바다가 펼쳐지는 모습을 대하면 깜짝 놀라게 된다. 화강암으로 마무리한 곳곳의 조형적인 성당의 건축미도 볼 만하다. 그러나 겨울철에는 일반인들에게 외부공개를 하지 않는 것이 아쉽다.
# 토정비결을 지은 토정 이지함의 묘소가 이곳에 있다.
▲ 도미부인을 기리기 위해 세워놓은 도미부인사당
해마다 신년이면 한해 운세를 점치기 위해 재미로라도 본다는 토정비결. 본명보다도 그 토정비결을 지은 것으로 더 유명한 토정 이지함. 그의 묘소가 바로 서해의 낙조가 내려다보이는 충남 보령시 주포면 고정리 국수봉 기슭에 있다. 먼 앞날을 내다본 비범한 예언가였던 그가 생전에 스스로 택한 묘자리다. 이른바 ‘고래가 물 속으로 들어가는 지세’라는데, 하루종일 해가 드는 양지바른 언덕 위에서 바다를 내려다보는 묘 앞에 서면 문외한의 눈에도 ‘명당의 기운’이 느껴진다.
조선 중기의 학자이자 기인으로 이름난 이지함은 유학은 물론이고 천문, 지리, 음률, 점복, 관상 등 여러 방면에서 비상한 재주를 가졌으되, 평생을 청빈무욕하게 보냈다. 특히 그는 철로 만든 갓을 쓰고 다니거나, 한강변에 흙집을 짓고 사는 등의 갖가지 기행으로 여러 일화를 남겼다. 그는 아산현감 재직시 이질을 앓다가 6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당대의 토정에 대한 평가는 어땠을까. 율곡 이이는 선조 11년에 펴낸 ‘경연일기’에서 토정의 죽음에 대해 이렇게 썼다. “그는 젊어서부터 욕심이 없고 인색함을 몰랐다. 기질을 이상하게 타고나 추위, 더위, 주림, 갈증을 잘 참았다. 어떤 때는 알몸으로 거센 바람을 맞았고, 또는 열흘을 음식 한 번 먹지 않아도 병들지 않았다. 천성이 효성과 우애가 깊었고 재물을 가볍게 여겨 남의 급한 사정을 잘 도왔다. 명령을 내리는 것은 모두 백성을 사랑하기를 위주로 하니 백성 모두가 그를 흠모했다.”
신묘한 능력을 가진 이지함이 썼다는 토정비결을 믿어야 할까. 사실 토정비결은 이지함과 관계없이 후세에 지은 것이라는 것라는 설과 함께 이지함이 지었다가 너무도 정확히 적중하는 것에 두려움을 느껴 아궁이에 던진 것을 제자가 건져내니 이미 반쯤이 타서 나머지를 다시 지어서 붙인 것이란 얘기가 전해온다. 토정비결이 이지함이 지은 것이 사실이라 해도, 절반만 그의 저작인 셈이니 반은 맞고, 또 반은 틀리는 셈이다.
# 숨겨진 섬 빙도, 그리고 열녀 도미부인에 얽힌 이야기들.
▲ 신라시대 창건됐다는 유서깊은 절집 선림사.
보령호 안쪽에는 ‘빙도’라는 숨겨진 섬이 있다. 한때 미인도라고 불리다가 빈섬으로도 불리기도 했다는 빙도는, 천수만에서 광천으로 가는 물길 중간쯤에 있다. 한때 새우잡이배가 석양 무렵 천수만에서 빙도를 지나 광천으로 올라가는 모습이 장관이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지금은 오천과 천북을 잇는 방조제가 지어지면서 호수가 돼버린 데다, 지난 2000년에는 다리가 놓여 섬 아닌 섬이 돼버렸다.
자그마한 섬 빙도에는 독특한 정취가 풍긴다. 30여가구 100여명이 사는 작은 섬이지만, 일제 강점기에는 금광이 개발돼 북적거리기도 했던 곳이다. 지금은 폐교됐지만 섬 한쪽의 언덕에 그림처럼 들어선 빙도초등학교의 서정적인 모습에다, 해안을 따라 무성한 갈대밭과 그 사이로 날아오르는 청둥오리떼들의 모습도 좋다. 연륙교가 놓이기 전에 육지를 오가던 낡은 목선이 매있는 모습도 운치가 넘친다. 정기적으로 바다와 연결된 방조제 수문을 열고 닫기 때문에, 빙도와 육지를 잇는 빙도교에는 망둥이를 낚으려는 낚시꾼들로 붐빈다.
이 작은 섬을 특별하게 하는 것은 바로 삼국사기에 전하는 도미부인에 얽힌 설화. 도미부인은 백제시대에 목수일을 하던 도미의 아내. 당대 최고의 미녀였다고 전해진다. 백제 개루왕이 이쪽에 순행하다가 도미 부인이 천하일색이란 말을 듣고, 계략을 짠다. 도미에게 지키지 못할 일을 주고 이를 수행하지 못하자 두 눈을 뽑아 조각배에 태워 흘려보낸 것. 그러고는 도미의 아내를 불러 수청을 들라고 요구한다. 그러나 도미의 아내는 깊은 밤 빈배에 올라 떠내려가서 남편 도미를 찾아내 고구려로 망명했다.
보령시 오천면과 천북면 일대에는 도미설화와 관련된 지명들이 그대로 남아있다. 도미가 살던 포구는 도미항이고, 도미의 아내가 출생한 섬은 미인도(빙도)며, 도미부인이 눈 먼 남편을 생각하며 올라 눈물을 흘렸던 산봉우리는 상사봉(220m)이다. 상사봉에 오르면 빙도와 도미항, 오천항, 안면도, 원산도 등이 병풍을 펼쳐놓은 것처럼 바라보인다. 이 상사봉 아래에는 정갈한 도미부인의 사당이 들어서 있고, 도미와 도미부인의 묘도 조성돼 있다. 또 산 중턱에는 느티나무 거목이 서있는 절집 선림사가 그윽하게 들어서 있다.
향긋한 굴구이 ‘꿀맛’ 발길 끊겨 인심 ‘ 두배’
보령시 오천면·천북면 가는 길 = 수도권에서 가자면 서해안고속도로를 이용해야 한다. 광천 나들목에서 빠져나오는 것이 대천나들목에서 나오는 것보다 훨씬 더 가깝다. 광천나들목에서 천북면 소재지 쪽으로 향하다가 만나는 40번 국도에서 좌회전해 내려가면 오천면에 가닿는다. 오천면 못미쳐서 보령호를 건너기 전에 우회전해 들어가면 학성리의 밤섬을 지나 맨삽지에 닿는다. 밤섬은 간척으로 육지가 된 곳인데 곶처럼 불쑥 나온 지형에 펜션이며 횟집 등이 들어서 있다. 밤섬에서 우회전해서 해안길을 따라가면 그림 같은 섬이 떠있는 맨삽지다. 충청수영이 있던 오천성은 보령호 너머 오천항에 있다. 빙도, 도미부인 사당, 선림사 등은 오천면 쪽에서 청소면 쪽으로 가는 길을 따라가면 찾을 수 있다.
어디서 묵고 무엇을 맛볼까 = 가족단위 여행객이라면 대천해수욕장의 한화리조트가 가장 적당하다. 숙소를 해수욕장 쪽에 잡으면 밤바다의 낭만적인 풍경을 함께 즐길 수 있다. 호젓한 분위기를 원한다면 학성리의 맨삽지 바로 앞에 있는 펜션 해나루(041-641-0181)가 적격이다. 이름은 펜션이지만, 가정집을 개조한 곳으로 소박한 민박집에 더 가깝다. 이곳에서 묵으면 인적 없는 맨삽지의 바다를 통째로 느낄 수 있다.
먹을거리로는 천북면 장은리 일대의 굴구이가 첫손으로 꼽힌다. 천수만 연안에서 자란 자연산 굴과 여수 등지에서 올라온 양식 굴 등을 즉석에서 구워먹는데 3~4인 기준 2만5000원선이면 향긋한 굴구이 맛을 볼 수 있다. 천수만은 기름유출 피해가 없는데도, 손님들의 발길이 뚝 끊겨 개점휴업상태. 가격은 예년과 차이가 없지만, 이즈음 굴구이집을 찾아가면 환대와 함께 극진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100여곳에 달하는 굴구이집들은 내놓는 굴의 품질이나 양이 비슷하지만, 자연산 굴을 직접 따내는 ‘미라네굴집’(041-641-4492)의 인심이 후한 편이다.
오천항에서는 키조개와 함께 겨울철 별미인 간자미 무침이 유명한데, 그중 소영식당(041-932-2989)이 전국적인 유명세를 타고 있는 집이다. 식당은 계절을 가릴 것 없이 손님들로 북적거렸지만, 이즈음에는 손님이 뚝 끊겨서 호젓하게 새콤달콤하게 무쳐낸 간자미 맛을 볼 수 있다.
<출처> 2008. 1. 9 / 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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